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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89화 (48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89화

주말을 앞둔 홍펭의 체력훈련은 지옥이었다.

사람을 고문하는 목적으로 고안한 게 아닐까 싶은 고통의 체조부터 시작해서.

산 정상까지 달리기, 산악 장애물 넘기, 이그저스트 저주 걸고 네 발로 뛰기, 파트너 들쳐메고 달리기까지.

"주, 죽여줘어......."

마침 파트너인 시몬을 들쳐메고 달리던 메이린이 곡소리를 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시몬은 클라우드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살짝 공중으로 띄워서 그녀를 도왔다.

마침 조교의 외침이 들렸다.

"들쳐진 쪽도 쉬면 안 됩니다! 파트너의 힘을 덜어주는 방법을 스스로 고안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몬은 좋은 파트너였다. 덕분에 체력이 부족한 메이린도 낑낑거리며 도착점까지 들어왔다.

"도착점에 온 학생들은 반대로 바꾸세요! 바꿔서 바로 출발점까지 돌아갑니다!"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바닥에 내려오게 무섭게 번개처럼 메이린을 어깨에 들쳐멨다.

"꺄아아아아!"

부우웅! 하고 난데없이 시야가 뒤집히자 놀란 그녀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야!! 무슨 짓이야!"

시몬은 지체없이 달렸다. 저 멀리 헥토르가 달리고 있었으니 바로 따라잡아야 했다.

"쪼옴! 야아아! 살살해! 살살!"

목덜미가 새빨갛게 물든 메이린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떽뗵거렸다. 출발점으로 들어오던 딕이 불쑥 물었다.

"오, 뭘 살살한다고?"

"나가 죽어!!"

그렇게 수업 막바지 즈음에는 학생들 모두 진이 빠져서 널브러졌고, 심지어 들것에 실려 텔레포트 마법진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이겼다."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헥토르 쪽을 보았다. 헥토르도 분한 듯 이를 갈고 있었다.

"이 바보야!"

메이린이 시몬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는, 토라진 듯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하여간 남자애들은 진짜.'

2학년이 됐지만 이런 부분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언제쯤 철이 들까 싶었다.

그때 마침 카미바레즈가 낑낑거리며 딕을 업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힘내, 카미!"

마치 개미가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큰 먹이를 옮기고 있는 듯한 모습.

그 와중에 딕은 또 잔머리를 굴려서, 풍선 같이 생긴 몸을 띄우는 발명품을 달고 있었다.

"성공입니다. 딕, 카미바레즈 학생!"

조교가 두 사람의 이름을 체크했다.

그렇게 학생들이 하나둘씩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홍펭이 화사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다들 주고했어요! 내일 주말이죠? 몸에 탈이 안 나도록 즈트레칭하고, 푹- 휴직하도록 해요!"

* * *

그렇게 지옥훈련이 끝나고 맞이한 주말, 시몬조차 근육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피로 때문에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었지만, 키젠 학생에게 빈둥거릴 시간 따윈 없었다.

주말이 끝나면 다시 전공수업의 연속이다. 특히 무지막지한 양의 과제를 자랑하는 소환 재료학은 수행평가까지 예고한 상황.

시몬은 오전에는 과제 및 회전 스켈레톤 나이트를 연구했고, 오후에는 하양이 까망이를 보러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의 집에 방문했다. 저녁엔 피어의 유적에 들려 에이션트 언데드들과 함께 있으면서 군단장 수업을 받았다.

까아아아앙―!

피어의 유적에 청명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과 피어가 서로 대검을 맞부딪히고 있었다.

시몬은 피어의 뼈로 오른손을 감싸 '파멸의 대검'을 들고 있었고, 피어는 왼손만으로 평범한 대검을 들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온 '칼'은 어때요? 진전이 좀 있어요?"

시몬이 물었다. 동시에 피어가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성과라고 할 건 없지만, 원인은 알아냈다!]

채앵! 챙!

두 대검이 연신 불똥을 튀기며 부딪쳤다.

[칼의 몸은 지금 절반만 남아 있다! 다른 절반은 여전히 '놈'들이 가지고 있겠지!]

"놈들이라 하심은 역시-"

[칼을 붙잡아 실험했던 그 미치광이 집단.]

카가각!

피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몬의 두 다리가 바닥을 그으며 밀려났다.

[그 미치광이 놈들을 추적해, 나머지 절반의 칼의 몸을 돌려받아야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칼을 구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다 소년!]

피어가 히죽 웃으며 시몬의 대검을 쳐냈다.

[군단의 여섯 번째 대장급 에이션트 언데드가 확보되는 거다! 칼이 제 역할을 해주면 군단의 전력은 지금보다 훨씬 상승하겠지! 그가 가진 질병의 능력은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하다!]

여섯 번째 에이션트 언데드!

시몬은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벌어질 매그너스와 제5군단과의 결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를 손에 넣고 싶었다.

채앵!

챙!

두 사람이 나란히 유적을 달리면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에르제에게 드레스덴 왕립 도서관에 잠입해서 자료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몸을 낮춰 공격을 피해낸 시몬이, 왼발을 바닥이 파일 정도로 힘껏 내디디고 대검을 내질렀다.

"뭔가 성과가 있으면 좋겠는데요!"

스응-

날카로운 찌르기였지만, 피어는 한 손으로 쥔 대검을 기울여 가볍게 시몬의 대검을 흘려보냈다.

[그래! 일단은 키젠 생활에 집중해라! 로크섬 밖으로 나갈 기회. 다음 임무평가는 언제일지가 가장 중요하겠군!]

"학생회실에 들르면 딕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시기상 곧 있을 거예요."

쩌어어어엉!

두 대검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시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드시 칼을 제 손으로 부활시키겠어요!"

* * *

달콤한 주말은 빛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됐다.

오전에는 운이 좋게도 공강이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그리고 오후에는 시몬이 기대하고 있던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세 번째 전공수업, '소환 장송학'이다.

"토토! 빨리 와!"

시몬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토토를 보채고 있었다.

"아, 알았어! 금방 나갈게!"

점심은 기숙사 내부에 마련된 작은 식당에서 먹고, 골렘보드를 타고 2학년 캠퍼스로 이동.

소환학과 건물에 도착했다.

시몬은 속도감에 만족했지만, 토토는 또 배가 아파졌다며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달칵.

바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일찍 와서 그런지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창가 자리가 비었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름 명당이라고 할 만한 자리였기에 시몬은 냉큼 그 자리를 차지하고는 교과서를 꺼냈다.

"안녕?"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레인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포근한 호의로 차 있었다.

"아, 안녕! 로레인."

"좋은 아침이야, 시몬."

이제는 '옆에 앉아도 돼?' 같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로레인은 시몬의 옆자리에 앉았고, 시몬은 조금 더 그녀와 친해진 것 같아 마음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좋은 아침은 아니지 않아? 이제 오후 수업인데."

내친김에 농담도 한번 했다.

"응, 그러네. 좋은 점심이야."

다행히 로레인은 받아주었다. 자그맣게 웃어주기도 했다.

"아까 일어나서 시간 감각이 없었거든."

시몬은 잠시 저 '차기 키젠 총장'이 핑크빛 벽지가 가득한 공주님 방에서 캐릭터 파자마를 입고 늦잠 자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얼른 지웠다.

로레인과 몇 마디 주고받고 있는 사이, 강의실은 하나둘씩 학생들로 가득 찼다. 시끌시끌 웅성웅성하는 목소리에 귓가가 조용할 틈이 없다.

화장실에 다녀온 토토도 시몬의 앞자리에 앉았다.

"첫 소환 장송학 수업. 기대되네."

시몬이 한 번도 쓴 적 없는 빳빳한 새 교재에 이름을 쓰며 중얼거렸다.

"수업개요 봤어?"

토토도 교과서에 이름을 쓰며 물었다.

"교수님이 린, 룬 교수님이래. 나는 처음 들어봐!"

"린, 룬? 이름이랑 성인가?"

"소환 장송학 수업은 교수님이 '두 분'이야."

로레인이 말했다. 시몬과 토토의 고개가 동시에 그녀 쪽으로 돌아갔다.

로레인이 입가에 검지를 올리며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말하자면 쌍둥이 같은 느낌? 이려나."

시몬의 눈이 커졌다.

"그 교수님들을 알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로레인이 눈을 감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봐온 분인걸. 내가 아기일 때는 기저귀도 채워주셨대."

'네프티스 님의 지인?'

시몬은 점점 린, 룬 교수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아기 시절 로레인을 알 정도라면, 아마 지금은 40~50대 중반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웅성웅성!

그때 입구 쪽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 수업 시작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왔다."

로레인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경계모드가 되었다.

찬란한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마치 거대한 후광을 일으키며 강의실로 걸어오는 소녀.

상아탑 후계자, 세르네 아인다르크.

그녀는 추종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지나가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시몬 쪽으로 다가왔다.

"음-"

하지만 시몬 주위에 자리는 거의 다 찬 상태였다. 시몬은 창가 자리에 앉았고, 옆자리는 로레인, 앞자리는 토토, 그리고 뒷자리는 이름 모를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나마 대각선 자리는 비었다.

하지만 세르네는 또각또각 걸음을 옮겨, 굳이 시몬의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창밖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

로레인은 세르네를 지그시 노려보는 중이었다.

깃털을 쓰는 모습을 어떻게든 목격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협박으로 자리를 빼앗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저기."

세르네가 입을 열었다. 남학생은 뒤늦게 악명 높은 세르네가 자신의 앞에 와 있는 걸 보고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응! 무슨...... 일이야?"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진다.

시몬은 당장이라도 세르네가 남학생의 얼굴을 짓밟으며 '눈치 없어요? 저리 꺼져요.'하는 그림을 상상했지만.

"죄송하지마안-"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뺨에 발그레한 홍조를 띤 채 촉촉해진 눈을 깜빡였다.

"제가 그 자리에 앉고 싶어서 그런데요~ 혹시 양보해 줄 수 없으실까요?"

세상 살갑게 부탁한 그녀가 민망한 듯 배시시 웃으며 귀밑머리를 넘겼다. 남학생의 얼굴이 알기 쉽게 벌게졌다.

"무, 물론이지! 어, 어, 얼마든지 앉아! 난 다른 자리에 가도 괜찮으니까."

"어머~ 친절하셔라."

그녀의 눈꼬리가 슬쩍 휘었다.

"고마워요?"

결정타였다. 남학생은 비틀비틀 물러났고, 세르네는 당연하다는 듯 시몬의 뒷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럼 됐죠?"

그녀가 가뿐하게 다리를 꼬고는 로레인 쪽을 흘겨보았다. 로레인이 분한 듯 눈매를 치켜뜨고 있었다.

"저급한 원숭이들은 굳이 깃털을 쓸 필요도 없답니다~ 내 본연의 권위와 매력만으로도 충분하죠."

'......방금 그렇게 애타게 부탁해 놓곤, 저급한 원숭이라니.'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은 다른 건 몰라도 보통 멘탈은 아니다.

"교수님 오십니다!"

드디어 오늘의 본 무대가 왔다.

학생들이 우르르 제자리로 돌아가고, 강의실에 조교들이 등장했다.

'뭔가 특이하네.'

소환 장송학의 조교들은 4~50대 정도로 나이대가 꽤 있는 편이었다.

일반적으로 20대 젊은 청년들로 이루어진 다른 수업의 조교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다들 조용!"

성격도 드세고 터프했다. 수석조교로 보이는 인물이 소리쳐 학생들을 조용히 만든 다음 말했다.

"린 교수님, 룬 교수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 손에 교재를 들고, 똑같은 멜빵바지 차림에 똑같은 모자를 쓴, 똑같은 외형의 소녀들이 팔을 척척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어리잖아?"

많이 잡아도, 지금 18살인 2학년 학생들의 입장에선 2~3살은 연하로 보였다.

날카로운 눈매, 똑 부러지는 눈빛, 높은 콧대와 자신감이 넘치는 어깨.

그 두 사람이 자리에 멈춰서 학생들을 보았다.

토토는 로레인 쪽을 아주 살짝 돌아보았다. 네가 말한 그 사람이 맞느냐는 의문이었지만, 로레인은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교수들의 외견에 놀라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다른 부분에서 놀라고 있었다.

"저, 두 사람."

시몬의 목소리가 떨렸다.

"인간이 아냐."

"뭐어?"

토토가 시몬 쪽을 돌아보았다.

"대단한 파격인데요. 키젠."

세르네도 눈치챈 듯 턱을 괴었다.

"언데드에게 인간을 가르치게 해?"

학생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시몬의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그것도 보통 언데드와는 달라.'

군단장인 시몬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두 교수.

에이션트 언데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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