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06화
금광던전의 지하 1층.
이곳이야말로 던전 느낌이 나는 이질적인 장소였다. 지하 1층은 바닥이 아니라, 붉은 바다가 넘실거리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바다의 원래 색은 붉은색이 아니었으리라. 사람 시체가 심심치 않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실패한 실험체의 시체들을 이곳으로 가져와 버린 거겠지.'
그리고 시몬의 다음 목적지인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길은, 이 불쾌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중앙대로 끝에 있다.
중앙대로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길들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곳들에서 불사의 병사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프린스! 7시 방향에 좀비들을 보내 막아!"
[오케이!]
"에르제! 측면 다리에 거미줄로 결계를 쳐줘!"
[알겠사와요!]
싸우면 싸울수록 뒤따라오는 군단 언데드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어쩔 수 없다. 이곳은 지하 3층까지 있으니 최대한 힘을 아끼면서, 병력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싸워야 했다.
'그보다.'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여긴 공간이 어떻게 돼먹은 거야?'
위층에는 피의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의 바닷물이 저 위까지 올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공간이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던전에서 대륙의 상식과 물리법칙을 기대하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시몬, 길이 끊겼다."
카쟌의 그 말에, 시몬은 즉시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멈췄다. 그의 말대로 전방의 길이 끊겨 있었다.
'니르티의 짓이네.'
방금 막 길을 부순 듯, 파편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리고 수백 미터 너머에 대로가 다시 이어졌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몬이 있는 중앙 대로로 불사의 병사들이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이제 어쩔 거야 시몬?]
프린스가 물었다.
"하는 수 없지. 여긴 군단의 언데드들에게 맡기고, 우리끼리 빠르게 건너자."
시몬은 제일 먼저 바닥을 걷어차며 뛰어올라, 붉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파편 위에 내려앉았다.
출렁!
파편이 위태롭게 흔들리며, 시몬의 무게도 지탱하지 못하고 가라앉으려 했다. 시몬은 얼른 다음 파편으로 건너갔다.
"윽, 이거 위험한데."
[후후! 그렇게 힘들게 갈 필요가 없사와요.]
에르제베트가 천장에 연결한 거미줄을 붙잡고 날아올랐다. 이내 카쟌, 프린스도 거미줄로 연결해 띄웠고, 뒤이어 시몬도 붙잡아 공중으로 끌어 올렸다.
그녀가 앞장서고, 그녀의 거미줄에 연결된 세 사람도 매달려 이동했다.
"잘했어! 에르제!"
엄청나게 쾌적한 이동이었다. 저 멀리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이걸로 됐어! 조금만 더 가면......!'
[모두 조심해라!]
피어의 외침이 들렸다.
거미줄을 타고 이동하는 그들의 앞으로, 피의 바다가 솟구쳐 올랐다. 그 안에서 시뻘건 용암을 두른 기다란 괴물이 입을 쩍 벌리며 다가왔다.
'이런!'
에르제베트가 팔을 휙 뻗었다. 세 사람의 몸이 밀려나고, 괴물이 에르제베트만을 덮쳐 반대편 바닥에 도로 꽂아버렸다.
강 위의 파편에 착지한 시몬이 다급히 외쳤다.
"에르제!!"
[여긴 제게 맡기고 계속 가시와요!]
그녀가 거미줄로 괴물을 밀어내며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과 카쟌, 프린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다에 떠다니는 파편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달렸다.
에르제베트는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밀어낸 괴물을 보았다.
[뭐 저런 게 다 있담?]
피부에서 땀 대신 용암을 줄줄 흘리고 있는 지렁이를 연상케 하는 키메라.
자신도 용암에 피해를 받아 고통스러운지 몸을 뒤틀었지만, 던전의 재생효과로 계속 상처가 낫고 있었다.
이 금광던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불사인 만큼 영원히 고통받는 키메라였다.
[안타깝네요. 같은 언데드이기도 하니-]
에르제베트가 두 팔을 펼쳤다.
[평온한 소멸을 선물해 드리죠!]
이내 두 팔을 교차시키자, 허공에 미리 펼쳐둔 거미줄이 쫘아악 좁혀져 키메라를 붙잡았다.
그러나 몸에서 흐르는 용암이 거미줄을 녹여 버렸다. 간단히 속박에서 빠져나온 키메라가 에르제베트에게 돌진했다.
쿠우웅-!
[큭!]
키메라에 부딪힌 그녀가 다시 바닥에 꽂혔다.
키메라는 에르제베트를 계속 밀어붙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녀는 두 팔의 완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에르제베트의 거미줄은 계속해서 키메라를 휘감으려 했지만, 흐르는 용암 때문에 녹아버리고 있었다. 능력의 상성이 나빴다.
[하아.]
그녀가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싫네요.]
투두둑-
그녀의 하얀 얼굴이 깨지며, 다른 색의 살갗이 튀어나왔다.
투툭! 툭!
이내 허리의 살점이 말캉거리더니, 거미 다리가 튀어나와 바닥을 단단히 디뎠다.
순식간에 여덟 개의 다리로 바닥을 박차며 에르제베트가 완력만으로 키메라를 밀어냈다.
[잠시라도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 되는 건 질색인데.]
에르제베트는 힘으로 괴물을 들어 올려 바닥에 메다꽂았다. 용암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키메라가 괴성을 내질렀다.
본 모습으로 싸우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녀의 검푸른 거미줄이 주위를 뒤덮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소멸하기 전에 날 화나게 한 대가는 치러야겠는데요?]
* * *
에르제베트의 도움으로, 시몬 일행은 무사히 던전의 지하 2층에 도착했다.
지하 1층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라면, 이곳 지하 2층은 대규모 수용시설을 연상케 했다.
곳곳마다 감옥으로 가득했고, 언데드가 된 타라도스의 주민들이 끊임없이 열린 감옥문으로 빠져나와 시몬 일행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끝도 없네 진짜!]
프린스가 앞으로 치고 나오며 주먹을 힘껏 당겼다.
[히든카드 펀치이이!!]
투콰아아앙―!
언데드 병사들이 바람에 쓸리는 낙엽처럼 날아가 천장과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곤죽이 된 몸뚱이도 금방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회복이 더 빨라졌군."
다리가 꺾인 좀비가 바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카쟌이 혀를 내둘렀다.
"여기서 흩어지죠."
시몬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지하 2층에 '비밀 실험동'이란 곳이 있어요. 그리고 지하 3층에는 니르티의 개인 연구실이 있구요. 카쟌은 계획대로 2층으로 가서 '칼'을 찾아주세요. 프린스도 붙여드릴게요."
"알겠다."
"저는 3층으로 내려가 니르티와 승부를 내겠습니다."
프린스가 깜짝 놀라며 시몬을 보았다.
[뭐야, 피어랑 너랑 둘만으로도 괜찮아?]
"충분해. 그리고."
시몬이 오른손을 뻗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아직 한 명 더 있다는 거 잊었어?"
시몬은 즉시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지팡이'를 붙잡고 바닥을 내리쳤다.
'황금화!'
던전의 바닥이 금빛으로 물들더니 파편으로 갈라져 치솟았다. 바닥에 서 있던 불사의 병사들이 광범위 공격에 휘말려 날아갔다.
"이번 전투도 잘 부탁해! 헤르세바."
[고럼고럼! 나만 믿어! 꼬마야.]
헤르세바가 다시 한번 황금화된 바닥을 공중으로 띄워 불사의 병사들을 날려 보냈다.
"시몬, 우리도 일이 해결되면 지하 3층으로 내려가겠다."
"네! 카쟌. 조금 이따 봐요!"
카쟌과 프린스는 계속 앞으로 전진했고, 시몬은 조금 방향을 우회하여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기이이이!
-그그그그그극!
니르티의 마지막 발악일까. 감옥문에서 빠져나온 언데드 병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해보잔 거지?'
시몬은 오른손에 피어의 대검을, 왼손에는 헤르세바를 들었다.
에이션트 언데드와 그에 버금가는 언데드의 힘.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황금화!'
시몬이 헤르세바의 권능으로 바닥을 황금으로 바꾸었다.
이어서 파멸의 대검이 내려와 황금화 된 바닥을 그그극 긁으며 전진했다.
'참격!'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산더미만 한 피어의 참격이 바닥을 타고 뻗어 나갔다.
참격으로 제1타. 그 후폭풍으로 뻗어 나간 황금 파편들이 떨어지며 제2타.
순식간에 언데드 군대 사이로 길이 열렸고, 시몬은 참격이 만든 구덩이를 따라 달렸다.
'이제 다 왔어!'
저기 앞에, 마지막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 * *
"고, 고맙습니다!"
"이대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요."
던전 지상 2층.
실험체가 되기 전에 주민들이 갇히는 수용소가 바로 지상 2층에 있었다.
세르네는 깃털 병사들로 불사의 군단을 막으면서, 주민들을 던전 밖으로 피난시키고 있었다.
"자, 이쪽으로!"
"머리 숙이고 신속하게 움직이세요!"
피난민들의 안내는 깃털로 몇몇 주민들을 조종해서 하는 중이었다. 물론 세르네 본인은 뒤에서 팔짱을 낀 채 흐아아암- 하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피곤해."
던전에 왔지만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강자의 여유였다.
그녀는 눈꼬리에 맺힌 눈곱을 떼고는 재차 하품했다.
"시몬도 참, 내게 이런 잡일이나 맡기고."
"저, 저기이......."
게슴츠레 떠진 그녀의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더럽고 꼬질꼬질한 한 꼬맹이가 주춤주춤 다가왔다.
"우리 엄마 아빠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러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세르네는 물끄러미 꼬맹이를 바라보다가 귀찮다는 듯 휙휙 손짓했다.
"이, 이거."
꼬맹이가 꼬질꼬질 한 손으로 뭔가를 내밀었다.
단단히 굳어서 딱딱한 돌빵 한 쪼가리.
"언니한테 드릴게요!"
꼬맹이는 세르네의 손에 빵 조각을 쥐여주고는 힘껏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부모를 향해 달려갔다.
"......."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빵을 보았다.
정말로 돌같이 단단했다.
끝부분만 살짝 눅눅했는데, 침이 묻어 있었다. 아마도 먹기 아까워서 혓바닥으로 빵을 녹여가면서 버텼던 것 같다.
"세르네 아인다르크."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탈출하던 사람들이 그자의 모습을 보고는 하나같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뭐야."
세르네가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오늘 운이 좀 좋네. 보스가 여기 있었어요?"
결사 타라도스 지부의 총 책임자이자 수석연구원, 니르티.
얼굴은 그늘로 덮여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세르네가 깃털을 꺼내 손에 쥐었다.
"세르네 아인다르크. 18세, 키젠 2학년. 입양아 출신이지만 현 상아탑 공식 후계자."
세르네의 미간이 불쾌한 듯 구겨졌다. 니르티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어."
"나를요?"
"그래. 입양아로 시작해서 상아탑을 통째로 꿀꺽한 네 행보는 꽤 인상적이었거든. 나도 많은 영감을 받았지."
니르티가 허리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키젠에 들어간 뒤의 행보는 실망의 연속이었어."
"......."
"상아탑의 후계자가 볼모로 끌려가 키젠 교복을 몸에 걸치는 수치를 겪고서도, 너는 1년 내내 얌전히 굴었지. 내부에서 학교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녀의 혓바닥이 뱀처럼 움직였다.
"어째서일까? 키젠의 힘이 너무 강력해 자포자기한 걸까? 아니면 그 교복을 입고 키젠이 된 게 자랑스럽고 떳떳해지기라도 한 거야? 그들의 의도대로 고분고분 포로들이나 풀어주고 있는 꼴이라니!"
니르티가 호호호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딴 짓은 집어치우고, 나랑 손을 잡자."
내밀어진 손을 보는 세르네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내가 그쪽이랑요?"
"너도 여기 와서 짐작했겠지? 결사의 이번 실험의 목적이 뭔지."
"죽지 않는 불사의 병사들."
"맞아. 이 던전 안에서만 그게 가능했지만, 이제 던전 밖에서도 불사의 병사들을 운용할 수 있게 됐어."
니르티가 두 팔을 펼쳤다.
"대영주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그 불사의 병사들 말야! 제아무리 키젠이라도 죽지도 소멸하지 않는 언데드 병사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어! 너도 봤잖아?"
"으음-"
"우리는 키젠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어. 불사의 병사들의 첫 번째 목표는 키젠이야. 세르네, 네가 나를 도와준다면 더욱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지."
니르티가 히죽 웃었다.
"이 실험은 거의 완성단계야. 아주 조금의 시간만 더 있으면 돼. 약속의 날이 찾아와 상아탑과 결사가 함께 들고 일어난다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원숭이 아줌마."
세르네가 팔짱을 끼며 웃었다.
"장담컨대, 당신의 장난감으로는 키젠을 어쩔 수 없어요."
"장난감. 이라고?"
니르티가 격분했다.
"그리고 당신은 키젠 입학 이후의 내 행보가 실망스럽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반대예요."
세르네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나는 지금 이 생활이 아주아주 만족스러워요~ 키젠을 무너뜨릴 단 하나의 수. 반전은 내 옆에 있고, 나랑 가깝거든요. 내가 고른 길은 틀리지 않아요."
"......웃기지 마! 내가 만든 불사의 병사와 결사의 계획보다 더 좋은 수는 없어!"
"아뇨. 있어요."
그녀가 웃었다.
"시몬 폴렌티아. 미래의 대륙은 곧 그를 중심으로 재편될 거예요. 지긋지긋하게 살아 있는 죽음의 마녀와 그 딸로부터 시몬을 빼앗는 것만큼 키젠에 치명타는 없겠죠."
"기껏해야 그런 유망주 따위가, 나와 결사보다 더 가치 있다고?"
"물론이죠."
세르네가 손에 든 깃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게 뭔가 제의를 할 생각이라면."
퍼억!
그녀의 깃털이 니르티의 복부를 부수고 들어갔다.
"최소한 본체로 오는 게 예의 아닐까요?"
"커헉!"
니르티의 몸이 흙빛으로 변하더니 파스스 무너져 내려갔다.
"너, 후회할......!"
퍽!
구둣발로 니르티의 머리를 짓밟은 세르네는 상앗빛 머리를 찰랑이며 등을 돌렸다.
"......."
그런데 왼손에 아직 소녀가 준 딱딱한 빵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르네가 머리 뒤로 휙 던졌다.
"당신이나 먹어요."
날아간 빵은 깃털로 조종 중인 사람의 손바닥 안에 들어갔다.
그가 게걸스럽게 빵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던 세르네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사뿐하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