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02화
쏴아아아아―
쏴아아-
언데드 병사들은 끊임없이 모래 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자, 마차 안에 들어간 마부와 리사가 공포에 떠는 모습이 보였다.
"에르제!"
퍼억!
시몬이 모래 병사의 얼굴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마차를 보호해 줘!"
[네에, 네에~]
어디선가 들려온 대답 소리와 함께 마차와 말에 거미줄이 연결되었다. 그러고는 단번에 공중으로 쭈우욱 끌어 올려지며 언데드 병사들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났다.
[이쪽은 걱정 마시와요.]
"부탁할게!"
촤악!
시몬의 옆에서 싸우는 카쟌의 공격에, 세 기의 언데드 병사들이 한 번에 찢겨 나갔다. 하지만 잘린 단면으로부터 다시 살점이 일어나고 있었다.
"번거롭군."
카쟌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재차 팔을 휘둘렀다.
"시몬, 이 재생하는 언데드들을 보니 뭔가 떠오르지 않나?"
"네."
시몬이 진중하게 표정을 굳혔다.
"금광던전 사태 때, 불사가 된 던전 중독자들."
하필이면 여기가 금광던전이 있었던 장소라 그런지, 그런 의심이 더더욱 짙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퍽!
이번엔 시몬이 '착검'으로 언데드 병사의 가슴을 갈랐다.
정말로 시간이 고정되어 있기라도 한 걸까, 아무리 베고 찢어도 언데드들은 잠시 후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수가 너무 많아!'
파괴되지 않는 것만 해도 까다로운데, 숫자도 이제 100기를 넘어가고 있었다.
-케에에에에!
내질러지는 창을 정신없이 피하던 시몬은 순간 모래에 발이 푹 잠기며 균형을 잃었다. 언데드 병사가 즉시 달려들어 시몬을 바닥에 넘어뜨렸다.
"큭!"
언데드 병사가 입을 쩍 벌리며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시몬은 침착하게 몸의 균형을 살짝 비튼 다음, 언데드 병사의 몸을 걷어차며 일어났다.
"조심해라!"
카쟌의 다급한 외침에 전신이 반응했다. 다른 언데드 병사들보다 훨씬 더 큰 중대형의 개체가 시몬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피어!"
촤라라라라락!
마치 기계가 맞물리는 마찰음과 함께, 시몬의 왼팔이 새하얀 뼈로 뒤덮였다. 시몬은 왼 주먹을 움켜쥐고, 역으로 언데드의 주먹을 향해 내질렀다.
꽝!!
두 주먹이 맞부딪히며 거대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중대형 언데드의 주먹에서부터 전신으로 금이 가더니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키이이이!
한숨 돌리겠다 싶더니 주위의 언데드 병사들이 계속 들이닥쳤다. 시몬이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었다.
"귀찮게."
차차착-
이번에는 오른발에 피어의 뼈들이 맞춰진다. 시몬이 다리를 들어 허공을 걷어차듯 뻗자, 거대한 풍압이 언데드들을 사방팔방으로 날려 보낸다.
촤라라락!
왼 다리에도 피어의 뼈가 맞춰진다. 강력해진 두 다리로 지면을 딛고 돌진하자, 언데드 병사들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며 나가떨어졌다.
적진을 거침없이 누비는 이 순간에도 시몬의 몸에는 피어의 뼈로 뒤덮이고 있었다.
흉부의 본 아머가 가슴을 단단하게 보호하고, 팔과 다리를 이어나간다. 피어의 망토는 등 뒤에 자리 잡았다.
[소년! 옆이다!]
언데드 병사들이 측면에서 도끼를 들고 돌진해 왔다. 이에 시몬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촤라라라라락!
그림처럼 맞춰지는 오른손의 본 건틀렛. 그리고 착! 하고 기분 좋게 손에 잡히는 피어의 무기, 파멸의 대검.
그것을 고쳐 쥐고는 오른 다리로 지면을 단단하게 지탱하며 허리를 비튼다. 뒤이어 시선과 대검을 쥔 두 팔이 따라오며 세상이 회전한다.
촤아아아아아악!
경로상의 모든 것을 분쇄하는 직선.
중대형 언데드의 몸이 상하체가 분리되어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다. 멀리서 쿵! 쿵! 하고 거체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아.'
시몬은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전신에 벅차오르는 이 힘.
그리고 피어의 손으로 파멸의 대검을 쥔 이 감각.
'피온이 되어 싸우는 건, 2학년 이후로 처음이네요.'
[크흐흐흐! 그렇군!]
무엇보다 피어의 사념이 다른 때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게 좋았다.
[하지만 아직 방심할 때는 아니다. 소년!]
시몬의 검격으로 반만 남은 중대형 언데드 병사들의 하체에서, 다시 살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몬은 주위의 언데드 병사들의 머리를 밟고 달려가, 그 커다란 언데드를 파멸의 대검으로 직접 베었다.
촤아아악!
칼날이 정확하게 몸을 양분한 뒤, 중대형 언데드 병사는 그대로 새까맣게 변해 바스러지듯 바닥에 내려앉았다.
'역시.'
파멸의 대검의 칼날에는 재생과 치유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다. 저 불사의 언데드들도 대검으로 직접 벤다면 완전히 없애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언데드 병사들이 계속해 올라오고 있단 점이었다.
에르제베트가 지키는 거미줄 위로도 놈들이 올라오려 했고, 카쟌은 아예 언데드 병사들에게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촤악!
촤아악!
시몬이 전장을 활보하며 파멸의 대검으로 베어 넘기는 것보다, 다음 언데드가 생성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거기에.
[소년! 10시 방향에 다수의 인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피어가 말해준 방향에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며 말을 탄 한 무리의 기병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요요요요요요요!"
검은 이리의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다.
이상한 소리까지 내며 달려오는 그들은 틀림없이 가네스 길드의 도적들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상정하던 최악의 상황.
결사와 싸우기도 바쁜데, 그들의 휘하인 가네스 길드까지 상대해야 했다.
이대로는 마차에 탄 마부와 리사는 물론 카쟌도 위험하다.
'끙!'
시몬은 언데드 병사들을 거침없이 베어 넘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네스 길드의 기마병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지근거리까지 도달했다. 말발굽 소리에 대지가 흔들리고 말의 투레질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처억!
시몬이 대검을 틀어쥐며 결연하게 앞에 섰다. 팔을 옆으로 기울이며 자세를 낮추었다.
'일단 다가오기 전에 참격으로 선두를......!'
살랑-
그때 참격을 준비하려던 시몬의 옆으로, 하얀 깃털 하나가 살랑거리며 어깨에 내려앉았다.
[안녕?]
'!'
시몬의 눈이 부릅떠지며 즉시 참격을 멈췄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이어서 수백 기의 기마병들이, 시몬을 지나쳐 언데드 병사들에게 돌진했다.
퍼억!
퍽!
이들 모두 시몬이나 카쟌은 무시하고 언데드 병사들만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 언데드 병사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빙빙 돌리던 슬링이 날아가며 언데드 병사들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 터졌다.
-푸르르륵!
말들의 거친 투레질과 발굽 소리에 귀가 터질 것 같다. 시몬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나 보고 싶었죠?]
그리고 저 기마 도적 떼에서 유일한 여성.
눈에 띄는 백마를 타고, 두 다리를 옆으로 뺀 채 도적 떼들을 이끄는 소녀가 슬쩍 눈웃음치는 모습이 보인다.
"세르네!"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왜 가네스 길드를......!"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어깨의 깃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그 길드, 제가 가지기로 했거든요.]
퍼억! 퍽!
도적 떼들이 언데드 병사들을 박살 내는 모습을 보며, 시몬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가진다고 가질 수 있는 문제냐고.'
그래도 덕분에 한숨 돌렸다.
시몬도 지면을 박차고 달려가 전투에 합류했다. 되살아나려는 언데드들을 파멸의 대검으로 갈라 재생불능으로 만들었다.
"흥~ 흐응~"
그리고 선두의 말에 올라탄 세르네는 손톱을 다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주위의 깃털들이 휘날리며 그녀 대신 싸웠고, 타고 있는 말도 뒤통수에 꽂힌 깃털로 조종하는 중이었다.
"나의 여왕이시여! 이제 막 적진을 통과했습니다!"
그녀의 충실한 노예가 된 도적대장, 카락이 말했다. 그녀는 손톱을 다듬으며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우회해서 한 번 더 가요."
"예!"
기병들이 우회해서 다음 돌진을 준비했다. 아까의 돌진으로 언데드 병사들은 절반 이상이 박살 나고 깨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가네스 길드가 재차 돌진을 감행하려는 그때.
"여, 여왕이시여! 놈들이 왔습니다!"
"?"
그들의 반대 방향에서, 노을을 등지고 한 무리의 기마 부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타라도스의 영지기가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타라도스의 영주병들입니다!"
"흐음-"
세르네는 언데드들을 잠시 내버려 두고 바로 이들부터 상대하기로 했다. 도적들의 진형을 정돈하고는, 타라도스 병사들을 향해 돌격명령을 내렸다.
도적대장 카락이 소리쳤다.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마음에 안 들던 영주병들을 쓸어버리자!"
"위대한 여왕을 위해!"
몬스터와 교배되어 탄생한 전투마들이 연신 투레질을 하며 달렸다. 타라도스 영주병들도 돌진의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두 세력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아져 갔다.
"......."
그때 세르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타라도스 영지병의 선두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징글징글하네요~"
그녀가 피식 웃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엮여야 한다니."
그렇게 중얼거린 세르네가 팔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타라도스 측도 신호기가 올라갔다.
서로 정면에서 맞붙으려던 두 세력이 동시에 말머리를 돌리더니.
쿠콰콰콰콰콰콰콰콰!
중앙의 언데드 병사들 쪽으로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퍼억!
쾅!
으적!
시몬은 얼른 옆으로 비켜났다. 두 세력의 기마병이 좌우에서 교차되며 언데드 병사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하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세르네는 그렇다 치고, 영주병들까지 시몬을 돕고 있었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타라도스의 영주병을 이끄는 건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 그리고 그 옆에 키젠 교복을 입고 있는 붉은 눈의 소녀.
틀림없었다.
'로레인!'
말에 탄 그녀가 붉게 물든 두 자루의 단검을 휘둘렀다.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언데드 병사들이 쩍쩍 갈라졌다.
세르네도 뒤처지지 않고 깃털들을 공중으로 보내더니 '다크 플레어'로 변환해 화염비를 쏟아냈다.
불사의 군대가 순식간에 진압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시몬은 피어의 갑주를 숨기고 오른손으로 파멸의 대검만 쥐었다.
"시몬! 이건 무슨 상황이지?"
카쟌이 다가와 물었다. 시몬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세르네가 가네스 길드를, 로레인이 영지병들을 접수한 것 같아요."
"......왜 그녀들이 타라도스에 온 거지?"
"이제 가서 물어봐야죠."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강력한 원군을 이끌고 나타난 두 사람이었다.
까다로운 두 세력이 아군으로 돌아섰다.
'말도 안 된다니까.'
시몬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남은 상대는 '결사'뿐이다.
* * *
콰앙!
'결사'의 타라도스 지부 총책임자, 니르티가 주먹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말이 되는 소릴 해!!"
그녀가 소리쳤다.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 가네스 길드와 타라도스 정규군이 전부 학생들 손에 넘어갔다고? 고작 학생들에게?"
"그, 그렇습니다."
결사 소속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검은 이리 가네스는 행방이 묘연하고, 아민 장군은 이미 키젠 측에 붙은 것 같다고......."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3학년도 아니고 2학년이라며?"
"그, 그렇지 않아도 방금 모든 멤버들의 인적사항이 나왔습니다."
남자가 재차 고개를 숙이며 서류를 펼쳐 들었다.
"2년간 무패기록의 카쟌 에드발트, 상아탑의 공식 후계자 세르네 아인다르크, 네프티스의 딸 로레인 아크볼드.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키젠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니르티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야 그게. 드래곤이라도 잡으러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