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07화
금광던전 지하 3층.
시몬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고 있었다.
심장이 욱신거리고,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런 그의 주위에는 재생 불능이 된 언데드 조각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체력을 나름 아끼려고 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대실패다.
닥치는 대로 다 부숴 버렸다.
이대로는 이곳의 보스인 니르티와 싸우기도 전에 지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흐흐! 불사의 언데드라, 이놈들도 그럭저럭 쓸 만한 것들을 만들어냈군!]
피어는 널브러진 언데드들을 보고 있었다. 관리자인 만큼 관심이 가는 모양.
[내가 보기엔 하찮아. 말이 불사지, 다 던전으로 만든 장난질이잖아?]
헤르세바가 헛웃음 치며 말했다. 전혀 관심은 없어 보였다.
"시간 없으니 계속 가겠습니다."
시몬은 오른손에 대검, 왼손에 헤르세바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피어가 사념을 감지하고는 말했다.
[소년! 전방에 새로운 적이다.]
시몬이 눈을 끔뻑였다. 이곳 3층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와 어둠 때문에, 저 멀리 뭐가 있는지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피어의 말이니 신뢰할 수 있었다.
[불사의 병사들. 숫자는 얼핏 봐도 수 백기다.]
'징글징글하네요.'
니르티는 방책을 이중 삼중으로 세워놓았다. 물론 피어와 군단장의 힘으로 돌파할 수는 있겠지만, 체력 소모가 너무 심했다.
[그리고, 오른쪽 길목.]
그 말에 시몬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니르티의 연구실로 향하는 중앙길 옆으로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저기서도 무수한 사념들이 느껴지는군!]
'양동 공격을 할 생각일까요?'
앞과 뒤에서 동시에 공격해 오면 귀찮아진다.
시몬은 정면에 있다는 불사의 군대는 잠시 내버려 둔 채 옆길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
끔찍한 모습을 보았다.
-키이이이이!
-기기기긱!
이미 언데드화가 진행된 주민들은 물론, 온갖 몬스터 언데드들이 뒤섞여 발버둥 치고 있었다. 통제가 안 되는 실패작들만 여기 모아놓은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존재를 보고 흥분했는지, 충혈된 눈으로 감옥의 틈에 손을 내밀며 발작하고 있었다.
'소각할 생각인가.'
시몬이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 후끈한 불길이 일어나는 소각장이 보인다.
[맘에 안 들어. 꼬마야.]
지팡이 헤르세바가 시몬의 어깨 위에 툭 올라왔다.
[나도 리치가 돼서 그런가? 언데드를 저렇게 멋대로 실험하고, 멋대로 폐기처분 해서 버리는 거. 기분 나빠.]
"......."
턱을 짚고 고민하던 시몬의 눈에 이채가 일렁였다.
"좋은 생각이 났어."
그러고는 크흠 큼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헤르세바가 표정을 굳혔다.
[또 그 이상한 노래 부르려고?]
* * *
치익- 칙-
시몬이 있는 던전 지하 3층.
가면을 쓴 '결사'의 남자들이 불사의 병사들을 데리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통신 수정구를 들고 말했다.
"니르티 님! 키젠의 네크로맨서 한 명이 3층까지 내려왔습니다."
-한 명?
"예."
-이쪽도 실험은 거의 막바지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막아.
"알겠습니다."
치익-
니르티와의 통신이 끊기자, 남자는 통신 수정구를 주머니 넣었다. 그 주위에는 마찬가지로 가면을 쓴 결사의 동료들이 열댓 명 서 있었다.
"놀랍군. 여기서 불사의 병사들로 농성하면, 최소 사흘은 버틸 줄 알았는데."
"그래도 혼자서 여길 뚫고 가는 건 불가능해."
"음, 놈은 너무 많이 서둘렀어."
저벅- 저벅-
돌바닥을 타고 울리는 걸음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왔나."
이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본 아머로 전신을 가리고 해골투구로 얼굴을 덮은 남자.
그는 하얀 대검과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결사의 일원들도 무기를 꺼내 들었고, 뒤쪽의 불사의 언데드들이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여기까지 온 용기는 가상하다만, 혼자서 우리 모두를 상대할 생각인가?"
[혼자?]
시몬의 입에서 착 깔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슨 꿈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쿵! 쿵! 쿵! 쿵! 쿵! 쿵!
방금 시몬이 냈던 발소리에 이어, 뒤쪽의 어둠 속에서 무수한 발소리가 들렸다.
'설마! 숨겨둔 병력이 있었나!'
잠시 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것들은, 감옥과 소각장에서 탈출한 천 기가 넘는 실패작 언데드들이었다.
"우, 우리 쪽 언데드들!"
[Der König ist Zurück――!!]
시몬이 대검을 세우며 돌진 명령을 내리자, 실패작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자들에게 돌진했다. 시몬도 선두에서 망토를 휘날리며 달려갔다.
"막아!"
결사의 일원들과 불사의 병사들도 전진했다. 두 군대가 길목의 중앙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 * *
쿠웅-
쿵-
콰콰콰쾅-
문밖에서 연달아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방의 내부는 고요했다.
타라도스 지부, 수석연구원 니르티의 연구실.
"이제 거의 다 됐어."
그녀의 앞에는 던전의 벽면에 고치처럼 고정된 몬스터가 있었다.
마치 던전 전체에서 양분을 받듯 신경 같은 것들이 몬스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 몬스터에 약물을 투여하고 흑마법을 걸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돼."
허공의 마법진에 표시된 수치를 본 그녀가 마침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하면 내 생애 최고의 역작이......!"
[역작?]
콰아아아앙!
문을 거칠게 발로 열어젖히며 누군가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피냄새가 물씬 풍겼다. 침입자는 본 아머로 전신을 감싸고, 얼굴도 두개골 투구로 가리고 있었다.
[당신이 니르티지?]
"......대단한데. 몇 시간 만에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열린 문 뒤로는, 남자를 막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가면 쓴 결사의 일원들과 언데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여간 쓸모없는 것들."
언데드들이 우글거리며 연구실로 뒤따라오려고 했다. 니르티가 손가락을 튕기자,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보다 넌 뭐지? 그 정도의 실력이면 학생은 아닌 것 같고. 내가 확보한 프로필에 너 같은 인물은 없었는데."
척.
시몬은 대답하지 않고 대검의 끝을 그녀 쪽으로 향했다.
[밖의 언데드들을 멈추게 해.]
"그건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야."
시몬은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두 눈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규모의 연구실. 곳곳에 실험관에 들어간 무수한 실험체 키메라들이 보인다. 다 합쳐서 100기, 아니 1,000기는 되어 보인다.
저것들 모두 불사의 속성을 입혀서 밖으로 내보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근사하지?"
그녀가 손가락을 허공에 그었다.
"원래는 여기가 던전주의 방이었어. 지금은 내 연구실이지만."
쨍!
실험관 하나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바닥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시몬의 앞으로 키메라 하나가 내려왔다.
'크다!'
시몬의 눈이 경계심으로 물들었다.
중형 몬스터였지만, 도저히 몇 개의 개체가 섞인 것인지 모를 끔찍한 키메라였다. 그리고 몸 곳곳에 박혀 있는 인간의 얼굴, 무척 고통스러운 듯한 표정이다.
"지금은 조금 바쁘니까, 나 대신 그 녀석이 상대해 줄 거야."
니르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몬스터 연구를 재개했다. 시몬이 그녀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키메라의 등 뒤에 달린 갈색 팔이 날아왔다.
부웅!
시몬이 급히 고개를 젖혀 피했다. 이번엔 초록색 오크의 팔, 다음엔 파충류의 비늘 덮인 팔이 다가왔다.
'틈이 안 보여!'
하는 수 없이 거리를 벌리자, 열 개의 팔이 동시에 손바닥에 칠흑 구체를 만들어 던졌다.
[큭!]
시몬이 파멸의 대검으로 무수히 허공을 갈랐다. 검격이 번쩍이며 칠흑 구체들이 갈라져 폭발했다.
-캬아아아아악!
-으으으으!
키메라의 몸 곳곳에 달린 얼굴들이 고통스럽게 부르짖는다. 맞지 않는 생물끼리 연결하니 언데드의 몸에 부하가 일어나고 끔찍한 종양과 암세포가 부풀고 터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순간, 소환 재료학 교수, 그레리온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가 이 수업을 '키메라 설계론'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두려워하던 학생들이 몇 명 있더군. 키메라는 금단의 연구, 혹은 끔찍한 생명경시의 학문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니 이해는 하지만, 그 반대다.
탓!
시몬이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키메라 설계는 인격형성에 도움이 된다. 배울수록 생명의 존엄함을 깨닫게 되지.
-너희들도 느끼게 될 거다. 생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떻게 적응했고, 어디가 발달했고, 어디를 퇴화시켰는지. 이 기관은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생명은 경쟁과 진화의 과정을 통해 극한까지 자신을 갈고닦게 된다!
-키메라를 설계하다 보면 그런 부분 하나하나에 감동하고 소름 끼치게 되지! 과연 내가 이미 잘 완성된 두 가지를 제대로 섞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된다!
날아오는 괴물의 팔들을 피하거나 그 위에 올라타며 요리조리 이동한다. 허공에서 칠흑을 뿜어내며 방향을 전환하고, 급제동으로 빈틈을 만든다.
-키메라는, 프리스트들이 말하는 여신의 창조설에 대한 네크로맨서들의 답이다!
[니르티!]
시몬이 바닥을 박차고 키메라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의 눈이 커졌다. '중심선'이라고 불리는 키메라의 가장 중요한 실밥이 보인다.
-키메라는 우격다짐으로 뒤섞어 강제로 성능을 끌어내는 언데드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건 키메라가 아니라.
[네가 만든 모든 것들은!]
파멸의 대검이 괴물의 실밥으로 향했다.
-잡탕일 뿐이다!
[잡탕일 뿐이야!]
쩌어어어어억!
단 일격. 괴물의 가슴에 길게 선이 그어지자, 그 안에서 장기가 쏟아지며 키메라가 넘어졌다.
크르륵!
단 일검이면 충분했다. 불사의 군단의 효과를 가지고 있어도, 재생을 막는 파멸의 대검으로 키메라의 중심선을 자르니 무력화됐다.
'감사합니다. 그레리온 교수님!'
시몬이 대검을 고쳐 쥐며 걸어갔다. 그 뒤로 쿵! 하고 거체가 쓰러져 꿈틀댔다.
"뭐야, 2109호가 벌써?"
고정된 몬스터에 주사를 꽂아 넣던 니르티가 싸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게다가 당신, 방금 뭐라고 했지? 내가 만든 키메라가 잡탕이라고?"
[그래, 네가 만들고 있는 건 키메라도 뭣도 아냐.]
시몬의 눈빛이 번뜩였다.
[타라도스에서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대답을 들어야겠어.]
"대답이라."
그녀가 연구 도구를 내팽개쳤다. 그러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벽면 몬스터의 마법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웅!
몬스터가 눈을 부릅떴다. 그와 동시에 입을 벌리며 일직선의 섬광을 내뿜었다.
"!"
시몬이 몸을 던져 피하고, 섬광이 바닥을 그었다. 바닥이 고열로 시뻘겋게 물들고 2차로 폭발했다.
"그거 알아?"
니르티가 괴물의 봉인을 풀어내며 말했다.
"이 녀석이 사실 이 '금광던전'의 던전주야. 네가 정녕 친구들과 주민들을 구하고 싶다면, 이 녀석을 쓰러트리면 되겠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시몬은 저 몬스터가 이곳의 던전주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던전의 바닥이 준동하듯 떨린다.
키이이이이이잉!
망토를 휘날리며 다음 섬광을 피한 시몬이 파멸의 대검으로 참격을 날려 보냈다. 참격이 그대로 던전주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지만.
꾸르르륵!
순식간에 살이 차올랐다.
"물론! 불사의 힘도 가지고 있지!"
던전주의 허벅지가 팽팽하게 부풀며 혈관이 드러나더니, 이내 바닥을 걷어차며 돌진했다.
"놈을 죽여! 그리고 마지막 연구를 마무리하자!"
그때 시몬의 입가가 벌어졌다.
"지금이야! 헤르세바!"
시몬의 손에서 던져진 헤르세바가 대량의 모래를 쏟아내며 돌진하는 던전주의 몸을 감쌌다.
쏴아아아아아-
<헤르세바 오리지널 - 모래의 세계>
헤르세바와 던전주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니르티가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던전 안에서 불사의 힘을 가지고 있는 던전주, 강제로 다른 공간에 이주하면 그 불사능력은 어떻게 될까?]
그 던전주로는 헤르세바와 아케뮤스를 이길 수 없다.
시몬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리고 던전주를 다른 공간으로 보낸 기술을 본 니르티는 비로소 입을 벌렸다.
"......설마. 네가 그 실라지와 혈천교를 무너뜨린 그 녀석이야?"
시몬은 대답하지 않고 거대한 칠흑을 뿜어냈다.
[지금 여기서, 완전히 끝을 보자. 니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