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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34화 (53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4화

어떤 연습도 없이, 실습만으로 구울의 장송을 완성해야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수업.

처음엔 학생들도 헤매는 것 같았지만, 극한의 경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2학년들답게 저력이 있었다.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균적으로 6기 정도의 구울을 소모할 즈음에 장송을 깨우쳤고, 개조 스켈레톤을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네임드 학생들은 역시 장송도 잘했다. 헥토르는 4기, 아세라즈는 무려 2기로 끊었다.

가장 파격적인 건 이능을 쓰지 못하게 된 로레인이었는데, 그래도 언데드 컨트롤만큼은 자신이 있었는지, 정말로 장송 없이 개조 스켈레톤을 잡아내는 장관을 연출했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는 불가능한 난관으로 보였던 과제였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52명 전부 Pass. 이번 수업에서 가장 못 한 학생도 1기의 구울만 남기고 기어이 장송을 성공해 냈다.

"아가들 수고했어!"

"잘했어!"

린, 룬 쌍둥이 교수가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멘탈이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일단은 내일 실전에 무사히 응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눈빛만큼은 밝았다.

"내일 오후에 구울을 활용한 실전이 있을 거야!"

"도장이 찍힌 구울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조금 더 대비하고 싶다면 일반 구울을 써서 연습해도 돼!"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잘 가~"

학생들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 * *

알록달록.

노랗고 빨간 저마다의 개성 가득한 낙엽들이 고즈넉하게 내려오고 있다.

바스락-

시몬은 가을 낙엽을 밟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취에 취해 편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얼마 안 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낙엽에 묻혀 있는 커다란 용의 뼈.

"......하하."

올해 과제인 본 드래곤이다.

몇 번을 봐도 믿기지 않고, 몇 번을 봐도 전율이 인다.

가끔 힘을 내고 싶을 때나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 네프티스가 준 이 아공간에 들어오곤 했다.

어떤 소환학적 조치도 하지 않았음에도, 뼈만 남은 용의 사체에서는 벌써 검은 기운 같은 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재료로 언데드를 만들면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까?

"아직은 시도도 못 하고 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완성해 줄게."

저 본 드래곤은 올해의 과제.

당장은 내일 있을 구울의 수행평가에 총력을 다해야 했다.

결의를 다진 시몬은 아공간에서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다.

아공간 밖으로 나오니, 어둑어둑해진 밤이었다.

시몬은 발에 밟고 있는 구슬을 꺼내 소중히 품에 넣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드디어 시간이 됐다.

"좋아, 해보자!"

시몬이 제 뺨을 짝! 소리가 나게 두들겼다.

작전 개시다.

* * *

학생들의 도시, 로체스트.

주말에 학생들이 놀러 가길 손꼽아 기다리는 로체스트는 로크섬에서 가장 큰 도시다.

다만 평일 저녁에는 담을 넘는 학생들 외에는 인적이 그리 많지 않았고, 이런 때에는 주민들의 파티가 시작되곤 했다.

쿵짝- 쿵짝-

오래된 트럼펫과, 낡아빠진 드럼의 합주 소리가 들린다.

트럼펫은 옆 가게 푸줏간 아저씨가, 드럼은 무기 장인이 두들긴다.

다들 구수한 리듬을 즐기면서 거품 가득한 흑맥주 잔을 들어 올린다. 와하하하! 크고 경박스러운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로체스트 외곽에 위치한 흑상어 주점.

다소 올드한 분위기의 주점이었기에 학생들이 선호하는 곳은 아니지만, 로체스트의 주민들은 날마다 단골처럼 들락거리곤 했다. 교내의 나이 많은 하수인들도 자주 찾았다.

"하하하하!"

그리고 1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이 흑상어 주점의 터줏대감이자, 가장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난 인물이 있었다. 테이블 하나를 떡 하니 차지한 여자가 흑맥주가 든 드럼통을 쌓아놓고 마시고 있었다.

꿀떡꿀떡-

크고 무거운 드럼통을 팔 힘만으로 들어 올리고는, 입을 벌리고 냅다 흑맥주를 콸콸 들이붓는 모습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끌끌 웃었다.

"날마다 보는 광경인데 질리지 않아."

"거, 살살 마시쇼! 교수님! 숨넘어가겠소! 으하하!"

타앙-!

테이블에 드럼통을 내려놓은 그녀가 술기운으로 붉어진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시꺼! 내가 마시든 말든 어?"

2학년 맹독학과 담당교수, 별야 툰 소쿰 마르라트.

옆의 수염 난 아저씨가 맥주잔을 내밀었다.

"교수님, 요즘도 애들이 힘들게 하남?"

"에이~ 그래도 1학년 때에 비함 훨씬 낫지! 애들도 이제 한 살 먹고 개념은 생겨서."

별야는 무려 드럼통을 훌쩍 들어서 아저씨의 맥주잔에 맞부딪혔다.

"아, 근데 가끔 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초원에서 벗어나 이런 곳까지 와서 교수 노릇 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하하하하! 이 아가씨는 맨날 한탄 레퍼토리가 똑같아!"

"초원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섭하지! 학생들 평가도 좋다며? 오래오래 해 먹어야지!"

"닥쳐! 이것들아!"

하하하하!

대륙 최고 권위자인 키젠 교수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별야가 워낙 털털한 성격인 걸 알고 있으니 주민들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별야 본인도 하수인인가 뭔가 하는 인간들처럼 빌빌 길면서 허리를 꺾는 것보단, 이런 분위기가 더 편했다.

"아, 근데 오늘따라 왤케 술맛이 구려!"

벌써 두 통을 비워낸 별야가 드럼통을 털털 흔들며 말했다.

"사장! 어떻게 된 거야!"

주점 주인도 어깨를 으쓱했다.

"교수님, 그거 어제 드신 거랑 같이 들어온 겁니다. 어제는 맛있다면서요?"

"아우씨, 몰라! 맛없어!"

그녀가 빈 드럼통을 테이블에 쿵! 쿵! 두들기다가 대충 바닥에 홱 굴려 버렸다. 그러곤 몽롱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쓰읍- 오늘따라 초원이 왤케 그립......."

"안녕하세요? 교수님."

누군가 당돌하게 걸어와 별야의 테이블 맞은편 자리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검은 로브를 걸치고 있는 남자였다.

"뭐야? 너."

그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오늘따라 술맛이 나쁘다는 소리를 들어서요."

남자는 품에서 새로운 술을 꺼내 그녀 쪽으로 들이밀었다.

"!"

그것은 항아리처럼 생긴 술병이었다. 입구는 종이 같은 것으로 막혀 있고 끈으로 고정되었다.

"초원의 마르라트족들은 특별한 마유주를 즐겨 먹는다고 하더라구요."

"너, 뭐야. 어떻게 이걸......."

남자는 로브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아직 앳된 기가 남아 있는 푸른머리의 소년이 빙긋 웃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교수님."

다름 아닌 시몬이었다. 그녀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뭐야! 갑자기 왜 니가 여기서 튀어나와?"

"일단 한잔 드시고 이야기하시죠. 제가 따라드릴게요."

시몬이 얼른 술잔을 준비하려는 그때, 그녀가 항아리 술의 입구를 텅! 하고 막았다.

"뺀질이가 보냈지? 무슨 속셈이냐?"

'윽.'

그녀가 말하는 뺀질이는 딕 헤이워드를 뜻했다.

사실 시몬은 여기 오기 전에 학생회실에 먼저 들렀었다.

-별야 교수님께 부탁할 게 있다고?

딕의 물음에 시몬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교수님이 갈 곳이야 뻔하지! 로체스트의 흑상어 주점에서 진탕 마시고 있을 거야. 그리고 이거.

딕은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작은 항아리 같은 것을 꺼내 시몬에게 내밀었다.

-원래 내가 나중에 써먹으려고 구해둔 건데, 너니깐 특별히 준다. 이거 따라드리면 미친 듯이 좋아하실 거야.

-......근데 이렇게 귀한 걸 내가 써도 될까?

-에헤이~ 우리 사이에 뭘 또 새삼스레! 가져가. 가져가.

대충 그렇게 된 상황이었다.

시몬은 민망함에 가볍게 헛기침했다.

"괘, 괜찮으시다면 맹독학 관련해서 교수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오호-"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상어처럼 삼각형으로 삐쭉삐쭉한 이빨이 드러났다.

"내 맹독학 수업도 안 신청한 녀석이, 인제 와서 뭐가 그렇게 궁금할까아?"

시몬은 웃는 얼굴 그대로 뻣뻣해졌다.

역시 예의가 아니었던 걸까?

뭐라고 말씀드리지?

시몬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본 별야가, 이내 히죽 웃으며 꺄하하하! 큰 소리로 웃어댔다.

"농담! 농담이야 인마!"

그러고는 시몬의 어깨를 강하게 두어 번 내리쳤다. 그때마다 시몬의 몸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한 학년의 수석에 학생회장이란 놈이! 아직 맹독학에 관심이 있다는 건 희소식이지!"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팔을 내려놓았다.

"게다가 나는 맹독학과 외에도 2학년 전체의 맹독학을 전담해! 내 수업을 듣지 않는 것들도 다 내 학생이고! 내게 물어볼 권리가 있어!"

그렇게 말한 그녀가 항아리 술의 끈을 풀어내더니, 단번에 한 손에 쥐고 들이켰다.

꿀떡- 꿀떡-

"캬하!"

그녀가 아저씨 같은 추임새를 흘리며 속이 뻥 뚫린다는 듯 웃었다. 눈에는 잠시 아련한 추억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맛,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대륙의 그 어떤 진귀한 술도 비할 수 없지."

그녀가 탕! 하고 술병을 내려놓으며 시몬을 보았다.

"뭘 원해?"

시몬은 기다렸다는 듯 가방을 열고 노트를 꺼냈다. 그러고는 별야가 보기 쉽도록 펼쳐 들었다.

"이런 걸 만들고 있습니다!"

"흠-"

그녀가 턱에 손을 올리고 노트를 훑어보았다.

"소환학 쪽은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요, 역시 독을 다루는 부분은 어려워서......."

그녀가 시몬의 손에서 노트를 홱 뺏어 들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내 눈을 부릅뜨고 노트를 응시했다.

마치 노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한쪽 무릎까지 테이블에 올려둔 상태였다.

"호."

마침내 그녀의 입가에 재밌다는 미소가 지어졌다. 고개를 든 그녀가 시몬과 눈을 마주쳤다.

"평소 미친놈이란 소리 많이 듣지?"

"네, 네? 아뇨."

"여기서 이럴 게 아니지. 따라와!"

노트를 시몬의 품에 던진 그녀가 겉옷을 챙겨 입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왕 조력을 줄 거라면 제대로 해야지 않겠어? 내 연구실로 간다!"

"아,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문제의 구울 실전시험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교수들은 연이은 'Pass or Fail' 수업으로 쉴 틈 없이 학생들을 밀어붙이고, 실전 시험도 바로 그다음 날로 정했다.

단시간 내에, 얼마만큼 문제점을 억제하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가 핵심.

소환학과 학생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밤을 지새우며 구울 연습과 개조에 올인했다. 기숙사의 지하 실습실은 2학년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말소리 한번 없이 깨작거리는 도구 다루는 소리만 들렸다. 실전은 오후에 있고, 오전은 다행스럽게도 공강이다. 남은 시간 안에 도장을 받은 구울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올려야 했다.

"흐아아암-"

그리고 어젯밤, 로크섬으로 복귀한 3학년 윌이 눈을 비비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엉, 뭐야."

실습실 방이 열기로 후끈거리고 있었다. 퀭한 눈의 2학년 몇 명이 그를 보고는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녕하십...... 니까 선배님."

그들이 좀비처럼 인사했다. 몇몇은 보는 척도 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

군기반장인 윌의 이마에 빠직하고 혈관이 돋아났다.

"아, 이 새끼들이 X나 빠져가지고! 3학년이 들어 왔는데 보는 둥 마는 둥. 그게 지금 인사냐? 2학년들 다 집합시켜 봐?"

바로 그의 혓바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역시 신고식 때 빡세게 잡았어야 했......!"

"뭐 하니?"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윌이 움찔하며 등을 돌리자, 팔짱을 낀 여학생이 서 있었다. 윌과 마찬가지로 교복 깃에 3학년을 상징하는 황금배지가 붙어 있었다.

3학년 전체 7위, 벤야 바닐라.

"환영회 때 그렇게 사고 치고, 아직도 그 더러운 버릇 못 버렸니?"

더러운 버릇이란 말에 윌의 얼굴이 벌게졌다. 벤야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레오나드랑 학생회장이 약속했잖아? 더 이상 후배들에 대한 가혹 행위는 없을 거라고."

"아, 아니 이건......! 제기랄! 인사를 안 해서 그거 쫌 지적했을 뿐이다!"

신고식 사태 이후, 벤야는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적극적으로 2학년들을 보호하고 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윌도 최근에는 벤야의 눈치나 보는 신세였지만, 후배들 앞에서 이대로 꼬리를 내빼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선후배 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지! 우리가 첫날 이후로 풀어주고, 터치한 게 없으니까 학과가 이 꼴이......!"

"2학년 애들."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오늘 오후에 수행평가야."

수행평가.

그 한 마디에 포악한 군기반장 윌도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큼, 그런 거였어? 커험험! 이것들아! 그러면 그렇다고 진작에 말했으면 나도 그냥 유하게......! 크흠! 아무튼 시험 잘 쳐라!"

윌이 도망치듯 대기실을 떠났다.

벤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2학년들을 향해 말했다.

"동기가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네, 계속해."

"네, 선배님!"

2학년들이 작업을 재개했다.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던 벤야가 고개를 돌렸다.

"왔어?"

마침 반대쪽 계단에서 시몬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벤야 선배님."

"우리 제군이가 부르는데 당연히 내야지. 밖에 나가서 이야기할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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