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75화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선 아론의 질문은 스켈레톤 나이트가 가진 '통제가 필요하지 않은 강함'의 의미.
"일반 스켈레톤은 정밀한 언데드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칠흑으로 뼈를 붙여서 만든 언데드이기 때문에 간단한 충격에도 쉽게 쓰러지죠."
시몬이 고개를 돌려, 아론이 만든 스켈레톤 나이트를 보았다.
"하지만 스켈레톤 나이트는 갑옷을 입고 방호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념만 연결해 놓으면, 술사가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제 몫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정답이다."
곳곳에서 짝짝짝 박수 소리가 나왔다. 특히 옆에 앉은 토토가 열심히 손뼉을 쳐주고 있었다.
"앉도록. 스켈레톤 나이트는 장비를 착용한다. 그래서 본 아머, 본 스피어, 본 월 같은 스켈레톤 특유의 '복원기'의 사용이 제한되지."
아론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스켈레톤 나이트의 뼈가 분해되어 두둥실 공중에 떠오른다.
'본 스피어'를 사용하려는 것 같았지만, 갑옷이 방해되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갑옷이 무거워서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도 있다.
"복원기는 쓰지 못하지만 소환수에게 전투를 맡겨놓고 다른 흑마법을 준비할 때, 일반 스켈레톤보다 나이트가 더 크게 활약할 수 있다. 설명은 이 정도면 됐다. 교과서 2페이지를 펼쳐라."
샤락 샤락-
곳곳에서 교과서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스켈레톤과 스켈레톤 나이트의 차이, 그리고 나이트만의 특징. 중간고사 1번 단골 출제 문제다. 전부 암기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잠시 사각사각 필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평화로운 분위기.
시몬은 아론이 칠판에 적어주는 핵심을 노트에 써놓으며 턱을 괬다.
'그래도 나는 이번 수업이 끝나면, 일반 스켈레톤만 계속 쓸 것 같은데.'
아론이 예를 들어줬던 것처럼, 주력기를 준비할 시간을 벌 용도. 혹은 언데드 컨트롤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나이트는 비싸지만 훨씬 더 좋은 대안이다.
하지만 시몬의 경우 언데드 컨트롤에 워낙 자신이 있었고, 주력으로 잘 쓰고 있는 복원기를 대체할 메리트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수업이 끝나면.......'
"의아해하는 녀석들도 있겠지."
아론의 말에 시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스켈레톤으로 잘해왔는데, 왜 이제 와서 스켈레톤 나이트를 배워야 할까."
차악.
아론이 다시 분필을 쥐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니 잘 보도록."
학생들의 침을 꿀꺽 삼켰다. 칠판의 왼쪽 끝으로 이동한 아론이 가장 가장자리에 「스켈레톤 나이트」라고 썼다.
"스켈레톤 나이트를 제작하기 위해선 '억념(憶念)의 룬'과 그에 기반된 수식들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잔류사념을 통제해 언데드의 생전 기술을 더 강하게 이끌어내는 기술이지."
그가 스켈레톤 나이트 밑에 「억념의 룬」을 썼다. 그러고는 앞으로 줄을 쭉 그었다.
"그리고 이때 익힌 '억념의 룬'은 좀비의 상위 개체인 구울의 핵심적인 재료로 들어간다."
아론이 칠판에 「구울」이라고 썼다.
"구울을 만들기 위해선, 시체에 변이를 일으키는 개변 수식과, 부패변이 공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후, 구울의 부패변이 공식과 스켈레톤 나이트에서 배운 억념의 룬을 조합해서."
차악. 차악.
두 언데드에 선을 그어서 모이는 접점에 아론이 새로운 원을 그리고 이름을 써넣었다.
"마법 언데드 「디바우러」를 만들 수 있다."
아론의 분필이 칠판 위에서 춤을 춘다. 각각의 배운 룬어와 수식들을 조합해 각양각색의 언데드를 만들고, 그 언데드를 만들 때 습득해야 하는 수식이 또 다른 상위 언데드들과 조합된다.
아론은 지금, 커다란 '로드맵'을 그리고 있었다.
"나이트 테러, 콜로서스, 크립트 가드."
말로만 듣던 강력한 언데드들의 나열에 소환학과 학생들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었다. 아론은 필요하면 다른 학과의 룬어와 기술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기존 언데드인 '데스 배트'에, 혈류학의 흡혈 수식을 더해 '블러드 배트'를 만들기도 했고, 저주 수식을 더해 '노스페라투'를 만들기도 했다.
칠판의 언데드가 추가될 때마다 학생들은 입을 벌렸고, 마지막 칠판 끝에 드디어.
촤악-
촤악-
촤악-
지금까지 모든 룬어와 수식들이 왼쪽에서 오른쪽 끝으로 모여들었다.
"이번 학기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 모든 기본기를 쌓았을 때 너희들은 비로소."
타악-
"3티어 언데드, 목 없는 기사 '듀라한(Dullahan)'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강의실 전체에서 학생들의 커다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환술사의 로망 중 하나. 그 어떤 공격을 받아도 쓰러지지 않고, 지치지 않는 압도적인 힘과 참격으로 적을 썰어 넘기는 괴물.
대륙을 풍미하던 '대 기사 시대'를 끝낸 장본인이자 극악의 소환수였다.
"너희들이 배운 모든 언데드를 다 실전에서 써먹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아론이 분필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너희들이 언데드를 제작하면서 배우는 모든 지식과 경험은 양분이 될 거고, 더 상위 언데드를 만들어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시몬은 듀라한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수식들을 살펴보며 미소 지었다.
철저한 재능과 감각의 영역인 '라이프베슬'의 리치와는 달리, 듀라한은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지식.
이 소환수 하나를 위해 탄탄한 기본기와 무수한 소환학 지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쌓여 나가며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때, 시몬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지금도 리치를 만들라고 하면, 그때처럼 잘 만들 자신도 없고.'
콤펠로에 너무 의존한 건 물론, 리치 제작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자율행동 지팡이와 헤르세바의 결합이라는 우연도 있었다. 언제까지고 감각과 우연에만 기댈 수는 없다.
'공부하자.'
시몬이 눈을 빛냈다.
저 모든 것들을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질문 있나?"
아론의 수업에 흥분한 남학생 한 명이 번쩍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맷 코머입니다! 정말로 1학기 만에 우리가 듀라한을 만들 수 있는 건가요?"
일반적인 키젠 교육과정에서, 듀라한은 3학년에 배우는 언데드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아론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너희들이 수업을 따라올 수 있다면 말이다."
"그, 그럼!"
난데없이 토토가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질문을 할 때 이름을 외치는 것도 까먹은 상태였다.
"1학기에 듀라한이라면! 다음에는 그걸 만들 수 있는 건가요?"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모든 소환술사의 꿈! 데스 나이트(Death Knight)를!"
데스 나이트라는 이름에 강의실이 커다란 정적에 휩싸였다.
아론은 대답 대신 슬쩍 미소 지었다.
"토토 아모리, 그것도 네가 다음 학기까지 살아남아서 확인할 일이다."
"......아."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든 건지, 토토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다.
"동기부여도 충분히 했고, 이론 설명은 여기까지만 하지."
아론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실습이다. 가져온 재료들로 스켈레톤 나이트를 만들어보겠다. 첫 단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본다."
"네!!"
학생들이 재빨리 남은 재료를 꺼내놓는 사이, 옆자리의 로레인이 살풋 웃었다.
"아론 교수님, 잘 가르치신다."
그러고 보니 로레인은 뒷반 출신 학생이었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기대해."
듀라한에 데스나이트라.
시몬은 이제야 진짜 소환학과 전공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 * *
학생들 모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스켈레톤 나이트 제작에 임했다.
조교들이 주위를 돌아다니며 작업이 막힌 학생들을 도와주었다. 아직 첫 수업이라 그런지 주위가 어수선한 분위기도 있었다.
"뼈 접착제 좀 빌려줄 사람!"
준비물을 100% 안 가져온 학생들도 많았다. 주황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열심히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시몬 앞자리의 토토를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야! 거기 데스나이트 소년!"
"푸훗!"
시몬은 뼈를 조립하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까의 일로, 어느새 토토는 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데스나이트 소년'으로 통했다.
"웃지 말아줘어 시몬!"
토토가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때 주황 머리 소녀가 다가왔다.
"뼈 접착제 빌려줄 수 있어?"
"나, 나?"
토토의 고질적인 증세가 도졌다. 여학생이 오자 또 얼굴이 벌게지며 말을 더듬었다.
"빨리이~ 줄 수 있어 없어?"
"아, 으. 응!"
휙휙 고개를 움직이며 망설이던 토토가 뼈 접착제를 손에 쥐었다. 시몬이 그 모습을 보았다.
'아직 자기 접합 작업도 안 했으면서.'
시몬이 작게 한숨을 쉬면서 본인의 뼈 접착제를 내밀었다.
"그냥 내 걸로 써."
토토와 여학생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오오, 고마워 회장!"
그녀가 두 손으로 접착제를 받아들며 좋아했다.
"수업 때는 그냥 시몬이라고 불러줘."
그 말에 그녀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흐응'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무슨 의미지 저거?
"암튼 너도, 저번 신고식 때 고마웠어."
"뭘?"
"아하하! 까먹은 척하긴! 해골 다리 건널 때, 네가 그 이상한 기술로 날 구해줬잖아!"
아, 그때.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저 녀석인 것 같았다. 시몬이 방긋 웃었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허."
그녀가 슬쩍 웃으며 눈매가 가늘어졌다.
요놈 보게. 하는 눈이었다.
"암튼 뭐, 이거 금방 쓰고 돌려줄게!"
그녀가 흥얼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시몬도 다시 조립을 시작하려는 그때.
"시몬~?"
무서운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못 들은 척했지만, 한 번 더 시몬~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하는 수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늦게 와서 시몬의 대각선 옆자리를 차지한 세르네가 두 뼈를 집어서 딱딱 붙여보고 있었다.
"이거 못 하겠어요. 저한테는 너무 어려워요~"
'......저게 어려우면 소환학과엔 왜 온 거야?'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34번 뼈랑 102번 뼈를 연결하려니까 당연히 안 되지. 교과서를 보고 부위에 맞는 순서대로 맞춰서 해."
"너무 어려운걸요? 여기 와서 봐줌 안 돼요?"
"아. 그거."
그때 세르네의 뒷자리에 건장한 남학생이 손가락을 세웠다.
"왼손에 든 게 34번이고, 지금 네 팔꿈치 밑에 있는 뼈가 35번이야. 그 두 개를 맞추면 돼."
상아탑 후계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나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세르네의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
잠시 후.
그 남학생은 눈이 풀린 채 스켈레톤 뼈를 개껌처럼 핥고 있었다.
"세르네! 너 또!"
그 꼴을 못 보는 로레인이 달려왔고, 또 싸움이 시작됐다.
"무슨 소란이냐."
결국 아론이 와서 중재하고 문제아 세르네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뼈를 연결하며 입술이 부루퉁 튀어나온 모습이 오리 같아서 웃겼다.
차차착!
차착!
시몬이 잠시 한눈파는 사이, 엘리트들의 진전 속도는 상당했다.
석차 3위, 헥토르.
석차 5위, 아세라즈.
그리고 같은 돌연변이 동아리의 피츠제럴드.
저 세 사람이 미친 속도로 스켈레톤을 쌓아가는 모습에 학생들은 감탄했다.
'좋아, 나도 이제 집중하자.'
질 수 없었다.
시몬도 손가락을 풀면서 본격적인 나이트 제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