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1화
퍼억!
퍽!
키작은 소년은 땡볕 아래 얻어맞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랫쳐의 숨구멍을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던 토토는, 근처에서 화살을 맞고 쓰러진 랫쳐 하나를 운 좋게 발견했다.
'누가 버리고 갔나 보다!'
살펴보니 근육 쪽에 화살이 제대로 박혀 있었다. 소환 재료학 교수 그레리온의 기준에 미달될 것 같으니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이때 토토의 머리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론 이걸로 평가는 못 받겠지만, 이 녀석을 구울로 만들어서 다른 랫쳐들을 찾아내면 어떨까?
토토는 바로 작전을 실행했고, 랫쳐를 구울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퍼억! 퍽!
구울은 완성되자마자 자신을 깔아뭉개고 미친 듯이 때리고 있었다.
"사후본능 생각 못했다악!"
필사적으로 키젠 교복으로 머리를 감싸 막고 있었지만 더럽게 아팠다. 머리가 양옆으로 휙휙 돌아가고 코에는 피가 터져서 코피가 줄줄 흘러댔다.
"아."
방금 본인이 만든 소환수에게 얻어맞으며, 토토의 시야는 구울 너머 흔들리는 햇빛으로 향해 있었다.
나.
이대로 죽는 걸까?
아마도 이대로 죽으면, 대륙 전역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날 것이다.
<키젠 2학년 소환학과 학생, 본인이 만든 구울에 맞아 죽다.>
"아아아악! 그건 죽어도 안 돼애애액!"
토토가 꾸애액 소리를 지르며 두 발에 힘껏 칠흑을 모아 구울을 차 냈다. 구울이 뒤로 벌러덩 넘어가고 토토가 헥헥거리며 엎드린 채 기어갔다.
-케에에에에!
구울이 놓치지 않겠다는 듯 뛰어들어 다시 토토의 등 위에 올라탔다.
번뜩이며 다가오는 날카로운 발톱을 보며, 토토가 비명처럼 말했다.
"사, 살려......!"
퍼억!
구울이 뭔가에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케에에!
"?"
그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옆을 보았다. 작고 이상한 인형 같은 것들이 구울의 팔다리를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
한 여학생이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토토는 귀 끝까지 벌게졌다.
'하, 하필이면 여자애 앞에서!'
그녀는 조용히 헛기침했다.
"비밀로 해줄게."
그렇게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사라졌다. 그녀가 물러나자 구울을 잡고 있던 인형도 사라지려 했다.
속박이 풀리려 한다.
"크읍!"
토토는 수치심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의 뼈 하나를 꺼내 몽둥이처럼 쥐었다.
"아아아아아아악!"
큰 소리로 절규하며, 속박에서 빠져나오려는 구울의 대가리를 연달아 후려갈겼다.
그리고 그날,
토토는 마투에 눈을 떴다.
* * *
그레리온이 말했던 두 시간이 가까워졌다.
학생들도 시시각각 시작장소에 도착하고 있었다.
"조교들. 평가를 진행해라!"
"예!"
학생들은 줄을 맞춰서 돗자리 위에 랫쳐의 시체를 늘어놓았다. 평가 기준은 중급 품질의 랫쳐 9기 이상을 보유할 것.
조교들은 신중하게 랫쳐의 상태를 살피고 말했다.
"피에르 버클러 학생, 랫쳐 9기 확인. '패스'입니다."
"됐다!"
남학생이 환호했고, 조교는 리스트에 그의 이름을 쓰고 그 옆에 숫자 칸으로 넘어갔다.
"아공간에 랫쳐가 더 있나요? 모든 랫쳐를 꺼내셔야 합니다."
"아, 9기만 채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안 꺼낸 것들은 상태가 별로라......."
"모든 랫쳐를 꺼내셔야 합니다."
조교는 기계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아공간에서 세 기의 랫쳐를 꺼냈다.
"두 기는 품질미달. 한 기 추가해서 총 10기 확인했습니다."
그러고는 웬 도장을 꺼내 랫쳐의 몸에 빠르게 꾹꾹 찍어댔다. 마나로 세기는 마나도장이었다.
'굳이 도장을?'
"수고했습니다. 다음."
복귀한 학생들은 검사를 맡고 쉬러 갔다.
그리고 조금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레리온과, 그 옆에 손바닥을 비비며 굽신거리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아이고 교수님! 이렇게 어려울 때에 학생들을 데려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미리미리 언질이라도 주시지!"
그는 무려 이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였다. 그레리온은 선글라스를 붙잡으며 말했다.
"수업일 뿐이니 감사 인사는 됐소."
이 근방은 랫쳐의 개체 수가 폭발하는 바람에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가끔 떠돌이 네크로맨서나 언데드 공장에서 나온 사람들이 구울을 만든다며 방문하곤 했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었다.
구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점 때문에 언데드 공장에서도 인기 있는 품목은 아니었고, 대규모 소탕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학생들이 와주면 한숨 덜었다. 영지 측에서도 그런 점을 어필해서 상단의 통행을 유도할 수 있다.
"대단한 건 아니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조금 준비해 봤습니다!"
영주가 짐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원한 물과 빵, 과일 같은 것들이 들어 있는 모습에 쉬고 있던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리온은 시큰둥한 표정이었으나,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원품으로 알고 받겠소. 조교들! 패스받은 학생들에게 나눠줘라!"
"예! 교수님!"
그리고 이즈음에 시몬도 도착했다.
10분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랫쳐들을 늘어놓고, 조교들이 이름을 썼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랫쳐 총 12기. '패스'입니다."
시몬은 비로소 웃음을 보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2기의 랫쳐에 도장을 받고, 물과 간식을 받았다.
마침 뒤 차례였던 로레인도 커다란 랫쳐 하나를 내려놓고 있었다. 학생들이 그 크기를 보고 웅성거렸다.
"로레인 아크볼드 학생, 랫쳐 총 10기. '패스'입니다."
저렇게 큰 구울이라면, 내일 수행평가에서 유리할 것 같았다.
시몬은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3위 헥토르와 5위 아세라즈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같은 동아리의 피즈제럴드도 이제 막 들어와 9기의 랫쳐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화이트는?'
요주의 편입생인 화이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토토 또한 자리에 없었다.
그레리온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3분 전이다. 제시간에 캠프에 도착한 학생들만 평가를 받겠다."
앉아서 빵을 깨작거리던 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는, 저 멀리 달려오는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뭐 해? 빨리 와!"
"3분 남았대!"
시작지점으로 달려오던 학생들이 식겁하며 속도를 높였다. 심지어 '칠흑 체내 분화'까지 쓰면서 우다다다 달려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레리온이 시계를 보았다.
"2분 전이다."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빨리 들어오라며 외치고 있는 그때, 한 남학생이 '에혀~'하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훌쩍 일어났다.
"다들 2학년이 돼서 빠져가지곤."
껌을 쫙쫙 씹고 있는 그는, 시험 시작 30분 만에 20마리의 랫쳐를 확보한 유일한 소환학과 학생이었다.
"뭘 빨리 들어오라고 응원까지 해? 여기서 떨어뜨리면 경쟁자가 줄잖아. 키젠답게 놀아야지."
"또 뭔 짓을 하려고?"
그의 친구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오는 거 방해해야지."
"이 미친놈아. 교수님이랑 조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당연히 직접 방해하면 안 되지. 어떻게 하는지 딱 봐."
그는 지켜만 보라는 듯 마법진을 그리고 뭔가를 작동시켰다.
쿠르릉-
바닥에서 뭔가 파장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주위의 땅을 파고 랫쳐들이 튀어나왔다. 암벽 위에서도 랫쳐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허억!"
이미 랫쳐를 다 모으고 달려오던 학생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난데없이 랫쳐들이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거 뭐야아!"
"그냥 달려!"
학생들이 랫쳐를 흑마법으로 격추하며 계속 달렸다.
그레리온은 일련의 사태에도 나서지 않고, 제자리에 굳게 선 채 시계를 보았다.
"1분 남았다."
시몬도 긴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 그때 텁! 하고 그의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토토 봤어?"
피츠제럴드였다. 시몬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모, 못 봤는데. 너는?"
"나도."
으아아아아!
마지막 주자인 학생들이 팔다리에 랫쳐를 매단 채 뛰어 들어왔다.
"X발! 마지막에 랫쳐 끌어모은 거 어떤 새끼야!"
죽을 듯이 숨을 토해낸 학생이 주위를 사납게 훑었다. 그리고 당사자는 모른 척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레리온이 말했다.
"30초 남았다."
"으허헉!"
알란드에서 온 편입생, 벤즈가 테이밍으로 조종하는 랫쳐 위에 말처럼 올라타서 들어왔다.
"이제 몇 명 남았지?"
"여기 총 50명이야!"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쿠쿵-
하늘에 커다란 하얀 구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쐐애애액-! 하고 전진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출발지점 안으로 들어왔다.
"꺄아아아!"
어마어마한 후폭풍에 학생들이 자세를 낮추며 몸을 웅크렸다. 거칠게 안으로 들어온 하얀 구체는 전구의 불빛처럼 꺼졌고, 그 안에서 편입생 화이트가 툭 하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돌아보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10초."
이제 51명.
소환학과 학생들이 마지막 한 명을 위한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5초!"
"4!"
"3!"
"2!"
"1!"
푸화아아아악!
그때 지면에 구멍이 뚫리며 커다란 지렁이 같은 괴물이 튀어나왔다.
"데, 데스웜?"
다루기 극도로 까다롭다는 독특한 언데드 소환수 중 하나인 '데스웜'이었다.
그것이 꾸엑하고 입을 벌리더니, 툭! 하고 뭔가를 뱉어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녹색 액체에 둘러싸인 검은 뭔가가 보였다.
사람이었다.
"종료."
그레리온이 선언하고, 수석조교가 타이머를 멈췄다.
학생들이 큰 소리로 환호했다. 52명 모두가 시간 안에 들어온 것이다.
시몬과 피츠제럴드가 얼른 뛰어들어 가서 녹색 액체에 둘러싸인 토토를 끄집어냈다.
"아하하! 놀랐잖아. 토토."
시몬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돌연변이 멤버가 이 정도에 떨어질 리가 없지."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토토는 말할 힘도 없는 듯 '으어어'하는 표정으로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레리온이 팔을 뻗었다.
"방금 들어온 학생들, 확인하겠다."
화이트는 무려 20기의 랫쳐를.
그리고 토토는 아슬아슬하게도 9기를 채웠다.
마지막 아홉 번째 허벅지에 화살이 박혀 있던 랫쳐가 애매했는데, 그레리온이 직접 다가와 판단했다.
"화살에 맞아 속도는 떨어지겠지만, 상체 골격이 발달되어 완력은 기대할 만하다. 아슬아슬하지만 통과다."
"와!"
토토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고, 시몬은 배를 잡고 웃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싶었다.
"화살에 맞은 그거, 내가 잡았다가 통과 못 할 줄 알고 내버려 둔 랫쳐야."
"진짜? 고마워 시몬! 덕분에 살았어!"
그레리온이 쿵! 하고 발로 바닥을 밟고는, 특유의 다리를 벌리고 팔짱을 낀 포즈를 취했다.
"전원 주목!"
학생들의 모든 시선이 그레리온에게로 향했다.
"키젠이라면 당연한 결과니 너무 좋아하진 마라! 그래도 칭찬은 해두겠다. 이번 수업, 소환학과 52명 전원 '패스'다. 축하한다."
학생들은 주위의 동기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레리온이 선글라스를 벗어들었다.
"등급제도 아닌 이번 'Pass or Fail'에서, 굳이 동기들을 방해한 녀석도 있었다."
이글거리는 맹금류 같은 눈동자가 한 남학생을 보며 번뜩였다. 찔린 한 명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경쟁이 아니라, 정당한 경쟁이 두려운 겁쟁이들의 뒷수작이다! 다른 교수들은 몰라도 나는 그런 수작질은 좋아하지 않아. 키젠이라면 키젠답게 내일 수행평가에서 실력으로 경쟁해라!"
달칵.
그레리온은 거기서 더 말하지 않고 선글라스를 쓰고는 학생들을 보았다.
"30분 휴식 후, 키젠으로 돌아가 다음 수업을 진행한다! 쉬는 시간 동안 이번에 확보한 재료로 미리미리 구울을 만들어놓도록."
"예! 교수님!"
그레리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철저히 준비해라. 다음 꼬맹이들의 과제는 훨씬 더 벅찰 테니."
시몬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알란드에서 온 벤즈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야, 시몬. 근데 꼬맹이들이란 게 누구야?"
시몬이 씩 웃었다.
"보면 깜짝 놀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