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23화
주위의 얼음이 메이린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을 뻗자 얼음들이 커다란 송곳의 형태로 변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대형마차만 한 얼음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이에 화이트가 한 행동은 하나. 마법진도 없는 손바닥을 앞으로 펼칠 뿐이었다.
'!'
그리고 메이린의 마법은 화이트의 손에 닿기 직전, 파훼되어 사라졌다. 그저 파편 같은 작은 얼음 알갱이들만 남아 화이트의 옷에 튈 뿐이었다.
"막혔어요!"
카미바레즈가 아쉬움에 콩콩 뛰었다.
'......방금 뭐지?'
화이트를 보는 시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커다란 얼음을 막아낸 것치고는, 이상할 만큼 파편이 튀지 않았다.
"그렇담 이건 어때!"
화르르륵!
메이린이 왼손에 펼쳐진 마법진을 발현시켰다.
<다크 플레어(Dark Flare)>
1학년 때는 준비하는 데 상당히 시간이 걸리던 그 흑마법을, 메이린은 이제 경기 초반부터 어렵지 않게 만들어내 던지고 있었다.
새까만 불꽃이 고약한 연기를 뿜어내며 뻗어 나갔고, 이번에도 화이트는 손바닥을 펼쳤다.
샤라락-
다크 플레어조차 가볍게 꺼트려졌다.
"음."
메이린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자세를 낮췄다. 들어 올린 뒤꿈치에서 얼음이 일어나 그녀의 몸을 지탱했다.
"아직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두들겨 봐야겠지!"
<아이스 로드(Ice Road)>
촤르르르륵!
메이린의 주특기가 나왔다. 발밑에서 일어나는 얼음으로 경기장을 고속으로 활보했다. 동시에 손바닥에 마법진을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메이린 리메이크 - 아이스 볼트(Ice Bolt)>
콰콰콰콰콰콰콰콰!
아이스 볼트의 연사 버전. 그녀의 손바닥에서 작지만 빠르고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연달아 쏟아졌다. 지켜보던 시몬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어, 상황판단이 빨라!'
큰 흑마법이 안 통하니 고속이동과 연사마법의 조합으로 스타일을 변경했다. 그녀는 화이트의 주위를 빙빙 돌며 얼음조각들을 쏟아냈다.
이에 화이트도 움직였다.
그는 손바닥을 중심으로 몸을 가리는 유리막을 펼쳤다. 그리고 팔을 천천히 옆으로 돌리자 막도 따라 움직이며 얼음조각들을 막아냈다.
지켜보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인상을 굳혔다.
"메이린의 칠흑빙결계. 파괴되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있어요."
"응. 내 생각엔 저것도 아까 다크 플레어를 없앤 기술의 연장이야."
1학년 말, 화이트는 모이란의 3학년 학생회장을 쓰러트렸다.
아무리 3대 학교의 학생회장들이 키젠에 편입되지 못한 2라운더라고 해도, 삼 년 동안 꾸준히 흑마법을 갈고닦은 뛰어난 실력자들이다.
이제 막 전입해 온 1학년이 그들을 이기는 건 상식적으로는 힘들다.
물론, 굳이 말하자면 가능한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이능.'
흑마법만으로는 3학년에게 상대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화이트는 이능과 칠흑의 결합으로 그를 이겼을 것이다. 그것도 로레인, 세르네 급 정도 되는 선천적으로 강력한 이능 사용자라면 이기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떤 이능을 사용하는지 메이린이 알아낼 수 있느냐가, 이 경기의 '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아아!"
빙빙 돌면서 얼음조각을 날리던 메이린이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 화이트의 시선을 끌면서, 그의 등 뒤에 커다란 얼음벽을 세운 것이다.
얼음벽은 세워진 화이트 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얼음의 무게를 이용한 물리공격!'
화이트는 오른손을 회수해 등 뒤로 보냈다. 그에게 무너지던 얼음벽이 손바닥에 닿자, 벽의 중간이 텅 빈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패럴라이즈(Paralyze)>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메이린이 저주를 날렸다. 정확하게 화이트의 등에 적중했지만, 그는 맞은 부위를 간단히 쓱쓱 만지면서 털어내는 모습이다.
시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 연계를 저렇게 쉽게 막다니.'
칠흑빙결계, 칠흑화염계, 고속이동 및 마법연사, 얼음의 무게를 이용한 물리공격, 저주.
메이린은 어떻게든 화이트를 공략하려고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넓혀 나갔지만, 무엇 하나 통하지 않았다.
콰콰콰콰콰콰!
하는 수 없이 메이린이 다시 화이트의 주위를 빙빙 돌며 얼음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경기 양상이 늘어졌고, 지켜보던 관중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한숨을 쉬었다.
"승산이 안 보이네."
"키젠의 부회장도 어쩔 수 없는 건가."
지금까지 화이트에게 패배했던 네크로맨서들과 똑같은 그림이 재현되고 있었다.
이미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듯, 관중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미바레즈가 안절부절못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메이린......!"
퍽!
그때였다. 얼음조각 하나가 화이트의 몸에 부딪혔다.
"......."
화이트의 고개가 내려갔다. 얼음조각을 막고 있는 그의 투명한 막은 여전히 건재했다.
퍽! 퍽!
이내 두 발, 세 발째가 추가되더니.
퍽! 퍽! 퍽!
점점 더 많은 공격이 투명한 막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화이트가 맞고 있었다.
웅성 웅성 웅성!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던 관중들이 흥분하며 자리로 되돌아왔다.
시몬은 잽싸게 마나 스크린에 보이는 배리어 게이지를 확인했다.
[메이린 빌렌느 : 100%]
[화이트 : 95%]
확실했다.
공격이 통한다.
"화이트가 맞았다!"
"와아아아아아!"
사방에서 어마어마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메이린이 아이스 로드를 멈춰 세웠다.
"그런 게 있는지 들어본 적조차 없지만 말야. 당신이 쓰는 그 힘."
그녀의 손가락이 화이트에게로 향했다.
"칠흑을 빨아들이는 이능이지?"
"......."
화이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딱히 대답은 기대도 안 했다는 듯 그녀가 똑바로 서서 허리에 손을 올렸다.
"정곡을 찔렀나 보네? 사실 내가 방금 칠흑원소계랑 섞어서 날린 건."
우웅!
그녀가 마법진을 펼쳐 보였다.
검은 기가 하나도 없는, 선명한 푸른색이다.
"마나만을 이용해 만든 순수 원소 마법이야."
시몬이 고무된 표정으로 펜스를 붙잡고 흔들었다.
'바로 그거야! 메이린!'
마나와 마법사는, 칠흑과 네크로맨서의 하위호환이다.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요람으로 불리며, 과거에는 지금의 키젠 이상의 위상을 뽐냈던 역사와 전통의 상아탑조차 그 사실을 인정하고 네크로맨서로 체제를 전환했다.
다만 메이린은 동아리 시즌 때 '순수 마법 연구회'에 입부했다. 순수 마법의 수식을 배워두면 나중에 칠흑원소계 수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정한 거였다.
물론, 그런 동아리에 들 시간에 교과서나 한 번 더 보라며 면박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녀가 넓혀놓은 '순수 마법'이라는 특이한 레퍼토리가 통하고 있었다.
"간다!"
메이린이 바닥에 그린 마법진을 힘차게 밟았다.
쿠우우우웅!
수로에 얼어 있던 얼음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녀가 순수 마나로 만든 마법진을 얼음에 하나하나 정성껏 새겼다.
뒤이어 준비해둔 칠흑빙결계를 일으킨 다음, 얼음들을 날려 보내며 그 뒤에 칠흑 빙결 마법까지 날려 보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본래 맨 얼음만 던지면 약하니 칠흑으로 보조해 던지는 게 기본이지만, 화이트의 정체를 안 이상 그러지 않았다.
타닷! 탓!
화이트도 공격을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능을 쓰면 순수 마법에 뚫리고, 칠흑방패를 펼치면 칠흑빙결계가 방패를 찢고 들어온다.
퍼억!
퍽!
그의 배리어가 연신 깜빡거리며 점멸한다.
[메이린 블렌드 : 100%]
[화이트 : 87%]
"아직!"
메이린이 오른손에 칠흑화염계를 그렸다.
"멀었어!"
그러고는 왼손에는 순수 원소 마법을 그렸다.
그녀의 주특기인 멀티 캐스팅. 양손에 서로 다른 흑마법을 펼치고 쏴대기 시작했다.
화이트의 배리어 수치가 점점 갉아 먹혀간다. 그녀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길 거야, 무조건!'
* * *
사흘 전.
-이렇게 먼 샤헤드의 근무지까지, 키젠 후배가 왜 임무평가로 왔나 했더니.
안경을 눌러 쓴 여자가, 고개 숙인 메이린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
-키젠 부회장으로서의 업무와 팁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메이린이 더더욱 허리를 깊게 숙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작년, 판타서스 학생회의 황금기를 이끈 진짜 주역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선배님의 노하우를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내가 왜 내 퇴근시간을 갉아먹으면서 그렇게 해야 하지? 나도 이 직장에선 신참이라, 피곤한데.
-제가 일찍 일어나서 다음 날 선배님 아침 일정을 대신하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실, 메이린은 처음부터 작년 키젠 부회장을 보러 이곳 샤헤드에 들른 거였다. 카미바레즈도 기꺼이 함께했다.
-선배님! 청소 다 해놨어요!
-하지 말라니까.
-배고프시죠? 책상에 과일 올려놨거든요!
메이린은 본인 몫의 임무평가를 다하면서 전 부회장을 졸졸 따라다녔다. 하도 끈질기게 굴자, 전 부회장이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
-.......
메이린의 주먹을 꾸욱 쥐었다.
-절 인정해 준 녀석의 도움이 되고 싶어요.
시몬은 자신을 부회장 자리에 올렸다.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서 무슨 이야기가 돌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친구 잘 만나서.
시몬 덕 봤네.
첫 조별과제 조원이 키젠 수석이라니, 운도 좋지.
물론 키젠에서는 선출된 학생회장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측근들로 학생회를 짜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이 유치한 질투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메이린은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키젠은 실력주의였으니까.
-처음부터 너만 생각했어.
-부회장은 이 학교의 누구보다도 네가 적격이야.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시몬은 그렇게까지 말해주었다.
그러니 자신을 욕하는 건 괜찮아도, 자신을 선택해 준 시몬까지 욕먹게 하기는 싫었다.
부회장이 됐다면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야 했다.
-제인 교수님! 보고서 첨삭 부탁드려도 될까요?
키젠에 들어온 뒤 하루하루.
-평가제를 진행했을 때 식당 측 반발은 어떻게 억누르면 좋을까요?
-얘들아! 학생회의 메이린이라고 해! 간단한 설문조사 중인데......!
밤을 줄여가며 끈질기게 노력했다.
3학년인 에이젤이 돌아오기 전, 잠깐의 임시 학생회라도 좋다. 잠깐 스쳐가는 한여름 밤의 꿈일지라도 좋다. 모두가 학생회장인 시몬에게만 주목해도 좋았다.
시몬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증명하고 싶었다.
오롯이 실력으로.
메이린은 세르네를 꺾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도, 부회장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공부했다.
-선배님! 다음은 어디를 청소하면 될까요?
이번 임무평가도 마찬가지 일환.
결국 메이린의 진심에, 전 부회장도 흔들렸다.
-이건 내가 부회장 때 썼던 노트인데...... 하아, 내가 왜 이러고 있냐.
-감사합니다! 선배님!
노력해야 했다.
더 노력해야 했다.
사실 부회장의 업무를 배우는 데 4일이란 임무평가 기간도 짧았지만, 편입평가전에서 시몬이 학생회장으로서 싸우고 있다는 제인의 말에 바로 모이란으로 넘어왔다.
"나는-!"
메이린이 두 팔을 뻗으며 흑마법을 발동했다.
"절대로 질 수 없어!"
콰르르르르!
검은 광택의 얼음기둥들이 바닥에서 솟구쳐 화이트를 뒤덮었다. 화이트는 이능을 사용해 얼음을 녹이려고 했지만, 메이린은 칠흑빙결계만 쓴 게 아니었다.
'!'
그의 두 팔이, 순수 마법의 얼음에 붙들려 고정되었다.
타앗!
그녀가 얼음을 타고 화이트의 위로 솟구쳤다.
칠흑빙결계로 손잡이를 만들고, 순수 마법으로 망치의 몸체를 만들었다.
<메이린 리메이크 - 프로즌 해머>
꾸우우우웅!
손잡이가 기기긱 작동하며 얼음 망치가 아래로 떨어졌다.
화이트의 몸이 거칠게 꺾이며 무너져 내리고, 흰 서리와 얼음결정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관중들의 폭탄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