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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13화 (51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13화

"경기 시작!"

경기가 시작되는 즉시, 벤즈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마법진을 발동했다.

"알란드의 진가를 보여주마!"

쿠궁-!

경기장 뒤편에서 창살이 열리고, 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맹수의 눈이 번쩍였다.

타박- 타박-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그것들의 몸에는 모두 벤즈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뭐야. 이래도 돼?"

시몬이 얼빠진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렸다.

"아공간에서 언데드를 꺼내는 개념이 아니잖아."

"뭘 모르네!"

벤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알란드에서는 경기 전에 사전등록만 해두면, 경기장에 원하는 몬스터나 생물을 최대 6기까지 대기시킬 수 있어!"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홈 어드밴티지를 비롯해 온갖 자잘한 수작을 부릴 겁니다.

제인의 말대로였다. 이게 그런 뜻이었을 줄이야.

관중석에 들어찬 녹색 교복의 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말이 많다, 키젠! 잔말 말고 싸워라!"

"알란드에 왔으면 알란드의 법을 따라야지!"

"우우우우!"

곳곳에서 엄지를 내리며 야유를 쏟아냈다. 멘탈을 깎아내리기 위한 행동이란 게 뻔히 보여서 시몬은 오히려 귀엽다는 듯 편히 웃어넘겼다.

"먼저 네가 가라!"

벤즈가 팔을 세워 들었다.

"길리온!"

몸길이가 사람의 세 배는 될 것 같은 시뻘건 눈동자의 불곰이 콧김을 뿜었다. 등에 붙어 있던 마법진이 번뜩이며 작동하자, 괴성을 지르며 시몬에게 달려들었다.

'시몬! 너를 상대하기 위한 완벽한 전략을 세워놨지!'

벤즈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입가를 훔쳤다.

'스탭 원! 우선 테이밍한 몬스터들을 보내 시몬의 체력과 칠흑을 빼놓는다!'

상대는 온갖 흑마법을 다 쏟아부어 몬스터를 이겨야 하겠지만, 벤즈는 그냥 테이밍 마법을 작동시키는 정도의 칠흑만 소모된다.

물론 그것도 시몬이 길리온을 이길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부숴 버려!"

길리온이 흙바닥을 박차며 돌진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서 있던 시몬은 그저 살짝 몸을 틀어서 몬스터를 스치고 지나갔다.

"뒤쫓아! 길리온!"

그렇게 소리친 벤즈가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쿠웅-!

그냥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길리온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시몬은 태연하게 학생회장 코트를 펄럭이며 자리에 섰다.

그 모습을 본 관중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 뭔 짓을 한 거야?"

"저렇게 큰 몬스터를 일격에......!"

상대인 벤즈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십중팔구 저주 저항까지 갖춰났으니 저주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을 썼다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다. 그냥 스치기만 했는데?

"사, 상관없어! 다음은 너다!"

다음은 표범을 닮은, 이빨이 툭 튀어나온 몬스터가 시몬에게 돌진했고.

쿵-!

이번에도 역시 시몬을 어쩌지 못하고 쓰러졌다.

"?!"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벤즈가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다음! 다음!"

하지만 어떤 테이밍 몬스터를 보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몬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나비처럼 사뿐사뿐 움직였고, 그때마다 몬스터들은 픽픽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준비했던 몬스터가 전부 쓰러져 버렸다. 벤즈는 허탈한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 여섯 기 다 썼지? 이제 더 보여줄 거 없어?"

시몬이 가볍게 손을 털며 말했다.

경기장에서 지켜보던 제인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알란드의 교수는 펜스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크윽!"

벤즈가 두 팔을 쫙 펼쳤다.

"당연히 더 있지!"

그가 흑마법을 발동하는 순간, 경기장의 흙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 안에서 커다란 식물 줄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하! 쫌 치사하지만, 경기장에 테이밍 마법을 걸어둔 씨앗을 심어뒀지!'

식물 줄기들은 순식간에 시몬을 휘감아서 공중으로 띄웠다.

전세가 역전되자 알란드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잘한다! 벤즈!"

"팔도 봉쇄했어! 그대로 키젠을 쓰러트려!"

시몬은 무심한 얼굴로 자신을 묶은 식물 줄기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개문."

촤르르르륵―!

허공에 여섯 개의 아공간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기다란 칼날들이 튀어나와 시몬을 묶은 줄기들을 가볍게 잘라냈다.

"아아!"

너무나 쉽게 빠져나오자 관중들이 아쉬움에 몸부림쳤다. 시몬이 바닥에 착지해 고개를 들자, 벤즈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 기술은 시간 벌기에 불과하지! 스탭 쓰리!'

벤즈가 소환학 다음으로 자신 있는 건 마투학이었다.

허리 옆에 두 손을 모아 붙인 다음, 그 안에서 칠흑을 일점으로 모았다. 이내 시몬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멈추고, 허리에 붙인 두 손을 앞으로 강하게 내보냈다.

투콰아아아앙!

전방에 칠흑을 모아 방출하는 원거리 마투기. 이에 시몬은 그저 오른손을 주먹 쥐고 어깨까지 당겨 올렸다.

<홍펭 오리지널 - 착검>

촤아아아아아악-!

벤즈는 순간, 세상과 하늘이 반으로 갈라졌다고 생각했다.

시몬의 기술은 벤즈가 발사한 검은 파장을 반으로 찢어버리더니, 바닥에 긴 자국을 남기고 나아가 벤즈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빠직! 빠직!

입고 있던 배리어 슈트에 데미지 판정이 들어가며, 순식간에 게이지가 반 가까이 내려갔다.

'뭐야 이게.'

벤즈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뭐가 이렇게 센 거야?'

같은 2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학생회장 코트를 휘날리며 서 있는 시몬의 모습이, 갑자기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진다.

'크윽! 그보다 너무 가까이 왔어!'

벤즈가 이를 악물고 두 팔을 움직였다. 아직 남아 있던 씨앗을 발아시켜 식물줄기를 보내 다시 한번 시몬을 옥죄였다.

'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시몬은 아까처럼 기이한 소환수를 쓰지 못하고, 그대로 식물에 붙잡힌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틀림없다.

아까는 뭔가 제한시간이 있거나 소환조건이 까다로운 소환수였을 것이다.

이길 수 있다.

아직 희망이 있다!

벤즈는 이번에야말로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을 꺼냈다.

스켈레톤을 분리해 본 스피어를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

환호해야 할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우성치고 있었다.

본 스피어에 집중해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지만, 피해라. 뭐 하냐. 위험해. 그런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뭐가 위험하단 거지?

지금 시몬을 붙잡아 유리한 건 난데.

따악-!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주위가 선명해지며 시몬이 벤즈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무슨!"

포획했던 시몬이 사라져 있었다. 벤즈의 식물줄기는 그냥 허공을 옥죄고 있을 뿐이었다.

오리지널 저주, 딜루젼(Delusion).

상대에게 망상을 보여주는, 바힐의 4대 저주 중 하나였다.

"네가 마투기를 쓰려고 가까워지면."

시몬의 몸이 빙글 돌아갔다.

"너도 내 저주의 사거리에 들어와."

그의 손바닥이 벤즈의 등에 닿았다.

<시몬 오리지널 - 촉파>

터어어어엉!

벤즈의 몸이 부웅 앞으로 날아가 바닥에 엎어졌다.

"크윽!"

그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아까 시몬이 쓰러트렸던 자신의 소환수들이 주위에 있었다.

'뭐야.'

몬스터들을 보는 벤즈의 동공이 흔들렸다.

'쓰러진 게 아니라 자고 있는 거였어?'

"테이밍. 몬스터를 조종하는 대단한 흑마법인 건 인정해."

시몬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한 번에 한 마리씩밖에 조종할 수 없지?"

짝!

그렇게 말한 시몬이 손바닥을 맞부딪혀서 소리를 냈다. 여섯 마리의 몬스터들의 '슬립' 저주가 풀리고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본 건, 바로 벤즈였다.

"계속 나한테 한 마리씩만 보냈으니까."

"으, 으아아!"

퍼억!

퍽!

으저적!

벤즈가 다섯 기의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했다. 시몬은 가뿐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내렸다.

"경기 종료! 승자!"

심판이 팔을 들어 올렸다.

[시몬 폴렌티아 : 94%]

[벤즈 맥비프 : 0%]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처음부터 끝까지 시몬의 완승이었다.

* * *

"좋은 경기였습니다."

제인이 제자의 승리를 만끽하며 알란드 교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제인의 손을 맞잡았다.

"......아하하, 뭐. 역시 키젠이네요. 시몬 학생회장은 아직 힘의 절반도 쓰지 않은 것 같은데. 이것 참 부끄럽습니다."

그 말에 제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정정하시죠."

"네?"

"절반이 아니라 1/3만 쓰고 이겼습니다."

알란드 교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이 여자.'

"제인 교수님!"

그때 시몬이 활짝 웃는 얼굴로 제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제인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꾸며내며 그를 보았다.

"제가 이겼어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로 들뜰 필요는 없겠죠. 다음 네크로맨서 학교, 시에라로 넘어갈 준비를 하세요."

"예!"

알란드 교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솔직하지 않은 성격이군.'

관중석의 학생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벤즈도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알란드의 교수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저보다 성적이 더 높은 애들도 있는데, 괜히 제가 나서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교수가 벤즈의 어깨를 다독였다.

"누가 나가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넌 최선을 다했어. 상대가 너무 강했을 뿐이다."

"......."

"1년간 수고했다, 벤즈."

그러고는 벤즈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키젠은 대단한 곳이다. 더 많은 걸 배우고 오너라."

"크흡! 교수님!"

벤즈의 눈이 감격에 차올랐다.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러고는 꾸벅 허리를 굽혔다.

"교수님의 가르침! 알란드에서의 생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래. 가보거라."

3대 네크로맨서 학교에서는 매해 가장 뛰어난 세 명의 학생을 키젠에 빼앗긴다.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 결코 알란드에 남아달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그리고 알란드의 톱을 유지하는 것 보다, 키젠에 가서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게 학교의 이익과 명예에 더 도움이 된다.

세상은 가끔 잔혹하지만.

"너희라면 금방 새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 게다."

지금이든 2년 뒤든, 언젠가 학생을 떠나보내는 것.

그것이 스승의 숙명이었다.

* * *

같은 시각.

시에라 총장실.

"알란드가 무너졌다."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던 시에라의 총장이 그렇게 말했다.

"이제 곧 여기로 오겠지."

그가 고개를 돌렸다. 총장실 소파에 앉은 붉은 교복의 소년이 다리를 꼰 채 태연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컨디션은?"

"최상입니다."

"이길 수 있겠나?"

학생은 대답 대신 손바닥을 펼쳤다.

화르륵!

보통의 칠흑화염계와는 다른, 선명한 녹색 화염이 이글거리며 솟아올랐다.

"시에라의 경기장에서 싸우는 이상, 제가 질 일은 없습니다."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화염이 꺼졌다.

"근데 정말로 제가 키젠을 이겨도 되는 거겠죠? 거의 수백 년간 키젠에게 줘 터지는 게 전통이었잖아요. 그쪽에서 기분 나빠하면서 문제 삼을 일도 없고요?"

총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야 당연하지!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그가 고개를 쭉 기울였다.

"일방적인 경기를 기대하마."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었다.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키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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