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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95화 (49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95화

소환 재료학.

그레리온 교수 본인은 '키메라 설계론'에 가깝다고 자평한 이 수업은 뒷정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편이었다.

재료학 조교들은 오늘도 옷이 땀에 흠뻑 젖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원의 절반은 식물원에서 학생들이 파헤친 흙을 덮거나 바닥을 청소했고, 나머지 절반은 야외 테이블에서 어질러진 잔해나 쓰레기를 모아 치우고 있었다.

-시시싯!

가끔 테이블에 살아 있는 식물형 몬스터들도 있었다. 조교들은 가볍게 칠흑화염계로 불사르고는 남은 재를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워낙 일손이 많이 필요했기에, 교수인 그레리온도 기꺼이 조교들의 뒷정리를 거들어주고 있었다.

"그레리온 교수님."

그레리온이 우락부락한 양팔에 쓰레기를 짊어지고 가는 중에, 수석조교가 다가왔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래."

쿵!

쓰레기 더미에 가져온 것들을 내려놓은 그레리온이 등을 돌렸다.

그들이 향한 곳은 시몬의 테이블이었다.

"여기, 이걸 봐주십시오."

수석조교는 시몬의 화분에 심겨 있는 벌레잡이 키메라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그레리온은 즉시 선글라스를 벗고 다가갔다.

"......세겔로와 키길을 섞었군. 굳이 로이나의 화분에 심어보지 않아도 알겠어. 이 작품은 명백히 A+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교수님을 불렀습니다."

수석조교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성적은 A입니다. 굳이 더 좋은 작품을 두고 다른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죠."

"......."

그레리온이 팔짱을 끼고 턱을 짚었다.

"시몬 폴렌티아의 선택이 잘못됐다. 혹은-"

선글라스 너머 그의 눈이 예리해졌다.

"우리가 놓친 게 있다. 이거냐?"

수석조교는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레리온은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갔다.

"시몬 폴렌티아의 수행평가 작품을 가져와라!"

"예!"

조교들이 시몬의 이름표가 붙은 식물 키메라의 화분을 가져왔다. 그레리온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뿌리 뽑고는, 로이나의 화분에 심어보았다.

바로 그 키메라의 6개월 뒤의 모습을 비추는 환상이 나타났다.

6개월 뒤에도 멀쩡히 잘 살아 있는 모습이다.

"아까도 봤듯, 특별한 변화는 없군요."

수석조교가 말했다.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그것을 응시하던 그레리온이 팔을 휘저었다.

"청소를 마치고 다시 오지."

"예!"

그렇게 몇 시간 뒤, 뒷정리를 모두 마친 그들은 다시 로이나의 화분으로 돌아왔고.

"......!"

놀라운 일이 펼쳐져 있었다.

로이나의 화분에, 화려한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시몬이 만든 식물 키메라들이 주위로 확대된 것이다.

"키메라를......."

재차 선글라스를 벗는 그레레리온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식물 키메라는 두 개의 작물을 흑마법의 힘으로 덧붙이기에, 대부분의 경우 번식이 불가능하다. 운이 좋아도 두 종류 중 한쪽의 식물로만 자라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건, 시몬이 접붙인 형태의 키메라 그대로 성장했다.

'그놈......!'

그레리온의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예 새로운 종을 창조한 건가!'

아론이 웬일로 자기 제자를 호들갑을 떨며 어필한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게 아니었다.

아론은 자신에게 주의를 주러 온 거였다.

'메이지 대신 리치를 만든 놈이라더니.'

수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앞으로 너무 놀라지 말라고.

그레리온의 입에서 걸걸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석아."

"예! 교수님!"

"성적을 정정해야겠다. 소환학과에 공지하고, 학생들의 양해를 구한 뒤 시몬의 성적을 A에서 A+로 올려라."

그가 무척이나 만족할 때의 반응이었다. 그때 다른 조교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 하지만 교수님! 첫 수행평가부터 성적 정정이 들어가면 학생들의 반발은 물론, 우리 수업에 대한 의심이 강해질 겁니다."

"실수를 했음, 인정을 해야지."

그가 클클 웃으며 선글라스를 썼다.

"아주 재미있는 놈이 학과에 들어왔어."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문제의 '임무평가'가 시작되는 날이다.

시몬은 눈을 뜨자마자 피어의 유적부터 들렀다. 전투를 위한 언데드들을 초대형 아공간에 잔뜩 실었다.

피어는 그 미치광이 집단과 한번 싸워본 적이 있었고, 어쩌면 '군대'의 힘까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유적 경비는 아케뮤스에게 맡길게요."

[예! 도련님.]

아케뮤스가 정중하게 가슴에 손을 올리며 허리를 굽혔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이번 여정에는 피어, 에르제베트, 프린스, 헤르세바가 간다.

저번에 랭거스틴에서 활약했던 아케뮤스는 유적을 지키기로 했다. 물론 헤르세바의 권능인 '모래의 세계'를 쓰면 언제든지 그를 불러들일 수 있었기에 전력 외는 아니다.

부디 아케뮤스까지 모두 싸워야 할 상황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시몬은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유적에서 나섰다.

2학년 캠퍼스는 텅 비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른 새벽 텔레포트를 타고 떠났고, 시몬이 텔레포트를 타고 갈 차례는 다소 뒤에 있었다.

캠퍼스를 지나고 산언덕을 올라, 드디어 대형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모험을 앞둔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열 명이 단체로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넘어갔고, 텔레포트 관리자들이 다음으로 갈 학생들의 명단을 부르고 있었다.

"왔나."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카쟌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이런 임무엔 가급적 키젠 신분은 숨기는 게 좋으니, 모험가 복장에 깔끔한 회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시몬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도와주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카쟌!"

계속 타라도스에 관심을 가지던 카쟌도 이번 임무에 동행하기로 했다. 시몬의 원래 목표인 '에이션트 언데드, 칼의 본체 찾기'도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협력해 주기로 했다.

"카쟌이랑 함께 임무평가라니, 든든한데요!"

"그래."

카쟌이 피곤한 표정으로 목을 짚으며 말했다.

"그 암호가 생각나서 잠이 잘 안 오더군."

아무래도 그 '살려주세요.'라는 암호가, 베개에 머리만 대도 잠드는 카쟌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어, 저기 시몬이다!"

"시모온~"

"?"

갑자기 이름이 들려서 누군가 했더니,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였다.

두 소녀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메이린! 카미!"

"야, 뭐야. 너도 이제 출발하는 거야?"

두 사람 다 모험가 복장이었다.

메이린은 하늘색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묶었고, 활동성 좋은 재킷에 반바지, 검정 스타킹을 신었다. 발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임무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카미바레즈는 후드가 달린 상의를 걸치고, 챙이 높은 모자에 긴 치마를 입었다. 벌써 리폼을 해둔 듯, 상의 뒤에 드러난 날개가 파닥거리고 있다.

"근데 왜 너희들만 있어? 딕은?"

"딕은 새벽에 먼저 갔어요! 상단 관련 의뢰래요!"

"아하."

메이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하여간 남자애들 이것들아. 어떻게 우리랑 임평 한 번을 같이 안 해? 우리 걱정 안 되니? 에스코트 안 해줄 거야?"

시몬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나중에 꼭 넷이서 같이 나가자."

카미바레즈가 까치발을 들며 앙증맞은 두 날개를 파닥거렸다.

"검은 의뢰서 때 같이 하는 건 어때요?"

"괜찮네."

"응, 좋아 좋아! 나 칠흑 숨기는 거 완전 자신 있어!"

세 사람은 학생회실에서 놀던 평소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메이린이 밝게 웃으며 시몬의 뒤를 보았다.

"근데 옆에 임평 같이 가는 친구는 누구야?"

"나다."

뒤늦게 오른쪽 눈에 난 흉터를 본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카쟌 선배님."

"그냥 카쟌이라고 부르라니까. 선배님도 아니다."

카미바레즈가 방긋 웃었다.

"카쟌! 시몬을 잘 부탁드려요."

그 무뚝뚝한 카쟌도, 카미바레즈 앞에서는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보였다.

"그래, 내게 맡겨라."

그때 마침 텔레포트 관리원이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우리 차례다. 갔다 올게."

"다녀올게요 시몬! 카쟌도 무사히 돌아오세요!"

"응, 잘 다녀와."

시몬이 손을 흔들어주었고, 카쟌은 과묵하게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두 소녀들은 로브를 펼쳐서 교복 위에 걸친 다음,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해 뛰어갔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텔레포트로 이동하고, 바로 다음은 시몬과 카쟌의 차례였다.

두 사람도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올라탔다. 조금 특이한 장소라서 그런지 이 큰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탄 건 두 사람뿐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관리원의 외침과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했다.

우웅!

두 발이 두둥실 떠올랐다. 시몬은 이젠 너무나 익숙한 감각에 몸을 맡겼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

그러나 다시 두 발이 바닥에 붙으며 내려왔다.

벌써 도착했나 싶어서 주위를 한번 쭉 둘러보았지만, 경관은 바뀌지 않았다. 키젠의 텔레포트 마법진 위, 그 장소 그대로다.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관리원들이 급히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과 카쟌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시선을 교환했다.

"시작부터 조금 불안하네요. 혹시 못 가는 건 아니겠죠?"

"그렇진 않을 거다. 시간이 지체될 뿐 갈 수는 있겠지."

잠시 후 원인을 파악했는지, 관리원들은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인가요?"

"타라도스에 도착하는 마법진을 다른 학생이 먼저 사용한 것 같습니다."

키젠에서 사용하는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의 경우, 출발지와 도착지. 두 개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키젠에 파견이나 임무를 보고하면,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하수인들이 해당 지역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미, 어떤 학생이 도착지의 타라도스 마법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명단을 든 관리원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분명히 이 명단대로 학생들을 정확하게 텔레포트에 태웠는데. 왜 이런......."

시몬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카쟌이 흉터를 긁었다.

"아무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그 여자인가."

세르네 아인다르크.

그녀가 깃털로 관리원들을 조종한 뒤 기억을 지우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진짜 세르네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 키젠 학생들 중에 누가 타라도스로 간 거지? 왜?'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현재가 중요하지."

카쟌이 관리원들을 보고 말했다.

"다시 타라도스에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그쪽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제작하는 데 반나절 정도는 소모될 겁니다."

"다른 방법은?"

관리원이 서류를 펼쳤다.

"타라도스 근방에 '엡룬'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으로는 바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엡룬에서 마차를 이용하면 거리상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시몬과 카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게요."

* * *

시몬과 카쟌은 타라도스에서 가까운 이웃 영지인 '엡룬'에 무사히 도착했다.

눈을 뜨자 보인 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황야 한복판이었다. 모래바람만 요란하게 날리는 중이다.

텔레포트 마법진은 인적이 드문 곳에 설치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시몬과 카쟌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걸음을 옮겼다.

'아.'

얼마 안 가 탑 같은 건축물들이 삐쭉삐쭉 솟은 장소가 나타났다.

"건물 같은 게 보이는데, 저기가 마을이 아닐까요?"

"가보지."

타라도스에 가려면 마차를 찾아야 하고, 마차를 찾으려면 마을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황량한 길거리를 지나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일종의 유적지 같은 곳이었다.

여러 식물들이 많은 걸 보면 정원인가 싶었지만, 정원치고는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모습이다. 근처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돌탑들이 쭉 펼쳐져 있고, 특이한 양식의 건축물들도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한때는 사람이 살았겠지만 지금은 오래되어 유적지가 된 곳 같다. 연못에는 연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인기척이 없네요. 여기엔 아무도 안 사는 것 같죠?"

"그래."

카쟌은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다."

"왜요?"

"독 냄새가 난다. 인위적인 건 아니지만, 근처에 독지대가 있는 게 틀림없어."

바로 그때.

[소년!]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 꺼내라.]

"네?"

[서둘러!]

피어의 목소리가 다급했기에, 시몬은 일단 아공간에서 피어부터 꺼냈다.

망토를 휘날리는 큰 키의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쟌은 이미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을 몇 번 봤기에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여기서 느껴지는군. 따라와라!]

"?"

시몬과 카쟌은 영문을 모르고 피어의 뒤를 따랐다.

이 유적은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식물들이 모두 죽어 있고, 연못도 우중충한 오염된 색으로 변해 있었다.

"!"

쏴아아아아아아!

그 오염된 연못이 솟구쳐 오르며, 연못 밑바닥의 진흙이 공중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크흐흐!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피어가 히죽 웃었고, 시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앞을 보았다.

연못의 흐리멍덩한 진흙은, 놀랍게도 점점 얼굴의 형태를 빚어나가고 있었다.

'......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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