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26화
시몬은 편입생들을 학생회실로 데리고 왔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들 자그맣게 탄성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가 키젠의 학생회실이구나! 번쩍번쩍한데?"
"우리 학교는 그냥 빈 강의실에 학생회실 팻말만 붙여놨는데."
"보통 그렇지."
서기인 카미바레즈가 발 빠르게 움직여 편입생들을 손님용 소파에 앉히고 차를 대접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니 또 감탄이 들려온다.
그렇게 차분한 티타임도 잠시, 한 방에 12명이나 있다 보니 곧바로 떠들썩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화제가 맞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회장! 오늘 경기에서 쓴 칠흑화염계 멋지더라."
시에라의 대표였던 제츠는 메이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보는 눈은 있네."
"상대에 맞춰 즉석으로 순수 마법과 흑마법을 조합한 게 진짜 인상적이었어."
"그러는 넌 오리지널이라며?"
"맞아. 그래서 레퍼토리가 좁은 편이지."
제츠가 손바닥에서 이글거리는 초록색 불꽃을 일으켰다. 메이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오리지널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냐. 범용성 높은 학과수업을 메인으로 두고, 곁가지를 나랑 맞게끔 맞춰 나가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해."
"물론 그게 정석이긴 한데, 나만의 기술로 최고가 되는 게 멋지고 로망이지 않냐?"
"로망이 밥 먹여주니?"
카미바레즈도 오늘 경기에서 싸웠던 알리자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요 화제는 역시 '피'에 대해서였다.
"우르슬라 운운했던 건 다시 한번 사과할게. 내가 좀...... 성격 배배 꼬였다는 소리 많이 들어."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피로 물을 움직이는 흑마법은 대단했어요!"
"가르쳐 줄까?"
시몬은 뒤편의 학생회장 석에 홀로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학생회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입생들을 흡족하게 보고 있는데 딕이 '헤이! 시몬!'을 외치며 끼어들었다.
"잘 지냈냐?"
딕이 친근하게 시몬의 머리에 헤드록을 걸었다.
"편입평가전에서 3연승 했다며? 역시는 역시야!"
"......머리 아파, 딕."
"그보다, 여기 누가 왔는지 봐봐."
딕이 눈짓으로 한 학생을 가리켰다.
빡빡머리의 건장한 소년이 무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번에 벤즈와 함께 들어온 알란드의 남학생 중 한 명이었다.
"기억해? 애 리콘이야! 1학년 때 우리 학교 B반!"
"......어?"
딕의 설명에 따르면, 리콘은 원래 키젠이었고, 무려 B반의 사령학 에이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2학기 개학 첫 시험에서 떨어지고 난동을 부렸었다.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결평은 상위 스쿼드에 성적도 100위권대인데 날 내친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난리를 쳤다가, 같은 B반 담임이었던 바힐에게 제압당했다.
그리고 의외의 사건이 전개되었다.
-리콘은 썩 괜찮은 인재입니다. 모이란 정도라면 좋다고 데려가겠죠. 이후 제대로 마음을 다잡아서 모이란 수석이 되고 편입생으로서 키젠에 돌아올지, 아니면 그대로 무너져 버릴지는 그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렸습니다.
리콘도 그 뜻을 받들었는지 모이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재능인 '저주'에 눈을 떴다.
바힐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직속 후배가 있는 알란드로 리콘을 전학 보냈다. 저주를 배우기엔 모이란보다 알란드 쪽의 인프라가 훨씬 더 좋았다.
리콘은 그곳에서 저주학과 수석까지 달성했고, 이번에 키젠 편입생으로 들어오는 데 이르렀다.
"진짜 인간 승리 아니냐?"
딕이 낄낄 웃으며 리콘의 어깨를 두들겼다.
"키젠 입학생으로 시작했다가 모이란 찍고 알란드 찍고 다시 키젠!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거지!"
"그, 그만해. 부끄러워."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번 봤을 뿐이지만 시몬도 저 얼굴이 기억났다.
1학년 때는 바가지 머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머리도 짧게 깎고 키도 커서 못 알아봤다.
"아무튼."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키젠에 돌아온 걸 환영해. 리콘."
그 말에, 리콘의 콧잔등이 씰룩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딕이 능글맞게 웃었다.
"어어, 운다! 우냐? 얘들아~"
"하지 마!"
하하하하하!
이미 리콘의 일대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콘도 눈 주위를 주섬주섬 소매로 잽싸게 닦고는 후! 하고 숨을 토해냈다.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티타임은 마무리됐고, 딕이 바퀴 달린 칠판을 끌고 와서 편입생들에게 키젠의 시스템과 룰. 그리고 시험과 수행평가에 대한 것들도 설명했다.
"니들이 제일 궁금한 건 수업에 대해서겠지? 전공 필수과목은 전부 들어갈 거고, 다른 일반과목은 정원이 빈 수업 위주로 들어가. 내일 아침까지 학교에서 깔끔하게 시간표를 짜줄 거니까 그거 그대로 들어가면 되고. 질문 있는 사람?"
한 편입생이 손을 들었다.
"난 바힐 교수님 수업 듣고 싶은데."
"어허, 스타 교수님 수업은 당연히 정원 꽉 차서 못 듣지. 우리 재학생들도 개고생하면서 수강 신청했다고. 전공자 아니면 꿈 깨시고."
편입생이 시무룩하게 손을 내렸다. 딕이 분필을 들고 칠판 위에 체크표시를 했다.
"그나마 교양과목은 너희들이 자유롭게 골라서 이번 주 안까지 신청할 수 있는 걸로 알아. 최대 8과목. 편입생이 좀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건 맞는데, 정원이 다 찼으니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
편입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키젠에서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그럼 내 설명은 여기까지!"
딕이 분필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우리 부회장님이 할 말 있으시다던데. 할 거?"
"......깐죽대지 마, 너."
메이린이 딕을 한번 째릿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딕이 비켜나고 그녀가 칠판 앞으로 나왔다.
"별건 아니고."
그녀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키젠이 밖에서야 대단해 보이지. 사실 사람 사는 곳이 거기서 거기잖아? 인성 터진 놈들 많고 텃세, 왕따, 따돌림. 뭐 이런 것들도 있을 수 있어."
편입생들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진 마."
메이린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
"우리 학교는 전학이란 개념이 없어서, 새로운 친구가 오면 다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만에 하나 문제를 겪으면 얼마든지 학생회에 찾아와. 우리가 도와줄게."
"알았어."
"고맙다."
메이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기본적으로 여긴 철저한 실력지상주의야. 너희가 잘하면 애들도 금방 인정할 거야. 아! 그리고 3학년들 선배들은 밖에 나갈 일이 많아서 자주 마주치진 않겠지만,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면 터치 없을 거야.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편입생들이 짝짝 손뼉을 쳤다. 메이린은 가볍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학생회가 할 일은 다 했는데.'
학생회장석에 앉아 있던 시몬이 시계를 확인했다.
'애들이 좀 늦는.......'
콰앙!
오우거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학생회실 문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커다란 다리가 튀어나왔다.
이내 다리가 내려가고, 저벅저벅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편입생들이 극도로 긴장한 얼굴로 앞을 보았다.
"......학생회 새끼들이 건방지게."
불편한 기색을 풀풀 풍기면서 등장하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
"니들이 뭔데 방송으로 학과대표들 오라 가라냐."
2학년 소환학과 대표이자, 전체 3위.
헥토르 무어.
"흐아아아암-"
그 옆으로 늘어지는 하품 소리가 들렸다. 큰 키의 연두색 머리카락 여학생이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방금 임평 끝내고 복귀해서 졸려 죽겠는데, 왜 불러?"
2학년 맹독학과 대표이자 전체 6위, 메르디아나 앤 서든데스.
"......쿠울-"
그 옆에는 실제로 자고 있는 소녀도 있었다. 이불을 로브처럼 감싼 채 고개가 꾸벅꾸벅 내려가고 있었다.
2학년 저주학과 대표이자 전체 4위.
그리고 전 학생회장 '판타서스'의 여동생, 메리다 휴 이켈.
"이것들아! 니들이 뭔데 학생회에 화를 내고 지랄이야?"
빼액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온 건, 작은 체구의 양 갈래머리 소녀였다. 품이 큰 하얀 제복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학생회가 부르면 재깍재깍 튀어나오는 게 당연하지! 상대가 3학년 학생회였어도 니들이 이렇게 깝죽댈 수 있었을 것 같아?"
다른 학과대표들에게 강하게 소리치고는, 슬쩍 시몬을 돌아보며 윙크를 보내는 소녀.
2학년 사령학과 대표이자 석차 7위, 유령선의 엘리사 셀린.
"회장님, 배 안 고파? 빵 사 올까?"
"......괜찮아."
"사양 안 해도 돼! 우린 같은 제왕학을 듣는 동료잖아!"
시몬이 무안한 웃음을 흘렸다. 쟤는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러는 건가 싶었다.
그 뒤로도 각종 네임드 학생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칠흑역학과 대표, 차석. 샤텔 마에르.
혈류학과 대표, 9위, 엘리시아 로젠펠트.
마투학과 대표, 10위, 마검 사용자 쥴 빈체레.
그 유명한 키젠의 'Top10'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이나 가문 명이었기에, 편입생들 모두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다들 반가워. 피곤할 텐데 바로 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학생회장석에 앉은 시몬이 그들을 반겼다.
일곱 학과를 통솔하며 학생들을 총장 네프티스와 이어주는 존재, 학생회장.
편입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시몬을 보았다.
'저 정도의 멤버들 앞에서 전혀 안 주눅 들고 당당하네.'
'역시 회장이야.'
시몬이 말을 이었다.
"편입생 건으로 불렀어."
"그래, 편입생들이 왔다는 건 들었다."
헥토르가 불쾌한 듯 미간을 구겼다.
"그러면 학생회에서 재깍재깍 기숙사에 데려다 놓을 것이지. 굳이 학과대표까지 소집해서 데리러 가게 하는 이유가 뭐냐."
"찡찡찡~ 찡찡~ 또 시작이다."
딕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원사격을 가했다.
"하여간 1학년 때랑 달라진 게 없어. 절차대로 하는 건데 뭔 불만이 그리 많아? 그렇게 꼭 비싼 티를 내셔야겠슈? 무어가문 도련님."
헥토르의 부리부리한 눈이 딕 쪽으로 향했다.
"네놈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400위."
메이린이 숨죽여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약점을 공격당한 딕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지만, 잽싸게 평정을 되찾았다.
"참, 말해두는데, 니들을 부른 것도 제인 교수님의 지시야."
이번엔 헥토르가 움찔했다.
"너 지금 제인 교수님한테 반항하냐? 어? 여기 메모리얼 수정구 보이지? 함 씨불여 봐. 해보라고. 못 하지? 아무 말도 못 하지? 어른들 앞에선 한없이 예의 바르게 굴면서, 애들한테만 강압적이야. 전형적인 '강약약강'. 너 같은 새끼가 제일 위선적이야. 알아?"
헥토르의 눈에 불이 켜졌다.
"......시몬 폴렌티아에 빌붙어서 직위 하나 달았다고 간땡이가 처부었나."
"그 시몬 폴렌티아에 대적하려고 3학년한테 꼬리 흔들면서 학과대표 덥석 문 니가 할 소리고?"
"......그 권력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에이젤 선배가 돌아오는 순간 네놈의 모가지부터 비틀어 버릴 테니."
"아~ 그거 좋네. 비틀 거면 지금 해보면 되겠네. 못 하지? 못 하겠지? 굳이 내가 학생회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유가 뭐겠어?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라니까! 이런 새끼가 자기 똘마니들 데리고 골목대장 노릇 하는 거 보면 웃겨 뒈질......."
시몬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둘 다 진정해."
과열된 두 사람이 살벌한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편입생들은 갑자기 험악해진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만 보고 있었고, 다른 학과대표들은 별생각이 없는 듯 그냥 태연하게 하품이나 하고 있었다.
"제인 교수님의 지시라면 따라야겠죠."
석차 9위, 엘리시아가 말했다.
"빨리 진행해 주셨으면 해요. 학생회장님."
"응, 그럴 생각이야."
시몬이 편입생들을 보았다.
"여기 있는 학과대표들이 학과의 규칙, 수업내용, 필요한 준비물을 설명해 주고 기숙사의 시설을 안내해 줄 거야. 메이린이 외출에 필요한 서류는 제출해 뒀으니까 준비물 구매가 필요하다면 오늘 저녁에 로체스트에 가도 좋아."
시몬이 빙긋 웃었다.
"물론 로체스트도 학과대표들이 안내해 줄 거야."
바로 이런 이유로 부른 거였다.
학과대표들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지만, 학과생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였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시몬이 편입생들을 보며 웃었다.
"키젠에서의 첫날, 즐거운 추억이 되길 바랄게."
편입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시몬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 * *
늦은 저녁.
제인의 연구실.
밤이 찾아오며 주위는 깜깜했다. 작은 탁상용 램프에 의지해 서류와 씨름하던 제인은 깃펜을 내려놓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제인 교수님, 화이트 학생의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시를 맡겨뒀던 수석조교의 목소리였다.
제인이 들어오라고 말하자, 수석조교가 공손히 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의 앞에 섰다.
"모발, 피부, 칠흑, 혈액 등 도합 12가지의 성분 검사를 의뢰했고, 방금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인도 자세를 고쳐 앉고 두 손을 깍지꼈다.
"어떻게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