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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15화 (51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15화

해발 수천 미터 위.

구름 위에 지어진 시에라의 명물, 하늘 경기장.

지면은 없다. 사람 한 명 간신히 웅크려 누울 수 있는 넓이의 암벽기둥들이 삐쭉삐쭉 솟아 있고, 시몬과 제츠가 그 기둥을 하나씩 밟고 서 있었다.

배리어 슈트를 입은 시몬은 가볍게 팔을 움직이며 몸을 풀고 있었다. 제츠는 여유만만하게 관중석 쪽으로 손을 흔들거나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

"시모온! 지지 마라!"

웬일로 상대 홈그라운드에서 응원이 들린다 싶더니, 벤즈와 알란드의 편입생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특히 벤즈는 목에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기왕 날 이겼으니, 나보다 더 빨리 시에라 놈을 잡아버려! 무슨 말인지 알지? 봐주지 말고 힘으로 콱! 찍어누르란 소리야!"

시에라 학생들이 보내는 눈총이 따가웠지만, 벤즈는 주눅 들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몬은 피식 웃으며 벤즈 쪽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살랑살랑-

그때 시몬의 옆으로 보랏빛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제인 교수님의 흑마법이다.'

나비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서 제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으세요, 학생회장. 상대는 어떻게든 이 경기장을 활용해서 이기려고 할 겁니다.]

"예, 교수님."

[발디딤대는 상대의 공격으로 금방 제거되겠죠. 그 전에 비행기술을 준비하고, 상대가 믿고 있던 지형의 이점을 역으로 활용해 허를 찌르는 전술이 유효할 겁니다.]

지형의 이점을 역이용하라.

시몬은 바로 감을 잡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언에 감사드려요!"

할 말을 마친 제인의 나비는 대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시몬은 고개를 돌려 제츠를 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시에라의 대표 제츠 시메라트 학생과,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경기의 심판이 호루라기를 들었다.

[경기 시작!]

삐이이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시몬과 제츠는 동시에 자세를 낮추며 흑마법을 준비했다.

경기장의 특징상, 바로 마투 등으로 기습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다.

양쪽 모두에게 시간이 주어지고, 상대보다 먼저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 비행수단을 갖춰야 했다.

'친위대로.'

시몬은 친위대 마법진을 준비하면서 제츠 쪽을 관찰했다. 역시나 그는 비행 흑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중에 커다란 마법진 하나를 펼쳐놓고, 그 옆에 세 개의 보조 마법진까지 띄워서 놀라운 속도로 수식을 조립하는 중이었다.

"와아아아!"

"빠르다!"

시에라 학생들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한동안 저 마법진만 죽어라 연습했겠지."

"치사해."

알란드 편입생들이 투덜거렸다.

순식간에 비행 마법진을 완성한 제츠가 그것을 등 뒤에 붙였다. 등 뒤에서 칠흑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펼쳐지더니 펄럭펄럭 위아래로 날갯짓했다.

[제츠가 먼저 떴다아!]

해설자 학생이 흥분하며 다리를 앞 의자에 올렸다.

[역시 제츠! 하늘을 장악한 네크로맨서야말로 이곳 '하늘 경기장'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이걸로 7할은 이겼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편파 해설 꺼져!"

벤즈가 항의했지만 시에라 학생들의 응원 소리에 가볍게 묻혔다.

'흠.'

시몬은 흔들림 없이 '친위대'를 준비하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제츠가 득의양양하게 두 손바닥을 펼치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손바닥에서 녹색 불꽃이 일어났다.

흔히 보던 '다크 플레어'는 아니다. 불꽃의 넘실거리는 모양과 색상을 보니 리메이크나 오리지널의 칠흑 화염계.

"시몬, 네가 무슨 마법을 준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츠가 팔을 쭉 치켜세웠다.

"차라리 포기하는 게 속 편할 거다!"

화르르르륵!

강력한 화력을 내포한 불꽃의 포탄이 날아왔다. 시몬은 100% 집중력을 쏟고 있던 친위대 마법진에서 시선을 분산한 다음, 두 발에 칠흑을 딛고 날아올랐다.

꽈아아앙!

불꽃의 포탄은 시몬이 딛고 있던 암벽기둥의 허리를 부쉈다. 기둥의 꼭대기가 기울어지더니 구름 아래로 떨어졌다.

그 전에 무사히 다음 기둥으로 넘어간 시몬이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옆에서는 해설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작하자마자 밀어붙이는 우리의 제츠! 역시 시에라 2학년 최고 화력답습니다!]

제츠의 화염포탄이 연이어 날아와 시몬이 발을 디딘 기둥을 파괴했다. 시몬은 칠흑을 밟고 재차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멀어!'

암벽기둥 간의 거리는 무작위였다. 아까는 칠흑 밟기로도 충분했지만, 이번에는 거리가 꽤 멀었다.

시몬이 검지를 뻗었다.

<클라우드>

청록빛의 선이 쭈우욱 뻗어 나가 암벽기둥의 허리에 찰싹 붙었다. 시몬이 그것을 양손으로 붙잡고 두 다리를 앞으로 세우며 날아갔다.

화르륵!

화륵!

줄을 잡고 이동하면서 뒤쫓아오는 제츠의 화염포탄들은 가뿐히 피해냈다. 곳곳에서 놀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웃차."

시몬은 안전하게 반대편 기둥까지 도달했다.

"제법인데! 언제까지 피하나 볼까!"

제츠가 재차 화염을 일으키며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이어지는 양상은 도망 다니는 시몬과, 제츠의 맹공이 반복되는 전개였다. 제츠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편입생답게 상당한 화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 키젠의 학생회장! 상위 흑마법 준비는커녕 피하기도 바빠 보입니다!]

제츠는 화염포탄으로 시몬을 공격하는 것은 물론, 암벽기둥을 파괴해 발디딤대를 줄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하지만 시몬의 회피도 기가 막혔다. 클라우드 밧줄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이곳저곳 기둥을 옮겨 다녔고, 경사진 지형도 두 발의 힘만으로 가뿐히 올라갔다.

'......괴물 같은 체력이다.'

제츠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 정도로 압박했으면 뭔가 반응이 와야 하는데, 시몬은 아직도 숨 한번 헐떡이지 않았다. 탄탄한 마투를 베이스로 안정적으로 시간을 벌고 있었다.

"제츠! 조심해!"

관중석의 외침에 제츠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클라우드를 연결해서 도망치던 시몬이 난데없이 후방에서 튀어나왔다.

'줄의 원심력으로 돌아왔......!'

시몬이 씩 웃으며 팔을 휘둘렀다.

스켈레톤으로 만든 본 스피어가 쏘아지자, 제츠가 황급히 방어 동작을 취했다.

터엉!

녹색불이 벽처럼 펼쳐지며 본 스피어를 막아냈다. 튕겨 나온 본 스피어는 다수의 뼈로 분해되더니 쏜살같이 되돌아와 시몬의 오른팔을 뒤덮었다.

<본 아머 - 핸드건 모드>

이번엔 발사대에서 뼈 탄환이 연달아 쏘아졌다. 제츠가 기민하게 위로 날아올랐고, 뼈 탄환 몇 발이 그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 와중에 반격할 생각까지 하다니!'

제츠가 입을 벌리며 웃었다.

"그렇게 나와야 재밌지! 키젠의 학생회장!"

지형과 환경에 대한 적응이 끝나자, 시몬은 이제 회피만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클라우드와 마투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암벽마다 자신의 언데드를 붙여두었다.

칠흑 날개로 전장을 활보하던 제츠는 암벽에 붙어 있던 좀비의 공격을 받거나, 다른 기둥에 올라서 있던 스켈레톤 아처의 화살을 피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니 전처럼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 없었다. 시몬의 반격이 신경 쓰여서 움직임도 신중해졌다.

'저기다!'

시몬의 등을 발견한 제츠가 화염포탄을 일으키려는 순간, 옆에서 스켈레톤 아처의 화살이 날아왔다.

'크윽!'

제츠가 간발의 차이로 목을 꺾어 피했다. 그사이 시몬은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아니, 어떻게 실수 한 번을 안 하냐!'

발 한번 잘못 내디디면, 클라우드가 흔들리면, 스켈레톤의 위치가 틀어지면.

제츠의 승리였다.

그런데 시몬은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잘해내고 있었다.

괴물 같은 집중력.

그것을 받쳐주는 탄탄한 체력.

그리고 풍부한 경험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묘기였다.

일방적일 줄 알았던 경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허허! 제인 교수님의 말씀이 허언이 아니었군요."

경기장의 VIP석에서는 시에라의 총장과 제인이 나란히 서서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시에라의 총장이 턱의 수염을 쓸었다.

"안전하게 3학년을 데려오실 줄 알았는데, 2학년 학생회장으로 밀고 들어온 이유가 있었습니다그려."

제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내기. 잊으시진 않았겠죠?"

"물론입니다!"

시에라 총장의 얼굴에는 아직 여유가 묻어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쪽의 유리해지리라 생각하시겠지만, 제츠의 뒷심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 * *

'이 자식,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제츠는 칠흑 날개를 퍼덕이며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시몬은 기둥 뒤의 사각지대에 몸을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위에서 내려다봐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판단을 내린 제츠가 더 높은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순간.

스릉!

에메랄드빛 섬광이 혜성처럼 휘어져 다가왔다.

'빨라!'

제츠가 급히 화염을 방패처럼 펼쳤으나, 청록빛의 검광이 깨끗하게 그어버렸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건 망토를 휘날리는 스켈레톤이었다.

파지직!

스켈레톤이 제츠를 검격으로 강타하고 지나갔다. 녹색이었던 배리어 게이지가 주황색으로 깜빡이며 순식간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버렸다.

'하늘을 나는 스켈레톤?'

제츠가 급히 고도를 높이자, 기다렸다는 듯 여섯 개의 에메랄드빛 혜성이 뒤따라왔다. 전부 스켈레톤이었다.

"제기랄!"

제츠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아껴뒀던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전신에서 화염이 원형으로 퍼져나가 공세를 튕겨냈다.

"제츠! 조심해!"

"제츠으으으!"

관중들이 떠들지 않아도,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비행모드>

시몬이 저 번쩍번쩍한 청록색 스켈레톤으로 만든 본 아머를 입고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한계까지 가속한 돌진.

화염방패로는 못 막는다. 제츠가 급히 허리에 맨 검을 꺼냈다.

까아아아아앙!

청록빛과 하얀빛이 부딪히며 거센 풍압을 일으켰다. 관중석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낮췄다.

카가가가각!

서로 맞댄 두 자루의 검이 팽팽히 줄다리기했다. 친위대의 검을 든 시몬이 씩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크윽! 그 기술로 하늘도 날 수 있는 거냐!"

"물론이지."

제츠는 다시 한번 과부하 마법을 몸에 걸고는, 주위로 화염포탄 마법진 세 장을 연달아 그렸다.

마법진을 본 시몬은 제츠의 검을 밀어내며 물러났고, 그 즉시 완성된 화염포탄 세 발이 그에게 쏟아졌다.

스르릉!

시몬이 친위대의 검을 미려하게 휘둘렀다. 청록빛 검광이 세 갈래의 잔상을 그리고, 화염포탄이 잘려 나가 허공에 흩어졌다.

'검술까지!'

제츠는 싸한 기분을 느끼며 물러섰고, 시몬은 태연히 웃었다.

"잡았어."

카작!

등 뒤에서 일어나는 통증에 제츠가 인상을 찡그렸다. 후방에서 날아온 친위대 하나가 그의 오른쪽 날개를 절단한 것이다.

'야단났다!'

날개 한 짝만으로는 날 수 없다. 제츠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크으윽, 침착! 침착해! 일단 착지해서 시간을 벌고, 그사이에 날개를 보수하면......!'

그러나.

그 보수할 틈을 가만히 놔둘 시몬이 아니었다.

"시체폭발."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귀가 먹먹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주위의 암벽기둥들이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이 자식, 설마!'

근처의 발디딤대가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제츠가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리고 언데드들을!'

뒤늦게 시몬이 암벽에 붙어둔 좀비들이 떠올랐다.

당했다.

완벽하게.

'내가 이 하늘 경기장에서......!'

한쪽만 남은 날개의 제츠가 무너지는 기둥과 함께 추락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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