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92화
쌍둥이 교수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왼쪽에 서 있는 린이 검지를 세우고 말했다.
"자, 따라 해봐.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Finde-die Die-be!"
시몬이 더듬거리며 그녀의 말대로 천천히 따라 했다.
"Fin-ded-ie D-ie-be!"
"어때, 박자가 깨지지?"
오른쪽의 룬이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번엔 이거야. Ra-v-ri-ma-đưa ra. anh!"
"Rav-rima-đưara. anh!"
시몬은 이번에도 역시나 박자를 놓치고 버벅였다.
기껏 키젠 교수 두 분이 개인레슨을 해주는 데도 실패하다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역시 난 박치인 건가?'
"그럼 더 쉬운 걸로 가볼까! 린?"
"그게 좋을 것 같아. 룬!"
두 소녀가 검지를 흔들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학교-종이- 땡. 땡. 땡. 어서- 모이자."
"???"
시몬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난이도가 너무 하락했는데?
"뭐 해! 따라 해봐!"
"아, 네."
조금 부끄러웠지만, 시몬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라 했다. 쌍둥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봐봐! 잘하잖아? 시몬!"
"뭐가 문제라고 생각해? 시몬?"
시몬이 뒷목을 긁적였다.
"방금 건 장송곡이 아니라 그냥 쉬운 노래니까요."
"그냥 노래는 잘 부르는데, 장송곡만 박자가 틀리는 이유가 뭘까? 시몬."
"왜 하필 장송곡만 박자가 어긋나는지, 생각해 본 적 없어? 시몬."
'그러고 보니.'
두 소녀가 빙글빙글 자리를 바꾸며 웃었다.
"넌 원래부터 알고 있는 거야."
"무엇이 정답인지."
"사실 Finde-die Die-be는 너처럼 Fin-ded-ie D-ie-be라고 부르는 게 맞아."
"그게 오리지널이지."
시몬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지?
"첫 소환 장송학 수업, 학생들에게 가르쳐 준 장송곡은 인간들의 노래야."
"인간의 소리로 인간이 만든 마법진을 작동하는 시스템이라 음률을 마법진에 맞춰야 하거든."
"하지만 시몬이 부르는 게 날것 그대로의 방식."
"시몬은 박치가 아니라, 진짜를 알고 있기에 다른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거야."
"그런 시몬에게 새로운 걸 알려주겠어."
두 사람은 흠흠 목을 가다듬더니 주위의 방음 결계를 펼치고는 새로운 노래를 동시에 불렀다.
[Der König von Undead fiel hier nieder――!!]
"!!"
시몬을 온몸에 소름이 쫘아악 돋는 것을 느꼈다.
"따라 해봐."
시몬은 그녀들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했다. 몇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곡.
이 곡만큼은 시몬도 무리 없이 해냈다.
"이해했지. 계속 불러."
"눈을 감고 칠흑을 일으켜서."
시몬은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Ich sclwöre bie-de Dun kelheit."
감정이 고양된다. 아까 수난을 겪은 걸 보상받듯, 거짓말처럼 노래가 잘된다.
"좋아, 잘하고 있어!"
"언데드에게 명령할 때처럼-"
"더 강하게!"
"더 의지를 담아서!"
인상을 찡그리며 노래를 외쳐가던 시몬은 가슴 아래가 울렁울렁 갑갑한 기분을 느꼈다.
"더 울리게!"
"더 높게!"
시몬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가슴 깊은 곳 갑갑한 것을 뻥 토해내는 감각으로.
[Der König von Undead fiel hier nieder――!!]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사념이 아닌, 자신의 음성으로 '절대 명령'을 발휘했다.
드르르륵.
드르륵.
시몬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이 복잡한 장소에 얽혀 있던 묘지의 석실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면서 해골과 좀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푸확!
퍽!
바닥에서 좀비의 팔들이 일어나고, 스켈레톤이 안광을 흩뿌리며 몰려들었다.
[Der König ist Zurück―!!]
한 마리.
두 마리.
수십, 아니, 수백의 묘지의 언데드들이.
시몬의 앞으로 집결했다.
"역시."
"그랬네."
쌍둥이 교수들이 손을 맞잡았다. 이곳의 모든 언데드들이 일어나, 시몬을 경배하며 무릎을 꿇었다.
"아."
시몬은 비로소 눈을 뜨고 주위에 벌어진 광경에 전율했다.
[크흐흐흐! 이거 한 방 먹었군.]
피어의 분신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프티스가 했던 말이 맞네."
"맞아 맞아."
쌍둥이 교수들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완전히 동시에 물었다.
"네가 '일곱 번째'지?"
시몬이 움찔했다.
"네프티스에게 들었어. 아기 군단장."
"너를 주시하고 있었어. 아기 군단장."
쌍둥이 교수의 안광이 번뜩였다.
"네프티스는 네가 다음 단계로 올라서길 바라고 있어."
"네프티스의 계획에 너는 가장 중요한 '키'니까."
수백의 언데드들이 망자의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두 쌍둥이 교수의 손이 올라갔다.
"우리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걸 축하해."
묘지에서 일어난 모든 망자들이 턱을 벌리며 울부짖었다.
시몬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언데드는 생과 사에 경계에 있는 존재들이고, 네크로맨서는 망자에 특수한 생명을 불어넣는 자들이다."
2학년 중급 소환학 시간.
"물론 신성연방의 프리스트들은 시체를 움직이는 기이한 꼭두각시 조종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다. 네크로맨서는 언데드들의 생전의 기술을 이용한다."
담당교수 아론이 교과서를 들고 연단을 돌아다니며 설명하고 있었다.
"잔류사념을 통제해 언데드의 생전 기술을 더 강하게 끌어내는 힘, '억념의 룬'과 기반 수식은 소환술사라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한다. 비단 스켈레톤 나이트를 쓸 때만 쓰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 다양한 바리에이션과 구조를 설명하겠다. 교과서 16페이지를 펼치도록."
학생들은 교과서를 넘기고 아론이 칠판에 쓴 내용을 필기했다.
"......."
홀로 멍해 있던 시몬은, 손가락을 딱딱 튕기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의 로레인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시몬.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시몬이 얼른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평소답지 않긴 하네."
이번에는 반대쪽 자리의 토토가 말했다.
"시몬이 아론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멍 때리는 건 처음 봐."
로레인이 미간을 좁혔다.
"......혹시 어제 장송곡을 못 불러서 상심이 컸니?"
이번엔 뒷자리에서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르네였다.
"본인이 박치라는 걸 처음 알아서 충격이 심했나 봐요~"
"그, 그런 거 아냐!"
시몬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거기 네 사람, 조용히 해라."
아론의 말에 네 사람이 다시 입을 다물고 교과서로 시선을 돌렸다.
'자꾸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르네.'
짝! 짝!
시몬은 제 뺨을 두들기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칠판의 내용을 필기하려는 그때.
-키리리!
"!"
언제 들어왔는지, 송장거미 하나가 창문을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시몬은 깜짝 놀라며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아론과 조교들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시몬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창문을 열었고, 송장거미가 열린 창문 틈으로 쪽지를 하나 토옥 시몬의 책상에 떨어뜨리고는 사라졌다.
'에르제가 보낸 서신이다! 뭔가 알아낸 건가?'
현재 에르제베트는 드레스덴 왕실 도서관에서, '칼'을 실험했던 정체불명의 집단을 조사하고 있었다.
시몬은 부시럭거리며 서류를 펼쳤다.
「사랑스러운 나의 군단장님께」
에르제가 보낸 게 확실하다! 시몬은 바짝 긴장하며 쪽지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도서관에서 편지를 쓰는 지금도, 소녀는 군단장님의 생각뿐이와요. 군단장님이 포상으로 거신 데이트 일일권을 생각하기라도 하면 소녀는 가슴이 콩닥콩닥.......」
'......이상한 소리로 보고서의 절반이나 낭비하다니.'
시몬은 바로 시선을 쭉 내려서 다음 문단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군단장님에 대한 소녀의 애정을 천만 분의 일이라도 전했다고 생각하며, 중간보고 전해드리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이 언어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사와요.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이 글자들은 언어라기보다는 고도의 암호수식이라고 생각해요.」
고도의 암호수식이라.
「혹시나 규칙성을 발견할지도 몰라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이 자료를 작성하거나 읽은 사람의 낙서를 발견했어요. 물론 이 낙서는 대륙어로 적혀 있었사와요.」
"!"
시몬이 고개를 바짝 내리며 다음 글자를 보았다.
「타라도스, 대규모 청소 필요.」
'.......'
시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타라도스는 뭐지? 사람 이름? 아니면 지명인가?
그리고 대규모 청소가 필요하다는 게 무슨 의미지?
그들이 벌인 악행을 생각했을 때, 시몬은 괜히 그 단어가 섬뜩하게 보였다.
'피어, 피어.'
시몬이 교복에 배지처럼 매달려 있던 피어의 분신을 툭툭 두들겼다.
잠시 후, 피어의 분신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크흐흐! 왜 불렀나? 소년!]
'여기 이것좀 봐주세요. 에르제의 중간보고 내용이에요.'
피어는 에르제베트의 쪽지를 다 읽어보고는 말했다.
[타라도스는 지명이다! 드레스덴 왕국에서도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지.]
'음.'
[그곳에서 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제베트가 말하기를, 낙서한 잉크의 상태를 보니 쓴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어렵게 얻어낸 중요한 단서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시몬이 팔짱을 끼며 고민하고 있는 그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아론이 수업 종료를 선언했다. 기다렸다는 듯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조용! 전달사항이 하나 있다."
아론이 쥔 분필을 칠판에 대고 슥 그었다.
"이번 주 주말에는 임무평가가 시작된다."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임무평가.
빡세기로 유명한 키젠의 커리큘럼 중에서, 임무평가는 그나마 수월한 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로크섬에서 하는 임무를 골라 학교에 머물면서 쉴 수도 있었고, 간단한 임무를 고르면 로크섬에서 벗어나 관광하는 느낌으로 힐링할 수도 있었다.
물론 시몬도 아버지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찾거나, 자금 및 새로운 언데드 확보 등으로 쏠쏠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키젠 학생으로서 외부에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시몬은 늘 임무평가 시즌을 기대해 왔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다만."
아론이 입꼬리를 올렸다.
"2학년부터는 임무평가의 룰이 조금 바뀐다."
1학년 때 시몬이 겪었던 임무평가의 의뢰서는 다음과 같다.
하얀색 의뢰서 - 로크섬 내 임무. 프리스트 충돌 가능성 없음.
파란색 의뢰서 - 암흑연합 내 임무. 프리스트 충돌 가능성 극히 낮음.
빨간색 의뢰서 - 중립지대 내 임무. 프리스트 충돌 가능성 높음.
검은색 의뢰서 - 신성연방 내 임무. 프리스트와 충돌함.
그리고 2학년 임무평가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하얀색 의뢰서는 사라진다. 2학년들은 로크섬 내부 의뢰는 맡지 않아."
학생들이 즉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최소 배점은 파란색 의뢰서부터 시작하고, 높은 점수를 받고 싶다면 빨간색 의뢰서나 검은색 의뢰서 임무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2학년 내에 반드시."
아론이 검지를 세워 1자를 만들었다.
"검은색 의뢰서 하나를 골라서 클리어해야 한다."
학생들의 입이 벌어졌다.
검은색 의뢰서는 프리스트들이 드글거리는 '신성연방' 내에 잠입해서 수행하는, 진짜 프로들의 임무였다.
"......장난 아니네."
"난 졸업하기 전까지 신성연방은 못 가볼 줄 알았어."
학생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어, 어쩌지 시몬?"
토토가 덜덜 떨며 시몬을 보았다.
"신성연방은 진짜 막 사람이 살 수 없는 생지옥이래! 강 대신 피가 흐르고! 사람 시체가 떠내려가고! 신성력에 굶주린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시몬은 쓰게 웃었다.
"뭐,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그런 무서운 곳에 우릴 보낸다니! 국경도 못 넘고 이단심문관에 잡혀 죽을 거야! 붉은 십자가에 매달릴 거라고!"
쿵! 쿵! 아론이 교탁을 두들겼다.
"정숙."
다시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우리 교수진은 '검은색 의뢰서'의 경우, 실력이 조금 더 쌓인 뒤인 2학기에 수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론은 뒷짐을 지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었다.
"내일 밤, 각 학과 기숙사 로비에 의뢰 게시판이 설치될 거다. 2학년부터는 전공생에 걸맞은 임무들도 많이 추가됐으니 확인해라. 학교 안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실전 경험을 쌓아올 수 있도록. 이상."
"수고하셨습니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시몬은 교과서를 정리하며 눈을 빛냈다.
'피어. 제가 무슨 이야기 할 줄 알죠?'
[크흐흐! 오랜만에 몸 좀 풀겠군!]
피어의 분신이 눈을 번뜩였다.
[언제든지 군단의 모든 군세가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군단장 '피온'으로서 활동할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