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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24화 (52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24화

와아아아아아아-!

화이트에게 공격이 먹힌다.

관중들이 메이린의 활약에 푹 빠져서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을 때, VIP석에서는 차분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모이란의 총장과, 키젠의 부총장 제인. 두 사람은 뒷짐을 진 채 학생들의 결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훌륭하네요. 화이트를 간파하고 저렇게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니."

팔락-

모이란의 총장이 손에 든 자료를 펼쳐 들었다.

"저 아이가 올해 키젠의 부회장이군요."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이란의 총장을 보았다.

학교 입구의 사진에 걸려 있던, 초임시절의 반듯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름이 늘었고 머리카락은 총장직을 맡은 수년간의 고생으로 서리가 내린 듯 하얗게 세어 있었다.

"우수한 학생입니다."

제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노력하는 학생이구요."

-교수님! 교수님! 이 건은 그러니까......!

부회장이 된 뒤로, 학생회 담당인 자신을 얼마나 괴롭히던지.

또래들 앞에서는 '내가 부회장이다!'하고 잘난 척 뽐내는 모습도 있지만, 그건 그녀의 자아를 충족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에 가깝다.

사실 뒤에서는 누구보다 학생회 일에 열의를 가지고, 그 자리에 걸맞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학생이었다.

"저런."

메이린의 프로필을 훑어보던 총장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사연이 있는 아이였네요. 후계자 싸움에서 밀려난 이인자는 많은 고충을 갖고 있기 마련이죠."

제인은 긍정도 부정도 없이 앞만 보았다. 총장이 계속 말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인정욕을 충족시켜 줘야 하지요. '서열'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어른들이 아무리 다그쳐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총장의 시선이 움직였다. 무릎에 손을 올린 채 죽을 듯이 숨을 헐떡거리는 메이린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아주 장해요. 아마도 메이린 학생은, 자신의 야망 외에 이루고 싶은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군요."

"......."

메이린은 분명 세르네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키젠에 입학한 것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모든 것이 그녀를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A반 담당교수로서 지켜본바, 7조 조원들과 생활하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깎여 나갔고, 1학년 말에 세르네와의 결투평가에서 그 열등감을 어느 정도 극복해 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학생회 생활로, 메이린은 세르네에게 후계자 자리를 되찾는 것 외에 새로운 길에도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 결여된 학생들이야말로, 누구보다 크게 성장할 수 있지요."

모이란의 총장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어느 한 곳 모자람 없이 반듯하게 자라온 아이들은 앞으로도 꾸준하겠지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흙에 파묻혀 더럽고 지저분한 원석이야말로, 깎고 제련하고 광을 냈을 때 세상을 놀라게 할 진가가 발휘되죠."

제인은 아무런 대꾸 없이 화제를 전환했다.

"화이트의 편입 건입니다만."

"네."

"학생들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5년간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모이란을 이끌어 오셨던 총장님께서, 어째서 그런 무리수를 두셨습니까?"

총장은 잠시 경기장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드넓은 모이란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뼈를 깎고 노력해도 '호수'는 '바다'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말한 모이란의 총장이 묘한 미소와 함께 제인을 돌아보았다.

"어떤 압도적인 벽을 느끼는 순간, 인간은 무리수를 두게 되기 마련이더군요."

"......."

제인은 오늘따라, 총장의 미소에 패인 주름이 더욱 깊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때 총장이 제인의 앞에 놓인 서류를 가리켰다.

"키젠에서 우려하는 것 같아서 화이트에 대한 프로필도 준비했는데, 읽어보셨는지요?"

"읽어봤습니다."

화이트는 이미 모이란에서 철저하게 검증한 학생이다.

키젠 또한 3대 네크로맨서 학교에서 오는 아홉 명의 편입생에 대해, 매해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원로들의 성화에 키젠 본부에서는 따로 사람을 보내 화이트를 조사해 봤고 역시 이상은 없었다.

1학년이 3학년 학생회장을 꺾는 게 정말로 가능한 걸까. 화이트는 이미 지금 이 자체로도 병기에 가깝다.

제인은 눈동자만 움직여 모이란의 총장을 보았다.

'당신과 샤헤드 왕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때였다.

파아아아아아앗!

메이린의 얼음 안에서 눈부신 순백의 빛이 일어나고 있었다. 관중들이 웅성거렸고, 지쳐 있던 메이린도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듣던 대로."

제인이 화이트의 서류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팔짱을 꼈다.

"흉악한 힘이군요."

* * *

시몬과 카미바레즈도 관중석에서 깜짝 놀라며 발꿈치를 세웠다.

메이린의 얼음 속에서, 마치 알껍질을 부수고 나오는 새처럼 눈부신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지켜보는 카미바레즈의 동공이 흔들렸다.

"시, 신성?"

"아니 달라."

실제로 프리스트의 힘을 쓸 수 있는 시몬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저건 틀림없는 칠흑이야."

새하얀 칠흑.

관중석에서도 기겁한 소리들이 튀어나왔다.

"불길해! 불길한 징조야."

"하얀 칠흑이라니!"

"프리스트는 신성연방으로 꺼져라!"

우우우우우우!

야유와 험담이 사방에서 쏟아졌지만, 화이트는 태연하게 메이린을 응시할 뿐이었다.

경기장에서 그를 상대하는 메이린은 힘겨운 미소를 흘리며 이마를 닦았다.

'내 칠흑을 빨아들여 어디에 쓰나 했더니.'

지금까지 화이트는 방어만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진짜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화이트가 팔을 휘젓자, 하얀 구체가 날아왔다.

<아이스 로드>

촤르르르륵!

메이린은 취약한 신체능력과 둔한 반사신경을 가졌지만, 그걸 마법으로 커버해 왔다.

발바닥에서 얼음을 꺼내며 물러섰고, 방금 그녀가 있던 자리에 하얀 구체가 떨어졌다.

터엉!

이질적인 외견도 그렇고, 소리도 특이했다. 폭발하는 게 아니라 마치 땅을 밀어붙이듯 드드득 하고 땅을 파고들어 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내고는, 하얀 이능은 힘이 다한 순간 조명처럼 쑥 꺼졌다. 그게 전부였다.

'저기에 한 번이라도 깔리면.'

메이린의 오른손에 이글거리는 새빨간 화염이 펼쳐졌다.

'끝장이겠는데!'

화아악!

그녀가 순수 마나로 만든 화염을, 화이트는 하얀 구체를 휘둘러 막아냈다. 그러곤 역으로 구체를 메이린에게 던졌다.

"큭!"

빨랐다. 아이스 로드로 급히 움직여 피했지만 심장이 철렁한 속도였다.

그가 메이린의 진행 루트를 예상하고 던졌다면 틀림없이 맞았을 것이다.

'지금 끝내야 해!'

메이린이 양 손바닥을 펼쳤다. 한 손에는 푸른 마법진이, 다른 한 손에는 검은 마법진이 그려졌다. 서로 기호와 도식이 채워지며 빠르게 완성을 향해 달려갔다.

키이잉-!

화이트는 또 하나의 하얀 구체를 손바닥에 일으키고는, 그것을 앞세운 채 달려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콱!

경기장 바닥에 커다란 흉터가 남는다.

흉악한 광경이었지만 메이린은 흔들림 없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나는 키젠의 부회장이야!'

그녀가 먼저 오른팔을 뻗었다.

'다른 학교를 상대로 절대 절대 질 수 없어!'

오른팔의 순수 마법진이 이글거리는 화염을 만들고, 그 위에 뚜껑을 씌우듯 새까만 칠흑화염계가 뒤덮었다.

두 종류의 불꽃이 동시에 불타며 하나의 거대한 화염구를 만들어냈다.

<메이린 오리지널 - 블레이즈 에그(Blaze Egg)>

메이린도 완성된 화염구를 앞세운 채, 하얀 구체를 끌고 오는 화이트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경기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모든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카미바레즈는 덜덜 떨며 힘내요를 속삭거렸고, 시몬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화이트와의 정면 승부는 무모해!'

두 사람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는 그때. 메이린이 손짓했다.

<월 오브 아이스>

촤르르르르륵!

돌진하는 두 사람의 정면을 순간적으로 얼음의 벽이 가로막았다. 화이트는 표정 변화 없이 그대로 돌진했다.

콰아앙!

화이트가 하얀 구체를 앞세워 얼음벽을 박살 내는 순간, 메이린은 아이스 로드를 타고 얼음벽의 측면으로 돌아왔다.

"하아아아앗!"

그녀가 힘껏 손에 쥔 화염구를 휘둘렀다. 화이트 또한 예상했다는 듯 허리를 돌려 하얀 구체를 그녀 쪽으로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앙!

화염구와 하얀 구체가 부딪히며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그녀의 화염구는 폭발했지만, 화이트의 하얀 구체 쪽은 크기가 줄었을 뿐 여전히 형태가 남아 있었다.

그가 팔을 휘둘러 연기를 가르는 그때.

덥석!

메이린이 연기를 뚫고 들어와 화이트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하얀 구체에 닿아 배리어 게이지가 크게 깎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몸에 힘을 실어 바닥에 누워 버렸고, 화이트도 엉거주춤하게 그녀의 위로 올라온 자세가 되었다.

"!"

화이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공중에 떠 있는 그녀의 오리지널 마법이 화이트의 등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까 기술은 단순한 칠흑화염구. '블레이즈 에그'는 그녀가 시간 차로 하늘을 향해 던진 것이다.

"내 승리야!"

메이린이 씩 웃었고. 공중에 뜬 화염구가 내려와 화이트의 등을 내리찍으며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불꽃이 두 사람을 집어삼키며 폭발했다.

"메이린!!"

카미바레즈가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시몬은 다소 얼떨떨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무, 무섭네.'

공부든 일이든 결투든 뭐든지 깔끔하게 굴던 그녀였지만, 승리에 대한 집착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검은 연기 속을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히 배리어 게이지가 보이는 스크린으로 향했다.

"경기 종료!"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고 팔을 들며 외쳤다.

"승자는!"

화염이 걷히고, 바닥에 힘겨운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메이린이 보였다.

그리고 왼손을 등 뒤로 보낸 채, 오른손으로 그녀의 목을 쥐고 있는 화이트의 모습이 보였다.

[메이린 빌렌느 : 0%]

[화이트 : 60%]

"모이란의 화이트 학생입니다!"

* * *

경과는 다음과 같다.

메이린의 '블레이즈 에그'가 화이트의 등에 떨어지는 동시에, 화이트는 붙잡힌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뻗어서 칠흑 흡수를 시전했다.

화이트는 블레이즈 에그 안의 순수 마나로 만든 화염에만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붙잡힌 오른손으로는 메이린의 배리어를 빨아들였다.

학생들이 입고 있는 수트의 배리어 또한 칠흑으로 만들어졌다. 화이트는 단지 닿는 것만으로도 메이린의 배리어 게이지를 0%로 만들 수 있었다.

다음 공격까지 생각하고 준비했던 메이린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대단해.'

시몬은 그녀가 최선 그 이상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패인은 왼손으로도 칠흑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과, 배리어도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던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 정도로 상대를 공략하고 화이트를 몰아붙인 건 정말로 대단했다.

"잘했다 키젠!"

"좋은 경기였어!"

관중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최초의 기립박수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지만, 시몬은 메이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린 성격이라면 엄청 분해할 것 같은데.'

마침 경기장에서 방호 수트를 벗은 메이린이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멋쩍게 웃으며 시몬과 카미바레즈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 졌어."

"최고의 경기력이었어요 메이린! 대단해요!"

카미바레즈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분위기를 띄웠다. 시몬도 그녀의 눈치를 보며 격려의 말을 남겼지만 그녀가 푸핫 웃었다.

"야! 억지로 위로 안 해줘도 되거든?"

그녀가 시몬의 등을 찰싹 때리며 걸어갔다. 시몬이 쓰라린 등을 매만지며 넌지시 말했다.

"......아쉽진 않지?"

"전혀?"

그녀가 대기석에 내려놓은 가방을 챙겨 들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붙어보니 알겠는데, 애초에 난 못 이길 상대였어. 그러니까 아쉬움도 분함도 뭣도 없지~ 키젠으로 돌아가자."

"네! 메이린!"

메이린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걸음을 옮겼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교복 소매 밖으로 앙 쥐어진 주먹이 보였다.

"메이린."

그녀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부회장이 되어줘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

냉정하던 그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리더니, 호수 같은 푸른 눈동자에 물결이 번졌다.

"......모, 몰라! 멍충아!"

그녀가 코먹는 소리를 내면서 후다닥 도망쳤다.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시선을 마주하며 조용히 웃었다.

* * *

제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준비됐습니까?"

"예!!"

모이란의 편입평가전도 끝나고, 아홉 명의 편입생들이 모두 모였다.

제인의 옆에는 시몬과 메이린, 그리고 카미바레즈가 학생회 완장을 찬 채 서 있었다.

"자, 키젠으로 출발하죠."

그녀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학생회 멤버들이 뒤따랐다.

다소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화이트를 제외하고, 다른 여덟 명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학생들. 1년 넘게 고생고생한 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벤즈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가자! 키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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