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71화
시몬은 하이디를 배 내부에 있는 의무실로 데려갔다.
"이제 내려줘. 아니, 내려줘...... 요."
품에 안겨 있던 하이디가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민망함으로 달아오른 홍조에,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
시몬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존댓말이네. 이제 내가 2학년이란 걸 믿어주는 거야?"
"그......!"
그녀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렸다.
"다, 당신 같은 강한 사람이 신입생일 리가 없으니까...... 요."
시몬은 하이디를 내려주고 같이 의무실에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선의가 그녀의 상태를 봐주었다.
"약간의 스트레스 증상과, 손목에 찰과상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모든 상태가 정상입니다. 오늘부터 수면만 충분히 취한다면 수업에 들어가도 문제없을 겁니다."
"잘됐다. 하이디."
시몬이 말했다. 손목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던 하이디가 눈을 깜빡였다.
"정말 저 괜찮은 거예요?"
어제 한숨도 못 자고 울고불고 막 실신도 하고 그랬는데.
"예, 무척 건강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시몬에게 구출된 직후 잠깐 잠이 든 것 같은데, 그 이후로 피로가 거짓말처럼 풀려 있었다.
'혹시 내게 뭘 해준 건가?'
시몬은 여전히 웃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가 잠시 약을 가지러 가는 사이, 그녀가 조그맣게 말했다.
"저, 저기......."
"응?"
"키젠에 데려와 줘서 정말 고마워...... 요."
여전히 시몬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뭐라도 보답해야겠지만, 그...... 제가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냐."
시몬이 칼같이 자르며, 팔을 늘어뜨렸다.
"임무 중에 학생을 지키는 게 학생회장의 의무고, 난 내 일을 했을 뿐이야. 괜히 빚졌다는 생각은 할 필요 없어."
"하, 하지만!"
"좋아. 굳이 보답하고 싶다면-"
잠깐 고민하던 시몬의 입술이 열렸다.
"1학년 경쟁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주면 좋겠어."
"네?"
"3학년 졸업까지 하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건 나도 아직 못 이뤄본 경지니까 뭐라 말하기가 어렵네. 아무튼, 넌 내가 학생회장으로서 처음으로 구해낸 학생이야. 숱한 경쟁을 이겨내고 끝까지 살아남아 줬으면 좋겠어."
시몬이 벽에 등을 쭉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응, 그것뿐이야."
시몬을 바라보는 하이디의 두 눈에 뭉클한 감격이 차올랐다.
대단하다.
고작 한 살 차이일 뿐인데, 나와는 실력부터 마인드까지 모든 게 다르다.
'나도.'
그녀가 가슴 위로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
강해져서 사람들을 많이 돕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빠에서 저 학교 선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선배님."
"으, 응."
여전히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민망한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존경해요. 언젠가 나도, 키젠에서 열심히 배워서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
민망해서 내뱉기 힘든 그런 말을 한번 목구멍으로 삼킨 하이디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구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나도 언젠가, 이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한 소녀의 평생을 가는 롤모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 * *
30분의 휴식 후, 키젠 직원은 신입생들을 모두 불러들여 설명했다.
"자, 신입생 여러분! 지금부터 10분 후에 황천고래가 키젠에 도착할 겁니다!"
그 옆에는 시몬도 서 있었다. 설명하는 직원보다 시몬 쪽으로 신입생들의 시선이 더 많이 가고 있었다.
"다들 이 물건은 하나씩 받았죠?"
"네!"
신입생들이 손에 든 건 수정구였다. 흔히 보는 확성 수정구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여러 안전장치가 걸려 있었다.
"이제 곧 여러분은 수천 미터 상공에서 떨어질 겁니다."
"???"
신입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때 이 수정구는 여러분의 중요한 생명줄입니다. 작동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잠금장치가 두 개 있는데요. 먼저 이 핀을 뽑고......."
키젠 직원이 순서대로 차례차례 친절하게 사용법을 알려주었지만, 벌써 어버버 얼을 타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이 두 가지 잠금장치를 모두 풀고, 조금 기다리면......."
쑤우우욱!
수정구 구멍에서 방울이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키젠 직원의 몸을 뒤덮었다. 안에 있어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안에서 방울을 때리거나 손톱으로 찌르거나 해보았다. 물론 방울은 튼튼해서 그 정도로 터지지 않았다.
펑!
이내 칠흑을 손끝에 모아 구멍을 뚫어서 빠져나온 직원이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잘 알겠죠?"
네에.......
곳곳에서 뭔가 자신 없어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본부 직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정도도 못 해서는 위대한 키젠 학생이라고 할 수 없겠죠! 마지막 입학시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침착하게 가르쳐 준 대로만 하세요."
원래 이쪽이 공식 매뉴얼이다.
작년에는 실라지가 직접 와서 본인의 힘으로 다 처리했지만, 올해는 교수급 네크로맨서가 참석하지 않았으니 매뉴얼대로 학생들에게 안전장치를 지급한 것이다.
그때 통신 수정구를 든 하수인이 소리쳤다.
"이제 곧 로크섬에 도착합니다!"
"그럼 신입생 여러분, 모두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네!"
신입생들이 우르르 자리로 돌아갔다. 시몬도 돌아다니면서 신입생들이 자기 자리에 정확히 앉았는지 체크했다.
"선배님 잘생겼어요~"
꺄르르르르!
중간중간 여학생들의 짓궂은 농담도 들려왔다.
시몬은 애써 못 들은 척, 무표정하게 할 일을 했지만 귀 끝은 벌게져 있었다.
"지금 장난칠 때예요? 다들 긴장하세요!"
몰리 공주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치자, 시끌벅적하던 신입생들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 다시 배가 결계로 덮이고, 고래 뱃속이 바닷물로 순식간에 천장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학생회장님, 이제 곧 시작합니다!"
하수인이 시몬을 보며 말했다.
시몬도 자리에 앉은 다음 학생들에게 말했다.
"다들 떨어지기 싫으면 꽉 붙잡아!"
그 말에 모든 신입생들이 앞 좌석의 손잡이를 강하게 붙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쏴아아아아아아아!
막혀 있던 수도꼭지 입구가 한 번에 터지듯, 바닷물이 정면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어마어마한 속도감에, 신입생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 의자에 고개를 묻었다.
이내 어둠뿐이던 터널을 지나, 눈부신 빛으로 배가 빠져나왔다.
"와......!"
세찬 바람과 함께 탁 트인 광경이 펼쳐졌다. 찬 바람이 피부에 닿는 것과 함께 신입생들은 고개를 들었다.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높은 상공이었다.
로크섬 전역의 모습이 장난감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하지만 감탄하는 것도 잠시, 황천고래가 쏘아낸 물줄기가 점점 약해지며 뱃머리는 앞으로 향했다.
'이제.'
한번 겪었던 시몬은 느긋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떨어진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압력과 함께 주위가 빛살처럼 지나가며 배가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몇몇 학생들이 배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결계는 충돌 위험 때문에 해제한 상태였다.
"웃차."
인솔자인 시몬은 스스로 손잡이를 놓고 배에서 떨어져 나왔다. 배는 먼저 떨어지고, 손잡이를 놓친 학생들이 하늘에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자, 다들 침착해!"
시몬이 소리쳤다.
"수정구를 켜고 방울에 들어가! 아까 배운 대로만 하면 돼!"
그 외침을 들은 대다수 신입생들은 잽싸게 수정구를 작동시켜 안전하게 방울에 들어갔지만, 몇몇 신입생은 아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비명도 못 지르고 잔뜩 굳은 채 낙하 중이었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하길 잘했지.'
시몬이 준비해 둔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스컬드론에 이어서 친위대. 두 번 연속 클라우드 계열 흑마법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시몬의 아공간에서 청록색 뼈들이 튀어나오더니 그의 몸을 뒤덮었다.
친위대의 망토가 시몬의 등 뒤로 자리 잡아 두 쌍의 펄럭이는 날개처럼 변하고, 전신에 관절처럼 달라붙은 뼈들은 인력을 일으키며 영롱한 빛을 냈다.
<친위대 - 비행 모드>
등 뒤에 마법진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클라우드가 불꽃처럼 뿜어져 나와 시몬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우선은 첫 잠금장치부터 막힌 여학생에게 쏘아져 나갔다.
"으으으! 이게 왜 안 되는 거야?!"
눈에 잔뜩 눈물이 맺힌 그녀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침착해!"
시몬이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붙잡고는, 평정을 잃은 그녀 대신 잠금장치를 풀어주었다. 이내 신입생의 몸이 안전한 방울로 뒤덮였다.
'다음!'
시몬이 에메랄드빛 꼬리를 남기며 이 사람 저 사람 지나다니며 잠금장치를 풀어주었다. 곳곳에서 방울이 일어났다.
"자, 이제 됐어!"
그 와중에 기특한 후배도 한 명 보였다.
아서가 잠금장치를 못 풀고 있는 한 학생을 도와 방울을 펼쳐주고 있었다.
"잘했어 아서!"
시몬이 엄지를 척 세우며 말했다.
"이 정도는 기본이죠!"
아서도 여유롭게 엄지를 세워 들어 시몬의 말을 받았다.
역시 용병왕.
수년간 전장에서 굴러다닌 잔뼈 굵은 용병생활로, 다른 귀족 신입생들과는 경험에서 그 격이 달랐다. 이 정도의 위험은 위험이라고 생각지도 않으리라.
"됐으니까 이제 너도 방울을 펼쳐, 아서! 애들은 내가 구할게!"
"옙! 선배님!"
아서가 수정구를 꺼내 안전핀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퍼석!
너무 힘이 세서 안전핀이 박살 났다.
"으아아아아아악! 망했다아아아!"
앞서 말한 모든 장점을 파훼할 정도로, 아서는 바보였다.
"시몬 선배님! 도와주세요!!"
'아니, 바빠 죽겠는데 왜 쟤까지......!'
시몬이 정신줄을 놓고 있는 신입생의 수정구를 작동시켜 준 다음, 옆 사람으로 옮겨가며 말했다.
"아서! 넌 네 힘으로 착지할 수 있지?"
"네? 너무해요!!"
"넌 특례 입학생이잖아!"
시몬이 다른 신입생의 잠금장치를 풀며 소리쳤다.
"키젠 최강이 목표라면, 이 정돈 간단히 해낼 수 있지?"
울상이던 아서의 표정이 갑자기 확 변했다.
"그 말을 들으면!"
아서가 아공간에서 새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무조건 해내고 싶어지잖슴까!"
아서가 허공에 검을 휘둘러 풍압을 일으키는 모습을 본 시몬은 다음 학생에게로 건너갔다.
"휴우."
그렇게 배에서 떨어지던 모든 학생들이 방울 안에서 안전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나중에 떨어진 학생들은 하수인들과 키젠 직원이 직접 케어하는 모습이었다.
시몬은 친위대 수트를 저속비행으로 전환한 다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봐도 멋지네.'
시몬의 모교가 보였다.
울창한 정글, 매끈하게 닦인 광야, 낙엽이 떠다니는 폭포, 눈 덮인 산. 사계절이 모두 담겨 있는 로크섬의 경관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섬의 중앙, 건물들이 불쑥불쑥 솟은 키젠 교정이 보인다.
냉정을 되찾은 신입생들도 이제는 그 경치에 순수하게 감탄하는 중이었다.
"다들, 키젠에 온 걸 환영해!"
학생회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신입생들은 오랫동안 기억할 그 하늘에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 * *
그렇게 황천고래를 타고 온 신입생 전원, 무사히 로크섬에 도착했다.
아서가 착지한답시고 육지 쪽으로 냅다 검을 휘둘러 풍압을 일으키는 바람에, 몇몇 학생들이 모래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큰일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신입생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고, 또 몇몇은 바닥에 엎드려 구토를 했다.
이것도 1년 전과 똑같은 모습. 그러나 금방 활기를 되찾고는 왁자지껄하게 영웅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학생회장님! 인솔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바닥에 내려온 시몬이 친위대를 아공간에 회수하고 있는데, 학교 쪽에서 조교들이 마중 나왔다. 시몬도 마주 인사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랭거스틴에서 조금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아닙니다! 저희도 어떻게 된 건지 보고는 들었어요. 학생들이 빠짐없이 도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한 조교가 학생들을 보고는 말했다.
"자! 신입생 여러분, 모두 4열 종대로 서주세요! 바로 키젠 교복으로 갈아입고 입학식장으로 가겠습니다."
신입생들이 하나둘 움직여서 하수인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조교가 목이 쉬어라 소리쳐도 좀처럼 통제를 따라주질 않았다.
"얘들아."
그때 시몬이 손뼉을 짝 치며 앞으로 나왔다.
"4열 종대로."
그 한마디에.
장난치거나 딴짓을 하던 신입생들까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려와 후다닥 줄을 섰다. 시몬이 말했다.
"앞에서 앉아 번호."
"하나!"
"둘!"
착착 앉으면서 번호까지 외치는 신입생들을 보며, 조교들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 대단하세요!"
"가장 말 안 들을 시기의 신입생들을 어떻게......?"
시몬은 멋쩍게 웃었다.
"어, 음. 설명드리자면 좀 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