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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04화 (50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04화

"그렇잖아."

주위를 옅게 비추는 달빛 아래에서, 로레인이 나긋하게 웃었다.

"시몬, 너도 군단장의 힘을 학교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처지일 텐데. 순수히 네 힘만으로 키젠의 수석자리까지 따냈으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해."

시몬은 멋쩍은 듯 볼을 긁적였다.

"......고마워. 그렇지만 너랑 내 상황을 단순하게 비교하긴 어렵지 않을까? 난 군단장이 되면서 흑마법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넌 옛날부터 잘 쓰던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거니까."

"그런가?"

그녀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스윽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달 예쁘다."

"......."

시몬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로레인에겐 가혹하지만, 이번 네프티스 님의 판단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이 제약 속에서 잘 생활한다면.......'

키젠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군단장으로서의 강함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매번 느껴온 시몬은 확신했다.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고 대단한 네크로맨서가 될 거라고.

이번 2학년 생활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변곡점이리라.

"그럼 이제 일어날까."

지하수를 받고 있던 세 양동이 모두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시몬도 들고 온 양동이 하나를 오른손에 들고 두 번째 양동이에 손을 뻗었다.

착.

로레인의 하얀 손이 시몬의 손등에 닿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뗐다.

"......."

"......."

달밤 아래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로레인이 먼저 말했다.

"내가 들고 갈게."

"아, 아냐! 내가 두 개 들게!"

누가 세 번째 양동이를 들고 가느냐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결국 양동이를 가운데에 놓고 동시에 들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읏차."

소년과 소녀는 물 양동이를 들고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기분 좋은 밤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로레인이 쿡쿡 웃었다.

"우리 너무 웃긴 거 아냐? 그냥 스켈레톤에게 시키면 됐었잖아."

"네크로맨서답지 않았네."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군막에 도착했다. 이제 불을 피우고 요리를 만들려는데 주위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 있나?"

시몬이 말했다. 로레인은 바닥에 핏방울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우리 군막 쪽에서 말소리가 들려. 가보자."

* * *

시몬과 로레인이 군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세르네와 카쟌, 리사와 마부가 보였다. 그리고 낯선 인물 하나.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리사가 그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오빠! 움직이면 안 돼! 상처가 벌어진다니까!"

'오빠?'

시몬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바로.

'살려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내 의뢰자!'

남자는 위태롭게 숨을 헐떡이면서 시몬을 보았다.

"다, 당신이 시, 시몬 폴렌티아 님...... 입니까."

"네. 맞아요."

남자가 힘겹게 몸을 쭉 일으켰다.

일어나니 시몬과 키가 비슷했다. 얼굴도 앳되어 보이는 게 시몬과 거의 비슷한 또래였다.

"의뢰자님 맞으시죠?"

시몬이 의뢰서를 건넸고, 남자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런 것보다 꼭 마,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모쪼록, 타라도스...... 까지 와주셨는데...... 죄...... 송합니다."

시몬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의뢰했던 일은...... 이미 다 끝났습니다."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전 주머니를 꺼내 시몬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손때 묻은 황금 동전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이, 임무는 해결됐으니...... 이만 키젠으로......."

"......."

시몬은 주머니를 든 채 물끄러미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가쁜 숨을 헐떡이더니, 리사를 보았다.

잔뜩 걱정스러워하는 여동생의 모습. 그가 웃음 지었다.

"미안하다. 리사."

"오, 오빠?"

그렇게 사과한 남자가 다시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그러곤 성큼성큼 다가와 시몬의 옷자락을 쥐었다.

스륵.

카쟌이 손톱을 늘리고, 세르네가 깃털을 뽑아 드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눈짓으로 그들을 막았다.

이내. 남자의 입이 열렸다.

"살...... 려주십시오!"

그의 입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결사는 미친놈들입니다! 지금도 죄 없는 주민들에게 끔찍한 인체실험을 감행하고 있어요! 많은 주민들이 지하기지에 갇혀 있고 '실험'은 이제 거의 완성단계입니다! 그게 완성되면 타라도스는 물론 전 대륙이 위험해요!"

쿨럭! 쿨럭!

그의 입에서 튄 핏방울이 시몬의 얼굴에 묻었다.

"오, 오빠!"

"부디!"

그가 피를 토하면서 바닥에 주저앉더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호소했다.

"부디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 모든 원흉은 결사의 총책임자 니르티입니다! 그녀를 막아야......!"

푸하학!

결국 피를 크게 토하며 쓰러졌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쟌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저주다! 더 말하지 마라!"

동시에 밖에도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로레인이 천을 걷고 나가보자 군막 곳곳에 커다란 불이 나 있고, 정체불명의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병사들과 도적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시몬이 외쳤다.

"로레인! 세르네! 카쟌! 밖의 상황에 대처해 주세요! 특히 아민 장군과 카락 대장은 반드시 구해야 해요!"

"알았다!"

"여긴 위험해요! 마부 아저씨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세요!"

"예, 예! 부디 조심하시길!"

네 사람이 천막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제 남은 건 세 명. 의뢰자는 색색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를 붙들고 있는 리사도 울고 있었다.

"에르제."

시몬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아줘."

[네에, 분부대로~]

어디선가 에르제베트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거미줄로 군막이 휘감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오빠를 부여잡고 엉엉 통곡하고 있는 리사의 어깨를 짚었다.

"리사."

그녀가 눈물 젖은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걱정하지 마, 오빠는 내가 반드시 살릴게."

"시...... 몬......."

꾸벅.

그녀의 눈이 감기더니 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시몬은 슬립 저주로 잠든 그녀를 간이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죽어가는 리사의 오빠 앞에 다가왔다.

"잠시만 주무세요."

시몬은 여러 스택을 쌓은 슬립으로 그를 수면 마취 상태처럼 만들었다. 이후 천천히 숨을 고르며 허공에 두 손을 뻗었다.

'순수 마나 마법.'

허공에 마나가 모여들며 마법진을 그렸다.

어머니 안나가 가르쳐 준 마나로 펼치는 결계마법이다. 신성을 반드시 써야 할 때가 온다면, 이 결계를 펼치라는 조언을 들었다.

잠시 후, 마나의 막이 시몬과 의뢰자를 감쌌다.

'그 무엇도 너희들 뜻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겠어.'

시몬은 의뢰자의 상처 앞에 두 손을 모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트리거를 발동해, 네크로맨서에서 프리스트로 전환한 시몬이 손바닥에서 하얀 기적의 빛을 일으켰다.

<힐링(Healing)>

우웅!

신성이 의뢰자의 몸에 일렁였다. 시몬은 잠시 그 상태를 유지했다가 손을 뗐다.

'내부의 장기가 상했어. 단순히 외상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안 돼.'

시몬은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홀리 블레이드>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이 가르쳐준 백마법이다.

나이프의 검을 뒤덮고도 더 길게 신성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일어났다. 살을 절개하고 직접 내부에 백마법을 가해야 했다.

'파라한 교수님께 이론은 들었지만.'

신성의 칼날을 쥔 시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잘될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이 사람은 죽는다. 그간 프리스트 쪽의 공부도 착실히 해왔다.

'반드시 살리겠어!'

* * *

'결사'가 보낸 암살자들은 모두 정리되었다.

암살자들은 붙잡히는 순간, 아까 시몬에게 말했던 의뢰자처럼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었다. 입을 막기 위한 잔인한 처리방법이었다.

아민 장군은 자신을 죽이러 온 암살자들을 역으로 쓰러트렸고, 도적대장 카락 쪽도 어깨에 중상을 입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소란이 진정되자 카쟌과 로레인은 다시 시몬이 있는 천막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천막이 이질적인 거미줄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시몬!"

팟!

놀란 그녀가 이능으로 단검을 만들고 달려들려 하자, 카쟌이 팔을 들어 막았다.

"왜 그러세요? 시몬이......!"

"시몬은 무사하니 잠시 기다려라."

그렇게 얼마 기다리지 않아 천막을 둘러싼 거미줄이 흘러내리고, 그 안에서 시몬이 나타났다.

시몬의 옷은 피투성이였고, 팔에는 아까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의뢰자가 들려 있었다.

"어떻게든 조치했어."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로레인은 남자의 몸을 짚어보더니 깜짝 놀랐다. 살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흡도 안정됐고 안색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졌다.

'대단해. 맹독학 시간에서 배운 포션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치료한 거지?'

로레인이 의아한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시몬은 의뢰자 소년을 정규군의 의무실 텐트로 데려가고 있었다.

'.......'

시몬이 완전히 떠난 모습을 본 로레인은 아까 그가 있던 천막으로 들어와 보았다.

'아.'

공기가 따끔따끔했다.

그리고 아주 희미했지만 체내의 칠흑이 반발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설마 이거.......'

그녀의 시선이 얼른 시몬이 떠났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내가 착각한...... 거겠지?'

로레인은 생각했다.

어쩌면 시몬은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비밀스럽고,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 * *

이제 곧 정각이다.

시몬은 피로 끈적이는 로브를 벗고, 활동이 편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유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유적지 앞으로 카쟌, 로레인, 세르네, 그리고 아민 장군이 모였다. 도적대장 카락은 중상을 입어서 이번 전투는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 같았다.

"왜 그래?"

로레인의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시몬이 물었다.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 아무것도 아냐."

"시간이 됐군요. 이제 문을 열겠습니다."

손목시계를 보고 정각임을 알린 아민이 목에 걸린 열쇠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결사의 암살자들은 이걸 노렸던 것 같습니다."

세르네가 팔짱을 꼈다.

"근데 뭐어~ 정각이 될 때까지 기다리긴 했는데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

시몬이 진지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공간이 조금 일그러졌어."

"?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민도 손바닥으로 허공을 훑어가며 움직이다가, 이내 한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몬도 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럼 결사의 비밀기지로 향하는 문을 열겠습니다."

아민이 들어 올린 열쇠를 힘껏 허공에 박아 넣었다.

꾸우우우우웅!

마치 공간이 반응하듯, 허공에 빛이 일렁이며 투명한 유리 같은 벽면이 일어났다.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지직! 직!

열쇠를 쥔 아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공간이 열릴 듯 말 듯 스파크가 연신 튀었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영주가 가지고 있던 열쇠만으로 열 수 없는 건가."

카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스릉!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시몬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느새 그의 오른팔은 피어의 뼈로 뒤덮여 있었다.

"아민 장군님. 지금처럼 계속 열쇠로 공간을 자극해 주세요."

"아, 예!"

시몬이 천천히 자세를 다잡고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들었다. 늘 시큰둥하던 세르네가 눈을 반짝이며 허리를 쭉 기울였고 카쟌이 씩 웃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로레인이 의아한 눈으로 모두를 보았다.

'공간째로-'

시몬의 허리가 돌아가며 새하얀 파멸의 대검이 칠흑을 머금은 채 뻗어 나갔다.

'베어내는 감각!'

쩌어어어어어엉!

허공에 기다란 직선이 그어지더니, 이내 일그러진 공간이 쩍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그 안으로 새로운 공간이 드러났다.

시몬이 대검을 내리며 착 가라앉은 눈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였다.

저기가 결사의 비밀기지 내부.

그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니르티는 도망치진 않았을 것이다.

"......들어가죠."

차갑게 뇌까린 시몬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흐응-"

세르네가 즐거운 표정으로 혓바닥을 달싹였다. 로레인이 그녀를 보았다.

"굳이 저급한 수를 써서 저 사람을 화나게 만들다니~"

세르네가 검지를 휙휙 흔들었다.

"자살하는 방식도 다채롭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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