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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93화 (49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93화

다음 날 저녁.

소환학과 기숙사.

소환학과 2학년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로비에 몰려와 있었다.

학생들 앞에는 드디어, 기다렸던 임무평가 의뢰서가 붙은 게시판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잠깐만."

시몬도 인파 속을 빠져나와 게시판 앞에 섰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토토가 허우적대고 있자, 손을 잡고 쑤욱 끄집어내 주었다.

"고, 고마워 시몬!"

시몬은 가볍게 미소 지은 후, 다시 진지한 얼굴이 되어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아론 교수님 말대로네.'

가장 쉬운 하얀색 의뢰서가 사라졌다.

과반수가 파란색 의뢰서였고, 중립지대로 향하는 빨간색 의뢰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리고 학생들의 시선을 빼앗는 건 몇 장 없는 최고 난이도의 '검은색 의뢰서'.

바로 신성연방으로 가는 임무였다.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검은색은 진짜 수준이 다르네. 암살 의뢰도 있어."

"첩보 임무? 신성연방 주민인 척 속이고 잠입해야 한다는데?"

"네크로맨서는 무조건 들키지."

"이단심문관 처형 엔딩 확정."

시몬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웃었다.

신성연방 내 첩보 임무. 맡겨준다면 나름대로 자신 있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다.

「타라도스, 대규모 청소 필요.」

타라도스에 갈 것이다.

그곳에서 '칼'을 납치한 집단을 추적하고, 본거지가 있다면 부숴서 그를 되찾을 것이다.

아버지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모두 모으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숙적인 매그너스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칼의 남은 절반을 찾아내야 했다.

'타라도스에서 하는 의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시몬은 꼼꼼하게 게시판을 살폈다.

랭거스틴, 아르니쉬, 파로나, 호브 등 여러 영지들의 이름이 지나갔지만, 타라도스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았다.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의뢰 자체가 없었다.

"시몬! 난 이걸로 결정했어!"

토토가 파란색 의뢰서 한 장을 뽑아 들며 말했다.

"몬스터 군락 토벌!"

"오, 어려운 거 골랐네."

요인경호나 상단호위 같은 무난한 임무들도 있는데, 군락 토벌이면 제법 난이도 있는 첫 임무를 택한 거였다.

"같이 할래?"

토토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미안. 난 이미 하려는 임무를 정해놔서."

"아냐, 아냐. 그렇담 어쩔 수 없지!"

토토는 피츠제럴드를 설득하러 갔고, 시몬은 다시 자세를 잡고 진지하게 의뢰서를 훑어보았다.

'진짜 없나?'

앞부분은 다 훑은 것 같고, 이제는 의뢰서 뒤에 가려져 잘 안 보이는 의뢰서까지 끈질기게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

기어코 찾아냈다.

저 많은 의뢰서 중에 딱 한 장 있었다.

등록의뢰 : 시체분리

의뢰등급 : F

의뢰보상 : 5골드

의뢰위치 : 드레스덴 왕국, 타라도스 영지

세부내용 : 몬스터 시체 분리작업 및 용역 제공

특이사항 : 1168798164

'뭐야 이게?'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날로 먹는' 의뢰.

아무런 위험도도 없이 단순노동만 하면 되는 의뢰를 뜻했다.

하지만 이런 의뢰는 보통 하얀색 의뢰서에서나 있던 거였고, 파란색 의뢰서에 F급 등급이 매겨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시체분리라.'

시몬은 게시판에서 의뢰서를 뜯어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수많은 의뢰 중에서 유일한 타라도스 의뢰.

무엇보다, '특이사항'이 신경 쓰인다.

「특이사항 : 1168798164」

"시몬 폴렌티아."

의뢰서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이름이 불렸다.

고개를 드니, 산언덕처럼 우뚝 솟은 헥토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헥토르?"

"선배님들한테 들키기 전에 저놈 치워라."

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뒤를 가리켰다. 시몬도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카쟌!'

마투학과인 카쟌이 어슬렁거리며 기숙사에 들어와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이미 다른 학과 학생이 들어온 걸 알고는 쑥덕대고 있었다.

타 학과 학생이 기숙사에 들어오는 행위가 교칙으로 금지된 건 아니지만, 이건 학생들 간의 금기였다.

'카쟌에게 일을 부탁하긴 했는데, 기숙사에 직접 찾아올 줄은!'

일이 터지기 전에 시몬은 빠르게 카쟌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야!"

한발 늦었다.

공용부엌으로 향하던 3학년 한 명이 2학년들의 웅성거림을 듣고 버럭 소리 질렀다.

"마투학과라고? 어떤 새끼가 개념 없이......!"

"오랜만이군. 대니얼."

대뜸 튀어나오는 반말.

카쟌은 오른쪽 눈에 난 상처를 슥슥 긁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옷깃에 2학년의 붉은 마크를 붙이고 있었지만, 3학년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카, 카, 카쟌? 너, 너였어?"

"잘 있었나. 1학년 시절 같은 반이었지."

카쟌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켜보던 2학년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 같은 3학년 선배가 2학년을 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키젠의 유일한 유급생, 카쟌 에드발트.

결투평가 무패의 기록, 무자비한 성격, 그리고 1학년 시절 폭력 사태로 현 3학년 기수들 사이에서는 언급 금기 대상이다.

무엇보다 당시 같은 반이었던 몇몇 학생들에게는.

"뭔가 할 말 있나. 대니얼."

공포의 대상이었다.

카쟌의 음산한 목소리에 3학년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 아무것도 아냐!'하고 대꾸하고는 도망치듯 로비를 떠났다.

"흠."

카쟌은 눈에 난 상처를 긁었다.

"카쟌!"

그때 시몬이 얼른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밖에 나가서 이야기해요."

"알았다."

* * *

두 사람은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카쟌은 나오자마자 몇 가지 의뢰서를 시몬에게 건넸다.

"네가 부탁한 대로, 타라도스 영지로 갈 수 있는 근방 지역의 의뢰를 추려왔다."

"다행히 둘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시몬이 씩 웃으며 타라도스 영지의 의뢰서를 보였다.

"소환학과 게시판에 딱 하나 붙어 있었으니까요."

카쟌이 고개를 기울였다.

"의외로군. 타라도스는 폐쇄적이고 가난한 영지라고 들었다. 키젠에 의뢰를 맡길 자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뢰는 학생들에게 포상으로 지급하는 금액 외에도, 막대한 등록비가 들어간다. 학생이라도 일단은 키젠에 일을 맡기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봐요. 특이사항에 이상한 글자가 적혀 있어요."

"1168798164라."

카쟌은 의뢰서를 집게손가락으로 집은 다음, 머리 위로 쭉 들어 올려 그 의뢰서를 올려다보았다.

"암호다."

"네?"

카쟌은 망설임 없이 그 의뢰서를 품에 넣었다.

"내일까지는 해독해서 오겠다."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주말에 출발하니까 천천히 하셔도 되는데요."

"내일까지 해오겠다."

착각인 걸까. 카쟌은 해독할 암호를 만나서 그런지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그때.

"......."

벽 뒤에 숨어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한 학생이 있었다.

* * *

"으음, 그렇단 말이죠?"

인적이 드문 소환학과 기숙사 뒤편의 땔감 보관소.

그곳에는 세르네가 여왕님처럼 군림한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막 씻고 나온 건지, 살짝 물기 있는 상앗빛 머리카락을 끈으로 묶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앉은 건,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람이었다.

'무, 무서워!'

세르네에게 보고하러 온 파벌학생은 공포에 떨었다.

바닥에 엎드린 남학생의 뒷덜미에는 깃털이 꽂혀 있었고, 얼굴에는 '다시는 치근거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트조각이 붙어 있었다.

"이번 주말 임무평가 기간에, 시몬과 카쟌이 타라도스에 가려고 한다라~"

그녀의 혓바닥이 날름거렸다.

"왜 그런 허름한 곳에 가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몬에게 빚을 지게 해서 쿠폰 도장을 받아낼 기회일지도 모르겠네요."

"쿠폰?"

보고한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세르네."

"아, 그런 게 있어요."

세르네가 빙긋 웃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질문을 허용했던가요?"

푸욱!

파벌 학생의 뒷덜미에 깃털이 꽂혔다. 그의 눈이 흐리멍덩해지며 '우끼끼' 소리를 내며 턱을 긁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날 상대로 왜 굳이 무모한 호기심을 가지는지 모르겠네."

그녀는 동급생의 재롱에 흥겨워하면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게슴츠레 떠진 위험한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 * *

어두운 지하실.

얼굴에 그늘이 붙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빛을 직접 비춰도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조차 그녀의 맨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니르티 님."

"응."

그녀가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랭거스틴에서 빠르게 돌아오셨군요."

"실험이 제일 급하니까. 오늘 실험체들은?"

"20명 확보했습니다. 상태가 괜찮은 자들도 있습니다."

"좋아."

바로 그 실험체들로 추정되는, 하얀 환자복 차림의 비쩍 마른 사람들이 두 손이 결박된 채 걸어가고 있었다.

하나같이 눈이 초점이 없었고,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디디고 있었다.

"빨리 준비해. 어르신의 지시에 맞추려면 실험기일을 더 앞당길 필요가 있어."

"예!"

그들이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을 끌고 갔다.

얼굴에 그늘이 붙은 여자는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의 관에 든 것을 보았다.

꼬르르르륵-

흐물거리는 녹색의 생명체가 관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홀린 듯이 유리관에 손바닥을 대고 그것을 바라보는 여자의 입가에 더없이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당신이 우리 손에 떨어져서 다행이야, 에이션트 언데드. 당신의 고통 헛되지 않게 해줄게."

꾸르르륵!

그것이 분노하듯 움직였지만, 관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니르티 님!"

이번에는 중무장을 한 병사들이 그녀의 앞으로 뛰어왔다.

"또 뭐지?"

"타라도스 혁명단의 중요 멤버를 붙잡아왔습니다!"

병사들은 거친 고문의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청년을 그녀 앞에 무릎 꿇렸다.

그런데 혁명단원은 웃고 있었고, 병사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분위기를 읽은 니르티가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외부로 향하는 모든 루트를 차단했는데 어떻게 손을 쓴 건지, 아무래도 이들이 키젠에 의뢰를 한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혁명단원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키젠에?"

니르티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키젠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의 재력가가, 이런 거지놈들에게 무슨 이유로 붙은 거지?"

"그, 그게. 정식 의뢰가 아니라. 그거 있지 않습니까. 키젠 학생들에게 임무를 맡기는 그......."

"학생들?"

꺄하하하하하!

니르티가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뭐야? 고작 학생?"

그녀가 다가와 혁명단원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어처구니가 없네. 까마귀가 와도 안 될 판에, 학생들 놀이 정도로 타라도스를 해방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큭!"

"맹세할게. 이 실험이 완성될 때까지, 너희 타라도스의 사람들은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살려두지 않고 실험체로 쓸 거야."

핏발 어린 눈으로 그녀가 말했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두 동공에 아른거렸다.

"영원히, 타라도스에 빛은 찾아오지 않아."

퍼억!

그녀가 혁명단원을 내팽개친 다음 고개를 돌렸다.

"혹시 모르니 병력을 준비해. 그리고 어차피 그쪽 학생들 임무는 대충 관광하다 가는 거라며? 오면 적당히 우리 쪽까지 못 오게 그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만 내어주고 돌려보내."

"예!"

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 그 누구도 내 계획을 막을 수 없어."

* * *

"으음."

기숙사 밖에서 카쟌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몬이, 갑자기 한쪽 눈을 찡그리며 귀를 후볐다.

"왜 그러나 시몬?"

"아, 아뇨."

시몬이 손을 내리며 멋쩍게 미소 지었다.

"그냥 갑자기 귀가 가려워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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