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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83화 (48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83화

악명높은 키젠의 수강신청 시즌이 시작됐다.

400명의 학생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캠퍼스를 질주했다. 시작점은 모두가 같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처음 계획대로 시간표를 짜지 못하게 되리라.

시몬도 급한 건 마찬가지였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쪽은 제인 교수님의 칠흑역학이야. 바힐 교수님께 최대한 빠르게 갔다가 돌아와야 해.'

그때 시몬의 고개가 움직였다.

하늘에서 대뜸 커다란 식칼이 떨어지고 있었다.

쿠콰악―!

충돌음과 함께 모래 파편이 튀었다. 시몬은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피한 다음 바닥에 내려왔다.

"또냐!"

전신이 회색의 광택을 내는 괴물이 으르르거리고 있었다.

시몬이 손을 슥 들어 올리자,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뼛조각들이 공중으로 올라가더니 자기들끼리 착착 맞춰지며 창의 형태로 변했다.

<본 스피어>

시몬이 손을 세운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간 본 스피어가, 정확히 괴물의 가슴 중앙에 꽂혔다.

태앵!

그러나 가볍게 튕겨 나가고 말았다.

'뭐야?'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위험도 3급 정도의 몬스터들이 2학년 캠퍼스 전역에 도사리고 있는 정도였다. 물론 공격도 통했다.

그런데 저주학과 건물과 가까워질수록 공격이 통하지 않는 회색 괴물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큭!"

시몬이 얼른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이번에는 짐승형 회색 괴물이 시몬이 있던 벽을 할퀴며 지나갔다.

<본 아머 - 건틀릿 모드>

시몬에게 되돌아오던 본 스피어가 분해되더니 그림처럼 시몬의 오른팔을 감쌌다. 시몬이 그대로 몬스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

이번에는 그냥 주먹이 괴물의 몸을 유령처럼 통과했다. 역으로 시몬이 괴물의 발길질에 부딪혔다.

[배리어 게이지 : 91%]

시몬이 혀를 차며 물러났다.

이쪽은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지만, 저쪽은 시몬이 입은 수트를 공격한다. 배리어 게이지가 0%가 되면 강제로 30분 휴식이다.

시몬은 하는 수 없이 몬스터들을 상대하지 않고 달렸다.

[크흐흐흐! 고생하고 있군, 소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고개를 내리자, 시몬이 교복에 착용하고 있던 해골모양 배지의 두 눈이 검푸른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피어!'

내심 반가웠던 시몬의 표정이 한결 퍼졌다.

'오랜만에 구경하러 오셨네요!'

[그래. 망가진 '칼' 녀석의 회복 방법을 찾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

배지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지금 이 시험은 본 적이 있다!]

시몬이 잽싸게 걸음을 멈추고 물러났다. 회색 괴물의 커다란 팔이 바닥에 부딪혔다.

[장소를 생각해라! 소년!]

시몬이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해 달리며 물었다.

'장소요?'

[그래! 리처드는 알아내는 데 20분이면 충분했지.]

시몬이 토라진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또 아버지랑 비교하시는 거예요?'

[크하하하하!]

일단은 저 괴물들을 파괴하는 방법보다, 바힐의 연구실로 가는 게 더 급선무였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도 학생회장실에서 교정을 내려다보던 게 도움이 되네.'

운이 좋게도, 학생회관은 2학년 캠퍼스 중앙에 있다. 경치가 좋아서 일하는 종종 내려다봤었고, 지금 시몬의 머릿속에는 교정의 지도가 완벽하게 들어 있었다.

'그리고 딕이 가르쳐 준 루트!'

시몬이 고개를 숙여 회색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한 다음,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샥 들어갔다. 시몬을 뒤쫓던 두 괴물이 서로 부딪히는 모습이 보였다.

'할 수 있어!'

시몬이 골목을 빠져나와 탁 트인 곳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번쩍!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카드 한 장이 빛으로 번쩍이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엔돌라스 보드빌의 카드!'

카드에서 나온 빛이 시몬의 주위를 휘감았다. 이내 결투장의 '링'처럼, 반경이 빛의 줄기로 둘러싸지며 결계 벽을 형성했다.

빠져나갈 수 없다. 여기는 BMAT에서 봤던 그 카드의 세계다.

잠시 후, 시몬의 앞에 몬스터가 하나 튀어나왔다.

교정에 있던 바로 그 회색 몬스터. 인간처럼 이족보행이었는데 가느다란 하체에 비해 상체가 과하게 근육질이고, 두 팔에는 칼날이 달려 있었다.

'저걸 쓰러트려야 빠져나갈 수 있는 거겠지?'

괴물이 달려와 칼날이 달린 팔을 직선으로 내리그었다.

부웅!

시몬은 제자리에서 가드를 세우는 척하다가, 옆으로 살짝 피했다.

간발의 차이로 괴물의 팔이 시몬의 옆을 지나갔고, 치켜든 그의 주먹이 칠흑으로 일렁였다.

<홍펭 오리지널 - 취타>

부우우웅!

역시나 마투는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시몬의 주먹이 그대로 괴물의 몸을 통과했다.

'침착하자. 싸우려고만 하지 말고 상황을 분석해야 해.'

시몬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긴 현장이 아냐. 이 결계도, 괴물들도 수강신청 시즌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어. 출제자의 의도가 뭐지?'

출제자의 의도. 그걸 의식하자 번뜩이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시몬은 바힐에게 찾아가고 있고, 여기는 저주학과 건물 근처다.

시몬의 검지손가락이 괴물에게로 향했다.

<이그저스트(Exhaust)>

손끝에서 뻗어 나간 탈진저주가 정확히 괴물의 몸에 적중했다. 어떤 공격도 튕겨내거나 흘려보내던 괴물이, 저주만큼은 제대로 통했다.

"역시 이거구나."

단순한 수강신청이 아니다. 카드의 네크로맨서 엔돌라스가 만든 이 몬스터들은, 학생들에게 과연 이 수업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거였다.

저주학과 수업을 들으려면, 저주로 이 시험을 이겨내야 했다.

터엉!

시몬이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방금 탈진 저주 이그저스트를 먹였는데도, 괴물은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이 저주가 정답이 아닌 거야. 저 괴물을 공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저주를 써야 해!'

시몬의 시선이 괴물의 빈약한 다리 쪽으로 향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오른손으로 마법진을 펼쳤다.

-인간은 뒷다리만으로 몸을 일으키고, 등을 꼿꼿하게 세운 채 걷는, 아주 불안정한 균형감을 가진 생물입니다. 단지 넘어지는 것으로 대부분의 행동이 불가능하게 되죠.

1학년 초기 시절, 결투평가에서 학생들이 엄청나게 자주 썼던 저주.

바힐이 첫 결투평가에 두려워하는 1학년을 위해 직접 만들었던, 발을 포함한 국소부위에만 저주를 걸어서 넘어뜨리는 기술.

<레그다운(Leg Down)>

시몬의 저주가 쏜살같이 괴물의 다리로 향했다. 괴물의 다리에 저주가 일렁였고, 괴물은 그것도 모르고 시몬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가.

-!

쿠웅!

쓰러지는 나무처럼, 그대로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몬스터, 정답은 저주.'

그리고 시몬이 정답인 저주를 걸자, 비로소 쓰러진 괴물의 뒤쪽 목덜미에 녹색으로 표시된 지점이 보인다. 시몬이 즉각 그쪽으로 '본 스피어'를 날렸다.

푸우욱!

완벽하게 관통했다.

괴물의 몸은 그대로 유리 파편처럼 조각나 파괴되었고, 시몬 주위를 감싸고 있던 결계도 사라졌다.

[크흐흐흐! 리처드와 딱 비슷한 시점에 알아냈군. 소년!]

시몬이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빙긋 웃었다.

"시간 쟀으면 제가 아버지보다 조금 더 빨랐을걸요."

* * *

키젠의 수강신청 룰은 매년 바뀌거나 갱신된다.

그리고 올해의 수강신청은, 시몬이 알아냈던 대로 해당 과목의 기술과 지식만을 이용해 몬스터와 트랩을 돌파하는 방식이었다.

"여기 해독 좀 해줘!"

"피해!"

맹독학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은, 온갖 맹독계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지역을 돌파해야만 했다. 반대되는 성향의 독을 써서 몬스터를 상대하거나, 스스로 몸을 해독하면서 독의 늪을 건너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카드의 트랩에 걸리면 조금 더 명확한 미션이 주어졌는데, 카드에 들어갔더니 사람이 쓰러져 있고, 이 사람에 걸린 독을 알아내 해독해야 결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사령학과 건물의 주위는 스피릿 기술만 통하는 몬스터가 있었고, 혈류학은 출혈만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가 있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아으, 키젠 2학년! 시작부터 더럽게 빡세네 진짜아!"

메이린이 거칠게 팔을 휘둘러 칠흑 화염계를 일으켰다. 커다란 빙하 괴물들이 그녀가 일으킨 불길에 휩쓸려 녹아버렸지만, 그 뒤에 전신이 물로 이루어진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바보 평민!"

"맡기셔!"

딕이 버튼을 꾹 눌렀다. 미리 설치해 둔 칠흑 트랩 발동하며 바닥에 고압 전류가 흘렀고, 물로 이루어진 괴물이 흐물거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우리가 해냈어요!"

칠흑 바람계로 앞선 몬스터들을 날려 버린 카미바레즈가 소리쳤다.

이내 결계가 걷히며 다시 키젠 교정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야, 이거 내가 알았던 정보보다 훨씬 빡센데? 팀플레이가 거의 필수야."

딕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메이린이 고개를 돌려 뒤편의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시몬은 괜찮을까?"

"걱정되냐?"

딕이 이죽거리며 묻자, 그녀가 '윽!' 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이 벌게졌다.

"치, 친구니까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근데 너 왜 말투가 불순해?"

"뭐래냐. 그냥 순수한 질문이었는데 지가 멋대로 흥분해 놓...... 아악! 악! 머리 쥐어뜯지 마!"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에요!"

카미바레즈가 중간에 쏙 끼어들어 두 사람을 만류했다.

"그리고 시몬이라면 충분히 와줄 거예요! 저주도 잘하고, 스켈레톤 메이지도 있으니까 반대 속성 원소마법으로 잡아야 하는 칠흑역학 미션도 충분히 가능해요!"

딕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시몬한테 알려준 저주학과 루트 있잖아."

"네."

"가장 빠른 루트긴 한데, 상식적으로 거기로 가면 함정을 많이 만나지 않을까?"

"......."

두 소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카미바레즈는 바로 편안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래도 가능할 거라고 믿어요."

"오우오우, 믿음이 대단한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카미바레즈가 방긋 웃었다.

"시몬은 키젠의 학생회장이니까요!"

* * *

후우! 하아!

시몬은 숨을 거칠게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다.

'이번 시험, 누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문제가 아니었어!'

난이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높다.

아마 다른 2학년들도 고전하고 있을 게 뻔했다. 배리어 게이지가 0%가 되고 '30분 정지'를 당하는 것만 아니라면, 사실 천천히 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몬은 두 번째 카드의 트랩에 걸린 상태였다.

주위엔 결투 링처럼 결계가 처져 있었고, 그의 앞으로 오는 건 무려 세 기의 회색 괴물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

한 괴물이 입을 벌리며 괴이한 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시몬은 골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1학년 저주학 교과서, 들고 있길 잘했네.'

시몬은 왼손으로 교과서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잠시 수식을 까먹어서 졸지에 복습하는 중이었다.

'이거다!'

마침내 수식을 완성한 시몬이 검지를 세웠다.

<사일런스(Silence)>

침묵저주 사일런스. 연기처럼 뻗어 나간 저주가 소리 지르는 괴물에 적중했고, 괴물의 목구멍에서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좀 낫네!"

시몬은 사일런스가 걸려 약점이 드러난 괴물을 본 스피어로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1학년 때 배운 저주들을 복습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독하긴 해도 역시 키젠은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다음.'

시몬은 고개를 들어 공중에서 불꽃을 뿜는 괴물을 보았다. 날개가 크고, 무엇보다 귀가 인간처럼 크게 생긴 몬스터였다.

'저런 타입은 이 저주가 직방이지.'

시몬이 빠르게 저주를 준비하는 그때.

-독창적이야! 훌륭해!

갑자기 머릿속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식과 공식에 찌들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독창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멀미저주는 당연히 진동 수식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에 뇌가 절여져 있는 거죠! 아주 훌륭합니다. 저주 방정식은 바로 이렇게 전개하는 겁니다!

저주학 시간에 헥토르의 파벌이 특례 1번이 진동 수식도 모른다며 비웃었을 때, 바힐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갑자기 생각나네.'

시몬이 검지를 치켜세웠다.

<시크니스(Sickness)>

멀미저주가 날아가 괴물의 몸에 적중했다.

효과는 강력했다. 괴물은 비틀비틀 비행하다가, 자기가 알아서 바닥에 추락해서 박살 났다.

'역시 정답은 시크니스구나. 그럼 남은 건 하나!'

제일 까다로운 놈이다.

언데드 타입. 자기 몸을 뜯어서 먹는 괴물인데, 괴로워하면서도 자기 몸을 뜯어 먹으며 점점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이그저스트 등 어지간한 약화계열 저주도 통하지 않았다.

'이 괴물은 무슨 저주가 정답일.......'

-시몬 폴렌티아. 당신을 위해 개발한 저주 세트입니다.

또 멋대로 머릿속에서 한 장면이 펼쳐졌다.

-그 어떤 책을 찾아봐도 없을 겁니다. 오로지 세상에 하나뿐인, 시몬 학생만을 위한 저주들이죠.

-뛰어난 학생이 있다면 가르치고 싶어지는 게 교육자 아니겠습니까? 사제(師弟)의 연이라고 해두겠습니다. 당신도 학생이고 배움이 본분인 신분이라면,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시몬이 입술을 깨물며 새로운 저주를 완성했다.

콤펠로니아를 익히기 위해, 바힐이 시몬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4대 저주.

그중 첫 번째.

<인돌렌스(Indolence)>

무통의 저주 인돌레스가 괴물의 몸에 적중했다.

한번 본인의 살점을 뜯어먹고, 시몬을 공격하고, 다시 뜯어먹고 공격하길 반복하던 괴물은 인돌렌스가 걸린 순간 무기까지 내려놓고 미친 듯이 본인의 몸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내 자신의 심장까지 먹어치우는 것으로 스스로 자멸했다.

슈우우우우우-

결계가 걷히고 다시 키젠의 교정으로 돌아왔다.

"하아."

시몬이 뒤숭숭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눈앞에 바힐이 있는 저주학과 건물이 보였다.

'마, 만나면 무슨 말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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