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3화
"실습!"
"시작이야!"
시몬이 팔을 내지르는 것을 신호로, 그의 구울이 개조 스켈레톤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스켈레톤 또한 도끼를 기울이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섣불리 들어가면 당해.'
시몬은 구울의 자세를 더더욱 낮추게 한 다음, 도끼를 쥐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돌진시켰다.
후웅!
도끼가 무지막지한 궤적으로 휘둘러진다. 가까스로 자세를 낮춰 빠져나온 구울이 개조 스켈레톤의 등 뒤로 돌아왔다.
끼긱-
개조 스켈레톤은 바로 뒤돌아보지 못했다. 허리가 먼저 뒤따라 돌아가고는 다리도 돌아간다.
'생각했던 것보다 회전전환이 느려. 그리고.'
갑옷으로 보호받는 전면에 비해, 후면의 방어는 볼품없다.
'구울의 기동성으로 후방을 노리는 게 이 실습의 핵심이야!'
개조 스켈레톤이 뒤로 돌아온 구울의 움직임을 따라잡았을 때, 이번엔 구울이 개조 스켈레톤을 앞질러 반대 방향으로 들어왔다.
완벽하게 타이밍을 뺏었다.
'지금!'
탓!
구울이 지면을 걷어차며 날아올랐다. 방어구로 보호받지 않는, 딱 봐도 저 스켈레톤의 가장 큰 약점으로 보이는 뒷목.
구울이 입을 벌리고 목에 이빨을 박아넣으려는 순간.
까드드득!
'!'
도끼날이 순식간에 따라와 구울의 머리에 파고들었다.
제대로 당했다.
구울이 쿵! 하고 쓰러지고 개조 스켈레톤이 득의양양하게 도끼를 내리찍어 구울을 파괴했다.
"첫 시도 실패.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남은 구울 수는 11기입니다."
뒤에서 개조 스켈레톤을 움직이는 수석조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린다.
시몬은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짚었다.
소환수가 완전히 파괴됐을 때, 그 소환수의 사념과 연결되어 있는 네크로맨서에게도 정신적 타격이 들어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몇몇 학생들도 멍한 표정이거나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헥토르도 마찬가지.
모두 당했다.
"그럼, 다음."
수석조교가 묵묵히 말했다.
"두 번째 구울을 꺼내주십시오."
"......."
다른 조교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학생들은 이를 악물며 아공간을 열고 구울을 꺼냈다.
시몬도 구울을 꺼내며 머리를 짚고 있던 손을 내렸다.
'장송을 걸 틈도 없었어.'
스켈레톤의 목을 물어뜯는 순간에, 마법진에 대각선을 긋고 장송 효과로 목을 절단 내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읽혔고.
무엇보다 구울의 발이 느렸다.
'생각을 바꾸자.'
시몬의 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갔다.
'지금 내 실력으로 폭주의 지속시간은 1분 안팎이겠지만, 그걸로 충분해.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무조건 장송 먼저 걸고 공격하자.'
뒷짐을 쥐고 있던 수석조교가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준비됐으면 얼마든지 들어오셔도 됩니다."
너무나도 여유 있는 목소리.
시몬 또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오른팔을 척 세워 들었다.
구울이 자세를 낮추더니 흙바닥을 거칠게 박차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전투를 길게 보면서, 예열하자.'
장송을 걸려면, 소환 마법진에 흐르는 칠흑순환이 완전해야 한다.
모든 룬어와 수식이 제대로 작동할 때 리노의 황금선을 그어야 모든 힘이 제대로 전달된다.
'예열, 예열하는 거야.'
시몬의 구울이 개조 스켈레톤 주위를 빙빙 돌았다. 딱 경기장 선을 넘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한 움직임.
그러면서도 칠흑을 흘려 넣어 마법진의 한 귀퉁이에 선을 그을 준비를 했다.
-따닥!
결국 저쪽 스켈레톤이 먼저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피해!'
부웅! 부웅!
구울이 아슬아슬하게 도끼날을 피하는 순간, 구울의 마법진이 더더욱 선명해졌다.
마법진 전체가, 구울을 이루는 생태계가, 일말의 여유도 없이 100% 활동하며 이 전투에서 이기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시몬은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을 그을 때는 과감하게!
린, 룬 교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느릿하게 선을 그으면 제 손으로 마법진을 절단 내는 짓일 뿐이다. 칠흑이 이 선을 새로운 회로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빠르게 그어야 했다.
'흐읍!'
시몬은 칠흑을 움직여 구울의 소환 마법진을 선으로 갈랐다. 마법진 전체에 생태계처럼 순환하던 힘이, 새롭게 생긴 선을 따라 이동한다.
'됐나?'
효과는 즉시 일어났다.
구울의 눈빛이 변했다.
언데드의 전신에 칠흑이 벅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터엉!
폭발적인 칠흑으로 바닥을 박차며 쏘아진 구울이 개조 스켈레톤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대로 훌쩍 뛰어올라 이빨을 목뼈로 잡고, 뒷다리로는 허리를, 앞다리로는 팔을 붙들었다.
"됐어!"
"시몬이 잡았다!"
"헥토르도야!"
와아아아아!
지켜보던 학생들이 아우성쳤다.
다른 다섯 명은 진작에 구울을 잃고 앉아 있는 사이, 시몬과 헥토르가 똑같이 구울을 개조 스켈레톤의 등에 올라타게 하는 데 성공했다.
개조 스켈레톤들이 거칠게 몸부림쳤다.
"역시 에이스들!"
"조금만 더!"
땀을 뻘뻘 흘리던 시몬과 헥토르의 시선이 서로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홱 되돌렸다.
'내가 더 빨리!'
두 사람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르려는 순간.
쿠웅!
구울의 장송 지속시간이 먼저 끝났다. 개조 스켈레톤의 격렬한 저항을 버티지 못하고 구울이 바닥에 찍혔다. 그대로 도끼와 내려와 퍽! 소리와 함께 머리가 쪼개졌다.
으적!
바로 뒤이어 헥토르의 구울도 진압당해 같은 꼴이 됐다. 두 소년이 인상을 찡그리며 비틀거렸다.
이번에도 수석조교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시도 실패.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남은 구울 수는 9기입......."
그때였다.
퍼어엉!
머리가 찍혀 쓰러졌던 구울의 몸이 갑자기 풍선처럼 폭발했다. 수석조교도 놀랐는지 움찔했고, 곳곳에서 작은 비명이 들렸다.
'폭발?'
물론 큰 위력은 없었다. 구울의 잔해가 개조 스켈레톤에 묻었을 뿐.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
수석조교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하려고 했던 거지?'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는데, 린과 룬 교수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잘했어 잘했어! 방금 두 아가가 괜찮은 성과를 냈는데."
"왜 실패했는지 다 같이 알아볼까?"
쌍둥이 교수가 허공에 마법진을 펼쳤다.
"앞서 실패한 다섯 명의 아가들은 모두."
"선을 애매하게 그어서 실패했어."
그렇게 힘들게 제작했던 소환 마법진을 양단할 기세로 선을 긋는 건, 보기보다 상당한 용기와 과감성을 필요로 했다.
다른 학생을 모두 선을 느리게 긋거나 망설여서 실패했다.
"장송을 흉내나마 성공시킨 두 아가들은 과감하게 선을 그었어! 하지만!"
쌍둥이 교수가 시몬과 헥토르의 마법진을 동시에 펼쳐서 보여주었다.
선이 모두 일직선이었다.
"너무 과감해서 문제였지!"
"일직선으로 쭉 긋는 게 아니라 내부의 기관들을 이으면서 나와야 했어! 살짝 굴곡진 S자 모양으로!"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고, 헥토르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말이 쉽지, 실전에서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수석조교가 뒷짐을 지고 말했다.
"그럼 다음 구울을 준비해 주십시오."
다시 일곱 명 전원이 구울을 꺼냈다.
다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버티기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다. 장송을 걸기 위해서는 소환수와의 사념 연결이 강하게 되어야 가능한데, 그 소환수가 도끼로 썰리는 감각도 네크로맨서에게 이어진다.
정신적인 타격이 너무 큰 것이다.
지켜보던 학생들도 혀를 내둘렀다.
"......다들 실탄은 아홉 발 이상 있으니까, 아홉 번은 도전할 수 있긴 한데."
"멘탈이 버틸지 모르겠네."
이런 와중에도 시몬은 열의를 올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벌써 세 번째 차례.
여기서 과제를 패스하고, 최소 9기의 구울을 가지고 실전에 들어가는 게 목표였다.
'해보자.'
세 번째 시도가 시작됐다. 시몬은 이번에도 구울을 빙빙 돌려가며 공격을 피했다.
전 시도에 비해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
공격 패턴을 읽고 있으니 좀 더 과감하게 개조 스켈레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고, 좀 더 빠르게 구울의 마법진 순환율과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다.
'지금!'
타이밍이 왔다는 생각이 되는 순간, 시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구울의 마법진에 선을 그었다.
콰콰콰-!
구울의 몸에서 거대한 칠흑이 뿜어져 나오더니 포탄처럼 돌진했다. 수석조교는 깜짝 놀랐다.
'정면?'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개조 스켈레톤이 두 손으로 붙잡은 도끼를 힘껏 내리쳤고, 구울의 몸은 먹물 같은 검은 궤적을 그리며 지나쳤다.
쩍!
지켜보던 학생들이 놀란 소리를 쏟아냈다. 도끼를 든 스켈레톤의 팔이, 구울의 입에 떡 하니 물려 있었던 것이다.
"와! 빨라!"
"언제 팔을......!"
구울이 퉷 하고 팔을 뱉으며 자세를 낮췄다.
개조 스켈레톤이 두 번째 무장인 단검을 허리춤에서 뽑아 휘둘렀지만.
텅!
제대로 장송을 먹은 구울은 그냥 순수한 팔 힘으로 단검을 쳐내고 있었다.
와아아아!
시몬의 활약에 몰입하고 있던 학생들이 환호했다. 이제는 등 뒤로 돌아가는 작업도 불필요하다는 듯, 구울은 힘으로 개조 스켈레톤 위에 올라타 깔아뭉갰다.
'아무리 장송에 성공했다지만, 굳이 후면이 약점이라고 알려줘도 정면으로 오는 건가요.'
수석조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만의 대가를 가르쳐 드리죠.'
터업! 텁!
개조 스켈레톤의 몸에 인력이 발휘되더니, 구울이 바닥에 뱉어둔 팔이 다시 어깨에 붙었다. 그 두 개의 팔로 구울을 강하게 붙잡았다.
'시몬 학생의 마법진은 이번에도 S자가 아닌 직선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몇 초 후면 장송의 지속시간이 끝날 터.'
그러나.
몇 초는커녕, 1분 가까이 흘러도 구울의 힘은 여전했다.
눈은 검푸른 칠흑으로 타올랐고, 온몸에서 끊임없이 먹물 같은 칠흑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꽝!!
구울이 머리로 개조 스켈레톤의 이마를 들이박았다.
두개골이 완전히 박살 나고, 스켈레톤의 소환 마법진을 강하게 짓밟아 손상시켰다.
승리를 확정지은 구울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며 맹렬하게 울부짖었다.
이번 실습 첫 성공자의 등장.
학생들도 큰 소리로 축하해 주었다. 끈질기게 들러붙었지만 이번 차례에서는 아깝게 패배한 헥토르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사념 연결이 강제로 끊기며 이마를 부여잡은 수석조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패스입......."
그러나.
아직 그의 집중력은 끊기지 않았다.
당장의 과제, 적을 쓰러트린 것보다 뭔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시몬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짓을?'
"조교 선생님."
그때 멍한 눈의 시몬이 입이 열렸다.
"조심하세요."
수석조교가 섬찟한 느낌을 받으며 칠흑방패를 펼쳤다. 그 즉시 펑! 소리와 함께 구울을 중심으로 커다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쿠구구구―
"후우우우."
시몬이 마침내 긴 숨을 토해내며 시간을 체크했다.
'1분 15초.'
장송의 지속시간을 확인한 것이다.
"잠깐, 시몬!"
"뭘 한 거야?"
그때 룬, 린 교수가 다가왔다. 시몬이 그들을 보며 대답했다.
"장송의 지속시간을 늘리려고 했었습니다."
"어떻게?"
시몬은 막힘없이 설명했다.
"좀비가 시체폭발을 쓸 때처럼, 처음부터 마법진에 과부하를 건 상태로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구울의 전신에 요동치는 칠흑의 움직임을 순환, 다시 마법진에 제공해서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조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몬의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너무나도 위험한 짓이었다. 쌍둥이 교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메리트보다 리스크가 훨씬 많아."
"앞으로 그렇게 위험한 기술은 금지야."
"네, 죄송합니다."
아무튼, 시몬은 무사히 무려 9기의 구울을 남겨놓고 본 시험에 가게 됐다.
시몬의 빈자리는 바로 다른 학생이 채웠다.
"시몬! 수고했어!"
시몬이 자리로 돌아오자 근처에 있던 토토가 다가왔다.
시몬은 바로 아공간에서 구울을 꺼냈다.
"토토."
"왜?"
"나."
시몬의 눈이 진지해졌다.
처음엔 장송의 지속시간을 늘리기 위한 실험일 뿐이었지만.
"구울도 폭발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토토가 또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