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91화
"묘, 묘지?"
"이런 곳엔 왜......."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강의실에서 깃펜을 끄적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공동묘지에 뚝 떨어진 상황.
흐린 하늘, 자욱한 안개, 거무죽죽한 검은 잎의 식물들과 줄지어 세워져 있는 묘지들이 보였다. 곳곳에서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몬은 몸을 일으켜 가장 가까운 묘지로 걸어갔다.
「마힐라니 산사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며」
묘비에 적힌 건 그게 다였고, 묻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없었다.
날짜를 보니 먼 옛날에 있었던 일이다. 재난에 휘말린 피해자들이 단체로 이곳에 묻힌 모양이다.
관리도 하지 않았는지 묘지의 상태도 영 엉망이었다. 말라붙은 넝쿨과 잡초로 뒤덮여 있고, 몬스터나 들개 등이 땅을 헤집은 흔적도 보인다.
"공동묘지에 온 걸 환영해!"
"환영해!"
두 쌍둥이 교수가 사뿐한 걸음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왔다.
"필요한 허가는 다 받아냈어. 이 묘지는 교육목적으로 우리 키젠이 사용해도 되니 안심해."
"장송을 가르치는 데, 공동묘지보다 더 좋은 곳은 없거든!"
쌍둥이가 허공에 손짓했다. 그녀와 학생들의 반경을 덮는 돔 형태의 결계가 펼쳐졌다.
"그냥 소리를 차단하는 결계야!"
"그럼 수업을 시작해 볼까!"
쌍둥이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두 손을 맞잡고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La―――――!!]
시몬은 전신이 털이 쭈뼛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스산한 기운이 등허리를 훑다가 뒷목을 뻣뻣하게 당긴다.
다른 학생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인지 연신 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와, 소름돋는다."
"성악가 같아!"
밝고 아름다운 선율이라기보다는, 살짝살짝 음침함이 감도는 선율. 망자가 부르는 귀곡성을 연상케 했다.
쌍둥이가 동시에 음을 끊었다.
짝짝짝짝!
몇몇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쌍둥이들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말했었지? 아가들?"
"여기 온 이유가 뭐라고? 아가들?"
학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장송의 근원을 체험해 본다고 하셨습니다!"
쌍둥이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부터는 장송의 기본 중의 기본!"
"언데드들을 부르는 '장송곡'을 익혀볼 거야!"
"학교 종이 땡땡땡 수준의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할 거야. 이것도 못 따라오면 소환술사 실격이겠지? 린?"
"맞아 룬! 그냥 네크로맨서 실격이야!"
두 소녀가 손을 맞잡았다.
"한 마디씩 부를 테니!"
"잘 따라 해!"
"예!"
소환학 수업이 갑자기 음악수업으로 변했다. 쌍둥이 교수가 한 마디씩 부르면, 학생들이 이어서 따라불렀다.
[Ra-v-ri-ma-đưa ra. anh!]
압도적인 음색이 주위를 뒤덮는다. 학생들은 소름 끼치는 음색에 긴장하면서도 입을 열어 따라부른다.
그러면 교수들이 교정했다.
"중간에 연결되는 Ma 부분만 더 크게!"
아직까지는 마법적인 장치 같은 건 없었다.
너무나 평범한 음악수업.
단지 가사가 대륙어가 아니고, 언데드를 부르는 노래인 만큼 멜로디가 이질적이고 부르기 어렵다는 게 차이점이다.
그래도 1절 수준의 짧은 노래였으니 외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잠깐 주어진 쉬는 시간 동안에, 학생들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녔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쌍둥이 소녀 교수들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이 장송곡은 제목 미상, 작자 미상.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는 '시체 도굴'이라고 불리는 곡이야!"
"옛날에 무덤 도굴꾼들은 밤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무덤을 돌아다녔나 봐!"
"그럼 무덤이 움직이고, 그 안에 아직 시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
"요즘은 도시에서도 언데드를 구할 수 있으니 한참 옛날이야기지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쌍둥이의 설명이었다.
"그럼 쉬는 시간 끝! 다들 일어나!"
"이제 음악으로 흑마법을 일으키는 법을 알려줄 테니까!"
음악으로 마법적 효과를 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는데, 첫 시간에 쌍둥이 교수들이 가르쳐 주는 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입 앞에 마법진을 펼쳐놓고, 노래로 마법진의 수식이나 룬어를 건드려 마법적 효과를 내는 방식. 직관적이고 심플하다.
물론 이 단계를 성공해야, 앞으로 더 강력한 방식의 장송곡도 부를 수 있다.
'오.'
직접 해보니 신기했다.
마법진을 펼치고 노래를 부르니, 노래의 진행에 따라 마법진의 특정 부분에 빛이 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마법진이 노래를 알아듣는 것처럼.
"Ra-v-ri 부분을 딱 딱 정확하게 끊어서 발음해야 해!"
"이어서 붙이면 완전히 다른 명령어가 되니까 마법진이 반응하지 못하는 거야!"
쌍둥이 교수와 조교들이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노래를 교정해 주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던 시몬은 살짝 목이 쉬려고 했기에, 잠깐 물을 꺼내 마시는 중이었다.
"어때? 잘되고 있어?"
로레인이 다가왔다.
시몬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음. 생각보다 어렵네."
"내가 좀 가르쳐 줄까? 장송곡은 어릴 때 많이 불러서 잘 알거든."
역시 로레인.
조기교육의 힘이었다.
"그럼 부탁해."
시몬은 거절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로레인은 입 앞에 마법진을 펼쳐놓고는 흐읍. 하고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침내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Finde-die Die-be......."
'!'
첫 음만으로도 소름이 쫘악 끼쳤다.
깔끔하고 미려하게 뻗어 나가는 음색. 분명히 쌍둥이 교수가 부른 것과 똑같은 노래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동시에 살짝살짝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게, 장송의 효과가 제대로 담겨 있었다.
덜컹! 덜컹!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눈앞에 보이는 무덤이 흔들렸다. 마법진의 출력을 최소화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제대로 출력을 올렸다면, 당장에라도 묘지를 부수고 망자들의 손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여기는 살짝 음 끝을 들어 올리는 느낌이야. 이렇게."
그녀는 한 소절을 부르고 시몬에게 포인트를 가르쳐 주는 것을 반복했다.
"마지막엔 애처롭게 울리는 느낌으로. ein-dickes Schädel üdbrig!"
그녀가 노래를 멈췄다.
그러곤 시몬을 보았다.
"자, 해볼래?"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시몬이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
시몬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흐으읍. 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배에 힘을 주었다.
"Fin-ded-ie D-ie-be!"
시몬의 입에서 특유의 음색이 흘러나오자, 로레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Ich tre-ffe sie, dieim Grab......."
시몬의 노래를 들은 주위의 학생들도 웅성거리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토토와 피츠제럴드도 다가왔다.
"Schädel übrig――!"
마지막 음절까지 힘주어 내뱉은 시몬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멋들어지게 닦아내고는 말했다.
"어때?"
"어, 음. 시몬."
로레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러다가 먼 산을 바라보듯 고개를 돌렸다.
"너 노래는 잘 못하는구나."
"?!"
하하하하하하!
지켜보던 학생들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특히 토토는 순수하게 놀라고 있었다.
"시몬도 못 하는 게 있었구나."
동감한다는 듯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고쳐 썼다.
"음, 인간이 뭐든지 너무 잘하면 인간미가 없지."
시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 내 노래가 어때서? 음도 다 올라갔잖아!"
"음이 문제가 아니에요~ 시몬."
어느새 세르네까지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길고 하얀 검지를 시몬의 눈앞에서 장난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박자가 다 틀리잖아요? 박치 씨."
"......크윽!"
세르네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die im Grab gefangen ist――!"
인상을 찡긋 구기면서 내뱉는 파격적인 음량과 우아한 울림에 학생들이 입을 딱 벌렸다.
이 미친 듯한 천재는 심지어 마법진을 쓰지도 않고도 노래만으로 장송 효과를 냈다. 주위의 무덤이 들썩이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려나요?"
세르네가 시몬에게 가볍게 윙크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로레인이 분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시몬은 헛웃음을 흘렸다.
노래를 미친 듯이 잘 부르는 건 상아탑 가문의 유전자 특징인가? 참. 세르네는 상아탑주가 데려온 입양아라고 했다.
'아무튼.'
시몬은 정신을 다잡고 흠흠 기침을 했다. 그리고 한 소절 똑같이 불렀지만, 주위의 반응은 어색한 웃음뿐이었다.
세르네가 우쭈쭈 소리를 냈다.
"에이~ 저는 노래 좀 못하는 남자도 괜찮아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잘하니까."
'......왠지 기분이 묘하게 나쁜데.'
로레인도 한마디 했다.
"괜찮아, 시몬. 장송곡은 노래 솜씨랑은 상관없어. 언데드만 잘 깨우면 돼. 박치는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야."
'로레인! 너마저......!'
오랜만에 재능의 벽에 막힌 시몬이 엎드려 절망하고 있는 사이, 쌍둥이 교수가 재잘재잘 떠들며 다가왔다.
"시작해도 될까 린?"
"시작하자! 룬!"
"자, 아가들! 지금부터 수행평가를 진행할 거야! 각자 흩어져서 연습해!"
"그러다 우리나 조교들 앞에서 언데드를 깨우는 데 성공하면 합격이야!"
쌍둥이가 손을 맞잡더니 옆으로 쭉 뻗었다. 학생들의 시선도 그녀들이 가르친 쪽으로 향했다.
"저기 텔레포트 마법진이 준비되어 있어!"
"시험에 합격하고 점수를 받는 아가는 바로 학교로 돌아가면 돼!"
"그 이후는 쭈-욱 자유시간!"
학교로 돌아간다는 소리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쌍둥이 교수가 맞잡은 손을 하늘을 향해 세워 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이작!"
스타트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들이 우르르 흩어졌다. 좋은 묘지를 선점해야 했다.
시몬도 서둘러 뛰어갔다. 그러다 나름 구석지고 나무로 덮여 있는 자리를 찾아냈다. 그가 후읍 숨을 들이마셨다.
'장송학 수업의 첫 수행평가. 반드시 성공시키겠어!'
시몬의 눈이 결의에 차올랐다.
* * *
네 시간이 지났다.
묘지에 들어왔던 소환학과 학생들의 95%가 키젠으로 돌아갔다.
A+를 따낸 세르네가 제일 처음으로, 그 뒤를 로레인이 이었다. 아세라즈와 헥토르도 두말할 것 없이 상위권, 토토와 피츠제럴드마저 묘지에서 떠났다.
그리고.
"Finde...... die...... be......."
시몬은 완전히 목이 쉰 상태였다.
'노,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구나.'
잠시 후, 시몬과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남학생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나갔다.
어느새 묘지는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혼자 남았네."
"혼자 남았어."
두 쌍둥이 교수가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따라와."
"열등생."
"......네."
시몬은 그녀들을 따라 더 깊은 구역으로 향했다. 그녀들은 한 손에 랜턴을 하나씩 들고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지?'
여기선 안 되니까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걸까?
아니면 벌을 줄 생각인가?
뭐든 간에 이번 수업 꼴등인 시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터덜터덜 두 쌍둥이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풀로 완전히 우거진 밀집 묘지지역.
앞서갔던 곳은 관리가 미흡했어도 묘지의 위치에 질서가 있었다면, 여긴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냥 시신을 묻는 걸로도 급급했는지 무덤들이 마구잡이로 얽혀 있었다.
"교수님 여긴......."
"포기할 거야?"
쌍둥이 교수 린이 문득 그렇게 물었다. 시몬이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맞아! 포기하는 것도 학생의 권리야!"
"그냥 F를 받고 학교로 돌아갈래?"
"......."
시몬의 주먹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쉰 목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는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쌍둥이 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해, 린."
"맞아, 이상해. 룬."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개선될 수 없다는 것도, 가능성이 0%라는 것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왜 계속 도전해?"
"왜 포기 안 해?"
마치 밀어붙이는 듯 묻는 두 쌍둥이였지만, 시몬은 웃으며 대답했다.
"왜 포기해야 할지, 포기할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쌍둥이의 눈이 멍해졌다.
"오. 린의 그 말! 돌려받았어! 한 방 먹었어!"
"아니야! 사실 룬이 한 거야!"
"거짓말하지 마!"
두 쌍둥이는 잠시 투닥거리더니, 동시에 싸움을 멈추고 한 걸음 물러났다.
"이름이 뭐야?"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좋아. 가르쳐 줄게. 시몬."
"사실 네게 가르쳐 준 장송곡. 못 부르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몰라, 시몬."
"......네?"
두 쌍둥이가 손을 맞잡고 목소리를 착 깔았다.
"상어는 정어리들의 노래 따위, 배울 필요가 없지?"
"네게 어울리는 진짜를 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