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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38화 (53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8화

"......."

텔레포트 마법진의 이동이 끝났다. 두 발이 바닥에 안착하는 것을 느낀 시몬은 눈을 떴다.

아까보다 더 어둡고, 짙은 안개가 펼쳐진 으스스한 숲의 풍경이 보인다.

"으읏."

"......머리야."

옆에는 에슈와 토토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쓰러져 있었고, 그 뒤로는 로레인이 반듯하게 선 채 루비 같은 눈동자를 뜨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괜찮아?"

시몬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에슈가 '?'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묘하게 웃으며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후후후~ 땡큐."

우후후후는 뭐냐.

시몬은 그런 시선을 담아 에슈를 쳐다보고는 토토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시몬, 여기 봐."

로레인이 그를 불렀다. 화면으로만 봤던, 커다란 해골 제단이 눈앞에 보였다. 그 안에는 번쩍이는 빨간색 유물이 들어가 있었다.

"오우! 이게 무려 15점짜리 유물이란 거지?"

에슈가 활기찬 걸음걸이로 다가와 유물에 손을 대려 했다. 시몬과 로레인이 동시에 움찔했다.

"잠깐만, 에슈!"

"우리가 보유한 빨간색 유물을 우리가 옮기면 룰 위반이야. 아까 이야기했잖아."

"알지, 알아. 그냥 만지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에슈가 가볍게 윙크하고는 제단 안에 있는 유물을 들어서 휙휙 움직여 보였다. 역시 조심성은 별로 없는 타입이었다.

"으윽, 생각보다 더 어둡네."

한편 토토는 어둠에 잠긴 숲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에슈가 유물을 내려놓고는 장난스럽게 눈썹을 들썩였다.

"우리 어린이. 울지 않고 혼자 다닐 수 있겠어요?"

토토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다, 당연하지! 나도 네크로맨서야!"

"아하하!"

에슈의 넉살 덕분에 경직된 분위기가 풀렸다.

시몬도 웃음을 흘리며 토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데 마침 방송음이 들렸다.

-30초 후, 시험이 시작됩니다. 즉시 구울을 1기 이상 소환하십시오.

-시험이 시작되면 시작 지점에서 나가실 수 있습니다.

"들었지?"

네 사람이 동시에 아공간을 열고, 구울을 꺼냈다.

순식간에 주위가 언데드들로 가득 찼다. 시험장에 나타난 구울들은 울음소리를 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험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10. 9.

"다들, 앞서 말했던 계획대로 움직이는 거야."

시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7. 6. 5.

"회장, 여기서는 다 같이 파이팅 한번 해주는 게 정석 아닐까?"

에슈의 제안에, 시몬은 즉시 손바닥이 바닥을 향하도록 내렸다. 다른 세 사람의 손바닥도 그 위를 포갰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해보자. 10조 화이팅!"

"화이팅!"

소년 소녀들의 손바닥이 힘차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신호로,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삐이익! 하는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렸다.

"어, 음."

혼자만 손바닥을 내리고 있던 토토가 뻘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화이팅하면 내리는 거 아니었어?"

* * *

타다닷!

타닷!

시몬과 세 기의 구울은 빠르게 안개 낀 전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침에 벤야가 가르쳐 줬던 발맞추기 훈련 덕분인지, 구울들과 함께 달리는 감각이 아주 좋았다.

'일단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느긋하게 유물을 찾아보자.'

-게륵! 게르륵!

앞서가던 구울이 바닥에 코를 박은 채 킁킁거렸다. 이내 시몬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달려 나갔다.

시몬이 얼른 뒤따라가니, 구울은 두 발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너희들도 도와줘."

시몬의 말에 다른 구울들도 함께 구덩이를 팠고, 얼마 안 가 정말로 땅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청동 비슷한 재질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광택의 그릇 조각이다.

구울이 그걸 입에 물고 후다닥 달려와 시몬 앞에 떨어뜨리고는 헥헥댔다.

시몬이 한쪽 무릎을 꿇고 구울의 머리를 쓸어주자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뒤의 다른 구울들이 부러운 듯 보고 있었다.

'이게 1점짜리 파란색 유물이구나.'

유물을 옮기는 것도 구울로만 해야 했다.

시몬이 명령했다.

"수고했어. 보관해 줘."

그 말에 즉시 구울이 유물을 홀라당 삼켜 버렸다. 이 정도 크기의 물건은 구울이 자유자재로 삼켰다 뱉었다 할 수 있었다.

"다음, 가자."

이번 시험은 철저하게 구울만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다.

구울의 탐지능력을 얼마나 잘 활용해 땅에 묻힌 목표물을 찾아낼 수 있는가.

수색 도중에 필드에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를 만났을 때, 구울로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는가.

다른 조원들이 컨트롤하는 구울과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가.

출제자의 의도는 명확했다. 서로 유물 찾기만 하다가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시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시험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겠지.'

* * *

파바바밧!

팟!

자욱한 어둠을 틈타, 9기의 구울들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어깨 골격이 유독 발달되고 뼈가 칼날처럼 튀어나온 구울이 있었다. 앞다리가 흑마법과 약물로 과도하게 커져 있었는데, 마치 고릴라처럼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헥토르의 구울들이었다.

'......기다려라, 시몬 폴렌티아.'

뒤따르는 헥토르의 눈빛이 살벌하게 일렁였다.

"헥토르!"

그 옆에 달리고 있던 학생이 말을 걸었다.

"전방에 그레이 오크가 왔......!"

터엉!

그 즉시 근육질 구울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더니, 이쪽으로 달려오던 오크를 일격에 후려쳐 바닥에 메다꽂아 버렸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혀를 내둘렀다.

"오, 오우......!"

"역시 전체 3위야."

헥토르가 이번 시험을 위해 준비한 구울은 무지막지한 파워와 스테미너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그레이 오크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모두 긴장해라. 곧 10조의 영역에 들어온다."

10조 측도 분명히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조 간의 교전이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은 시점을 꼽으라면, 주변의 유물수집이 끝나는 한 시간 뒤다.

하지만 헥토르의 조는 시험 시작 땡 하자마자 출발해서 시몬의 진형을 급습할 생각이었다.

"단숨에 놈들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제단으로 돌파해 빨간색 유물을 탈취한다."

"응!"

다름 아닌 시몬과 로레인의 조다.

1학년 때는 어영부영 넘어가다가 수석 자리를 내줬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물어뜯을 생각이었다.

'.......'

정면을 응시하는 헥토르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뭔가 있군.'

-케에에에엑!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모두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구울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멀어졌다.

"큭!"

조원 한 명이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제기랄! 하나 당했어! 어느 틈에!"

헥토르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나무 위에서 휙- 휙- 하고 뭔가가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랫쳐는 나무에서 생활하는 몬스터가 아닐 텐데.'

소환학과 학생 전원이 바위지대에 사는 '랫쳐'로 구울을 만들었다.

즉, 지금 나무 위를 돌아다니고 있는 건 몬스터이거나, 혹은 정신 나간 수준의 언데드 컨트롤을 보유한 네크로맨서의 구울이리라.

"습격에 대비해."

헥토르는 침착하게 나무 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기습적으로 오른팔을 쫙! 뻗었다.

근육질의 구울이 즉시 그 방향으로 뛰어나가 나무를 후려쳤고, 얇은 나무가 기우뚱하면서 나뭇가지 위의 구울 하나가 떨어졌다.

"잡아!"

터엉!

기다리고 있던 헥토르의 구울이 도약했다.

바닥에 떨어진 구울은 묘기 부리듯 뒷다리를 앞으로 쭉 밀더니, 튕겨 나오듯 두 다리를 앞세워 헥토르 구울의 턱을 후려쳤다.

"!!"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울은 가뿐하게 자세를 되찾고는 숲으로 빠져나갔다.

"봤어? 아까 그 구울의 움직임!"

"변태 같은 움직임이던데."

헥토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 있었군, 시몬 폴렌티아! 역시 내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케륵!

-케게겍!

자욱한 안개 곳곳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아 보인다.

"헥토르! 일단 물러났다가 다시 오는 게......."

"아니."

헥토르가 자세를 낮췄다.

"그게 놈들이 원하는 바다. 따라와라."

헥토르가 세 기의 근육질 구울을 앞세우고 돌진했다. 나머지 조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나무 위에서 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자, 헥토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제단을 지키는 게 한 명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다. 내려와라.'

팟!

나무에서 구울 한 마리가 뛰어내렸다.

단번에 헥토르 구울의 목을 다리로 휘감고는 이빨을 세워 뒷목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꾸웅!

헥토르의 구울이 절구 찧듯 바닥에 상대를 내리쳤다.

'전신을 최대한 가볍게 한 속도형 구울. 하지만 육탄전에서는 이쪽이 유리하다!'

헥토르가 손짓했다. 먼저 가라는 신호였다. 다른 두 명이 자신의 구울들과 함께 이동했다.

-구어어어어어!

퍼억!

한 학생의 구울이 얻어맞아 안개 너머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안개 속에서 부리부리한 중형 몬스터들이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헥토르! 앞에 몬스터가 너무 많아!"

그의 표정이 구겨졌다.

'더럽게 귀찮게 하는군.'

* * *

"하아. 하아."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로레인이 이마를 짚었다.

헥토르는 구울의 현란한 컨트롤을 보고 당연히 시몬이라고 생각했지만, 수비 담당은 다름 아닌 로레인이었다.

방금 구울 하나를 헥토르에게 잃어서 사념으로 타격이 들어왔다.

'다음.'

다시 네 번째 구울을 아공간에서 꺼내 전장으로 보냈다.

헥토르가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시몬은 1조가 오는 길목에 로레인을 수비수로 배치했다. 그녀가 가진 9기의 구울로 최대한 헥토르를 붙들어두는 게 목적이었다.

여기에 토토도 한몫했다. 토토는 원래 '유물 탐색조'였지만, 경기 초반에는 구울을 이용해 주위의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토토는 '땅파기'에 특화된 구울을 만들었는데, 몬스터들을 잔뜩 유인해서 미리 땅을 파둔 곳으로 들어가면 몬스터들은 타깃을 잃고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그렇게 자연 몬스터 방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로레인의 교란과, 토토가 데려온 몬스터들의 방어.

어떻게든 시간은 잘 끌고 있었다.

하지만 헥토르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10조의 수비수가 하나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강행돌파를 통해 로레인의 구울이 따라오도록 유도했다.

교란과 속도에 특화된 그녀의 구울이 움직임이 읽히는 순간 먹잇감이 될 뿐이다. 로레인은 연달아 헥토르에게 구울을 잃었다.

'보인다.'

이제 헥토르의 시야에 시몬의 제단이 보였다.

"잠깐, 헥토르!"

그때 한 학생이 외쳤다.

"큰일 났어! 뒤를 봐!"

헥토르의 시선이 돌아갔다. 붉은 가루 같은 게 저 멀리 하늘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본진의 제단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도움 요청 신호였다.

* * *

1조 본진의 방어 담당은 헥토르가 가장 신뢰하던 피에르 버클러였다.

그러나 지금.

"어, 어떻게 이런......."

벌써 4기의 구울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퍽!

다른 하나의 구울도 칠흑 마법진이 끊기며 무너져 내렸다.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시몬 폴렌티아......!"

자욱한 녹색의 안개 속에서, 안광을 번뜩이는 푸른 머리의 소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심지어 그 또한 혼자였다.

"너희 빨간색 유물을 가져가야겠어."

* * *

본진이 공격당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헥토르는 더더욱 서둘렀다.

"비켜라!"

헥토로의 눈이 번뜩였다. 근육질 구울의 마법진에 '리노의 황금선'이 그려지고, 장송이 발동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로레인의 구울들을 날려 버리고 돌파한 그가 마침내 시몬의 제단에 도달했다.

'그 수로 나왔나. 하지만 우리 제단을 털어도, 너희 본진도 털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헥토르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시몬의 제단으로 걸어갔다.

"......?!"

그러나 그의 안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10조의 제단은.

'뭐야.'

다른 누군가에게 털려 이미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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