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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70화 (47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70화

하이디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틀림없다.

저 파란색 머리카락, 바로 어제 서점에서 봤던 그 남자애.

'시몬!'

조금 맹한 구석이 있어서 입학하면 적응도 잘 못 할 것 같던 그 녀석이, 저 무서운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트리면서 나타났다.

"네,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시몬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이디는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시몬의 커다란 손을 꼬옥 붙잡았다.

'아.'

그러자 그녀의 몸이 기분 좋은 노곤함에 휩싸였다. 밤새 자지도 못하고 피로와 스트레스가 극도로 누적되어 있었기에, 시몬의 '슬립(Sleep)'은 더 잘 들었다.

안락감을 느끼며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시몬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 안에 기대게 했다. 시야가 흐려지며 끔뻑끔뻑 눈을 감던 하이디는 이내 완전히 잠들었다.

"휴우."

시몬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그녀의 어깨를 한쪽 팔로 감쌌다. 그러곤 다른 한 손에 칠흑을 휘감아 휘둘렀다.

꽝!

칠흑으로 이루어진 투사체가 시몬의 손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나타났군.'

피부가 따끔거리는 듯한 불길한 칠흑.

구멍이 숭숭 뚫린 허름한 로브를 눌러쓴 네크로맨서가 팔을 뻗은 채 서 있었다. 후드 안으로 보이는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시체 썩는 듯한 악취가 풍겼다.

"......자네는 누군가."

그의 입이 열리며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긴 어떻게 찾아왔지?"

시몬은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당신은 암페르지 가문에 고용된 네크로맨서죠?"

"......."

"발뺌해도 소용없어요. 암페르지 측 후보생은 이미 저희 키젠에 붙잡혀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신입생을 납치하고, 부정입학을 시도한 혐의로요."

네크로맨서의 소매에서 말라붙은 손이 턱을 짚었다.

그의 동작은 태연했다.

"이 시기만 되면 아이를 둔 부모들이 아주 성화야. 우리 아들 좀 키젠에 입학시켜 달라고."

"......."

저 사람, 비밀을 숨길 생각이 없다.

"그 집착은 나조차도 두려울 정도라네. 성공확률도 낮을뿐더러, 잘못 걸리면 가문 자체가 키젠에 의해 사라질 텐데도 말이야."

그의 입가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평생 가문을 섬긴 병사들에게 영속 마법진을 새기게 하고, 심지어 제 아들에게도 새기지. 자식의 입학 유무에 따라 가문의 위상이 달라지니까."

시몬이 삐딱하게 웃었다.

"그렇게 술술 다 불어도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네."

그가 손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흑마법을 준비할 시간은 벌었고, 자네는 이제 곧 죽을 테니까."

꾸그그그그그극―

주위의 벽이 꿀렁거리더니, 무수한 좀비들의 팔이 퍽! 퍽!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천장이나 벽은 물론, 바닥에도 좀비의 팔이 튀어나와 시몬의 다리를 붙잡았다.

시몬은 품에 안고 있는 하이디를 감쌌다.

"그만 사라지게나. 그 아이와 함께."

"아케뮤스."

시몬이 태연자약하게 웃었다.

"죽이진 마세요."

꽝!!!

천장이 무너지고, 검은 깃털이 폭발하듯 휘날렸다.

네크로맨서가 본 마지막 장면은 새까만 깃털 덩어리가 자신의 앞으로 내려앉는 것. 그리고.

푸드드드드드득!

그 뒤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리라.

피투성이가 되어 벽에 처박힌 네크로맨서는 눈을 부릅뜬 채 기절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내려온 괴이한 깃털뭉치에서는 괴물의 팔 같은 게 튀어나와 있었다.

[감히-]

깃털 속에서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비루한 종자 따위가 이분이 누군지 알고!]

께에에에에에에엑!

그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괴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깃털들이 그 울음에 반응하듯 푸드덕거렸다.

"진정해요 아케뮤스."

시몬이 자제시켰다.

끔찍한 외형의 깃털뭉치가 꿀렁거리더니, 다시 시몬이 알던 그 아케뮤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도련님.]

"덕분에요."

아케뮤스는 저벅저벅 걸어가 쓰레기통에서 깃털 하나를 꺼냈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아 다행입니다.]

시몬은 아서를 습격한 이들이 먼지로 변해 도망칠 때, 잽싸게 아케뮤스의 깃털을 꺼내서 꽂아놓았었다.

습격자는 나중에 깃털을 발견하고는 대충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것 같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흑마법적인 방법으로 불태웠어야 했다. 결국 아케뮤스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셈이 됐다.

아케뮤스가 다시 깃털을 깨끗하게 털어서 시몬에게 돌려주었다.

시몬이 그것을 받으며 말했다.

"흔적은 깔끔하게 없애주세요."

[예.]

과연, 에이션트 언데드답게 정리는 깔끔했다. 그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으로 깃털들이 초콜릿처럼 녹아서 사라졌다. 하이디를 납치한 사람들은 전원 기절한 뒤였다.

"웃차."

시몬은 팔에 힘을 주어 하이디의 몸을 사뿐히 안아 든 다음,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다.

'여길 감금 장소로 삼다니.'

이 건물은 시계탑 숙소였다.

시몬은 테라스 난간에 한쪽 발을 올리고는 그 위로 올라섰다. 고공의 찬 바람이 씽씽 불었다.

"시간이 없어요. 바로 출발하죠."

[알겠습니다 도련님.]

시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십 층 높이의 난간에서 뛰어올랐다.

후우우웅!

뒤이어 아케뮤스가 날아와 새처럼 변이한 두 다리로 시몬의 어깨를 붙잡은 다음, 한 쌍의 커다란 날개를 펄럭였다.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해볼 만해!'

* * *

'.......'

하이디는 꿈을 꿨다.

나쁜 사람들에게 납치당하지 않고, 무사히 키젠에 입학하는 꿈을.

즐거웠다. 그곳에서 또래 애들이랑 수다도 떨고, 매점에도 들르고, 같이 밤새워서 시험공부도 하고, 임무에 나가서는 예쁜 키젠 교복 차림으로 사람들의 시선도 한번 받아보고.

그리고 방학 때 집에 돌아와서, 엄마와 아빠를 힘껏 끌어안았다.

어려운 형편에 평생을 내 뒷바라지만 해준 두 사람.

이제는 키젠 학생으로서, 내가 그 두 사람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뒤이어서 또 하나의 꿈을 꿨다.

서점에서 만난 그 맹한 동갑내기한테 구해지는 꿈은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낸 허상치고는 리얼했다.

바보 같다.

'죄송해요 엄마. 아빠.'

절망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순간.

꿈이 전환되었다.

휘이이이잉-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은 하늘이고, 자신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늘을 날고 있는 무언가에 안겨 있다.

"일어났어?"

그 목소리에 하이디는 고개를 들었다.

'아.'

꿈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그 파란 머리의 소년. 안심하라는 듯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하이디가 멍하니 말했다.

"이것도...... 꿈?"

"아니."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현실이야."

휘이이이이이이잉!

부딪히는 차디찬 맞바람이 하이디의 잠을 일깨워주었다.

그랬다.

이건 현실이다.

나는 정말로, 이 녀석에게 구해져서 하늘을 날고 있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이곳은 랭거스틴 상공.

그리고 전면에는, 원래라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

키젠으로 향하는 배가 보였다.

* * *

"......역시."

같은 시각, 배에서 랭거스틴 시내를 바라보던 키젠 직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15분 만에 구해오는 건 무리겠지."

그리고 뒤편에는 밧줄에 묶여 있는 암페르지의 후보생이 배에 타 있었다.

"하하하! 내가 말했잖아! 어떻게 그 시간 안에 랭거스틴 전체를 뒤져서 데려와? 불가능하다니까."

"너!!"

격분한 아서가 후보생의 멱살을 붙잡아 흔들었다.

"역시 니가 그 애를 납치했지?"

"워우, 뭐래."

후보생이 낄낄 웃었다.

"난 모르는 일이야. 그보다 키젠에서 잘 부탁한다? 친구."

"난 너 같은 친구 둔 적 없어!"

"하하하! 너 재밌네. 같은 반 됐으면 좋겠다."

몰리 공주도 간절한 심정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시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신입생들도 포기한 듯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통신 수정구를 든 하수인이 달려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황천고래가 바로 앞까지 왔습니다! 배를 닫아야 합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거대한 물보라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

키젠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페르지 가문의 후보생을 데려간다. 모든 창문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고, 결계를 작동시켜."

"예!"

철컥 철컥!

창문에 잠금장치가 걸리고 배에 유리막처럼 튼튼해 보이는 결계가 배 밑바닥부터 펼쳐지기 시작했다.

"으하핳! 결국 가는구나! 키젠에!"

후보생이 어깨를 들썩이고 끅끅거리며 웃었다.

아서는 분한 듯 이를 갈았고, 몰리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저기! 저기! 저기 좀 보세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몰리가 극도로 흥분하며 앞을 가리켰다.

"시몬 선배님이에요!"

"뭐?"

"시몬 선배님이 하늘에서 오고 있어요!!"

키젠 직원은 물론, 하수인들까지 어른의 체면도 까먹고 후다닥 달려 나왔다. 1학년들도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들러붙었다.

"정말로 온다!"

"저기 여자애를 안고 있어!"

"진짜 구해낸 거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배 안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암페르지 후보생도 창백해진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시몬이 걸어뒀던 슬립이 풀리면서, 다시 후보생의 몸에 심어진 금지된 흑마법이 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금이 가며 몬스터의 살덩이가 툭툭 튀어나왔다.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다시 발생하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분명 시계탑에 가둬놨......!!]

"역시 너였구나."

전신의 오소소 솜털이 돋는 것을 느끼며, 후보생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서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퍼억!

후보생이 금지된 흑마법을 발현하기도 전에, 아서가 그의 등을 걷어차 바다에 빠트렸다.

[이 자시이이이이익!!]

발악하는 외침과 함께, 후보생이 바다에 빠지고 결계가 닫혔다. 선착장에 남아 있던 하수인들이 그를 흑마법으로 끌어올려 체포하는 모습이 보였다.

터업.

키젠 본부 직원이 아서의 어깨를 짚었다. 자신도 모르게 일을 저지르고만 아서가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혼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서 학생도 빨리 자리로 돌아가세요."

못 본 척하며 그렇게 말하는 직원의 입가에는, 어린 시절의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아, 넵!"

"결계는 완전히 닫아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몰리 공주가 소리쳤다.

"잠깐만요! 아직 시몬 선배님이 못 들어왔는데요!"

"그는 키젠의 학생회장입니다. 분명히 따라와 줄 겁니다."

철컥!

본부 직원이 자리에 앉아 손잡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전원, 충격에 대비하세요! 몸을 최대한 숙여요!"

"네!"

날아오고 있는 시몬과 하이디의 시야에도 이제는 황천고래가 일으키는 커다란 물보라가 보였다.

'아슬아슬해!'

시몬은 하이디가 깬 시점에서 아케뮤스는 아공간으로 돌려보내고, 스컬드론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더 빠르게 갈 거야! 꽉 잡아! 하이디!"

그녀가 두 손으로 힘껏 시몬의 목을 끌어안았다. 시몬이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스컬드론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에메랄드빛 섬광이 거친 불꽃을 뿜었다.

쏴아아아아아!

이내 물보라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황천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입을 쩍 벌리며 배를 집어삼키려 했다.

'클라우드!'

시몬이 손을 뻗자, 에메랄드빛 밧줄이 번개처럼 날아가 이빨을 휘감았다. 시몬이 그것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꼬르르르르르륵!

황천고래가 배를 집어삼키고 바다로 들어갔다.

* * *

기나긴 터널 같은 목구멍을 지나, 신입생들을 태운 배는 마침내 황천고래 내부에 마련된 안전구역까지 들어왔다.

배의 움직임이 멈추고,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던 소년 소녀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결계 걷어요!"

본부 직원의 외침에 결계가 걷혔다. 신입생들은 처음 와보는 고래 뱃속에는 시선을 주지도 않고, 배나 갑판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학생회장 선배님은?"

"설마 못 오신 거야?"

모두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수인들은 할 말을 잃었고, 키젠 직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이마를 덮었다.

'이건 시말서로는 안 끝나겠는데.'

키젠 직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서 학생?"

붉은 머리의 소년이 새까만 터널 같은 목구멍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파아아앗!

어두운 목구멍 터널 속에서 눈부신 녹색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쿵!

하늘에서, 푸른 머리의 소년이 내려왔다. 배가 덜컹이며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촤아아아아아악-!

그의 신발이 갑판을 미끄러뜨리며 도착했다. 그의 품 안에는 납치당했던 신입생, 하이디가 안겨 있었다.

"어, 어떻게......."

그녀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시몬이 땀을 비처럼 뚝뚝 흘리며 하이디를 향해 미소 지었다.

"키젠에 데려가 준다고."

순간의 정적.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서로 껴안으며 환호했다.

아서는 두 주먹을 움켜쥐며 함성을 질러댔고, 몰리는 눈물을 글썽였다. 본부 직원과 하수인들은 얼싸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1학년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된 대사건.

납치당한 신입생을 15분 만에 구해낸 키젠 학생회장.

앞으로도 후배들 입에서 내내 화자 될, 또 하나의 전설적인 사건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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