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90화
"......."
강의실은 혼란스러운 정적과 침묵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교단으로 올라온 쌍둥이들.
똑같은 포즈로 팔짱을 끼고, 똑같이 짝다리를 짚고 선 채, 똑같이 뚱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아아아."
동시에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답도 없어. 린."
왼쪽의 소녀가 말했다.
"저 형편없는 것들을 바닥부터 가르치란 걸까? 룬."
오른쪽의 소녀가 답했다.
"벌써 가슴이 답답해."
"적어도 3학년으로 맞춰달라고 했는데."
"그냥 네프티스한테 안 한다고 말하라고 했잖아."
"그럼 네프티스가 삐치잖아."
"우리랑 안 놀아줄지도 몰라."
그러곤 자기들끼리 쫑알쫑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키젠 교수로서 기대했던 이미지가 달랐던 것 이상으로, 교수들 또한 학생들을 보고 실망하는 중이었다.
"린, 교수님. 룬 교수님."
그때 수석조교가 웃는 얼굴로 앞으로 나왔다.
"그래도 교단에 섰으니, 학생들에게 소개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카리스마 있는 중년의 수석조교. 오히려 이 사람이 교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교수라는 말 어색해, 수석."
"쫌 소름 돋아, 수석."
"하지만 수석이 저렇게 부탁하니 어쩔 수 없지."
"맞아."
두 소녀가 손을 착 맞잡고, 학생들을 향해 올렸다.
"안녕. 내 이름은 린."
"내 이름은 룬이야."
그게 끝인가?
학생들이 의아해하고 있는 그때, 왼쪽의 린이 입을 열었다.
"질문 있는 아가?"
척!
기다렸다는 듯이 손이 번쩍 올라오더니, 한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에르 버클러입니다. 두 분 교수님은 인간이 아니십니까?"
"보면 몰라? 피에르."
"멍청해, 피에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언데드야."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더더욱 확실해졌다.
두 사람은 언데드,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로 일컬어지는 에이션트 언데드다.
이번에는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엘다린 루오입니다. 외견으로는 어려 보이시는데, 혹시 나이가......."
그 말에 쌍둥이 교수들이 질겁한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끔찍해! 매너 없어! 엘다린!"
"숙녀의 나이를 묻다니! 엘다린!"
"벌점 5점이야!"
엘다린이 깜짝 놀라더니 이내 억울한 표정으로 항명했다.
"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이를 물은 것 정도로 벌점이라니! 키젠은 철저한 실력주의의......!"
[실력?]
쌍둥이 교수들의 표정이 일순간 싸늘해졌다.
주위의 온도가 갑자기 훅 떨어졌다. 엘다린은 온몸에 한기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중압감에 짓눌렸다.
[재미있는 소리네? 맞아. 키젠은 철저한 실력주의야.]
[우리는 실력이 있어서 교단에 섰고, 그 권한으로 학생에게 벌점을 줬어.]
[네가 그 권한에 저항하겠다면, 올라와서 실력을 증명해.]
[네가 우리보다 더 뛰어난지.]
두 에이션트 언데드의 뒤에서, 귀곡성처럼 메아리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엘다린의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그, 그건......!"
그때 슥 하고 엘다린의 옷을 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석차 5위, 아세라즈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작작 까불어라. 학과 분위기 개판 만들지 말고."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또렷하고 소름 끼치는 음성.
소환학과 대표 헥토르가 차갑게 뇌까리고 있었다.
결국.
"죄, 죄송합니다. 저에 대한 처벌, 받아들이겠습니다."
엘다린은 허리를 굽혀 두 소녀에게 사죄했다.
린과 룬은 한숨을 쉬며 앉으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이 와중에 손을 휘젓는 타이밍과 속도가 동일했다.
그때 수석조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린, 룬 교수님은 키젠에서 10차례 정도 교수 직책을 맡으셨습니다. 마지막 강의가 거의 14년 전의 일이니 학생들이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그리고."
그녀가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두 교수님은 네프티스 님과 직접 계약한 에이션트 언데드이십니다. 말은 이제 줄이겠습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는데, 시몬의 앞자리에 앉은 토토가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뭔가 기분이 쫌 이상하다. 언데드가 인간을 가르친다니."
시몬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난 별로 안 이상한데."
"그, 그래?"
사실 시몬은 어제만 해도 피어의 수업을 받고 왔다.
주말마다 하는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가르침은, 시몬의 성장에서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피어의 분신이 '크흐흐흐!'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보다, 피어. 들었어요?'
[들었다. 소년!]
'네프티스 님과 계약한 에이션트 언데드라고 했는데, 그럼 설마 네프티스 님도 군단장인 거예요?'
[크흐흐흐! 그럴 리가. 그 여자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일 뿐이다.]
본래는 군단장만이 에이션트 언데드와 계약해서 수족으로 부릴 수 있지만, 네프티스는 이미 세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아득한 규격 외의 네크로맨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린, 룬과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보유하고 있는 에이션트 언데드도 저 쌍둥이가 전부고,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이를 흉내도 내지 못한다.
"그럼 교수님들. 이제 슬슬 수업을 진행해 주시는 건......."
"알았어. 수석!"
"이 빚은 네프티스한테 잔뜩 뜯어낼 거야! 수석!"
쌍둥이 교수가 칠판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손짓하자 흰색 분필과 분홍색 분필이 각자 날아와 손에 잡혔다.
타닥- 탁- 탁-
이내 까치발을 들고 칠판에 「장송」이라는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저 두 사람은 심지어 글자를 써도 한 획 한 획을 정확하게 양분해서 쓰고 있었다.
마지막에 동그라미를 그릴 때,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점에서 시작에서 반씩 원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쿡. 하고 만났다.
"그럼."
"여기서 질문을-"
글자를 다 쓴 쌍둥이 교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오."
10명이 넘는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야 외견에 살짝 당황했을 뿐,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질문만으로 벌점 5점을 깎아내린 교수. 그렇다면 질문을 통해 수업 내내 상점과 벌점을 마구 뿌리는 타입이라고 학생들은 분석한 것이다.
교단에 누가 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쌍둥이 교수도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에 비로소 만족한 듯 슬쩍 웃었다.
"물론 질문을 할 거지만-"
"장송의 개념! 이런 건 너무 뻔하잖아?"
그렇게 쫑알거리던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장송의 근원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아가?"
문제의 난이도가 올랐다.
손을 들고 있던 10명 학생들 모두 시무룩하게 손을 내렸다.
"아무도 없어?"
"진짜 없어?"
린과 룬이 주위를 쓱 훑어보다가 이내 동시에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로레인! 저기 로레인이 있어!"
"나도 봤어! 역시 여기 있었구나!"
로레인도 웃는 얼굴로 교수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릴 때 내내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해 줬는데! 왜 손을 안 드는 거야? 로레인!"
"발표해! 어서 일어나 발표해! 로레인!"
학생들이 시선이 모이자 로레인이 민망한 듯 웃음을 흘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레인 아크볼드입니다."
그녀의 차분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피리 부는 사나이면 될까요?"
쌍둥이 교수들이 휙휙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는 기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사악한 네크로맨서가 살았습니다."
그 사악한 네크로맨서는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였고, 주민들의 세금과 고혈을 뽑아먹으며 부유하게 살았다.
하지만 주민들 중 누구도 그에게 맞설 수 없었다. 그가 부리는 언데드들은 아주 강력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극심한 가뭄이 찾아와 주민들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고, 더 참지 못한 주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과도한 세금을 걷어가는 네크로맨서에게 항의했다.
사악한 네크로맨서는 이를 '반란'으로 규정지었다. 그는 자신의 강력한 언데드를 보내 주민들을 해산시킨 다음, 그 죄의 대가로 주민들의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자신의 언데드 실험실로 보낼 것을 종용했다.
거부한 자들은 가족 구성원 전원이 죽었다.
결국 주민들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처한 사람, 제비뽑기에 걸린 사람, 갓난아기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나이 많은 노인 등이 끌려가 죽었다.
마을의 주민들은 그렇게, 다른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다 보니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희생당한 가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끊임없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숨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강의실에서, 로레인의 목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 마을에 방문했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도 네크로맨서였다. 그의 소문을 들은 주민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악한 네크로맨서를 물리쳐 달라며 부탁했다.
그러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말했다.
-그대들은 결단코 사악한 네크로맨서들을 살아서는 이길 수 없소. 하지만 '죽어서는' 이길 수 있지. 어떻게 하겠소?
죄의식에 고통받던 주민들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언데드가 되었다.
사나이는 죽은 주민들을 데리고 사악한 네크로맨서의 성에 쳐들어갔다.
하지만 언데드가 된 주민들의 힘으로도, 사악한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강력한 언데드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때였습니다. 사나이가 피리를 불었습니다."
피리에서 나오는 선율은, 앞서 선택되어 처형당한 가족 구성원의 비명이었다.
언데드가 된 주민들은 분노의 괴성을 질러대며,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해 사악한 네크로맨서와 언데드를 산 채로 물어뜯어 죽였다.
"그렇게 주민들은 사악한 네크로맨서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고, 편하게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레인이 자리에 앉았다. 학생들은 웅성거리며 동화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역시 암흑연합스러운 잔혹동화네."
"듣는 애들 다 울겠다."
"그래서 해피엔딩이야? 배드앤딩이야?"
"둘 다 아닐까."
"조용! 조용!"
수석조교가 학생들을 조용히 시켰다. 두 쌍둥이 교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로레인에겐 상점 5점을 주고 싶지만!"
"스스로 나서서 발표를 하지 않았으니 안 줄 거야!"
로레인이 웃었다.
"네, 괜찮습니다."
쌍둥이 교수는 다시 칠판 앞으로 복귀했다.
"아까 그 이야기에서, 장송에 대한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는 사람?"
시몬, 헥토르, 아세라즈가 잽싸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아세라즈가 빨랐다.
그녀는 눈에 띄게 기뻐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세라즈 미켈입니다! 장송은 언데드를 강화하는 흑마법을 뜻합니다. 마지막 장면,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자신의 피리연주로 앞서 희생된 사람들의 비명을 장송곡으로 재현했고, 언데드가 된 주민들의 힘을 일깨워 원래라면 이길 수 없었던 사악한 네크로맨서를 쓰러트렸습니다."
"정답이야! 아세라즈!"
"상점 5점이야! 아세라즈!"
아세라즈가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자리에 앉았다. 헥토르가 분을 못 이기고 제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인간들이 말하는 '장송(葬送)'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일화를 바탕으로 했어."
"장송은 언데드를 강화하는 흑마법이야."
"너희 인간들이 다루는 소환형 언데드는 완성된 이후, 특별한 파워업의 수단이 없어. 완성된 스펙에서 점점 마모되고 약해질 뿐이지."
"하지만! 장송은 언데드를 강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야."
쌍둥이 교수들이 손가락을 튕겼다.
기다리고 있던 수석조교가 아공간을 열더니 두 기의 언데드를 연단 위로 꺼냈다.
"구울(Ghoul)이다!"
수석조교가 두 팔을 세우자, 두 구울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싸우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가진 힘은 완전히 박빙이었다.
수석조교가 팔을 좌우로 벌려 다시 둘을 떼어놓았다.
"여기서!"
쌍둥이 교수가 나섰다. 그녀들이 한 손씩 구울의 머리를 짚었다.
"한쪽에 장송을 걸면?"
화르르르르륵!
교수들의 손에 닿은 구울이 새까만 불꽃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화염 속성이 더해진 구울은 상대 구울을 압도적인 힘으로 태워 죽이는 데 성공했다.
"와아아!"
입에서 불을 흘리는 구울을 보며, 학생들이 열렬하게 손뼉을 쳤다.
"그 외에도!"
"다양한 효과를 가진 장송이 있어!"
수석조교가 네 기의 구울들을 꺼내놓고 물러났고, 쌍둥이들이 지나갔다.
그녀들의 손이 번갈아 가며 닿을 때마다 몸에 한기가 흐르는 구울, 거울처럼 투명해진 구울, 전신에 가시가 돋치는 구울 등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구울에서.
"얘는 '비대화'를 걸 거야! 린!"
"아니야! '증식'을 걸어야 해! 룬!"
두 사람이 어떤 장송을 걸어야 할지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조그맣게 웃음을 터뜨렸다.
"에잇! 그렇다면!"
"둘 다 걸지 뭐!"
두 소녀가 동시에 손을 좀비의 얼굴에 댔고, 좀비의 몸이 불룩불룩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그러다 몸이 너무나도 비대해졌고.
펑!
결국 견디지 못한 좀비의 몸이 터졌다.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낮추거나 책상 뒤에 숨었다. 언데드의 살점이 벽과 창가에 퍽퍽 달라붙었다.
"두 종류의 장송을 잘못 조합하면 이렇게 돼!"
"과욕을 부리는 건 나빠!"
두 교수는 원래 계획된 일인 양 휙 지나가 버렸다. 조교들은 익숙한 듯 청소 마법으로 더러워진 주위를 깔끔하게 치웠다.
"그럼 이제!"
"실전이야!"
"너희들은 오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보러 갈 거야!"
"장송의 근원이자 기본을 체험하러 가는 거지!"
모든 조교들이 두 팔을 세워 들었다.
어느새 강의실 바닥 전체에 커다란 마법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린과 룬 교수가 히죽 웃었다.
"그럼!"
"출발!"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쌍둥이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
붕 떠오르는 감각이 사라지자, 시몬은 눈을 뜨고 주변을 훑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도 엉덩방아를 찧은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 여긴?"
난데없이 수없이 불쑥불쑥 솟아 있는 비석들.
이곳은 공동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