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00화
"임무평가의 기한은 4일이야. 우리는 벌써 하루를 썼고, 오늘 하루도 금방 저물기 시작할 거야."
시몬이 손끝을 세웠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속전속결로 '결사'를 무너뜨리고 칼과 리사의 오빠를 구해내야 해. 나중에 가네스 길드와 영주병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겨내는 수밖에 없어."
두 진형을 각개격파로 무너뜨리고 마지막에 결사로 가는 루트가 안전한 건 사실이지만, 남은 시간으론 불가능하다는 게 시몬의 판단이었다.
"역시 군...... 아니 주인님! 우리가 가진 저력이라면 능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와요."
에르제베트가 말했고, 카쟌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리사가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왜 언니는 시몬 오빠를 주인님이라고 불러요? 비슷한 나이 같은데."
"어머! 모르나 봐요? 이런 걸 '플레이'라고 하는데, 어른들이 즐기는 일종의 역할놀이......."
"애한테 참 좋은 거 가르친다!"
아무튼 결정됐다.
별로 쉬지는 못했지만, 한시가 급한 만큼 시몬 일행은 바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갑자기 결사가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할렘가 전체가 휘말릴지도 모른다.
'결사 측에서 우리가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돌파해야 해.'
시몬은 결연한 얼굴로 로브를 걸쳤다.
창가 너머로, 일말의 희망도 없이 널브러져 죽어가는 할렘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단순히 칼을 돌려받기 위해 타라도스에 왔지만, 어깨가 조금은 더 무거워졌다.
* * *
타라도스 '결사'의 비밀기지.
총책임자 니르티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키젠 학생은 아직도 못 잡았나?"
"예. 죄송합니다."
그녀가 발칵 화를 쏟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어떻게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넘어오는 순간을 노렸는데도 실패할 수 있는 거야?"
결사와 니르티는, 혁명단의 의뢰를 받은 키젠 학생이 타라도스에 넘어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보였다.
타라도스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한 키젠 측 하수인을 찾아내 감옥에 가두고, 텔레포트 마법진 근처에서 병사들을 대기시킨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넘어오는 순간, 적당히 붙잡아서 나흘 뒤에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넘어온 학생은 역으로 병사들을 쓰러트리고 도주에 성공했다.
그 학생은 마치 시선이라도 끌 듯 타라도스 전체를 헤집고 다니는 중이었다. 영지병들이 끈질기게 그녀를 뒤쫓고 있지만 아직도 잡지 못했다.
"니르티 님. 소문에 의하면, 영주 측 최강자인 '아민' 장군마저 패배했다고 합니다."
"......역시 이상해."
니르티가 턱을 괬다.
"아민을 이겼다고? 이제 막 키젠 2학년이 된 학생치고는 너무 강하잖아. 고작 5골드짜리 의뢰에 강자들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톡- 톡-
팔걸이를 손톱으로 두들기던 그녀가 미소 지었다.
"아니, 아니. 문제없어. 아무리 강해도 고작 4일 동안 그 여자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번 실험만 성공하면 키젠의 눈치를 보는 것도 끝이야."
"니르티 님!"
또 다른 결사 소속의 남자가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엡룬으로 가는 지하통로가 함락당했습니다!"
니르티가 인상을 확 구겼다.
"지하통로가? 거긴 또 왜!"
그녀의 시선이 옆 테이블에 펼쳐져 있던 타라도스의 지도로 향했다.
"그 키젠 여자애가 마지막으로 교전한 지점은 세 시간 전, 아도한 마을 근방이야.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서 지하통로까지 올 수가 있나?"
"......니르티 님."
처음 보고했던 결사의 일원이 고개를 숙였다.
"지하통로 함락은, 아무래도 그 여학생과는 별개의 일인 것 같습니다."
니르티의 안색이 굳었다.
"그럼 뭐야? 다른 키젠 녀석들이 또 있단 거야?"
"예. 그 여학생은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두는 게 목적일 뿐. 진짜 본대는 엡룬에서 지하통로를 뚫고 타라도스에 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
니트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고, 남자는 재차 고개를 숙였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그 학생들은 아마 타라도스의 사정을 알고 온 걸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내부 통제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이렇게 한 번에 무너지다니! 그 혁명단 놈......."
그녀가 빠드득 빠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니르티 님."
남자가 운을 뗐다.
"우리에겐 타라도스의 영주와, 가네스 길드의 가네스가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가진 전력과 군대는 압도적이고, 그들을 쓰러트리지 않는 한 이곳까지 도달하기는 힘들 겁니다."
"음, 그 두 사람에게 연락해. 비상사태니 전 병력을 동원하라고."
"예!"
다시 한번 긴 한숨을 내쉰 그녀가 깍지를 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맞아. 타라도스의 시스템은 견고해. 고작 성적과 돈 같은 물렁한 목적으로 남의 땅을 밟은 학생들이, 진짜 프로들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실험에 집중한다."
* * *
타라도스.
가네스 길드, 본거지 군막.
"보스! 보스!"
도적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의자에 앉아 술을 들이켜던 남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뭐냐."
"정찰 중이던 카락이 포로를 잡아 왔습니다!"
"카락이?"
검은 수염의 남자가 끌끌 웃음을 흘렸다.
"여긴 타라도스다! 이제 와서 포로를 잡은 게 뭐가 대수라고 보고하느냐."
그의 주변에 앉아서 술을 마시던 남자들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보고하러 온 도적은 마른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저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 봐.'
여기저기 퍼질러서 술자리를 즐기고 있는 건 하나같이 코어를 개방한 대장급들.
그리고 가장 오금이 저리는 건 중앙에 앉은 남자였다. 그가 바로 전쟁의 화신, 검은이리 '가네스'였다.
상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영주 측의 '아민' 장군뿐, 사실 가네스는 이미 그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아, 아무래도 보스께서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별 호들갑은. 데려와라."
잠시 후, 도적들이 포로를 데려왔다.
곳곳에서 오오~ 하는 도적들의 탄성과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벌떡벌떡 일어나는 자들도 있었고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입가를 훔치는 자들도 있었다.
금발과 백발의 중간 즈음.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일으키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녀가 두 손이 결박된 채 걸어오고 있었다.
소녀는 그들이 살아오면서 본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마치 진흙 속에 피어난 한 떨기 꽃처럼, 더럽고 지저분한 도적 떼 캠프에 올 만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흠-"
천하의 가네스도 관심이 동하는 듯 턱을 괬다. 이내 소녀가 가네스의 앞에 섰다.
"이거 이거 참."
가네스가 옆머리를 벅벅 긁었다.
"도무지 이런 곳에 오실 분이 아닌 것 같은데. 부하들의 무례에 사과하겠소."
소녀는 싱긋 웃을 뿐이었다.
가네스 앞에서도 당당히 서 있는 모습에, 몇몇 도적들은 겁을 주려는 듯 듣기 힘든 욕설과 음담패설을 쏟아냈다.
하지만 가네스는 팔을 들어 부하들을 막았다.
"여긴 무슨 일로 왔소? 뭐가 목적이지?"
"실은,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처음으로 그녀의 입이 열렸다.
좌중이 즉시 조용해졌다.
"시몬 폴렌티아라는 남자앤데, 제가 여기 온 목적이에요. 근데 타라도스는 너무 넓고, 덥고, 아무튼 귀찮아서요~ 당신 부하들을 부리면 조금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곳곳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가네스가 '조용!!'하고 육성으로 외쳤다.
"아, 그리고 이것도 좀 벗겨주시면 안 될까요? 갑갑해~"
소녀가 손목을 묶은 밧줄을 보였다.
"......좋소."
"!"
도적들이 미간을 구기며 웅성댔고 가네스가 손바닥을 펼쳤다.
"원하는 대로 모두 해주겠소. 대신 이대로 우리와 싸우지 않고 물러가는 걸 약속해 주시오. 그 시몬 폴렌티아라는 자를 찾아내면 우리 쪽에서 먼저 연락하겠소."
"흐응-"
생글생글 웃고 있던 세르네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비루한 도적 따위가."
"!"
"적어도 한 놈 정도는, 사자 아가리에 머리를 밀어놓고 있다는 걸 알아챘네?"
의자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가네스의 손에는 이미 땀으로 가득 고여 있었다.
스릉!
그때 그녀를 잡아 온 카락이라는 도적이 등 뒤에서 다가오며 검을 뽑았다. 가네스 옆에 서 있던 도적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이, 이봐! 카락! 아무리 그래도 포로를 죽이면......!"
샤락-
그러나 카락은 세르네의 손목을 묶은 밧줄을 검으로 잘라냈다.
세르네가 자애롭게 웃으며 카락의 턱을 긁어주자, 그는 애완견처럼 벌러덩 누워 헥헥 대기 시작했다.
스릉! 스릉 스릉! 스릉!
그와 동시에 카락의 병사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캠프에 있던 도적들도 화들짝 놀라며 무기를 쥐고 뛰어나왔다.
"키, 카락! 배신한 거냐!"
"배신이라고?"
재롱을 떨던 카락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모실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세르네 여왕님뿐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세르네가 손가락을 따악 튕겼다.
촤아악!
퍼억!
콰직!
난데없이 캠프의 도적들이 주위의 아군을 무차별적으로 찌르고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가, 갑자기 무슨 짓......!"
"끄아아악!"
곳곳에서 선혈이 튀며 비명이 난무했다. 카락의 도적들까지 전투에 합류하며, 가네스 길드의 캠프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멍청한 카락놈.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건가."
가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펼쳤다. 칠흑이 점으로 모이더니 커다란 창으로 변모해 그의 손에 잡혔다.
가네스가 성큼성큼 세르네 쪽으로 걸어왔다.
"여왕이라고 했나. 내 제안의 어디가 부족했소?"
"응, 글쎄요. 당신의 격 자체가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그녀가 자신의 상앗빛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쳐서 휘날리게 했다.
곳곳에서 빠져나온 깃털들이 바닥에 꽂히더니, 그녀의 소환수인 '깃털병사'로 변해 일어났다.
"감히 원숭이 따위가,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제안을 해? 내가 포로로 온 시점에 바로 머리부터 박고 개처럼 빌었어야지."
"확실히, 그건 힘든 제안이군."
소녀와 도적이 동시에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이명이 검은이리라면서요?"
그녀가 깃털을 쥐며 눈을 윙크했다.
"이리가 배를 까뒤집는 꼴을 보고 싶네요."
"문답무용이오. 가겠소."
두 사람의 몸이 교차하며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 * *
같은 시각.
타라도스 영주성.
"아, 그럼 그럼!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게나! 하하하하!"
사치스러운 동물의 털로 만든 의자에 앉은 장년 남자가 방긋 방긋 웃으며 통신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통신 수정구가 꺼지기 무섭게 책상의 와인잔을 집어 던졌다.
쨍!
와인잔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지나 바닥에 떨어졌다. 붉은 내용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고, 남자의 뺨에는 긴 실선이 생기며 핏방울이 흘러나왔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겐가! 아민!"
아민이라 불린 남자는 더더욱 영주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이며 '송구합니다.'하고 말했다. 그의 상체는 붕대로 둘둘 감겨 있고, 군데군데 핏자국이 보였다.
"고작 학생 하날 막지 못하고 그런 중상까지 입어? 그러고도 자네가 타라도스 최고의 명장인가!"
"죄송합니다."
쯧쯧 혀를 차던 영주가 시가를 입에 물었다.
"결사에서 연락이 왔네. 전 병력을 동원해서 그 여학생을 찾아내라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잡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영주가 서류 하나를 집어서 아민 장군의 발밑에 집어 던졌다.
"여기 마을의 사람들, 병사들을 보내서 싸악 붙잡아오게."
할렘가를 비롯해, 타라도스 다섯 개의 마을에 결사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아민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영주님! 이곳은 많은 세금을 받고 영지병들이 안전을 약속한 마을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지."
영주가 싸늘하게 뇌까렸다.
"그 빌어 처먹을 학생 놈들이 타라도스를 제 놀이터처럼 들쑤시고 있어! 이제 학교에 돌아가면 어떻게 되겠나? 타라도스의 상황을 교수에게 보고할 테고, 나중엔 키젠 본부에서 조사를 시작하겠지!"
"......."
"증거를 싹 없애야 해. 이 다섯 마을은 혁명대가 조직된 곳이고, 키젠 놈들이 오면 좋다고 일러바치면서 증거를 내놓겠지. 그 전에 빠르게 치운다."
바닥에 내려놓은 아민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약속이 다릅니다."
"뭐라고?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아민이 고개를 척 들었다.
"분명히, 세금을 착실히 내는 마을은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건방지게 지금 누구 앞에서 소리를 높여!"
영주가 격분하며 일어나 부상을 입은 아민의 가슴을 발로 찼다. 아민이 '커헉!'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애초에 말이야! 자네가 주민들 관리만 잘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어!"
영주의 안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뭣보다 아민! 자네가 자네 봉급을 전부 털어 할렘가 마을들의 세금을 충당하고 있단 사실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
"그 개돼지 놈들이 아직 살 만하니까 혁명단 같은 걸 만들고! 살 만하니까 돈을 모아 키젠에 의뢰를 넣은 것이지! 내 말이 틀리냔 말이야!"
한바탕 크게 소리 지른 영주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민도 상체를 일으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처신 잘하란 소리일세. 지금까지 우리, 잘해왔지 않나."
영주가 다시 평온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자네의 늙은 모친과, 아이들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절대로 잊지 말게."
"......."
아민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피가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 턱밑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만 가보게."
"......예."
아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그때였다.
콰창!
창문이 박살 나며, 피투성이가 된 경비병들이 영주 집무실에 나가떨어졌다.
"뭐, 뭐야!"
영주가 화들짝 놀라며 와인을 쏟았다. 아민도 몸을 일으켰다.
쾅!
이내 집무실의 문이 박살 나며, 다리를 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당신은!"
아민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이미 한번 싸워봤던, 그리고 자신에게 부상을 입혔던 그 무지막지하게 강한 여자.
검은 머리카락 너머로 붉은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한 손에는 광채를 응집한 듯한 단검을 쥐고 있다.
거기에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검은 재킷에 회색 스커트까지. 당당히 키젠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저 녀석! 저 녀석이야! 키젠의 텔레포트로 왔다는 그 학생!"
영주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뭘 하고 있나! 아민!"
소녀가 단검을 휘리릭 돌리는 듯싶다가 허공을 휙 그었다.
끼기기기기기기긱!
집무실의 벽이 붉은 금이 드러나더니, 이내 깔끔한 단면을 보이며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천장이 사라지고 하늘이 휑하니 드러났다.
"당신이 타라도스의 영주인가요?"
흉악한 힘을 휘두르는 괴물인 것치고는, 아직 어린 소녀의 미성이 들렸다.
거의 넋을 놓고 있는 영주를 향해, 그녀는 재킷 품에서 뒤적이다가 키젠 학생증을 보였다.
"키젠 2학년 로레인 아크볼드입니다. 키젠에서 왔어요."
"물러나 주십시오."
챙!
아민이 허리의 칼집에서 단검을 꺼내 영주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키젠이라고 해도, 이건 영지의 주권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저를 먼저 상대하셔 할 겁니다."
"하, 하하! 여, 역시 아민 장군!"
영주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히죽 웃었다. 그리고 괴물 같은 소녀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들어와 주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서진 문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아민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빠아아!"
바로 영주에게 납치된 아민의 아들과 딸이었다.
그들이 울먹이며 달려와 아민의 품에 안겼고, 아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공을 흔들었다. 그 뒤에는 아민의 모친까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어, 어떻게......!"
"영지성의 가장 깊은 지하감옥에서 데려왔어요."
소녀가 고개를 들어 아민을 올려다보았다.
"키젠은 당신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민 장군."
스릉!
아민이 충혈된 눈으로 검을 고쳐 쥐더니, 즉시 영주 쪽을 향해 겨누었다. 영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핏방울이 흘렀던 아민의 턱에는, 이제는 감격의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예.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