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27화
제인도 자세를 고쳐 앉고 두 손을 깍지꼈다.
"어떻게 됐죠?"
수석조교가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0%."
제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류를 들었고, 수석조교는 보고를 이어나갔다.
"제5군단장 매그너스와의 그 어떤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편입생에 대한 검증치고는 과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 검증의 이유가 고작 '외모'라는 점 또한 그렇다. 잘못하면 정치적 문제가 될 우려도 있었고, 편입생 본인에게도 못 할 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그너스가 정말로 키젠에 들어와 어떻게 할 생각이었다면, 괜히 본인을 연상케 하는 저런 흰머리 소년을 이용해서 키젠의 경계를 사고 방비를 높일 이유가 없다.
제인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내일부터 화이트를 수업에 참가시키겠습니다. 다만......."
"말씀하시죠 교수님."
제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감시는 붙여두죠."
* * *
다음 날 아침.
임무 평가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일과가 시작됐다.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재회한 학생들은 본인의 모험담을 늘어놓기 바빴다.
"무슨 오우거가 성 하나만 한데......!"
"남작 그 새끼가 나한테 뇌물 주려 했다니까?"
활기찬 강의실 안에서, 시몬은 토토와 함께 교과서를 꺼내고 있었다.
'다시 돌아왔다.'
이제 무거운 학생회장 코트는 학생회실에 벗어놓고, 다시 한 명의 학과생으로 돌아와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기지개를 쭉 켜며 잠시 마음의 여유를 즐겼다.
"안녕."
그때 막 등교한 로레인이 또각또각 차분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절제된 동작과, 기품이 묻어나는 표정. 시몬도 '안녕' 하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다시 원래 분위기로 돌아왔네.'
타라도스에서 로레인이 보여준 모습은 독특했다.
약간의 일탈이었겠지만, 자유롭다 못해 조금은 발랄한 느낌도 있던 로레인의 분위기가 학교에서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특히 그녀의 자물쇠 목걸이가 굳게 닫혀 있는 모습을 본 시몬은 조금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다.
"편입생 인솔 수고 많았어."
시몬의 앞자리에 앉은 로레인이 흑발을 휘날리며 말했다.
"타라도스 임무를 겪고 바로 또 학교 일해서 힘들었겠다."
"아냐, 아냐. 제인 교수님이 신경 많이 써주셨거든. 메이린이랑 카미도 도와주러 왔고."
"앗! 저기 학생회장 찾았다!"
한 여학생이 시몬에게 달려왔다.
"편입생 들어왔다며? 소환학과에도 왔어? 남자애야 여자애야?"
그 말에 임무평가를 하고 있던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돌렸다.
"편입생이 소환학과에 왔을까? 또 저주나 칠흑역학 쪽에 몰렸겠지."
"온 거 아냐? 어제 기숙사 떠들썩했잖아."
"남자야 여자야! 그것부터 말해!"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시몬은 빙긋 웃었다.
"남자애들 둘."
꺄아아아!
주위의 여학생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남학생들은 혀를 차거나 관심이 떨어진 듯 다시 임무평가 이야기로 돌아갔다.
"주특기는 뭐야?"
"왜 소환학과에 들어왔대?"
"잘생겼어?"
시몬을 둘러싸고 사방에서 물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토는 순식간에 튕겨 나가며 본인 자리를 빼앗겨 버렸고, 로레인은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얘들아."
로레인이 입을 열려는 순간.
"저리 꺼져요."
백금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세르네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을 둘러싼 여학생들이 재빨리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시몬의 뒷자리를 차지하며 앉았다.
"아침부터 몰려서 짜증 나게 뭐 하는 거람."
자그맣게 구시렁거리던 그녀가 시몬 쪽으로 가볍게 윙크를 보냈다.
시몬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르네."
"네?"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그렇게 내 뒷자리를 고집하는 거야?"
"그야."
세르네의 눈꼬리가 느슨하게 내려갔다.
"여기선 시몬의 뒷덜미가 잘 보이니까?"
'!'
시몬은 목 언저리에 서늘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뻣뻣해진 시몬의 반응을 즐기며 세르네가 악마처럼 웃었다.
"수업마다 매번 상상해요. 저 뒷덜미에 내 깃털을 꽂으면 어떻게 될까."
그녀가 손끝에 깃털을 꺼내더니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지금까지 시몬이 보여준 저력이라면 분명 저항하겠지만? 저렇게 툭 치면 얍 하고 얼굴 빨개지는 거 보니까 의외로 쉬울지도 모르고. 만약 지배당하면 어떻게 가지고 놀까?"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턱을 괴며 생긋 웃었다.
"정신없이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머나, 수업종이 땡땡~ 오늘 일과도 끝!"
시몬이 한숨을 푹 쉬었다.
"토토, 자리 좀 바꿔줄래?"
"아, 응? 응! 알겠......."
"왜 본인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걸까요."
토토의 몸이 반쯤 일어난 그대로 돌처럼 굳어졌다.
고개를 삐걱거리며 세르네를 돌아보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순진무구하게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 들었어요?"
"아, 아아아, 아무것도 아냐!"
"......세르네."
시몬이 그녀를 돌아보며 한마디 하려는 순간.
"교수님 오신다!"
학생들이 우르르 자리로 돌아갔다.
척. 척. 척.
조교들이 안으로 들어와 절도 있게 열을 맞춰 섰다.
뒤를 이어 소환학과 담당교수, 아론이 부스스한 머리를 훑으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도 세상 편한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교단에 올라섰다.
"소환학과."
그의 게슴츠레 떠진 눈이 학생들을 훑었다.
"임무는 잘하고 왔나?"
"네에!"
학생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서류를 펼쳤다.
"통계를 보니 D급, C급 임무를 맡은 학생들도 많더군. 나는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2학년 안에 검은색 의뢰서를 클리어해야 하는 조건을 잊지 말도록."
그가 손에 든 서류를 내리고 다른 서류를 들었다.
"그리고 너희들이 여유로운 임무평가 시간을 가지는 동안, 학생회장이 편입생들을 데려왔다."
잠시 학생들의 시선이 시몬에게 모여들었다.
"소환학과에는 두 명이 지망했다더군. 바로 소개하겠다. 들어와라."
그 말이 끝나자 강의실 문이 열리며, 키젠 교복을 입은 벤즈가 안으로 들어왔다.
'긴장했네.'
기계처럼 뻣뻣한 벤즈의 걸음걸이를 본 시몬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다른 학생들도 눈을 빛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쫓겨나는 건 많이 봤어도, 이렇게 전학생처럼 새로운 얼굴이 들어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자기소개, 할 말이 있다면 짧게 해라."
아론이 말했다. 벤즈가 삐걱삐걱 입을 열었다.
"아, 안녕! 알란드에서 온 벤즈라고 해. 알란드에서도 소환학과였고, 특기는 테이밍. 흑마법으로 몬스터를 부리는 기술이야. 잘 부탁한다!"
짝짝짝!
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환영해 주었다.
벤즈는 민망한 듯 뒷목을 긁적이다가 조교의 안내에 따라 빈자리로 걸어갔다. 그러다 시몬을 지나치며 가볍게 눈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시몬도 웃으며 받아주었다.
"소환학과 편입생은 둘이라고 들었는데."
아론이 복도 쪽을 보았다.
"다른 한 명은 뭐 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복도 너머로 다급한 듯한 조교의 대답이 들려왔다.
"학생이 갑자기 날아가는 새에 정신이 팔려서......! 그, 그만 보고 이리 오세요! 교수님이 부르시잖아요!"
드르륵.
학과대표 헥토르가 살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론은 눈빛으로 그를 제지하고는, 잠시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이내 조교에게 등을 떠밀려, 강의실 안으로 하얀 머리의 소년이 들어왔다.
"와!"
"잘생겼어!"
몇몇 여학생들이 목소리를 낮춘 채 설레는 환호성을 흘렸다.
"저 나이에 흰 머리?"
"새끼, 뭔가 기분 나쁘게 생겼는데."
남학생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은발이나 백금발도 아니고, 저렇게 탈색된 듯 이질적으로 눈처럼 새하얀 백발은 암흑연합에서 불길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론 그 이유는 프리스트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머리색 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선입견이었지만, 신성연방에서 국경을 넘어온 백발의 프리스트들에 대한 공포가 암흑연합 사람들의 인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
화이트는 연단 앞에 나와 멍한 눈으로 앞을 보았다.
자리에 앉은 친구들을 보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초점을 모으고 허공을 응시하는 거였다.
잠시 강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교수님?"
수석조교가 아론을 툭툭 건드렸다.
"교수님, 편입생이 앞에 왔는데 말씀을......."
그런데.
아론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숨이 고르지 못했고, 동공은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연신 흔들리고 있었다.
"교, 교수님? 혹시 편찮은 곳이라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론이 제 이마를 짚으며 쥐어 짜내듯 대답했다.
"자기소개. 짧게 해라."
"......."
화이트가 고개를 돌려 아론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아론의 동공이 다시 한번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화이트가 쓱 고개를 원래대로 되돌리며 학생들을 보았다.
"화이트."
그게 끝이었다.
짧게 하라더니 제 이름만 툭 던지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화이트였다.
수석조교가 아론의 상태를 살피며 손짓하자, 옆의 조교가 얼른 화이트를 데리고 빈자리에 앉혔다.
"교수님, 힘드시면 잠시......."
"아니."
아론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과서를 펼쳤다.
"중간고사까지 듀라한을 가르치려면 갈 길이 멀다."
"......교수님."
그가 학생들을 보았다.
"모두 교과서 25페이지를 펼쳐라."
"네!"
"이제 편입생도 들어왔으니 진도에 박차를 가하겠다. 한번 진도에 따라오지 못하면 2학년 내내 도태된다고 생각하도록. 고점의 수행평가도 오늘을 기점으로 쏟아낼 예정이다. 공지 없이 그 자리에서 평가하는 시험도 있으니, 수업 하나하나 전쟁터에 나가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오도록."
그가 교과서를 펼치며 고개를 들었다.
"구울의 이론부터 잡고 시작하겠다."
* * *
쏴아아아아-
"......."
수업이 끝나고, 아론은 세면대 위에 두 팔을 지탱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지만, 잠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자 유리창에 본인의 모습이 보였다. 몇 번이고 세수한 듯 머리카락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교수님.
거울의 광경에서, 허연 백발의 소년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아론 교수님.
꽝!
아론이 주먹으로 유리창을 내리쳤다. 유리창 전체에 단번에 콰작! 하고 금이 갔다.
그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내리며 긴 숨을 토해냈다.
'망할.'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망할, 망할, 망할.'
그때였다. 뒤쪽에서 벌컥 하고 변기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미있는 상황이군요."
변기 문을 걷어차고 나온 하얀 바지와 구두.
타악- 하고 화장실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더니 뚜벅뚜벅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저는 운명론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일의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그런 논리는, 나태하고 나약한 인간들의 핑곗거리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문학적인 허용을 고려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죠."
세련된 중절모를 손으로 붙잡아 눌러쓴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운명의 장난 같다."
"......."
"그 화이트란 학생, 옛날에 선배가 가르친 매그너스와 똑같이 생겼더군요. 원로들이 호들갑을 떨길래 어느 정도인가 싶더니. 이야."
피가 묻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 아론이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소환학과 건물에는 무슨 용건으로 왔나? 바힐."
바힐은 느긋하게 화장실 벽에 몸을 기대고, 중절모 끝을 붙잡아 살짝 눈을 가리며 웃었다.
"그 아이를 보러온 겸해서, 소문의 흰 머리도 보러왔죠. 아무튼 화장실 잘 썼습니다, 선배."
바힐이 천천히 손을 흔들며 화장실에서 나갔다.
꾸우욱.
아론은 비로소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끄고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의 주먹에 부딪혀 갈라진 거울에서, 아론의 모습도 여러 개로 깨진 채 갈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