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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35화 (53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5화

기숙사 근처의 한적한 오솔길.

시몬과 벤야는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구울 꺼내 볼래?"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벤야는 대뜸 그렇게 제안했다. 시몬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에서 구울을 불러왔다.

-게륵!

구울은 나오자마자 싸울 기세 만만인 듯 살벌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눈을 감고, 구울의 사념에 집중해."

시키는 대로 사념에 집중하자, 언데드의 본능과 생명체에 대한 분노가 온전히 전해져 왔다.

뒤를 이어 풀밭을 내디디고 곧게 선 언데드의 육체가 느껴지고, 그 뒤로 소환 마법진과 칠흑의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됐어. 이제 천천히 한 걸음 내딛게 해."

구울이 발을 내디뎠다.

"제군도 한 발 앞으로 나가야지."

시몬도 한 발 걸었다.

"다음, 구울과 제군. 동시에 한 발씩."

구울의 뒷발이 따라오며 한 걸음 걸었다. 시몬도 한 걸음 내디뎠다.

"발을 맞춰서. 천천히 한 걸음씩 가보는 거야."

시몬과 구울이 동시에 움직였다.

"발바닥의 감각을 집중하면서, 느-긋하게."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발바닥이 풀밭을 딛는 감각이 기분 좋다.

이 감각이 자신의 발바닥 감각인지, 구울의 발바닥 감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발을 맞추는 리듬이 매끄럽다.

두발동물과 네발동물이 발을 맞추고 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구울이 이상하게 걷고 있네."

왼발과 왼다리가 동시에 나가고 있다. 얼른 자세를 고쳤다.

"이번엔 제군의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동시에 나와."

시몬도 자세를 고쳤다.

퍼뜩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게 뭐라고 힘든지 모르겠다.

"걸음에 집중하느라 발바닥의 감각을 놓치는 건 아니지?"

마치 머릿속을 읽는 듯한 이야기였다. 시몬은 진중하게 발바닥으로 풀밭을 딛는 감각에 의존하며 구울과 자신을 움직였다.

사락.

풀밭이 밟히는 감각은 구울에게서 잘 느껴진다. 이쪽은 신발을 신었으니까 구울에게 의존하게 된다.

착. 착. 착.

발바닥에 집중하면, 리듬과 걸음걸이는 알아서 따라온다. 천천히 호흡을 맞춰나가니 사념의 연결 상태가 더 긴밀하고 쫀쫀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30분을 더 걸었다.

"후우우."

시몬이 기분 좋게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벤야가 다가와 미소 지었다.

"잘했어!"

"지금 한 건 뭔가요?"

"구울의 컨트롤 향상과, 사념의 연결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훈련."

시몬은 아쉬움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런 좋은 걸 알았다면 일주일 내내 계속했을 텐데!

"여기서 제군이랑 구울이 같이 네발로 걷는 훈련도 있긴 한데."

벤야가 쿡쿡 웃었다.

"그건 좀 그렇잖아? 막 3학년이 학생회장을 개처럼 부린다는 소문이 돌지도 모르고."

그러나.

벌써 시몬은 두 손과 다리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하지 마!"

그녀가 식겁하며 외쳤다.

만나서 본 처음으로 벤야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 * *

산책을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왔다. 시몬은 어젯밤 별야와 함께 완성한 구울 모식도를 벤야에게 보였다.

"으음-"

진지하게 보고 있던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이런 게 가능한 거니?"

"네. 이미 연습은 마쳤어요."

이상한 정복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벤야가 중얼거렸다.

"문제는 독이 새는 쪽인데요."

"그 부분은 고무 장기를 구울에 장착하면 충분할 거야."

"고무 장기요?"

그녀는 아공간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펼쳤다. 구울의 세부적인 신체 구조가 나와 있었다.

"바로 여기에 가짜 장기를 만들어 붙이는 거야."

그녀가 손으로 짚었다.

"어차피 언데드니까 재질은 상관없기도 하고? 독을 보관하는 장소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비슷한 계열인 거품두꺼비나 블랙 바이퍼의 신체를 참고해서 만들면 될 것 같네."

"그렇네요!"

"다만 이걸 넣으면 무거워져서 기동성이 살짝 떨어질 수는 있어. 괜찮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뭔가를 얻기 위해 뭔가를 희생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조언에 감사드려요!"

"좋아! 이번 정복은 재밌어 보이니까 나도 도와줄게. 기숙사 실습실은 사람 많을 테니 동아리 방에 가서 할까?"

시몬이 얼른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 * *

오전의 공강이 끝나고 드디어 오후.

소환학과 학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강당에 모였다.

아론과 조교진도 와 있었는데, 조교진은 현장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중인지 평소보다 숫자가 적었다.

"다들 모였군."

수석조교가 인원 체크를 마치고 물러서자, 아론이 입을 열었다.

"잠은 잘 잤냐고 안부라도 묻고 싶지만, 상태가 영 그런 것 같지 않아서 생략하겠다."

밤샘 수행평가 준비로 학생들의 눈은 하나같이 퀭-해 있었다. 아론이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실전 수행평가 내용을 공개하기 전에, 너희들이 해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학생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설마 또 패스해야 할 커리큘럼이 있는 건가?

아론이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바로 조 구성이다."

웅성 웅성 웅성 웅성!

갑자기 튀어나온 '조'라는 단어에 학생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아니! 이거 조별과제였어?"

"당연히 개인과제라고 생각했는데!"

"합을 맞춰볼 시간도 없었잖아?"

"조용히."

아론은 능숙하게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4인 1조로 조를 짠다. 52명이니 총 13개 조가 나오겠군."

그 말에 세르네가 샥 하고 나타나 시몬의 오른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드디어 왔네요! 시몬과 같은 조가 되어서 합을 맞추는 이 날을 기대했어요!"

로레인도 눈을 가늘게 뜨며 왼쪽으로 다가왔다.

"수업 중에 무슨 짓이야? 떨어져. 세르네."

"눼눼~ 또 잔소리 시작이야."

주위의 학생들도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헥토르와 아세라즈 쪽으로 학생들이 엄청나게 몰리는 게 보였다.

시몬에게도 학생들이 다가왔지만, 무려 로레인과 세르네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을 걸 만큼 간 큰 학생은 없었다. 몇몇은 꼴딱꼴딱 긴장한 듯 침만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쿵!

그때 아론이 발로 바닥을 쳐서 소리를 냈다.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갔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1학년 때처럼 원하는 사람끼리 조를 짤 수 있는 건 아니다."

순식간에 학생들의 광란이 멈췄다.

"모든 게 미지수인 1학년 때와는 다르다. 2학년은 실전과 전투능력까지 합산한 명확한 석차가 나와 있고, 실력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 있지. 정말로 그렇게 되진 않겠다만 시몬과 헥토르, 아세라즈가 한 조를 짜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조가 된다."

맞는 말이었기에 학생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학생은 강한 학생들끼리만 뭉치게 될 거고, 조 간의 밸런스는 엉망이 될 것이다. 모든 학생을 명확히 평가해야만 하는 2학년에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조를 정하는 거죠?"

"뒤를 봐라."

조교가 네 개의 상자 앞에 서 있었다. 상자에는 1~100, 100~200, 200~300, 300~400이라는 글자가 각각 붙어 있었다.

다른 조교 한 명은 그 뒤의 칠판에서 분필을 쥐고 있었다.

"너희들의 석차가 그룹이 된다. 1위부터 100위까지 A그룹, 100위부터 200위까지 B그룹, 200위부터 300위까지 C그룹, 300위부터 400위까지 D그룹이다. 각 그룹에서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공을 하나씩 뽑고, 그 네 명으로 한 팀을 만든다."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그렇구나!'

석차 전체 1위인 시몬의 경우는 A그룹이다. 그렇다면 같은 A그룹인 헥토르와 아세라즈 같은 실력자들과 같은 조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조에서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섞이게 되며, 어느 정도는 형평성을 맞추게 된다.

세르네가 히죽 웃었다.

"후훗, 아직 시몬이랑 같은 조가 될 가능성은 있는 거네요?"

로레인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석차 280위인 세르네와, 석차 287위인 로레인.

두 사람 모두 C그룹이다. 둘 다 다른 곳으로 가거나, 둘 중 하나만 시몬의 조에 들어올 수 있다.

그때 한 손이 번쩍 올라갔다.

"벤즈 맥비프입니다! 저랑 화이트는 편입생이라 키젠 쪽 석차가 없는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론이 그를 보며 대답했다.

"편입생들의 경우, 3대 네크로맨서 학교에서는 최상위겠지만 키젠에선 아직 실력이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관례적으로 중위권인 C그룹에 이름을 넣었다."

"옙,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조 선정을 시작하겠다."

착. 착. 착. 착.

조교가 각 그룹의 상자에서 공을 뽑아 앞으로 전달했다.

중요한 순간.

학생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1조 멤버들이 확정되었습니다."

-헥토르 무어, 피에르 버클러, 맷 코머, 라우벨 브엔머스.

1조의 주인공은 헥토르였다.

A반 출신의 헥토르와 피에르 버클러가 손바닥을 맞부딪히는 모습이 보였고, 새로운 두 명의 학생들도 인사를 하러 왔다.

주위의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벌써 강적 하나 나왔네."

"저 버클러 가문이 B그룹이라니, 100위나 101위쯤 한 건가?"

"BMAT 몇 개를 좀 심하게 망쳤대. 그것만 빼면 사실상 A그룹급일걸."

시몬은 팔짱을 낀 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여러 조들이 완성됐다.

꽤 강적이라고 생각되는 A그룹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밸런스 있고 탄탄한 조들이 많이 나왔다. 조가 정해진 학생들은 서로 악수하고 웃으며 친목을 다지기 여념이 없었다.

7개 조가 완성됐음에도, 아직 시몬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8조 멤버가 완성되었습니다."

와아아아-!

또 다른 역대급 조가 탄생했다.

"저게 저렇게 되네."

"저건 너무 사기조합인데?"

-아세라즈 미켈, 엘다린 루오, 화이트, 비엔드 클랙.

사실상 각 그룹에서 에이스들만 뽑은 최고의 조였다.

'아세라즈와 화이트의 팀이라.'

화이트도 능히 A그룹에 들어갈 실력자였지만, 편입생 룰 때문에 C그룹에 들어갔고 하필이면 아세라즈가 그를 채갔다.

가장 강력한 조가 완성된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 편입생! 내가 학과 최고로 만들어줄게."

아세라즈도 그 사실을 아는지 빙긋빙긋 웃음 띤 채 손을 내밀었다.

화이트는 내민 손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이내 휙 몸을 돌리더니 창가로 뛰어갔다.

알고 보니 창밖에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세라즈는 뻘쭘한 표정으로 손을 거두어들였다.

"전력으로는 누구나 최강이라 평하겠지만, 팀워크나 커뮤니케이션 쪽을 생각한다면 글쎄."

언제 왔는지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하고 있었다. 시몬이 그를 보았다.

"피츠제럴드, 넌 A그룹이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조가 못돼서 아쉽네."

"어쩔 수 없지. 룰이 그렇다니까."

시몬이나 피츠제럴드의 이름은 아직 적히지 않았다. 그때 조교가 말했다.

"10조 시작하겠습니다."

그녀가 공을 하나 꺼내 들고 뒤로 보냈다. 수석조교가 그 공을 받고는 이름을 써내려갔다.

그러자.

벌떡. 벌떡.

곳곳에서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지목받지 않은 학생들은 물론, 조가 정해져서 떠들던 학생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앞을 보았다.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그 이름이 들어왔다.

-10조 : 시몬 폴렌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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