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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39화 (53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9화

"......."

텅 빈 시몬 조의 제단 앞에서, 헥토르는 말을 잊지 못했다.

뒤늦게 그의 조원들이 따라붙었다.

"헥토르! 찾았어?"

"뭐야, 없잖아!"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헥토르의 표정을 보고, 분위기 파악을 마친 조원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걔들 이래도 되는 거야? 빨간색 유물을 자기들이 옮기면 룰 위반이잖아!"

"......."

헥토르가 생각에 잠겼다.

그 말대로다. 다른 조의 빨간색 유물은 강탈해서 옮길 수 있지만, 본인들의 제단에 있는 빨간색 유물은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는 건.

"이 새끼들이......!"

헥토르의 포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 * *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

학생들에게 3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같은 조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세부룰을 숙지하고 작전을 짜는 시간을 가졌다.

첫 경기에 출전하게 된 4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야, 과대 살벌하네."

4조의 남학생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방금 막 1조의 피에르 버클러가 다가와 헥토르의 메시지를 전하고 간 뒤였다.

메시지는 명료했다.

-방해하지 마라.

헥토르의 1조는 시몬의 10조를 칠 것을 분명히 했다.

"근데 우리한텐 나쁘지 않은 상황 아냐?"

4조의 여학생이 다리를 오므리며 말했다.

"솔직히 1조랑 10조가 각각 우리 조랑 13조를 치러 오는 게 최악의 경우였어. 근데 고래들끼리 알아서 치고받고 싸워주겠다잖아? 우리는 걔들 방해하지 말고 유물이나 모으러 다니면 되지."

"맞아. 적어도 꼴등은 피하고, 과대에 찍힐 일도 없고."

"......."

조원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었지만, 4조의 조장은 팔짱을 낀 채 묵묵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조장, 뭔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인데."

처음에 말을 꺼낸 남학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설마 1등을 노리는 건 아니지?"

"......."

조장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키젠이 1등을 노리는 게 뭔가 잘못됐어?"

"다, 당연히 잘못된 건 아니지만! 현실을 보자는 거지. 재수 겁나 없게 학생회장이랑 학과대표가 있는 조랑 붙게 됐잖아! 걔들을 어떻게 제칠 건데?"

"......."

4조의 조장 또한 뾰족한 수가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경기 시작부터 패자임을 스스로 단정 짓고, 2위 3위 싸움에 집중해야 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 뿐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누구나 위로 올라갈 수 있어.

1학년 입학성적 900위대로 시작해서, 2학년에는 Top까지 든 기적을, 같은 반이었던 그는 가까이서 봐왔다.

그래서 자극을 받았다. 나도 2학년에는 달라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첫 대형 수행평가부터, 대진운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그 다짐을 포기해야 한다니.

"헬로, 헬로~"

그때였다.

주황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불쑥 그들에게 다가왔다.

아는 얼굴인지 4조의 여학생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 에슈 안녕~ 여긴 무슨 일이야?"

"아, 쟤."

4조 남학생의 표정이 경계심으로 굳었다.

"시몬의 10조잖아."

그 말에 다른 4조 조원들도 바로 경계모드에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슈는 스커트를 곱게 접고 4조원들 가운데 쪼그려 앉아 해맑게 헤헤 웃었다.

"무슨 일인데?"

심기가 불편해진 4조 조장이 말했다.

"아까 헥토르 조에서 먼저 다녀갔던데~ 혹시 무슨 말 했는지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왔지롱!"

"꿈 깨라."

그런 걸 참 대놓고 묻는다.

조장이 고개를 휙 돌리며 답했고, 에슈가 아쉬운 듯 '힝'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맞춰볼까? 맞춰도 돼? 우리가 시몬 조를 칠 테니까 너희들은 나대지 마라! 대충 그런 이야기 아냐?"

4조 조원들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고, 에슈가 쿡쿡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우리 쪽 '학생회장님'의 말을 전하러 왔는......!"

"작작해!"

4조 조장이 버럭 소리 질렀다. 다른 조원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희 두 조만 시험 치냐? 어? 학교에서 권력 좀 쥐었다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마이너 취급하고 통보해 대는 꼴이 개빡치는데! X발! 우리는 키젠 아니냐?"

"조, 조장!"

"갑자기 왜 급발진하고 난리야!"

조원들이 그를 뜯어말렸다. 에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우리는 '통보'가 아니라 '제안'을 하러 온 거야."

"......제안?"

"일단 들어보고 빡치니 뭐니 말해줬음 해. 학생회장이 한 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전할게."

그녀가 두 손바닥을 착 맞부딪혔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

시몬의 제안은 파격 그 자체였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조장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희 조의 빨간색 유물을 그냥 준다고?"

에슈가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에슈, 너. 내 눈 똑바로 보고 딱 말해."

4조 여학생이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조건 없이?"

"응!"

"그냥 공짜로?"

"웅웅!"

"이유는?"

"나도 이유는 못 들었어. 그냥 회장의 말을 전하러 왔을 뿐인데."

"......."

"......."

4조 조장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제 눈을 슥슥 비볐다.

'시몬은 헥토르가 쳐들어오리라는 걸 알고 있다. 1위 경쟁자인 헥토르가 유물을 가져가게 둘 바에, 우리에게 넘겨서 한 방 먹일 생각인가?'

그때 에슈가 말했다.

"아, 그리고 이런 말도 했었어! 우리 측 제단은 텅 비어 있을 테니까, 경기 시작하자마자 달리면 헥토르보다 먼저 빨간색 유물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

'......역시나.'

이번 시험에서, 15점짜리 빨간색 유물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두 개의 빨간색 유물을 들고 있다면 최소 2등은 확보, 1등 확률도 급속도로 올라간다.

그럼 이 계획을 꾸미는 시몬 측의 동기도 명확하다.

제삼자를 이용해 헥토르 조의 손에 15점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

4조 입장에선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럼, 나는 할 말 다했으니까 간다~"

그렇게 에슈가 떠나자마자, 4조 조원들은 똘똘 뭉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함정이야!"

4조 남학생이 말했다.

"빨간색 유물을 미끼로 우릴 유인하고, 매복으로 우리 구울 수를 줄이려는 수작이지!"

"사실 헥토르 조와의 협업이 아닐까?"

그 옆의 여학생이 새로운 음모론을 제기했다.

"다들 말만 그렇게 하고, 사실은 지들끼리 손잡고 각자 한 조씩 쳐서 빨간색 유물을 나눠 가지려는 건?"

"......아니."

그때 회의 내내 조용하던 졸린 눈의 남학생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건 아닐 거야."

4조 조장도 그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 A반이랬지. 헥토르와 시몬은 어떤 녀석들이야?"

"......헥토르 무어는 무조건 시몬을 쳐. 무조건이야. 그리고."

그가 쩝 하고 입맛을 나셨다.

"시몬 폴렌티아는 거짓말을 할 녀석이 아냐."

"......."

결정했다.

조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혼자 구울 하나 데리고 10조 쪽으로 가볼게. 상황이 이상하면 바로 뺄 거고."

이게 함정이라서 구울 1~2기를 잃는다고 해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리고 현재.

"후욱! 후욱!"

4조 조장이 어둠을 가르며 헐레벌떡 달리고 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달리는 구울의 몸에는 10조의 빨간색 유물이 들어 있었다.

'됐어! 됐어! 됐어!'

정말로 시몬의 말대로였다.

제단은 텅 비어 있었고, 앞에는 전투가 일어난 듯 소란스러웠다. 아마도 헥토르 측과 시몬 측 간의 교전이 벌어진 것 같았다.

4조 조장은 자신의 구울로 빨간색 유물을 삼키게 한 다음 본진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내가, 우리 4조가......!'

그의 입꼬리가 쾌감으로 벌벌 떨렸다.

'그 시몬과 헥토르를 넘어서서 1등을!'

열심히 달리다 보니, 드디어 저 앞에 4조의 제단이 보였다.

얼른 조원들에게 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다. 칠흑을 박차며 속도를 더더욱 높이려는 그때.

촤아아아악!

어둠을 가르며 뻗어져 나온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구울을 스치고 지나갔다. 4조 조장이 기겁하며 구울을 뒤로 보냈다.

"잠깐! 잠까안! 불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4조 조장이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세 쌍의 눈이 번뜩였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는지요."

-케르르르!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구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총 9기의 구울.

완전히 포위당했다.

"댁의 구울,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것 같은데."

툭-

나무 위에서 내려온 남학생이 히죽거리며 검지를 세웠다.

"배를 가르고 뭐가 있는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13조 놈들! 역시 냄새를 맡은 건가!'

4조 조장이 얼른 아공간에서 두 기의 구울을 추가로 꺼냈다.

그럼에도 3:9. 수적 열세는 명확했다.

"자아, 다 박살 내십쇼!"

13조에서 컨트롤 하는 아홉 기의 구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기 있다! 찾았어!"

"조장을 지켜!"

그런데 이번에는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4조의 조원들이 합류한 것이다. 6기의 구울들이 전속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이런, 빠르군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다 죽여 버리세요!"

몇몇 구울에 황금선이 그어지며, '장송'이 발현되었다. 검은 기운을 망토처럼 흩뿌리며 구울이 쇄도했다.

"어림없지!"

4조 조장 또한 자신의 구울에 장송을 걸며 맞상대했다.

시작부터 총력전이었다.

* * *

시몬은 처음부터 4조에만 접근한 게 아니었다.

에슈가 4조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 화장실 뒤편에서 작전을 짜고 있던 13조에 토토를 보냈다.

-4조에게 너희 빨간색 유물을 줄 거라고?

4조에게는 빨간색 유물을 주기로 제안하고.

13조에게는 의도적으로 그 정보를 흘렸다.

13조의 조원들 또한 함정일지 모른다며 갑론을박을 펼쳤지만, 그들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보였었다.

그들도 더러운 대진운에 좌절하고, 꼴찌만 피하자는 생각으로 시험에 임하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묘한 부분에서 숨구멍이 트였다.

시몬의 말이 사실이라면? 1등은 '4조'가 된다.

그리고 13조의 입장에서 4조는 상당히 만만하다.

물론 10조의 의도를 생각해야 했고, 함정일 확률도 있었지만.

-이대로 4조가 1등 하는 건 배알 꼴려서 못 보겠는데?

어차피 지루한 3~4등 싸움이나 해야 했던 게임. 1등이 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그쪽에 배팅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험이 시작하고, 13조 조장은 유물을 찾는 겸 해서 세 명의 조원을 이끌고 10조와 4조 사이의 길목에서 잠복한 채 대기했다.

그리고 시몬의 정보대로, 4조의 조장이 홀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내 1등을 노리는 두 조 간의 진흙탕 교전이 시작되었다.

'우흐흐! 우리 학생회장님, 머리 엄청 잘 돌아가는데?'

에슈가 혀를 내둘렀다.

헥토르라는 인물의 이해도. 그리고 다른 조들이 처한 상황까지. 전부 꿰차고 있었기에 이런 전략을 짤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모두가 치열하게 싸우는 사이, 에슈가 향한 곳은 13조의 본진이었다.

"누, 누구야!"

13조는 4조를 털러 갔고, 제단을 지키는 건 조원 한 명뿐이었다.

화들짝 놀라며 경계하는 그를 보며, 에슈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빈집털이범입니다!"

에슈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두 명 이상이 수비면 패스.

수비가 A~B그룹이면 패스.

하지만 다행히 가장 약한 D그룹 학생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이러면 싸워서 이길 수 있다.

"너는 10조의......!"

그가 에슈를 가리키며 격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릴 속였구나!"

"응? 진짜 진짜 하나도 속인 거 없어."

에슈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린 너희들에게 4조의 정보를 제공했을 뿐이잖아? 아무런 강요도, 요청도 없었지. 그 정보를 써먹든 무시하든 순전히 너희들의 판단이었어."

그녀가 얍! 하고 앞으로 팔을 뻗었다.

"그런 고로 너희들의 빨간색 유물! 우리가 가져간다!"

에슈의 등 뒤로, 주황색 페인트로 덧칠한 구울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술에는 립스틱도 칠해져 있었다.

"센스 겁나 없네!"

13조 학생은 세 기의 구울을 조종하고 있었다.

3:1의 상황. 립스틱을 칠한 에슈의 구울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바닥에 눌러져 제압당했다.

"아, 뭐야! 자신만만하더니 고작 한 기로 온 거야?"

13조 학생이 신이 나서 에슈를 약 올리는 사이, 제압당한 구울의 입이 벌어졌다.

'발동!'

그녀의 구울 소환마법진에 변화가 일어났다.

생태계를 이루던 수식과 도형들의 연산값이 바뀌고, 그 옆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에 불이 들어왔다.

에슈는 단숨에 역산해낸 구조를 짜 올렸다. 구성요소들은 순식간에 저주가 발동하는 형태로 재조립됐다.

-시험자는 오로지 구울에 적용되는 기술만 사용 가능하다.

이 룰에 위반되지 않는, 오롯이 구울의 소환 마법진으로 만들어낸 저주인형이 상대 구울들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구울 장송. 나도 실전 성공률은 낮지만."

그녀가 두 팔을 피아니스트처럼 들어 올렸다.

"실패하는 건 자신 있거든!"

저주인형의 마법이 상대의 소환마법진 내부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에슈는 단숨에 '역방향'으로 리노의 황금선을 그어버렸다.

콸콸콸!

13조 학생의 구울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입에서 칠흑을 토하기 시작했다.

"뭐, 뭔데 이거? 뭘 한 거야!"

에슈가 소리 내어 웃으며 혓바닥에 손끝을 올렸다.

"다들 자기 구울에 장송을 걸 생각만 하지, 상대 구울에 장송을 걸 생각은 못 하더라구."

쿠웅!

쿵!

13조 학생이 보유하고 있던 3기의 구울이 모두 쓰러졌다.

에슈는 아공간에서 새로운 구울을 꺼낸 다음, 가볍게 상대의 빨간색 유물을 빼 오도록 했다.

13조 학생은 그 모습을 그냥 두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너어어어!"

"안녕! 시험이니까 너무 미워하진 말아줘!"

그녀가 후후 웃으며 구울을 데리고 도망쳤다.

'재밌는 조에 들어온 것 같아!'

이걸로 10조는 유물 두 개를 손에 넣으며 승리에 성큼 다가섰다.

13조의 보복은 현실적으로 힘들고, 그들은 더더욱 2개의 유물을 가진 4조와의 승부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다.

남은 문제는 시몬에게 한 방 먹은 1조의 헥토르뿐. 물론 그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헤헤, 과연 헥토르 쪽이 어떻게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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