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19화
저격기를 이용한 카미바레즈의 반격은 틀림없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경기 양상을 논하자면,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압도적인 수량으로 밀어붙이는 알리자린이 승기를 잡고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공격을 피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기 바빴다.
"흡!"
그녀가 파도를 피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다시 한번 '블러드 체이서'를 발사했다.
이제 알리자린도 방심하지 않았다. 몇 겹의 파도로 방패를 만든 채 몸을 숙였고, 피의 탄환은 그의 팔을 스치고 가는 것으로 그쳤다.
"아!"
쏴아아아―!
이번엔 알리자린의 집중력이 끊기지 않았다. 다홍색 파도가 내려오는 카미바레즈를 집어삼켜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녀의 배리어 수치만 더더욱 줄어들었다.
"하아, 하아."
간신히 파도에서 빠져나온 카미바레즈는 머리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준비하고 있는 블러드 스톰 때문에, 피도 정신력도 자꾸 빨려 나가고 있었다.
초조해진 그녀가 손목에 그려놓은 마법진을 스윽 만졌다.
'이 기술을 해제하고, 남은 칠흑으로 원거리 공격에 집중하면.......'
"카미!"
그때, 관중석에서 유난히 귀에 번뜩이며 꽂히는 외침이 들렸다.
시몬이었다.
"상대방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마! 네가 뭘 우선시해야 하는지 생각해!"
'아.'
그랬다.
내가 우선시해야 하는 것.
상대방에게 유리한 장소와 시간이기에, 상대방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건 당연한 거다. 지금은 아무리 파도에 휩쓸리고 상처 입어도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녀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알리자린이 조종하는 다홍색 파도가 연달아 몰아쳤다.
"어떠냐 우르슬라!"
알리자린이 두 팔을 떨치며 웃어댔다.
그 대단하다는 우르슬라의 네크로맨서가 자신의 흑마법에 일방적으로 도망만 치는 광경을 보니, 스스로의 성취에 심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나도 너처럼 키젠에 들어가고 싶었다!"
알리자린 또한 1년 전에는 키젠의 입학시험을 치렀었다.
하지만.
-당신에겐 재능이 없습니다.
그것이 입학시험에서 만난 면접관의 냉랭한 첫마디였다.
-혈류마법이 특기인 당신에겐 안타깝지만, 너무나 약한 '피'를 타고났어요.
면접관은 알리자린을 떨어뜨렸고, 5년을 준비한 키젠 입학시험에서 무너졌을 때 그는 인생이 꺾이는 좌절감을 맛봤었다.
"하지만 나를 받아준 이곳 모이란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수로에서 다홍색 물결이 넘실거리며 카미바레즈의 퇴로를 차단했다.
퇴로가 막히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두 손을 앞으로 보내며 '블러드 웨이브'를 시전했다. 알리자린 또한 같은 흑마법으로 대처했다.
퍼어엉!
"내 피가 약한 건 상관없어! 이곳 대호수의 파도처럼,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선다!"
카미바레즈의 블러드 웨이브가 첫 번째 파도를 무너뜨렸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파도가 부딪히며 결국 그녀의 혈류마법이 상쇄됐다.
"태어나 보니 우르슬라의 피를 물려받은 넌! 내 절박함을 이해 못 하겠지만 말이다!"
다섯 번째 파도가 카미바레즈의 몸을 이끌고 가 벽에 부딪히게 했다. 그녀가 '커흑!' 소리를 내며 강하게 충돌했다.
타격 판정이 들어오며 그녀의 배리어가 붉은 표시로 깜빡깜빡 점멸했다. 알리자린은 성취감으로 주먹을 꾸욱 움켜쥐었다.
이길 수 있다.
키젠을, 그것도 우르슬라의 네크로맨서를.
'너를 쓰러트리고! 내 피가 우르슬라를 뛰어넘을 수 있단 걸 반드시 증명하겠어!'
하아 하아.
그녀의 젖은 앞머리가 힘없이 늘어지며 눈동자를 가렸다.
"......네, 저는 당신의 인생도, 절박함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녀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 당신도, 제가 살아온 과정을 멋대로 단정 짓지 말아 주세요."
키잉!
마침내 완성됐다. 그녀가 몸에 붙여둔 마법진을 떼어냈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 그 대단한 우르슬라의 피를 가졌으면서......!"
"반쪽짜리!"
그녀가 거칠게 소리쳤다.
"그게 제 정체성이에요! 저는 단 한 번도 우르슬라의 피를 축복이라고 여긴 적 없어요! 평범한 인간의 몸에 이런 피가 흐르는 건 축복이 아니라 독이니까!"
그녀의 마법진이 발동했다. 꽃잎 같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시뻘건 광풍이 휘몰아쳤다.
<우르슬라 오리지널 - 블러드 스톰>
콰콰콰콰콰콰콰!
피의 회오리가 경기장 중앙에서 맹렬하게 몰아쳤다.
"그래도 저는 앞으로 나아갈 거예요!"
카미바레즈가 두 팔을 모아 쭉 뻗었다.
"저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그리고 제가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으니까!"
블러드 스톰이 굉음을 토해내며 전진했다.
알리자린 또한 온 칠흑을 쥐어짜 내 마법진에 변화를 주고 다홍색 바다를 회오리로 만들었다. 사방에서 다섯 개의 다홍색 회오리가 쏟아졌다.
그녀의 블러드 스톰에, 다섯 개의 다홍색 블러드 스톰이 부딪혔다.
콰콰콱!
카미바레즈의 블러드 스톰이 기세를 더했다. 다섯 개의 다홍색 블러드 스톰이 무너지고, 그대로 알리자린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이럴 수가!'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제는 알리자린이 등을 돌려 도망쳤고, 붉은 회오리가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며 뒤쫓아왔다.
'발로 뛰어서는 따라잡혀!'
알리자린이 도망치면서 수로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뭉실뭉실하며 다홍색 파도가 일어났다.
'블러드 스톰!'
여섯 번째 다홍색 블러드 스톰이 카미바레즈의 블러드 스톰에 부딪혔지만, 간단히 박살 나버리며 물의 형태로 돌아갔다.
'블러드 스톰! 블러드 스톰! 블러드 스톰!'
알리자린은 도망치면서도 계속해서 블러드 스톰을 만들어 보냈고, 그때마다 카미바레즈의 강력한 블러드 스톰에 부딪혀 무너졌다.
"블러드 스...... 크윽!"
칠흑이 완전히 소진됐다. 핏방울을 뿌렸는데도 다홍색 파도가 절반쯤 올라왔다가 무너져 내렸다.
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열 번째 블러드 스톰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그가 덜덜 입술을 떨며 간절하게 고개를 들었다.
'제발!'
피의 정점, 우르슬라에게 승리하는 이미지.
그 이미지가 흐려진 것은, 같은 기술을 아홉 번을 부딪쳐도 저 멀쩡한 블러드 스톰이었다.
마지막으로 첫 블러드 스톰과, 열 번째 블러드 스톰이 맞붙었고.
콰아아앙-!
서로 부딪혀 상쇄되어 깨져나갔다. 회오리끼리 폭발하며 거대한 후폭풍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조심해!"
"꺄아아아아!"
갑자기 태풍의 한복판에 들어온 것처럼, 관중석은 옷과 소지품이 날아다니며 난리가 났다.
알리자린은 입꼬리를 뒤틀며 웃었다.
'......여, 열 번 만에 막아냈다! 내가 해냈어!'
그러나 기뻐하기도 잠시, 알리자린의 고개가 다급히 돌아갔다. 카미바레즈가 안광을 번뜩이며 그의 뒤로 뛰쳐 들어왔다.
'마투로 오는 건가!'
카미바레즈가 팔을 뻗었고 아직 충격이 회복되지 않은 알리자린은 방어자세를 취했다.
날카롭게 내질러진 그녀의 손바닥을, 알리자린은 안전하게 팔꿈치로 막아냈다.
'이제 반격하......!'
그러나.
부웅―
막은 게 아니라 알리자린의 몸이 가드자세를 취한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닿은 상대를 강한 힘으로 튕겨내는, 홍펭도 극찬했던 카미바레즈만의 오리지널 마투기.
<카미바레즈 오리지널 - 박타>
쩌어억!
반대쪽 벽까지 날아가 처박힌 알리자린이 커헉!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배리어가 붉은색으로 깜빡거렸다.
카미바레즈는 손바닥을 내지른 자세에서 팔을 되돌렸다.
'아?'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알리자린의 피를 뒤집어쓴 본인의 모습이 비춰 보였다.
'어째서 피가?'
방금 타격으로 상대가 피를 토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박타는 상대를 튕겨낼 뿐, 내상을 입히는 기술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
'일부로 피를 토했...... 어?'
피잉-
알리자린의 피를 뒤집어쓴 그녀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던 알리자린이 비틀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쓰으읍! 어떻게든 성공했군!'
시몬이 클라우드를 만들 때 쓰는 'SM-1' 피처럼, 네크로맨서들의 피는 제각각의 개성이 있다
그리고 키젠의 면접관에게 부정당했던 알리자린의 PU-4 혈액은 '부여'와 '기생'에 특화되어 있다. 이를 응용해서 물을 조종한 거고, 이론상으로는 몬스터나 사람도 조종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진 진짜 사람을 조종할 정도는 안 된다.
다만 지금쯤 카미바레즈는.
'온갖 정신계 저주에 걸린 것과 흡사한 효과가 나타나겠지.'
뇌가 혼란을 일으키며 환각을 보여주거나 하는 정도다. 카미바레즈는 실제로 멍하니 팔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알리자린이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무력화된 카미바레즈에게 달려갔다.
'정신을 차리기 전에 마투로 끝내야 해!'
온 힘을 다해 달음박질하며 방금 회복한 칠흑까지 탈탈 털어 주먹에 모았다. 그러곤 그녀를 향해 힘껏 내질렀다.
"!"
알리자린의 눈이 부릅떠졌다.
막혔다.
그것도 그녀가 뻗은 자그마한 손가락 하나가, 칠흑을 모은 알리자린의 주먹을 가뿐히 가로막고 있었다.
부르르- 부르르-
역으로 힘에서 밀려나고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 그리고 감정 없이 텅 비어버린 괴물의 동공이 알리자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달라졌......!'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시야가 거꾸러진다.
그의 몸이 날아가고 있었다.
꽝!
다시 아까 부딪혔던 반대편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카미바레즈가 츠팟!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앞으로 나타났다.
쩍!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뻐억!
이번에는 복부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의 몸이 기울어지고, 무심한 눈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은 카미바레즈가 힘껏 자신의 무릎으로 코를 찍어 올린다.
쩌어어억!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배리어 너머로 충격이 쏟아지며 그의 코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쏟아진 핏물이 카미바레즈의 얼굴에 다시 한번 후두둑 끼얹어졌고, 그녀의 표정이 더더욱 공포스럽게 변했다.
퍼억!
쩍!
으적!
일방적인 폭력이 펼쳐졌다. 지켜보던 관중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리채를 붙잡고 돌바닥에 안면을 마구 부딪치게 하는 모습은, 처음 봤던 그 키젠 여학생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카미바레즈 오리지널 - 박타>
튕겨내는 기술인 박타가 알리자린을 바닥에 눕힌 채로 시전됐다.
꽝! 소리와 함께 마치 공처럼 튕겨 나온 그의 머리가 그녀의 손에 들어왔고, 다시 바닥에 찧어졌다.
꿍!
쩍!
퍽!
배리어가 깨져도 그녀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주위의 관중들이 눈을 질끈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관중석에서 구경하던 벤즈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카, 카미......!"
처음에 자신에게 수건을 내밀며 수줍게 웃던, 자신이 좋아하던 그 소녀의 모습은 티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이제 그만......!"
바로 그 순간.
코트가 펄럭이며 벤즈의 시야를 한번 가렸다.
카미바레즈가 알리자린의 이마를 벽에 내리치려는 그 타이밍에.
펄럭!
커다란 품에 가로막히며 그녀의 몸이 굳어졌다. 바람으로 한껏 날아오른 검은 코트가 천천히 내려앉으며 마침내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수고했어. 카미."
상냥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경기는 이제 끝났어."
"......."
시몬이 나타나 그녀를 꼭 끌어안은 것이다. 벤즈가 입을 벌렸고, 메이린은 화아악 붉어진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뒤이어 그녀를 말리려고 달려오던 심판이 시몬의 눈짓에 다급히 팔을 들어 올렸다.
"겨, 경기 종료! 승자는 키젠의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학생입니다!"
시몬은 눈을 감고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이제 됐어."
그녀의 텅 빈 동공이 냉랭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시몬의 하얀 목덜미를 보고 있었다.
스으-
그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번뜩이며, 느릿하게 시몬의 목덜미 쪽으로 향했다.
"피의 본성에 지지 마. 카미."
시몬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누구인지,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네 몸을 마음대로 하려는 의지에 당당히 보여줘."
시몬이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너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너 자신뿐이야."
"......."
그 한마디에, 카미바레즈의 삭막해진 눈동자에 거짓말처럼 생동감이 돌아왔다. 큼지막한 연보랏빛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다.
"시몬......!"
"응."
시몬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수고했어."
흥분한 야생동물처럼 날뛰던 그녀의 몸에 서서히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이내 카미바레즈도 시몬의 등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결박저주를 준비하고 있던 제인이 안도하며 미소 지은 후, 다른 어른들 쪽에 눈치를 주었다.
내 학생에게 손대지 말란 의미였다.
그녀의 시선에 네크로맨서들이 주뼛주뼛 팔을 내렸고, 의료진이 알리자린을 들것에 옮겼다.
잠시 상태를 살펴본 그들이 경호들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 참."
시몬이 싱긋 웃으며 심판 쪽을 보았다.
"이거 경기 중 난입 뭐 그런 거 아니죠?"
"예? 아, 예! 상대 배리어 게이지가 박살 나고 들어오셨으니......."
"다행이네요."
카미바레즈는 시몬의 체취를 맡으며, 의지하듯 천천히 고개를 기울여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심장이 뛰는 고동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