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01화
덜컹- 덜컹-
시몬은 타라도스에 와서 원 없이 마차여행을 하고 있었다.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귀에 익어간다. 불편한 덜컹거림도, 찰랑찰랑 위태롭게 흔들리는 물잔도, 모든 게 익숙해질 즈음엔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에 가볍게 읽을 책 한 권까지 있다면 완벽하다.
"시몬. 6시 방향이다."
"네."
물론 여행이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온갖 동물을 뒤섞어 만든 외형의 키메라가 마차를 뒤쫓아 오고 있었다. 이곳 타라도스의 땅은 버려진 실험체와 키메라의 천국이다.
시몬은 그 키메라를 한번 지긋이 보았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퍼억! 퍽! 퍽!
검은 화살들이 빗줄기처럼 키메라에 쏟아진다. 몸통에 무수한 화살깃을 단 채 쩔뚝거리던 키메라는, 결국 모래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엎어지고 말았다.
-따닥!
-따다닥!
마차 위에서 스켈레톤 아처들이 환호했다.
"여, 역시 네크로맨서분들이십니다!"
앞에서 말을 몰고 있던 마부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렇게 쾌적하게 타라도스를 횡단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죠!"
"네, 키메라는 신경 쓰지 마시고 마차 운전에만 집중해 주세요."
마차 위에는 스켈레톤 아처들이 대기하고 있고, 조금 더 멀리서는 피어와 에르제베트가 마차를 뒤따라오며 키메라들을 미리미리 정리해 두고 있다.
그럭저럭 쾌적한 여행이다. 함께 가기로 한 의뢰자의 여동생 리사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고, 카쟌은 그간 얻은 정보들을 수첩에 옮겨적고 있다.
큰 전투가 일어나기 전, 잠깐의 평화.
시몬은 마차 내부의 쿠션에 몸을 기댄 채 다음 책 페이지를 넘겼다.
'술술 잘 읽혀. 벌써 여기까지 왔네.'
임무든 파견이든 낯선 곳에 왔다면, 반드시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해결책이 보인다는 게 아버지 리처드의 가르침이었다.
시몬은 가는 길에 마부에게 타라도스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마부는 차라리 이걸 보는 게 '한 방'이라며 짐칸에서 책 한 권을 꺼내주었다.
이 책은 타라도스의 황금기 시절, '전 영주'의 회고록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는 끝나고, 마침 책의 하이라이트.
금광던전이 나오는 시점이다.
'신기하네.'
타라도스에 출현한 금광던전은, 실제로 몬스터를 죽이면 '황금'이 떨어졌다고 한다.
살짝 붉은빛을 띠는 이 황금은 대륙의 어떤 보석보다 찬란한 광채를 뿜어냈으며, 심지어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와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모험가들은 그 황금을 시장에 내다 팔았고, 그것으로 깎아 만든 장신구가 고위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며 타라도스는 대 황금기를 맞이했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을 선명히 기억한다. 황금을 떨어뜨리는 던전이 있다는 소문에 수천, 수만 명의 모험가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타라도스에 몰려들었다.」
「던전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사람들이 복작였다. 나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돈을 들여 마을을 키우고 홍보했다. 마을은 몇 년 만에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던전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절망과 고통을 초래할지를.」
"으으음."
마차가 비좁은지, 누워 있던 리사가 뒤척였다. 시몬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자 이내 그녀가 시몬의 허벅지를 베고 새근새근 잠들었다.
시몬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던전의 벽면에서 태어나는데, 기이한 재생력을 가졌다. 창에 꿰뚫려도 간단하게 회복하지만, 가슴에 박힌 황금을 몸 밖으로 내보내면 파괴할 수 있다. 그것을 주워 던전 밖에서 애타게 손짓하는 상인들에게 쥐여주면, 묵직한 돈뭉치가 손에 들어온다.」
「황금에 눈이 먼 사람들은 몬스터들이 나오지 않는 던전 1층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 던전 안에서는 사람들도 몬스터처럼 상처가 빠르게 나았다. 배도 잘 고프지 않고 술을 마셔도 숙취가 없었다. 마치 시간이 고정된 것처럼.」
「사람들은 던전 1층에서 온종일 먹고 자고 마셨다. 몸이 상할 일이 없으니 마약까지 유행했다. 그들은 쾌락을 위해서 무엇이든 했고, 이 안은 인간의 추악함이 만들어낸 주지육림이 펼쳐졌다. 그렇게 던전에서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던전 중독자'라고 불렀다.」
「던전 중독자들은 절대로 던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다가 돈이 떨어지면 지하 2층으로 내려가서 던전 몬스터를 잡고, 황금을 상인들에게 건네주어 돈을 받았다. 그 돈으로 다시 술을 사고, 여자를 샀으며, 마약을 샀다.」
"인간이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리면, 비극이 찾아오게 마련이지."
옆자리의 카쟌이 불쑥 말했다.
"......아하하,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요?"
"첫 장부터 쭉 따라가고 있었다."
카쟌이 눈에 난 흉터를 긁적였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건 전투만큼이나 중요하지."
"저희 아버지랑 비슷한 말씀을 하시네요."
시몬이 웃으며 다시 책을 보았다.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 라는 말부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 '던전 중독자'들은 점점 늘어났고, 역으로 던전의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던전 중독자'들은 서로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칼부림을 일으켰다. 피가 튀고 머리가 갈라져도 잠시 후 원상태로 복귀된다. '던전 중독자'들은 이제 심심풀이 놀이처럼 사람을 죽였다.」
「황금이 나오질 않으니 상인들부터 등을 돌렸다. 돈을 벌지 못하게 된 던전 중독자들은, 술도 여자도 마약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던전 밖으로 뛰쳐나와 선량한 도시 주민들의 금품과 음식을 빼앗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았다. 던전에서 사람을 가볍게 죽이던, 그 습관 그대로.」
「나는 경비병들을 보내 그들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던전 중독자들은 아무리 베어도 죽지 않았다. 상처가 재생되고 끝없이 부활했다. 그렇다. 어느새 그들은, 던전의 '몬스터'가 되어 있었다.」
시몬은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이 몬스터가 되다니, 이게 진짜로 있었던 일일까요?"
"예, 그렇습죠."
마차를 몰던 마부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쇤네가 5살인가 6살 정도일 때, 아버지가 '던전 중독자'였습니다. 집에 돌아오지도 않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늘 한숨을 푹푹 쉬셨죠."
"아......."
"이제 곧 문제의 사태가 벌어지겠군요."
카쟌도 재촉하듯 말했다.
"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라, 시몬."
"아, 옙."
「도시는 불타고 파괴되었다. 대영주들은 저 불사의 던전 중독자들이 자신의 영지까지 들어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왕국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번 사태를 해결하라는 칙서를 보내왔다. 실패하면 타라도스를 폐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실력 있는 모험가들을 고용했다. 단 한 번도 던전 공략에 실패한 적 없다는,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명의 모험가들이다. 이제 내게 남아 있는 수는 이것뿐이다. 그들은 금광던전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던전주를 죽이고 던전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다.」
글을 써내려가는 영주의 정신상태가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시몬은 긴장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해냈다! 모험가들. 아니, 우리의 영웅들이 던전주를 죽였다! 던전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던전 안팎에 있던 중독자들도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위대한 모험가들이 타라도스를 구원한 것이다!」
영주의 일기에서 강한 기쁨이 느껴진다.
하지만.
영주의 심정이 바뀌는 건 고작 한 페이지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악몽 같다. 나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을 차린 '던전 중독자'들은 자신들을 구해낸 영웅들에게 분노했고, 왜 우리의 낙원을 파괴했냐며 따졌다. 그들은 부상을 입은 영웅들을 칼로 무참히 난도질해 죽이고, 시체를 욕보였다. 그중 한 명은 살아남았다는 소문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
「영주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인간의 추악함에 짙은 좌절과 염세를 느꼈다. 이것이 정녕 인간인가.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이끌 수 없다. 랭거스틴으로부터 새로운 영주가 파견되어 올 것이다. 그에게 행운이 있기를.」
회고록은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
시몬은 눈을 감으며 책을 덮었다. 대륙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놀라움과 함께, 뒤숭숭한 감정이 들었다.
"마부 아저씨."
"예."
"이 뒤로는 어떻게 됐나요?"
마부가 쓰게 웃었다.
"던전에서 어떤 노력도 없이 쾌락만을 맛보며 살던 중독자들이, 던전이 사라진 뒤에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둘씩 굶어 죽었습죠."
"......."
"금광던전의 활성화로 다른 지방에 비해 3~4배는 높은 물가를 유지하던 타라도스의 경제도 박살이 났습니다. 특히 던전이 파괴되면서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쓰던 광석들이 모두 빛이 바래 볼품없는 돌멩이로 변했고, 타라도스는 그 대가를 고스란히 치러야 했습죠. 자본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갱단들이 들이닥쳐 값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뜯어갔습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라도스의 인프라가 던전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였다면, 갑자기 체제를 바꾸고 거기에 사람들을 적응시키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그렇게 지금의 가난한 영지가 됐을 테고, 왕국의 명으로 타라도스에 들어온 새 영주는 주민들을 탄압하고 착취했겠지.
그러다 신체실험을 하는 집단인 '결사'가 들어오고, 그들의 후원을 받은 가네스 길드가 타라도스에 자리를 잡으며, 모든 것은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갔으리라.
"벌써 40년도 넘게 흐른 지금, 쇤네는 윗세대에 대한 원망도 조금 있습죠."
마부가 말했다.
"철이 들려는 즈음에 그런 사태가 터지고, 어른들과 던전 중독자들의 실수를 우리 세대가 고스란히 치러야 했으니까요. 결국 저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엡룬으로 도망쳐서 일했습죠."
"......그렇군요."
카쟌이 휙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 중에 미안하지만, 도착했다."
실험 실패작인 키메라 몬스터들이 떠돌아다니는 황야를 지나, 마침내 시몬 일행이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도시였다.
집터만 남아 있을 뿐, 주위는 아무것도 없이 황량했다.
"설마."
"예, 여기가 바로 이야기에 나온 그곳입니다."
마부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광던전이 있었고, 타라도스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환락의 도시, '소고(Sogo)'입니다."
소고라는 이 도시는 정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 말 그대로 폐허였다. 집터와 기둥만 드문드문 보인다.
"정보에 따르면, 가네스 길드와 영주병들은 붙잡은 주민들을 전부 이 폐허로 옮긴다고 하더군."
카쟌이 말했다.
"이 근처에 '결사'의 본거지가 있는 걸까요? 왜 하필 이런 찜찜한 장소에......."
"타라도스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이니까. 몰래몰래 불법 신체실험을 하기엔 좋은 장소겠지. 그게 아니라면-"
카쟌이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곳을 선택해야만 했던 완전히 새로운 이유가 있다든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마차가 폐허가 된 도시를 통과하고 있는 사이.
'.......'
기둥 뒤에 숨어 있는, 부릅떠진 하얀 눈동자가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내리자, 리사."
"응!"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이곳은 '소고'에서도 한때 금광던전이 있었던 장소였다.
"여기 다시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마부가 회한에 잠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시몬이 입을 열었다.
"마부 아저씨는 어린 시절에 던전에 들어가 본 적 없어요?"
"......예, 아이들은 던전 근처도 가지 못하도록 어른들이 막았습죠. 워낙 문란하기도 하고, 칼부림도 자주 일어나던 곳이라. 중독자인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가 걸려서 쫓겨난 기억밖에 없습니다."
시몬은 한쪽 무릎을 꿇고 모래에 손바닥을 펼쳐서 대보거나 주위의 널려 있는 돌이나 기둥 잔해들을 훑어보았다.
카쟌도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미세하지만, 사람들이 오갔던 잔향이 남아 있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기둥에 모래가 쓸린 흔적이 있어요. 누군가 지나가면서 낸 흔적이에요."
그렇게 말한 시몬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정보대로, 가네스 길드와 영지병들이 이곳으로 사람을 옮겼다는 건 사실인 것 같네요."
주위의 냄새를 맡고 있던 카쟌의 표정이 일순간 심각해졌다.
"시몬."
"네, 카쟌."
"조심해라."
쏴아아아아-
쏴아아아-
유적 주위에 모래바닥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시몬이 즉시 칠흑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마부 아저씨! 리사! 마차 안으로 들어가세요!"
"아, 알겠습니다!"
마부가 리사를 데리고 급히 마차로 돌아갔고, 시몬도 마차를 보호하듯 자리를 잡았다.
쏴아아아아아-
마침내 모래가 다 솟아오르며, 온몸이 건어물처럼 바짝 말라붙은 언데드 병사들이 검과 방패를 든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쟌!"
"알겠다."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시몬은 돌진과 동시에 제일 먼저 다가오는 병사의 머리를 다리로 후려 찼다.
퍽!
병사의 머리가 가볍게 흩어졌다. 그러나.
꿀렁꿀렁-
파괴된 부위에 살점이 진흙처럼 올라오더니 얼굴이 복구되고 있었다.
몇 번을 부숴도 마찬가지였다.
'하필이면.'
시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장소에서 재생하는 불사의 병사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