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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21화 (52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21화

'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스베라는 혼란에 빠졌다.

틀림없이 키젠의 학생회장은 스피릿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1학년 1학기 이후로는 사령학 수업을 고르지 않은 것도 확인했다.

그렇기에 사령체를 공격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고, 그녀는 주특기인 '익사자'에 역량을 집중해 다량의 물을 끌어당길 수 있게끔 훈련했다.

그런데.

'저 흑마법은 분명 소울 스피어잖아!'

콰르르르릉!

맹렬한 천둥소리와 함께 자줏빛 창격이 하늘을 가르고, 익사자들이 정확히 핀포인트로 꿰뚫려 파괴당하고 있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익사자를 일으키고는 있지만, 시몬이 창을 만들어 던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물론 익사자를 만드는 데 막대한 칠흑과 스피릿을 쏟아붓는 스베라 쪽이 일방적인 손해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소울 스피어가 아닌가?'

형태는 그녀가 아는 소울 스피어와 같지만, 색상이나 파직거리는 효과도 다르고, 무엇보다 느껴지는 기운이 이질적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런 기운.

파지지지직!

'큭!'

난데없이 측면으로 휘어진 카오스 스피어가 그녀의 복부를 강타하며 지나갔다. 인상을 찡그린 그녀가 급히 관중석의 대형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몬 폴렌티아 : 100%]

[스베라 마티우스 : 94%]

'어?'

엄청나게 화려하고 강렬한 것치고는 배리어 게이지가 그리 많이 깎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위력은 떨어지는 편인가?

콰지지지지지직!

또 한 자루의 창이 그녀의 허벅지를 스쳤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정면에 칠흑방패를 펼친 후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

[시몬 폴렌티아 : 100%]

[스베라 마티우스 : 76%]

이번에는 스쳤을 뿐인데 20% 가까이 날아갔다.

거기에 궤적도 왜 이렇단 말인가. 휘어지기도 하고, 위아래로 움직이기도 하고, 그냥 직선으로 오기도 했다. 패턴의 분석이 불가능하다.

'대체 뭐냐고! 저 기술은!'

시몬이 자줏빛 창을 꺼낸 이후로 전세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갑자기 확 달라진 경기양상에, 관중들은 의아한 얼굴로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시몬과 싸워본 적 있는 벤즈와 제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선수대기석의 메이린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키젠! 시몬이 쓰는 저 창은 뭐야?"

"날 상대로 저런 기술은 안 썼는데."

메이린이 미간을 구기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편입생 따위가 사람을 학교로 부르냐? 딱 부회장님이라고 불러!"

"아, 부회장이었구나."

그들을 가볍게 노려봐 주고는 고개를 되돌린 메이린이 음흐흐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어쭙잖은 정보로 분석하려고 했나 본데, 애먹는 게 당연해. 시몬의 저 기술은 공식 결투 평가에서 쓴 적이 없거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게 비공식전, 헥토르와에서의 대결이었다.

그녀가 귀밑머리를 스륵 넘겼다.

"사실 쓴 적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저건 시몬이 새롭게 창조한 시몬만의 힘이니까."

콰릉!

콰르르릉!

시몬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자줏빛 번개가 날아가며 경기장을 번쩍번쩍하게 만들었다.

스베라는 머리가 점점 지끈거리고 생각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는 평소에도 없던 마법진 실수까지 연발했다.

'이럴 수가.'

그녀가 숨을 헐떡였다.

'저 기술, 정신계 저주 효과까지 있는 거야?'

가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확실했다. 스베라는 이제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걸 느꼈다.

'몰래 수로로 이동시킨 익사자들로......!'

이러나저러나 홈 어드밴티지는 이쪽에 있었다.

시몬이 볼 수 없는 사각에서 수로를 타고 들어온 두 기의 익사자들이 동시에 철썩! 하고 모습을 드러내 시몬에게 돌진했다.

이 와중에도 시몬은 정면으로 창을 던지고 있었다.

'성공했나?'

퍼어어어엉!

그런데 분명 앞으로 던진 두 자루의 자줏빛 창이, 난데없이 익사자들의 뒤통수들 꿰뚫고 X자로 교차하며 땅에 박혔다.

'앞으로 던졌는데 왜 뒤에 박히는 건데!'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나왔다. 이 정도로 간파할 수 없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이게 바로 키젠의 학생회장인가.

"포기해, 스베라."

시몬이 새로운 카오스 스피어를 꺼내 들며 말했다.

"너랑 나는 상성이 나빠."

"크윽!"

그대로 돌려받은 한 마디에, 그녀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한 방 먹은 건 인정하지만, 마지막에 이기는 건 나야!"

그녀가 아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낡고 이끼 낀 해적 깃발 하나를 꺼냈다.

뒤이어 준비한 스피릿 마법진을 바닥에 펼치고, 그 중앙에 힘껏 깃발을 내리꽂았다.

"북해의 악명높은 해적단, 스테쿨로."

그녀가 음침하게 웃었다.

"여섯 개의 도시를 무너뜨리고 영주의 목까지 베었던 그들이 어쩌다 홀연히 사라졌는지, 혹시 알고 있어?"

"?"

꾸르르르르르륵!

깃발을 중심으로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물거품이 솟아 나왔다. 그 물거품 위로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배 한 척이 솟구쳤다.

선체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돛이 꺾인, 낡아빠진 해적선이었다.

-우우우우우!

그 안에서 수십 명의 선원들의 원혼이 울부짖고 있었다. 사령의 배는 수로의 물을 모조리 끌어당겨, 뼈대만 남아 있던 해적선과 원혼들의 모습을 물로 형태를 이뤄 나가고 있었다.

"이게 내 전력이다!"

<스베라 오리지널 - 난파선의 광진>

쏴아아아아아아아!

해적선이 수로의 물을 이끌고 시몬에게 돌진했다. 그 위에 탄 해적 원혼들의 외침이 경기장을 가득 울렸다.

시몬이 손에 쥔 카오스 스피어를 연달아 날렸지만, 난파선은 파괴되지 않았다. 육중한 선체로 혼돈을 받아내면서 돌진하고 있었다.

'멋진데.'

시몬이 감탄했다.

'우리 쪽 엘리사와 싸웠으면 좋은 승부가 됐을 것 같네.'

물론, 사령학과 대표의 엘리사는 유령선을 기본기술처럼 2~3척을 꺼내놓은 채 시작하지만 말이다.

"멋진 흑마법을 보여준 보답이야."

시몬은 허리의 혼돈 마법진을 떼어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매개체로 쓰이는 '사령의 돌'을 그 위에 올려두었다.

사령의 돌에 혼돈이 입혀지며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연신 튀어 올랐다.

"이제 와서 뭘 하든 내 승리야!"

스베라의 사령 해적선이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시몬은 조용히 웃었다.

쩌억―!

뒤에서 지켜보던 스베라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확실한 건 거대한 자줏빛 참격 같은 게 번뜩였다는 것. 그리고 뒤를 이어.

'난파선이!'

저 거대한 선체가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단면을 드러낸 채 좌우로 갈라진 난파선은 그대로 시몬을 지나쳐 쿵! 하고 좌우로 주저앉았다.

-낄낄낄낄낄!

그리고 시몬의 앞에, 카드게임의 조커를 연상케 하는 탈을 쓴 유령이 커다란 낫을 휘두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시몬 오리지널 - 카오스 리퍼(Chaos Reaper)>

사령학과 전공자인 스베라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사령학 포기자가 '리퍼'를? 나도 아직 못 쓰는 건데!'

시몬이 오른손을 들었다.

바닥에 박혀 있던 카오스 스피어 한 자루가 날아와 그의 손에 착 들어왔다. 뾰족하던 창날의 형태가 옆으로 길게 늘어지며 낫처럼 바뀌었다.

처억!

척!

시몬과 카오스 리퍼가 자세를 낮추며 똑같이 낫을 앞세우는 자세를 취했다.

"가자!"

시몬이 돌진하고, 그의 그림자에 숨어든 카오스 리퍼도 함께 나아간다.

"막아!"

스베라가 두 팔을 펼치자, 뒤쪽의 갈라진 해적선에서 해적들의 원혼이 물을 이끌고 날아와 하늘에서 시몬을 덮쳤다.

스릉!

스르릉!

시몬과 리퍼가 현란하게 자리를 맞바꾸며 자줏빛 낫을 휘둘렀다.

서로 흑마법으로 강하게 연결된 상태였기에 합이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비처럼 쏟아지는 물귀신들의 원혼들이 낫의 참격에 갈라지며 사라져 갔다.

시몬은 스베라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미안하지만-"

시몬이 바닥을 강하게 걷어찼다.

지면에 파직! 하고 균열이 생기며 그의 몸이 쇄도했다. 시몬과 리퍼가 동시에 그녀를 향해 낫을 세웠다.

"나는 키젠의 학생회장으로서 질 수 없어."

스르릉!

시몬과 리퍼가 스베라를 교차하며 지나갔다. 그녀의 몸 앞으로 선명하게 그어진 X자가 번뜩이며 주위를 자줏빛으로 눈부시게 밝혔다.

"승자!"

심판이 목소리를 높였다.

[시몬 폴렌티아 : 94%]

[스베라 마티우스 : 0%]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와아아아아아아!

시몬이 낫을 든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세레머니했다. 멋진 경기를 보여준 시몬을 향해 관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배리어가 사라지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스베라가 체념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다.

"......내 완패야."

그때 시몬이 심판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 게 보인다. 그 말을 들은 심판이 기겁하며 주위의 관리원들에게 다시 말을 전달했다.

"스베라."

심판과 말을 마친 시몬이 다가왔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그래. 기만은 승자의 권리니까, 맘껏 들어줄게."

"그게 아니라, 잠깐 실례할게."

시몬은 난데없이 스베라를 훌쩍 안아 들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녀가 소리쳤다.

"뭐, 뭔 짓이야!"

"여긴 위험해."

시몬은 카오스 리퍼를 향해 멀어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카오스 리퍼의 소환상태가 해제되어 녹아내렸고, 뒤이어 수백 개의 혼돈 줄기로 변해 경기장의 하늘로 솟구쳤다.

광범위 혼돈 폭격 마법.

<시몬 오리지널 - 혼돈 난무(亂舞)>

보랏빛 비가 하늘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다행히 시몬의 설명을 들은 관리원들이 관중석의 결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시몬도 스베라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직접 카오스 스피어 한 자루로 내려오는 창들을 하나 하나 쳐내고 있었다.

스베라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았다.

'저거, 맞기 전에 끝나서 다행이다.'

열심히 내려오는 혼돈을 쳐내는 시몬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은 강하다.

그리고 이런 녀석을 키워낸 학교 키젠.

'내일이면 나도, 거기서 수업 들을 수 있는 거지?'

역시.

그곳에 편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시몬의 경기가 끝났다.

혼돈 난무의 효과로 경기장에 구덩이가 파이고 초토화됐기에, 약간의 쉬는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 경기는 옆 경기장에서 하기로 했다.

모이란에는 이런 수로 경기장이 세 개쯤 더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네크로맨서 학생들의 교전에서 이런 일은 수없이 많았다.

"잘했어! 시몬!"

"공평하게 모이란까지 탈탈 털었네."

관중석 쪽으로 돌아오니 편입생들이 반겨주었다. 시몬도 태연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물론 겉으론 태연했지만.

'주, 죽을 것 같아.'

타라도스에서 복귀한 뒤, 어제오늘 네크로맨서 학교에서 결투 평가급 경기를 세 번이나 치렀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티는 못 내고 있었다.

제인이 외부에서 키젠의 학생회장으로서 '품위'를 누누이 강조했었고, 그게 학생회장의 의무이기도 했다. 일단은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컨셉으로 웃고는 있었지만 사실 죽을 맛이었다.

"고생했어, 시몬."

메이린이 수건과 함께 시원한 얼음이 든 물통을 건넸다.

"고마워."

시몬은 마음 같아선 바닥에 벌러덩 누워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허리에 한 손을 얹고 품위를 유지했다.

그녀가 웃으며 한쪽 눈을 윙크했다.

"애쓰시네요? 우리 회장님."

"......들켰어?"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데 뭘."

시몬은 조용히 웃으며 물통을 비웠다. 그래도 모이란에 와서 그런가, 물맛도 꿀맛이었다.

'이제 마지막 경기.'

시몬이 메이린을 보았다. 그녀가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팔꿈치를 툭 쳤다.

"알았어, 알았어. 무조건 이길 테니 걱정 마."

"하하, 그런 게 아니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학생회장님!"

그녀가 귀엽게 경례하는 포즈를 취하고는 걸어갔다.

장난스럽게 받아쳤지만, 그녀야말로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시몬은 웃는 얼굴로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뒤따랐다.

마지막 경기가 벌어질 경기장이 바로 앞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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