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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86화 (48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86화

허억! 헉! 후우!

두 학생이 숨을 몰아쉬며 비척대고 있었다. 진이 다 빠져버린 듯 두 다리가 가냘프게 후들거렸다.

붉은 안개로 가득 찬 숲. 바닥에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학생들의 주먹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다.

"아니, 진짜."

그중 한 학생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행평가도 아니고 고작 수강신청일뿐인데, 너무 빡센 거 아냐?"

이 자욱한 미지의 안개 속에서는, 마법진을 펼칠 수 없고 아공간을 열 수도 없다.

오로지 마투.

끝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제 몸만으로 싸워야 했다. 그 뒤에 홍펭을 찾아내야만 그녀의 마투학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홍펭 교수님이 어디 계시는지 감도 안 잡히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학생이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홍펭의 수업은 이만한 고생을 하는 값어치는 충분히 하겠지만, 지금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야! 여기 좀 와봐!"

같이 온 친구가 소리쳤다.

"뭔데?"

"피야. 피!"

"......이 새끼 드디어 대갈통이 맛탱이가 갔나. 피 처음 보세요? 아까 니 손에 묻어 있던 건 뭔데?"

"아니, 병신아! 일단 와서 보라고!"

친구의 격렬한 외침에, 학생은 '그래, 내가 또 속아준다.'를 중얼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

입을 벌리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피의 길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벌판이 온통 시뻘건 혈흔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주위엔 몬스터들이 온갖 기이한 방향으로 꺾인 채 쓰러져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누, 누가 여길 지나간 거지?"

* * *

같은 시각.

숲새들이 날아오르고, 몬스터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이 숲을, 두 남자가 전차 같은 무지막지한 기세로 돌파해 나가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빠악!

시몬이 오크의 턱을 부수고는, 도약해 중형 몬스터의 안면을 돌려차며 소리쳤다.

"이렇게 카쟌이랑 합을 맞추는 건!"

시몬의 발차기에 토스 된 몬스터는 바로 다음 공격에 얼굴이 갈라지며 즉사했다. 그 너머로 안광을 번뜩이고 있는 건 회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남자였다.

"실라지 연구실 잠입 이후 처음인가."

카쟌은 징검다리 건너듯 중형 몬스터들 어깨를 밟으며 휙 휙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몬스터들이 피분수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몬스터들의 목에는 깊숙한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종이 인형 휘날리듯 하는 카쟌 특유의 보법도 여전했다. 그는 전신의 모든 관절을 불가능한 형태까지 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움직임은 극도로 가벼워 보였지만, 한 방 한 방 꽂히는 주먹이나 손톱은 극도로 위력적이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몬스터들이 펑펑 터져 나가고 있다.

'마투만으로 카쟌을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었네.'

시몬은 감탄하며 오른손에 칠흑을 모았다.

<홍펭 오리지널 - 착검>

시몬이 팔을 긋자 나무와 몬스터들의 몸이 댕강댕강 날아갔다.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른 시몬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원숭이처럼 이리저리 팔을 번갈아 움직여 돌아다니며 발차기로 몬스터의 목을 꺾었다.

전혀 카쟌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 레스힐 산맥에서 생활하며 체득한 기술이었다.

"웃차."

바닥에 내려온 시몬이 다시 육탄전으로 돌입하며 몬스터들을 주먹으로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카쟌은 이미 마투학 전공이잖아요. 왜 굳이 일반과목도 마투로 들으려는 거예요?"

카쟌도 시몬의 옆으로 와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쓰러트렸다. 마치 경쟁하듯 몬스터들을 처치해 내가는 두 사람의 기세에 몬스터들마저도 주춤거렸다.

"홍펭 교수의 제의가 있었다. 교내에서 시간이 필요하지 않냐고. 내 수업을 하나 더 들으면, 그 수업은 듣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하더군."

"아!"

홍펭은 카쟌이 단순한 학생이 아니라는 걸 짐작한 것 같았다.

과연, 그녀다운 배려였다.

"그럼 홍펭 교수님도 카쟌이 도둑길드 소속이라는 걸 아시는 거예요?"

"거기까진 모르는 것 같다."

그때 시몬의 눈이 커졌다.

전면에 어금니가 삐쭉 튀어나온, 키가 2미터가 훌쩍 넘는 흉악한 오크 몬스터가 있었다. 위험도 5급에 달하는 오크 워로드였다.

시몬은 얼른 나무 위로 올라가 몬스터의 시선을 끌었다.

"카쟌! 센 녀석이 하나 와요!"

-크라라라락!

오크 워로드가 흉악한 크기의 배틀액스를 휘둘러댔다.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던 시몬은 턱걸이하듯 상체를 끌어 올려 피했지만, 배틀액스에 부딪힌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기울어졌다.

쿠구구구!

시몬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급히 다른 나무의 넝쿨을 붙잡고 옆으로 빠져나왔다. 동시에 벼락처럼 아래에서 쇄도한 카쟌이 오크 워로드의 턱을 치고 지나갔다.

-크륵!

머리에 골이 울리는 충격을 받은 오크 워로드가 분노하며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시몬 오리지널 - 파풍(爬風)>

투쾅!

시몬이 나무를 붙잡은 반대쪽 손으로 손가락을 튕기자, 오크 워로드의 이마에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오크 워로드가 시몬을 돌아보았다.

촤아아아악!

이번에는 카쟌이 공중에서 내려오며 오크 워로드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에 긴 손톱자국이 생기며 피분수가 쏟아졌다.

연달아 공격을 허용한 오크 워로드가 분노하며 굉음을 내질렀다.

"받아라, 시몬."

그때 시몬 쪽으로 튼튼해 보이는 넝쿨 하나가 한 템포 늦게 스르륵- 다가왔다.

시몬이 씩 웃으며 그것을 붙잡았다.

부웅! 부웅!

카쟌이 전면에서 격노한 오크 워로드를 상대하며 시선을 끌어주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상체의 움직임으로 피해내는 모습에는 노련미가 엿보였다.

바로 이때, 시몬이 뒤로 들어와 넝쿨로 오크 워로드의 목을 잽싸게 휘감아 조였다.

-커헉!

숨이 막힌 오크 워로드의 동작이 굼떠졌다. 배틀액스를 휘둘러 시몬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불안정한 자세와 동작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카쟌이 마무리를 준비했다.

타닷!

오크 워로드의 무릎, 복부, 가슴을 타고 올라온 그가 정확하게 손톱을 늘여 목과 심장에 길어진 손톱을 쑤셔 넣었다.

오크 워로드가 피거품을 물며 발작했고, 두 남자는 동시에 훌쩍 뛰어올라 빠져나왔다.

목을 부여잡고, 입과 목에서 울컥울컥 피를 토하던 몬스터의 거체가 쿵! 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후우우."

시몬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고는 카쟌을 향해 주먹을 세웠다.

"오랜만에 호흡 맞추니까 좋은데요!"

카쟌도 주먹을 맞부딪히고는 오른 눈에 난 흉터를 슥슥 긁었다.

"널 외부의 공세로부터 보호하라는 네프티스 님의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다. 제5군단장 매그너스는 계속 널 노리고 있으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찾아와라."

"늘 고마워요, 카쟌."

"그리고, 지금부터 난 혼자 움직이겠다."

"네?"

"유급생이자 전공생인 내가 수강신청 시험 중인 학생을 도우면, 남들이 보기엔 그리 좋지 않을 수 있어. 대신 네가 솔깃할 만한 정보를 주지."

카쟌의 이야기를 들은 시몬의 눈이 커졌다.

* * *

수강신청의 마지막 이벤트.

이제는 2학년의 1/3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붉은 안개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들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수업까지 수강신청에 성공한 학생들은 이제 모두 홍펭의 수업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마투만 써야 하는 극악의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곳곳에서 배리어 게이지가 0%가 되며, 강제 30분 휴식의 리스크를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여기 또 아슬아슬한 한 명.

"하아, 하아."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무릎을 짚고 숨을 헐떡였다.

남은 배리어 게이지는 고작 8%.

그런 그녀에게 또 다른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하압!"

카미바레즈가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나더니 손바닥으로 몬스터의 복부를 쳐서 튕겨냈다. 상대를 날려 보내는 데 특화된 그녀 나름의 오리지널 마투기였다.

그녀가 얼른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메이린!"

"아, 응! 커버 땡큐."

퍼억!

카미바레즈가 날려 보낸 몬스터의 이마에 석궁볼트가 박혔다.

"이제 볼트 잔량도 얼마 안 남았어."

철컥! 딕이 석궁을 열고 남은 볼트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의 남은 배리어 게이지는 고작 1%.

"쟨 진짜."

메이린이 끈으로 머리를 고쳐 묶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매번 살아남은 게 용할 정도로 악운이라니까."

"아, 운이 아니라 실력이지!"

"여러분! 저기 또 와요!"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세 사람이 각자 개성 있는 전투 자세를 취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제발 초 치는 소리 좀 하지 마! 이 밥팅아!"

"아!"

자그마한 두 손바닥을 펼친 채 싸울 준비를 하던 카미바레즈가 앞을 가리켰다.

"저기 보세요!"

타앗!

탓!

탓!

몰려드는 몬스터들 위로, 나무를 밟고 뛰어오르는 교복 차림의 소년이 보였다.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추월해 세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느낌으로 바닥에 내려왔다.

촤라락-!

그의 신발이 바닥을 긁으며 회전하는 듯하더니, 칠흑이 일렁이는 오른팔이 소름 끼치는 궤적을 그었다.

<홍펭 오리지널 - 착검>

쩌어어어어어억!

일반적인 착검과는 그 범위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검격이 반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 닿는 모든 몬스터들을 절단시켰다.

'여섯 마리를 한 번에!'

딕의 눈이 커졌다. 땀방울에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소년의 회전이 멈췄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아!"

모두의 얼굴이 이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환하게 밝아졌다.

"시몬!!"

시몬이 뒤를 돌아본 채, 학생회 멤버들을 향해 손을 슬쩍 들어 보였다. 그러곤 고개를 살짝 젖히자, 몬스터의 창이 쐑! 하고 시몬의 머리가 있던 허공을 꿰뚫었다.

터업! 텁!

바로 몬스터의 손목과 팔을 붙잡은 시몬이 반동을 주며 몬스터를 엎어 쳐서 바닥에 메다꽂았다.

뒤따라온 다른 몬스터들이 거칠게 무기를 휘둘렀지만, 시몬은 혼자서 다른 장르의 싸움을 하는 사람 같았다. 손바닥으로 툭툭 무기나 손을 밀고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넘어뜨리는 모습은 너무나도 싸움이 쉬워 보였다.

이내 공중에서 회전하며 몬스터 세 마리의 머리를 걷어차고 내려오는 모습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아니, 쟤."

딕이 석궁을 내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방학 전보다 마투가 훨씬 좋아진 것 같은데?"

시몬이 관절기로 몬스터의 목을 휘감고 팔을 고정시켰다. 목뼈를 부러뜨리기 전에 두 기의 몬스터들이 양옆으로 또 달려왔다.

"하아아아앗!"

커다란 기합 소리가 들렸다.

공중에서 날아온 메이린이 그림 같은 발차기로 측면의 몬스터를 날려버렸다. 시몬은 그사이 목뼈를 부러뜨린 다음, 다음 몬스터를 관절기로 붙잡았다.

이 녀석은 갑옷을 입은 오크였다.

"지금이야, 메이린!"

발차기를 가하고 내려온 메이린이 칠흑이 일렁이는 주먹을 당겼다.

<홍펭 오리지널 - 천흉>

뻐어억!

마투에 몇 없는 관통기, 천흉이 제대로 먹혔다. 갑옷 한가운데에 주먹이 꽂혔지만, 몬스터는 거품을 물며 바닥에 쓰러졌다.

"와, 이제 천흉은 엄청 잘 쓰는데?"

시몬이 씩 웃으며 칭찬했다.

"......."

메이린은 얼굴을 붉힌 채 주먹을 왼손으로 꼬옥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아~ 안 그래도 메이린 오늘 뭔가 좀 이상해."

딕이 그녀를 노리던 몬스터의 팔을 붙잡고, 무릎으로 안면을 찍은 다음 카미바레즈 쪽으로 보냈다. 그녀가 몬스터의 복부를 강타해서 마무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맨날 천흉 쓸 때마다 막 얼굴 붉히고 있음."

"내, 내가 언제!!"

메이린이 화아악 붉어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

"봐봐. 또 붉어졌다."

"죽고 싶냐 진짜! 왜 오늘 자꾸 시비냐고오!"

메이린이 주먹을 쥐고 딕에게 달려들었고, 딕은 자신의 배리어 게이지 잔량을 어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시몬이 조용히 웃었다.

"시몬!"

카미바레즈가 방긋 미소 지으며 옆으로 왔다.

"제인 교수님이랑 바힐 교수님 수강신청은 어떻게 됐어요?"

"계획대로 둘 다 성공했지."

"기뻐요!"

그녀의 날개가 파닥파닥 흔들렸다.

"전공은 아니지만 올해도 넷이서 같은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네요!"

"응."

시몬이 고개를 돌려 여전히 싸우고 있는 메이린과 딕을 보았다.

"그보다 다들 따라와. 카쟌이 홍펭 교수님이 있는 위치를 알려줬어."

붙잡혀서 머리카락을 쥐어 뜯기려던 딕이 손을 척 뻗었다.

"폭포 뒤 정자! 맞지?"

"맞아. 어떻게 알았어?"

"역시 카잔이라니까. 나랑 똑같은 정보였...... 아, 아아! 더 때리면 나 진짜 강제 30분 휴식이야!"

"닥쳐어어어!"

* * *

쏴아아아아!

그림 같은 폭포가 내려오는 곳에 위치한 작은 정자. 그 안에서 마투학 교수 홍펭은 수석조교와 함께 평화롭게 차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교수님."

"네."

타악-

수석조교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올해 수강신청은 유난히 어렵게 내셨네요. 이유가 있을까요?"

"아, 그야."

홍펭이 슬쩍 웃었다.

"너무 간단하면, 꼭 와줬으면 하는 학쟁이 못 올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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