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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28화 (52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28화

그날 오후.

시몬과 로레인은 모처럼 나란히 교내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타라도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로레인은 임무평가 마지막 날까지 타라도스에 남아 사후수습에 노력했다. 시몬도 일단은 자신이 해방시킨 곳이기도 하니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싶었다.

"아민 장군님을 영주로 추대하는 건 제법 힘들었어."

로레인이 말했다.

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하아'하고 피곤한 한숨을 쉬었다.

"왕국의 대신들이 반대했거든."

"대신들이?"

"응. 정당한 절차 없이 영주 직위를 주는 건 어렵다나 뭐라나. 갑자기 툭 튀어나온 칼잡이가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귀족이 되는 게 싫었겠지."

시몬이 찝찝한 표정으로 턱을 괬다.

그렇다고 자기들에게 타라도스를 다스릴 거라고 물으면 또 외면할 거면서. 대신들은 그냥 대책 없는 반대만 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키젠에서는 타라도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사후처리에 대한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압력을 가했어. 아. 내부에서는 몰리 공주님이 힘을 많이 쏟아주셨어."

로레인이 눈을 빛냈다.

"결과적으로, 시몬 네가 왕국 측이 아닌 몰리 공주님께 개인적으로 연락한 건 최고의 한 수였어! 어른들은 지나치게 큰 건이라서 덮거나 무마할 생각만 했을 것 같은데, 공주님이 바로 근위대를 데리고 난입해서 정무대신 페루츠의 저택을 화끈하게 털고, 증거를 눈앞에 들이밀어서 그를 체포하셨으니까. 정말 놀라운 일처리야."

시몬이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나중에 뵈면 꼭 인사드려야겠네. 공부 잘하시고 계시려나."

"키젠 생활에 푹 빠지신 것 같더라. 워낙 네크로맨서 생활을 동경하신 분이었으니까."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잔을 내려놓은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조그맣게 쓴웃음을 흘렸다.

"사람 진짜 많다."

와글와글와글와글-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교내카페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대부분이 1학년들이었는데,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왁왁 야생동물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조용히 대화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시몬은 의자에 팔을 기댄 채 미소를 지으며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1학년 1학기 초. 한창 좋을 때네."

로레인이 쿡 웃었다.

"아저씨 같아."

시몬도 덩달아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는 애들이 있나 싶어서 돌아보니, 여기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눈에 띄는 빨간색 머리가 보였다.

1학년 특례 2번, 용병왕 아서.

그가 팔을 휙휙 들며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야, 아서! 누가 수플레를 그렇게 먹니? 품위 없게!"

"수플레가 뭐냐!"

그는 여전해 보였다.

"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로레인이 다시 본래 화제로 돌아왔다.

"네가 이번에 수행한 임무평가 난이도도 조절될 계획이야. F에서 A+로."

시몬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아, 정말? 그래 준다면 좋지!"

"기대해도 좋아."

원래는 단순 노동으로 'F'등급을 받은 의뢰였지만, 시몬은 그 의뢰가 구조신호라는 걸 알아내고 타라도스에 갔다. 결국 의뢰자와 영지를 구해냈으니, 키젠 본부에서는 그 점을 높게 산 것 같았다.

이번 2학년도 무조건 전체 1위를 노리는 시몬에게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로레인이 힘을 써준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교내의 모든 영향력과 권한을 빼앗겼다지만,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요청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본부도 미래 권력의 요청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로레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키젠에서도 타라도스의 재건에 힘을 쓰고 있어. 일단 네크로맨서들을 보내서 황야에 넘쳐나는 키메라들을 제거하는 중이야. 진행률은 60% 정도? 곧 사람들이 자유롭게 영지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면 상인들도 들어올 거고 경제도 활성화......."

"호, 혹시!"

그때 누군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의 1학년 여학생 두 명이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시몬이 고개를 돌려 상냥하게 물었다.

왼쪽의 여학생이 부끄러워하며 '니가 말하기로 했잖아!' 하면서 오른쪽 친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여학생이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시, 실례지만 학생회장 선배님 아니신가요?"

"응, 맞아."

"꺄아아아!"

두 사람이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콩콩 뛰었다.

입학식 날 학생회장의 키젠 신입생 구출 작전으로, 시몬은 어느새 1학년들에게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코트가 없어서 못 알아볼 뻔했어요!"

"저, 정말 존경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선배님! 호, 혹시 사인 같은 거 부탁드려도 되나요?"

사인해 달라는 요청은 태어나서 또 처음이었다.

시몬은 망설였지만, 로레인과의 대화가 우선이었기에 빠르게 그녀들의 소환학 교과서 앞에 사인해 주고 돌려보냈다.

1학년 소녀들은 무척 기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인기 많네."

로레인이 장난조로 말했다.

"미안해, 대화가 끊겨서.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응.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키메라가 제거되고 상인들이 들어오고 경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인다는 그런 이야기."

"아, 응. 그래서 이제 몇몇 상인협회가 관심을 보였는데-"

"우오오!"

이번엔 1학년 남학생 세 명이 불쑥 튀어나왔다.

"맞아! 확실해! 흑발 적안! 혹시 로레인 선배님 아니심까!"

"......."

로레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만 끄덕였다.

"와, 미친! 실물이야!"

"네프티스 님의 따님이 키젠에 다닌다는 게 진짜였어!"

"옆에는 학생회장 선배야!"

시몬은 얼른 입술에 손을 올리고 쉿쉿 소리를 내며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다행히 주위가 시끌벅적해서 관심이 모이지는 않았다.

'올해 1학년들은 난리도 아니구나.'

헥토르가 들었다면 바로 1학년 놈들 개념 없다며 엎드려 뻗치게 했겠지만, 시몬은 이해심을 갖기로 했다.

아직 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1학년들이고, 3학년들에 워낙 대였으니 후배들에게 그런 예의를 강요하는 것도 싫었다.

"미안한데, 우리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

"혹시 둘이 그거 아님? 사귀는 사이?"

"하하! 잘 어울리십......!"

덥석!

그때 나불거리는 두 1학년의 얼굴에 헤드록을 걸며 튀어나온 학생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시몬 선배님! 하하하!"

아서였다.

"커, 커헉!"

"아, 아서! 이것 좀......!"

헤드락에 걸린 두 사람이 바둥거리며 풀어달라며 애원했다. 아서는 슬쩍 시몬에게 눈짓했다.

"오랜만이야, 아서."

시몬도 손을 흔들었다.

"반 애들이 좀 그래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학생회실에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응, 고마워."

허리까지 꾸벅 굽히며 시몬과 로레인에게 한 번씩 인사한 그가 동급생들을 진압한 채 그대로 멀어져갔다.

시몬은 감탄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성장했을지도?'

"아는 사람이야?"

로레인이 물었다.

"용병왕 아서, 저번에 같이 싸운 적도 있어."

"아. 소문의 특례 2번이구나. 싹싹하네."

두 사람이 다시 타라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서 수월하게 이야기가 풀리려는데, 이번에는 정장을 쫙 빼입은 키젠 본부 사람들이 걸어왔다.

"아가씨."

"네프티스 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시몬."

"아냐, 아냐. 중요한 이야기도 다 끝났고."

로레인은 시몬에게 인사하고는 그들을 따라 떠났다. 홀로 남겨진 시몬은 반쯤 남은 커피를 홀짝 마셨다.

'나도 슬슬 수업 준비나 하러 가야지.'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우와악!'

깜짝 놀라서 커피를 쏟을 뻔했다.

어느새 시몬의 맞은편 자리에, 하얀 정장 차림의 남자가 태연하게 앉아서 웃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시몬 학생."

그가 모자를 손끝으로 잡아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바, 바힐 교수님?"

"저와도 커피 한잔하겠습니까?"

* * *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로레인 다음은 바힐이었다.

시몬은 2학년 캠퍼스, 저주학과 건물에 있는 바힐의 연구실에 들어왔다. 긴장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등을 곧게 세우고 있었다.

"하하, 단둘이서는 편히 있어도 됩니다."

바힐이 모자를 옷걸이에 걸어놓으며 말했다.

그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커피를 끓이는 사이 시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

역시나 모든 게 잘 정리된 연구실.

벽 한쪽을 통째로 차지하는 커다란 칠판도 1학년 연구실에서 그대로 가져온 모습이다. 칠판에는 빼곡하게 저주 수식이 적혀 있었다.

"이번 편입생 인솔, 수고 많았습니다."

바힐이 커피 두 잔을 가져오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편입생 인솔 이야기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시몬은 바힐이 건넨 잔을 최대한 공손하게 들고, 제왕학에서 배운 예법에 따라 한 모금 후루룩 마셨다.

역시나, 엄청 달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활약이 있더군요."

젠틀한 동작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바힐의 두 눈이 번뜩였다.

"알란드 전이었죠."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벤즈와의 경기를 말하는 건가? 그거 별거 없었는데.

"플랜 구성이 아주 좋았습니다. 슬립으로 테이밍에 걸린 상대 몬스터들을 재우고, 망상의 저주 '딜루젼'을 상대에게 걸어서 눈을 속인 다음, 상대를 몬스터 쪽으로 던지고 몬스터에게 걸었던 슬립을 해제."

꽝.

하고 바힐이 입으로 소리를 내며 몬스터에게 둘러싸이는 손짓을 했다.

"승리했죠."

"......어, 어?"

시몬의 눈이 혼란에 빠졌다.

알란드에 들어온 키젠 측 인원은 분명 제인과 시몬뿐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건가요?"

"알란드에 저주를 가르치는 후배가 있습니다. 그에게 들었죠. 그런 것보다, 어떻게 된 겁니까?"

"네?"

벌떡!

바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쭉 들이밀었다.

"나는 아직 네게 슬립을 가르친 적이 없는데."

시몬은 전신에 소름이 쫘아악 돋았다.

"대체 어떤 나부랭이한테 배운 겁니까."

"그, 그게요!"

일단 그의 화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기에, 시몬은 사실대로 말했다.

전 학생회장 판타서스에게 직접 슬립을 전수받았다고.

"판타서스."

그 이름을 중얼거리던 바힐에 비로소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마법진을 보여보세요. 그에게 배웠다는 슬립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은 고분고분 따르는 게 현명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시몬은 판타서스 오리지널의 슬립 마법진을 펼쳐 보였다.

사실 숨길 것도 없었다.

마법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힐이 한탄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마법진이 너저분하군요. 실전에서도 많이 써먹은 것 같은데, 다른 슬립을 배우는 건 불가능하겠습니다."

"뭐, 뭔가 문제 있나요?"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바힐이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 유명한 판타서스 전 회장의 슬립입니다. 우수한 저주를 계승 받았다고 평하고 싶군요. 이렇게 귀한 걸 내어주다니, 전 회장이 아주 큰 결심을 했습니다."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바힐은 손끝으로 팔걸이를 툭툭 두들겼다.

'다만 조금 찝찝할 뿐이지.'

저 순백의 도화지 같은 천재 시몬 폴렌티아를, 자신이 가르쳐 주는 저주만으로 꽉꽉 채워 키우고 싶었다. 웬 불순물이 낀 게 아니꼬웠다.

"수강신청 이전의 일이라니 그냥 넘어가겠지만."

바힐이 눈빛을 번뜩이며 손끝을 세웠다.

"저주에서만큼은, 당신을 전담하는 건 납니다. 앞으로 새로운 저주를 배웠다면 가급적 내게도 알렸으면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저주를 배웠다는데, 저주학 교수로서 피드백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그가 팔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슬립을 현장에서 써보니, 조금 더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었습니까?"

시몬은 조용히 손바닥에 펼쳐둔 판타서스 오리지널의 슬립을 보았다.

어지간한 저주저항은 뚫고 들어가고, 캔슬레이션으로 해제도 안 되고, 프리스트전에서도 유용하고, 효과도 빠르며 강력하다.

유일한 단점은 손바닥에 흑마법을 펼치고 직접 터치해야 하는 거지만, 강력한 효과에 비하면 이건 단점이라도 하기 어려웠다. 상위 기술인 '슬리핑 데이모스'처럼 원거리 저주로 응용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범위."

시몬이 입을 열었다.

"한 번에 한 명에게 1스택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좀 더 많은 적에게 수면효과를 내면 좋을 텐-"

벌떡.

바힐이 다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칠판의 지우개를 움직여 빼곡하게 써진 글들을 깔끔하게 지우더니 분필을 들고 미친 듯이 수식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닥-

'와.'

빼곡하게 채워지는 칠판을 보며, 시몬은 어안이 벙벙했다.

바힐 또한 판타서스의 슬립은 처음 보는 것일 것이다.

물론 바힐은 이미 자신의 슬립을 칠흑이 기억하고 있기에, 판타서스의 슬립을 알아도 실전에서 완벽하게 쓸 수 없다. 판타서스의 강함은 슬립 저주만을 극한으로 갈고닦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랬듯 바힐의 이론은 완벽했다.

"완성했습니다."

탁.

고작 30분.

칠판에 방점을 찍은 바힐이 무심한 표정으로 분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바힐 리메이크, 그리고 사용자 시몬의-"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광범위 슬립. 사양치 않고 받으세요.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시몬은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 사람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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