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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99화 (49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99화

시몬 일행은 무사히 타라도스의 할렘가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본 시몬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놀랐다.

할렘가의 사람들은 바짝 마른 좀비처럼 길가에 앉아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몸 곳곳에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는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였다.

건물은 노후 됐고, 골목은 극단적으로 비좁으며, 말라붙은 강은 쓰레기로 막혀 있다.

길거리에서는 시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파리가 들끓고 들개들이 몰려드는데 누구도 쫓아내려 하지 않는다.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도시.

그것이 타라도스의 할렘가였다.

[잠깐! 잠깐! 잠깐! 왜 이런 곳에 온 거야!]

목걸이가 흔들리며 칼의 분신이 소리쳤다.

[처음에 타라도스에 들어왔을 때보다 본체의 감각이 더 옅어진 것 같다고! 너무 멀리 온 거 아냐?]

"일단 정보를 구해야 가든가 하지."

외부와의 접촉이 끊긴 폐쇄된 영지에 들어온 이상, 정보수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만약 칼의 분신이 실시간으로 본체와 가까워진다느니, 본체와 멀어진다느니 말해준다면 쉽게 찾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 보니 그렇게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발품을 팔아서 현지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때다. 에르제베트도 흩어져 거미들과 함께 정보를 모으고 있다.

'이 마을에서 의뢰자를 만나면 좋겠는데.'

키젠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그 의뢰자.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또한 타라도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게 이번 임무평가의 '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이 이렇게 변하다니......."

타라도스가 고향이라던 마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타라도스가 전성기일 때는 수많은 모험가와 상인들이 오고 다니는 활력과 젊음의 도시였습니다. 이제는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군요."

"그 전성기 시절이."

시몬의 옆에서 걷던 카쟌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금광던전이 아직 있던 시절이겠지?"

"예, 그렇습죠."

시몬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 던전은 아직도 있나요?"

"그럴 리가요. 던전의 던전주가 죽은 이후,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고 들었습......."

타앗!

그때였다.

7~8세 정도로 보이는 꾀죄죄한 작은 소녀가 푝! 하고 튀어나오더니 마부를 밀치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부는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괜찮으세요?"

시몬이 얼른 그에게 다가왔다.

"예, 예!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카쟌이 오른쪽 흉터를 슥슥 긁으며 말을 이었다.

"소지품부터 점검해 보지."

"예?"

마부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제 몸을 더듬었다. 그러다 '아!'하고 놀란 소리를 내며 다시 마구 옷을 살피기 시작했다.

"도, 돈주머니가!"

타다다닷!

작은 소녀는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며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지간한 어른들은 벽에 껴버리고 마는 비좁은 골목길. 그녀의 체구라면 여기서도 달리는 게 가능했다.

'됐어! 됐어!'

그녀의 눈에 희망이 빛이 일렁였다.

'이 돈이라면 오빠를......!'

"안녕."

골목의 모퉁이를 돈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대뜸 나타난 푸른 머리의 소년이 쪼그려 앉은 채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도둑질은 나쁜 짓이야. 그거 돌려주지 않을래?"

'뭐야! 뭐야! 어, 어떻게 따라잡은 거야?'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나다가 뒤로 홱 등을 돌려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다. 뒤에도 한 남자가 가로막고 있던 것이었다.

"할렘가에서 소매치기를 안 만나는 게 이상하지."

몸에 흉터가 잔뜩 있는 엄청 무서운 사람이었다. 심지어 이 좁은 골목에도 무슨 뱀처럼 스르르륵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연체동물 같았다.

"자."

시몬이 손바닥을 펼쳤다.

"돌려줘."

"시, 싫어!"

그녀가 돈주머니를 품에 꼭 안고 몸을 웅크렸다. 완전한 방어태세였다. 시몬이 난감한 미소를 흘렸다.

"자, 잠깐만요!"

흐억! 헉! 허억!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뒤늦게 도착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사! 리사 맞니?"

소매치기 소녀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아, 아저씨?"

* * *

"아하하! 집이 누추해서 죄송해요! 있는 건 없지만 편히 쉬세요!"

시몬과 카쟌, 마부는 소매치기 소녀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에 들어왔다.

시몬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고?'

원래는 방이 아닌 곳을, 건물 벽을 부분적으로 드러내 억지로 만든 듯한 공간이었다.

열악하고 더러운 환경이었다. 곳곳에서 곰팡내가 났고, 바닥에 깔려 있는 얇은 요는 엉망으로 찢어져 있었다. 벽지는 너덜거렸고, 창문은 한참 전에 제 역할을 다했다.

"물이라도 드실래요?"

그녀가 낡은 컵에 물을 담아왔다. 물색이 누렇고 뭔가 이상한 게 둥둥 떠다니는 걸 본 시몬은 웃으며 사양했다.

"리사! 화장실은 어디 있니?"

마부가 볼일이 급한 듯 소리쳤다.

"집 밖으로 나가셔서 저-어기 옆으로 쭈우욱 걸으면 말라빠진 분수대가 나오는데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틀면 공용 화장실이 나와요!"

"......공용 화장실?"

"네! 이 마을 사람들은 전부 거길 쓰거든요! 운이 좋으면 세 시간만 줄 서면 쌀 수 있을 거예요! 급하시면 그냥 바닥 아무 곳에서나 싸지르고 와요!"

시몬은 쓴웃음을 흘렸다. 저 나이대의 소녀가 싸지르니 뭐니 당연한 듯이 이야기하는 게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마부가 체념한 듯 공용 화장실로 걸어갔고, 카쟌은 집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제 시몬과 소매치기 소녀만이 남겨졌다.

"마부 아저씨랑은 어떤 사이야?"

"잠깐 같은 마을에 살았어요. 아저씨 애들이랑 친했거든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넌지시 말했다.

"그 애들은 모두 죽었어요. 아줌마도요. 그 이후로 아저씨가 어디 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시몬은 땀을 삐질 흘리며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이 집에서 혼자 사는 거야?"

"오빠랑 둘이서 살아요."

그녀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병사들에게 잡혀갔지만."

"......."

무슨 말을 해도 온통 절망적인 이야기일 뿐이라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다.

아까 할렘가 길거리에, 사람들이 왜 일말의 희망도 없이 멍하니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나마 이 리사라고 불린 소매치기 소녀는 말이 잘 통하고 악착같이 살고 있었다. 이 타라도스에는 그녀가 별난 사람에 속했다.

"오빠는 왜 병사들에게 잡혀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시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외부인인 그를 경계하는 듯했지만, 시몬은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기다려 주었다.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면 안 돼요."

"약속할게."

"우리 오빠는-"

그녀의 입이 열렸다.

"밖에 도움을 구하러 갔다가 붙잡혔어요."

"밖에?"

"응. 타라도스 밖에 있는 높으신 분들에게요. 우리가 어떤 짓을 당하고 있는지 알리려고 했어요. 원래 타라도스 주민이 외부와 접촉하는 건 금지되어 있거든요."

시몬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

"나도 자세한 건 몰라요."

소녀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곧 위에서 높은 사람들이 와서 우리를 도와줄 거라고. 타라도스에 벌어지는 일들을 전 암흑연합에 알릴 거라고. 오빠가 그렇게 말했거든요."

슬슬 감이 잡힌다.

시몬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새 소녀도 마음을 열고 시몬을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녀도 무척이나 말상대가 고팠던 것 같았다.

"네 오빠는 정말 대단하다."

"당연하지! 우리 오빠는 혁명단에 스카웃 됐거든!"

혁명단의 존재.

"돈을 모았어. 계속 계속 모았대. 바깥에 도움을 구하려고."

리사가 말했다.

"다른 혁명단 아저씨들은 오빠가 혁명단을 배신했다고 말했어! 하지만 달라! 오빠는 이 혁명단도 썩었고, 이 방법밖에 없다며 모금한 돈을 들고 타라도스 밖으로 나간 거야!"

"그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

이제는 완전히 감을 잡은 시몬이 의뢰서를 꺼내 펼쳐 들었다.

"키젠에 의뢰한 걸 말하는 거야?"

그녀의 눈이 커졌다.

"키젠? 키젠? 응! 어디서 들어본 적 있어! 오빠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 들은 것 같아!"

이제 확실해졌다.

의뢰자는 타라도스 혁명단의 일원.

그리고 리사의 오빠다.

"리사."

시몬이 품에서 키젠의 표식이 그려진 학생증을 보였다.

"내가 네 오빠가 부른 그 사람이야."

* * *

잠시 후, 리사의 집에 시몬과 카쟌, 화장실을 갔던 마부와 정보를 모으러 간 에르제베트도 돌아왔다.

다소 집이 좁아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했다.

"자~ 그럼 저와 거미들이 가져온 정보들을 알려드리겠사와요!"

분홍머리 여학생으로 변신한 에르제베트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발랄한 척을 했다. 그녀의 나이를 알고 있는 시몬은 그저 웃었다.

벽 뒤에는 거미들로 천을 짜서 [혁명 대책 회의]라고 붙여놓았는데, 제법 결연한 분위기가 살아났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우리랑은 말도 안 섞어주던데. 어떻게 정보를 얻었어?"

"호호! 매력적인 여자는 사람의 경계를 푸는 많은 수단을 가진 법이와요."

"......그게 무슨 방법이지?"

할렘가에서 정보수집에 실패해 자존심이 상해 있던 카쟌이 물었다.

"예를 들면 거미줄에 묶어서 높은 곳에 매달아놓는다거나?"

에르제베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무튼 그녀가 가져온 정보를 들어보니, 타라도스는 현재 세 개의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 같았다.

가네스 길드라는 도적 떼를 총괄하는 검은 이리, 가네스.

영지 정규병을 지휘하는 영주와, 그의 부하인 철혈의 장군 아민.

그리고 세 번째.

"결사. 라고 부르는 자들이라고 하옵니다."

에르제베트가 시몬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아무래도 저 '결사'가 칼을 붙잡아 둔 그 미치광이 세력인 게 틀림없었다.

"알려진 건 아무것도 없사와요. 그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도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이 영지에 들어와 영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네요."

"수상하네."

시몬이 말했다.

"쇤네도 오가며 이름은 들어본 적 있습죠."

마부가 불쑥 끼어들었다.

"엡룬에서 마부 일을 할 때, 외부에서 이상한 물건들이 많이 유통되는 걸 봤는데 모두 그쪽에서 사들인 것 같습니다."

리사도 한마디 했다.

"오빠가 입버릇처럼 말한 거 들었어. 결사가 사태의 흑막이라고! 결사가 두 세력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그, 그래?"

대단하다.

리사의 오빠이자, 시몬의 의뢰자는 이미 진실에 도달한 것 같았다.

"응! 영지병들이 죄를 지은 주민들을 잡아가고, 도적들은 주민들을 납치해. 하지만 두 쪽 다 포로를 수용하는 시설이 없다고 했어!"

카쟌이 말을 받았다.

"그리고 사실 그 포로들을 받아서 쓰는 건 '결사'였다는 결론이군. 도적들에게 타라도스 외부에서 고아, 노숙자, 정신지체아들을 납치하라고 사주한 자들도 아마 '결사'였겠지."

"거기에 타라도스 황야에 돌아다니는 인위적인 키메라 몬스터들. 확실해요."

그자들이 바로 칼을 붙잡아 실험한 놈들이다.

지금까지 얻은 모든 단서가 하나로 통한다.

"원흉은 결사. 그들을 박살 내면 끝나옵니다. 하지만."

에르제베트가 팔을 펼쳤다.

"생각보단 쉽지 않을 것 같사와요. 그들을 잡으려면 먼저 영주와 가네스 길드를 상대해야 해요. 타라도스는 생각보다 견고해요."

그들이 취한 수법은 다음과 같다.

'결사'는 영주와 가네스 길드를 막대한 자금력으로 후원한다.

가네스 길드는 황야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해 '결사'로 보낸다. 하지만 영주병이 지키고 있는 마을과 도시는 건드리지 않는다.

영주병들은 가네스 길드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는 대신, 주민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물린다. 주민들은 상납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강도의 노동이나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주민들이 세금을 거부하면 영주병은 미련 없이 떠난다. 이후, 가네스 길드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며 주민들은 사로잡혀 '결사'로 보내진다.

도적 떼의 습격을 견디지 못한 주민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게 되고, 황야에 가득한 키메라 몬스터들에 잡아먹히거나 뒤쫓아오는 도적들에게 붙잡히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을 맞게 된다.

'악랄하네.'

시몬의 감상이었다.

영주병들과 도적들과 대립관계를 만들어놓고, 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아직도 영주병들이 도적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은 다 같은 한패다.

그들은 보여주기식의 싸움만 할 뿐, 사실 서로 제대로 부딪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 두 세력에 벗어나 자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게 '혁명단'인 것 같네요."

"맞아."

영주병들을 이곳에 주둔시키기 위한 자금을 버는 동시에, 영주병들이 떠나도 도적 떼와 싸울 수 있는 전력과 자급자족 수단을 갖추며, 최종적으로는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 타라도스를 해방시키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하지만 리사의 오빠는 '혁명단도 썩었다'고 말했다.

혁명단의 윗사람들마저 '결사'에 매수됐으리라.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두 가지 수가 있사와요."

에르제베트가 대장인 시몬을 보며 말했다.

"가네스 길드와 영주를 처치해 '결사'의 팔다리를 자른 후 안전하게 본 싸움에 들어갈지. 혹은 '결사'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전에, 기습으로 결사의 본진을 무너뜨릴지."

"......."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던 시몬이 입을 열었다.

"결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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