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0화
키이이잉!
시몬은 골렘보드를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아가고 있었다.
라마칸 암벽지대.
흔히 '샌드로드'라고 부르는 거대 교역지의 중요한 통행구간이지만, 토착 몬스터인 랫쳐의 개체수가 대폭 늘어나는 바람에 매년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의 영주도 랫쳐 박멸에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고, 상인들은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다른 곳으로 우회하고 있다.
최근에는 굶주린 랫쳐들이 대규모 상단 호위를 덮치는 시도까지 일어나는 등 피해가 끊이질 않는 지역이었다.
-구울도 확보하고, 몬스터도 제거하는 일거양득의 수업이지!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돕는 건 엘리트 네크로맨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레리온 교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희 선배들의 활약과 흘린 피 덕분에, 현대에 이르러 암흑연합 전역에 네크로맨서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일상에 깊이 녹아들어 이런 인프라가 구축된 거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의 뒤를 이어라!
착.
시몬이 활을 꺼내 들었다. 저 멀리 랫쳐 한 마리가 뛰어가고 있었다.
온몸에 갈색 털이 덥수룩하고, 귀는 뾰족하다. 네 발로 뛰는 고블린 같은 인상이다.
'근육에 손상을 주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시몬이 화살을 꺼내 시위에 매겼다.
'목을 노려 일격에.'
피잉!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이 랫쳐의 허벅지에 꽂혔다.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던 몬스터가 시몬을 발견하고는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 망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본 시몬이 아쉬움에 중얼거리며 화살을 하나 더 꺼냈다.
다음 화살은 정확히 목을 맞췄고, 놈은 얼마 안 가 절명했다.
촤아악-
골렘보드가 랫쳐의 앞으로 다가갔다. 시몬이 뛰어내려 죽은 랫쳐의 시체를 살폈다.
"이걸로는 패스받기는 힘들겠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허벅지 근육에 화살이 꽂혔고, 근육이 점점 경직되고 있다. 이걸 구울로 만들어봐야 기동성이 떨어지고, 최악의 경우 쩔뚝거리는 구울이 될지도 모른다.
그레리온이 정한 기준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몬은 미련 없이 내버려 두고 골렘보드에 올라탔다.
"이런 걸 9마리나 구하라니, 어렵네."
시몬도 아직 랫쳐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룰은 'Pass or Fail'.
여기서 실격되면 구울로 하는 실전 수행평가는 물론, 다음 장송학 수업도 못 듣는다.
'그나마.'
근처에 랫쳐가 있었다는 건 이 근방에 랫쳐 굴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몬은 골렘보드에 올라타 주위를 꼼꼼하게 살폈고, 마침내.
찾아냈다.
모래바닥에 숨구멍 같은 게 뚫려 있었다. 좁아 보이는 구멍이지만, 랫쳐의 탄력적인 체구는 이곳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다.
'여기가 랫쳐의 굴이구나.'
시몬은 골렘보드에서 내려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서먼 골렘>
쏴아아아아아아-
주위의 흙과 모래가 골렘보드를 휘감기 시작했다. 이내 형체가 변화하며, 커다란 골렘의 몸체가 일어났다.
"입구를 넓혀!"
시몬의 외침에 골렘이 육중한 팔을 들어 올려 숨구멍을 내리쳤다.
쿵-!
쿵-!
주위의 지면이 무너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몬은 멀찌감치 물러났고, 골렘이 두 손을 모아 깍지끼더니 힘껏 숨구멍을 때렸다.
콰앙!!
주위의 지반이 일제히 주저앉으며 구멍의 크기가 넓게 변했다. 안에서 '키기긱!' '키긱!' 하고 몬스터의 놀란 듯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시몬은 골렘의 핵을 회수한 다음, 망설임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탁.
바닥에 착지하고 몸을 일으키자 어둠 곳곳에서 번뜩이는 눈동자가 보인다. 랫쳐들이 이를 드러내며 자세를 낮추고 으르렁거렸다.
'제대로 찾아왔네.'
랫쳐 굴 곳곳에서 뼈만 남은 사람들의 유해들, 그리고 엉망으로 찢어진 천 조각과 해진 가방 등이 보였다.
-캬아아아악!
랫쳐 하나가 달려들었다. 시몬은 버릇처럼 주먹을 움켜쥐고 칠흑을 끌어모았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깜빡하고 때려잡을 뻔했네!'
부웅!
랫쳐가 시몬의 몸을 넘어 다른 벽면에 착지했다. 시몬은 자세를 다잡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다들 나와!"
아공간에서 8기의 스켈레톤들이 튀어나왔다. 시몬의 손짓에 동시에 흩어지며 뼈들로 분해되었다.
<본 프리즌>
시몬이 거칠게 팔을 뻗자, 뼈들이 쏜살같이 날아가 근처의 랫쳐들을 붙잡고 벽면에 고정시켰다.
-케에에에!
랫쳐들이 거칠게 버둥거릴 때마다 벽면이 들썩거렸다.
'역시 위험도 3급. 생각보다 힘이 세네.'
시몬이 지휘봉 휘두르듯 휙휙 검지를 흔들었다. 본 프리즌에 연결된 스켈레톤의 팔뼈가 착착 맞춰지더니, 마지막으로 검을 쥔 손뼈까지 연결되었다.
그대로 목을 쳐서 놈을 침묵시켰다.
-케에에에엑!
반대편에서도 랫쳐들이 달려온다. 시몬이 몸을 빙글 돌리며 팔을 휘두르자, 랫쳐들이 날아오는 뼈에 붙들려 벽에 고정되었다.
이어서 시몬이 팔을 중심에 모았다.
스륵. 슥.
바닥에 떨어진 손뼈들이 무기를 주운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시몬이 두 팔을 날개처럼 뻗는 것을 신호로 그대로 돌진.
푹! 푹! 푹! 푹!
본 프리즌에 고정된 몬스터들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이걸로 4기 확보...... 아!'
그때 굴속에서 우르르르 발소리가 들리더니 거의 10기가 넘는 랫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저렇게 많은 3급 몬스터는 위험했다.
"전부 상처 없이 잡는 건 힘들겠네. 일단 절반 확보한 걸로 만족하고."
시몬은 안전하게 본 아머를 입었다. 맹렬하게 쏟아지는 랫쳐들을 보며 명령했다.
"개문."
촤아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뱀 같은 칼날들이 쏟아져나와 시몬의 주위를 휘감으며 구울들을 베어 넘겼다. 사방에 피 분수가 난자했다.
* * *
같은 시각.
소환학과의 모든 학생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개성 넘치는 방법으로 랫쳐를 잡고 있었다.
석차 5위, 아세라즈는 팔짱을 낀 채 숨구멍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딱 좋네."
그녀는 맹독학 시간에 배합한 가스 포션을 꺼내 숨구멍에 몇 개 던져놓았다. 이내 메케한 냄새와 함께 곳곳에서 랫쳐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요컨대, 근육만 보존하면 되는 거잖아?"
그녀는 흑마법으로 숨구멍을 모래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또 하나의 숨구멍. 그곳엔 그녀의 화려한 은빛 갑주를 입은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케에에에에!
-케르륵!
결국 랫쳐들이 내부의 가스에 견디지 못하고 허겁지겁 숨구멍으로 뛰쳐나왔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잡아."
그녀가 말했다.
뛰쳐나오던 랫쳐들이 그대로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붙들려 바닥에 내리 찍혔다. 그물을 던지거나 목만 베고 다니는 나이트들이 있는 등 역할까지 분담할 정도로 뛰어난 컨트롤이었다.
아세라즈는 간단히 미션을 클리어했다.
화르르르르르르륵!
그리고 다들 숨구멍을 찾는 와중에 암벽 위.
검은 용이 하늘을 쏘다니며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땅굴에 사는 놈들보다, 암벽에서 사는 놈들의 어깨가 더 발달해 있는 건 상식.'
석차 3위, 헥토르는 용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가 발사하는 파이어 브레스에 대부분의 랫쳐들이 불에 타 죽고 있었다.
-케에에에엑!
[약해빠진 놈들은 필요 없다! 살아남는 놈들만 구울로 써주마!]
언덕 위의 대규모 랫쳐 부락을 발견한 헥토르도 클리어가 눈앞이었다.
그렇게 검은 용이 하늘을 활보하며 열심히 암벽을 불태우는 사이, 지상에서 그 모습을 하품하며 바라보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이 땡볕에 기운 넘치네~ 과대."
그녀는 의자를 꺼내서 앉다 못해 파라솔까지 펼쳐놓고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열심히 나뭇잎으로 부채질을 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다들 너무너무 고마워요~ 뭘 이런 걸 다."
그녀가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꾸며내며 웃었다. 그녀의 앞에는 깃털이 꽂힌 학생들이 주섬주섬 잡은 랫쳐를 꺼내놓으며 헬렐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여자가 오기 전에, 한 명당 딱 하나씩만 받을게요?"
세르네도 다른 학생들의 랫쳐를 야금야금 받아먹으며 클리어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하아, 하아."
랫쳐의 굴 내부.
로레인은 스켈레톤 나이트 두 기와 함께 단검을 든 채 서 있었다.
무수히 많은 랫쳐들의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커다란 보스급 개체의 랫쳐가 눈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상상도 못 했어.'
그녀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앞을 보았다.
'내가 랫쳐에 몰릴 날이 올 줄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능이 봉인된 자신은 얼마나 허약한지.
그리고 얼마나 자만에 빠져 있었는지.
뭐가 학교 경영이고, 뭐가 차기 키젠 총장이란 말인가.
그간 어른들의 눈치를 보면서 해왔던 모든 게 낯부끄러워졌다.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자.'
휘리릭!
능숙하게 단검을 고쳐 쥔 그녀가 자세를 낮추며 으르릉거리는 대형 랫쳐를 노려보았다.
'그 녀석처럼.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 * *
"으윽, 힘들다."
시몬은 무사히 랫쳐의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랫쳐들과 싸우는 도중 약해진 지반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대로 생매장당할 뻔했다. 시몬은 퉤퉤 모래를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아공간을 열고 수확물을 점검했다. 처음에 확보한 랫쳐 4기와, 방금 추가한 랫쳐 2기. 도합 6기다.
하지만 그레리온이 말한 조건은 최소 9기다.
'굴 하나를 더 찾아내야 해.'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시몬은 아공간에서 막 잡은 랫쳐의 시체 하나를 내려놓고, 로체스트에서 구매한 시체칼 세트를 꺼냈다.
그러고는 앞서 그레리온이 했던 것처럼 빠르게 손질하기 시작했다.
'랫쳐 구울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
뛰어난 후각.
랫쳐 구울은 모래나 흙에 파묻힌 물체까지 정확히 찾아낼 만큼 강력한 탐지능력을 갖게 된다.
이 넓은 곳을 일일이 뒤지는 건 도박이었다. 시몬은 지금 이 자리에서 즉석으로 구울 하나를 만들 생각이었다.
내장을 제거하고, 경직을 푸는 약물을 뿌리고, 근육과 뼈대도 바로 맞췄다.
전부 오늘 배웠던 것들이기에 기억은 선명했다. 아직 손짓이나 도구 다루는 손길은 어색해도 어떻게든 따라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됐나?'
마지막으로 소환 마법진을 구울의 두개골에 새겨넣었다. 두개골과 몸을 연결한 시몬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심호흡을 하고는 흑마법을 발동했다.
<서먼 구울(Summon Ghoul)>
철컥!
그 순간, 죽었던 몬스터의 고개가 번쩍 올라간다.
마법진에서 뻗어 나간 칠흑이 구울의 전신으로 전달되며 흑마법의 힘으로 삐그덕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육지에 올라온 생선처럼 펄떡펄떡 뛰더니, 이내 등을 번쩍 세우고 팔다리로 균형을 유지했다.
"됐어!"
생애 첫 구울 소환에 성공했다.
시몬이 성공에 기뻐하고 있는데, 시몬을 보는 구울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이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모든 언데드는 방금 만든 순간, 언데드로서 네크로맨서에게 완전하게 종속되기 이전의 망자로서 본성이 일어난다. 길들여지기 전에 공격하는 야생동물의 본성 같은 거였다.
주인을 깨문다거나 주위의 생명체를 공격하거나 하는데, 구울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완성된 구울이 입을 쩍 벌리며 시몬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탓!
칠흑까지 밟고 뛰어오른 시몬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구울의 머리를 붙잡아.
쿵-!
바닥에 내리찍었다.
들썩들썩하고 시몬의 손에 붙잡힌 구울이 으르릉거리며 빠져나오려 했다.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멈춰.]
시몬의 절대명령이 발동하자, 경련하듯 몸부림치던 구울이 축 늘어졌다.
구울의 생전, 랫쳐는 단체 생활을 하고 강자에 복종한다.
그 속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한 뒤에야 시몬이 손을 놓고 물러났다.
"일어나."
시몬이 명령하자 구울이 번쩍 일어났다. 네 발로 몸을 지탱한 채 헥헥거리는 모습은 마치 강아지 같았다.
"옳지."
시몬이 손을 내밀자 낑낑거리며 손에 얼굴을 슬쩍슬쩍 비비는 모습은 영락없는 개였다.
"소환한 직후에 부려 먹어서 미안하지만, 찾아줄 게 있어."
구울은 늑대처럼 하늘을 향해 울부짖더니, 따라오라는 듯 신호하며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