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41화
최강으로 일컬어지는 8조의 활약은 대단했다.
특히 화이트의 화력은 놀라웠다.
본인의 구울 체내에 이능으로 그린 마법진을 새겨놓고는, 적이 보이는 순간 이능을 작동시켰다. 구울이 하얀빛으로 둘러싸이더니 그대로 날아가 적진을 초토화시키는 포탄으로 변했다.
저런 사용법도 가능한가 싶었지만, 시몬의 시체폭발처럼 구울에 직접적으로 부여한 기술이기에 세부룰에 위반되지는 않았다.
전체 5위 아세라즈도 명불허전. Top10다운 실력이었다.
구울의 발톱을 개조해서 팔보다 긴 금속 칼날을 휘두르게 했는데, 장송을 걸고 적진으로 보내면 1:4도 가뿐히 썰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는 압도적.
1위 - 8조 (60점)
2위 - 3조 (12점)
3위 - 14조 (6점)
4위 - 9조 (2점)
최강의 8조가 다른 3개조 연합을 힘으로 찍어 눌렀다. 빨간색 유물은 물론, 다른 조들이 모아뒀던 유물들까지 모조리 빼앗으며 승리했다.
물론 완벽해 보이는 8조에도 지적받을 만한 사항은 있었다.
-화이트! 화이트! 지금 바로 9조로 가야 한다니까! 뭐 하는 거야? 따라오라고!
-.......
-제발 말 좀 들으라고!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아쉬운 점을 남겼다.
아세라즈는 대승을 거뒀지만, 벌써 같은 동료인 화이트를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조원들도 화이트의 사용법을 조금 더 심플하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다른 학생들이 보기엔, 그런 단점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8조의 전력은 대단했다.
"......숨이 턱 막히네. 저걸 어떻게 이기냐."
"그나마 상대할 만한 쪽은 회장의 10조 정도겠네."
"회장이 화이트를 막는다고 쳐. 그럼 아세라즈는 누가 막을 건데?"
8조의 강력한 투톱은 모든 조의 경계 대상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세르네의 11조도 새로운 강자로 대두되고 있었다.
세르네는 조원들의 구울 모두에 깃털을 꽂았고, 잠재된 분노와 파괴본능을 이끌어내 다른 조원의 구울들을 시종일관 압도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마치 지속시간이 긴 장송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거기에 세르네를 서포트하는 피츠제럴드의 적절한 전술전략까지.
11조 또한 1등으로 이번 시험을 마무리했다.
"이번 수행평가는 가히 전략의 승리."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고쳐 쓰며 총평했다.
"시몬이 시체폭발이라는 변수를 중심으로 판을 짰다면, 내 전략은 철저하게 분석된 결괏값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루트를 추......."
푹!
"시끄러워요."
뒷덜미에 깃털이 꽂히자, 피츠제럴드는 갑자기 지렁이를 표현하는 행위예술을 하겠다며 바닥을 정열적으로 기어 다녔다.
조원들이 세르네의 눈치를 보며 그를 일으켰다.
"어, 어디 가? 세르네."
"시몬 보러 가요~"
이렇게 2학년들의 가장 중요한 시험 하나가 마무리됐다.
"짧은 시간 동안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마지막으로 아론이 소환학과 전원을 불러보았다. 그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간단한 소감을 들어보마. 뭘 느꼈지?"
곳곳에서 손이 올라갔다.
"짧은 시간 동안, 극한을 추구하니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단 걸 깨우쳤습니다!"
"진짜로 며칠 만에 구울을 마스터할 줄은 몰랐어요!"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튼튼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론이 손을 휘저었다.
"애쓸 필요 없다. 상 벌점 상관없이 개인 소감이니, 아쉬운 점도 이야기해라."
그 말에 아세라즈를 비롯한 학생들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레스랑 불면증으로 죽을 것 같아요!"
"시험 내내 구울만 써야 해서 답답했습니다!"
"그래."
아론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앞으로도 우리 교수진은 너희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제한을 걸고, 팔다리를 묶고, 강압할 것이다. 너희들 입장에선 자퇴 강요를 받는 것처럼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만큼 너희들은 강해질 것이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성장한 그 이상으로. 2학년은 키젠 3년 가운데 가장 큰 성장을 이루는 구간임을 잊지 말도록.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몸 관리에 전념해라."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예!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 * *
시험이 끝나고, 소환학과 전원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로크섬으로 돌아왔다.
시몬을 포함한 대부분이 시험준비로 밤샘한 뒤였기에,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시몬도 기숙사에 복귀한 뒤로는 학생회 일정을 하루 쉬는 쪽으로 양해를 구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그렇게 기숙사에 들어와 침대에 누운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눈을 뜨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와아, 진짜 기절했다.'
쌓여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터졌던 모양.
그래도 푹 자고 일어나니 머리도 맑고 개운했다. 룸메이트인 토토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시몬은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아니지, 모처럼 조금 이른 아침에 깼으니까.'
이번 주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은 일반과목과 교양과목으로 채워진 날. 첫 수업인 칠흑역학 수업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목욕탕이나 갈까.'
피로도 풀 겸,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수건과 간단한 용품을 챙겨서 기숙사 방문을 여는데.
'응?'
문 뒤에 뭔가 걸렸다. 문을 열고 나와 확인해 보니 기숙사 방 앞에 상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잘못 온 게 아닐까 싶어서 받는 사람을 확인해 보았지만.
-시몬 폴렌티아 님께.
-키젠의 학생회장에게 드림.
전부 제대로 온 게 맞았다.
그것도 값비싼 와인이나 호화로운 디저트들, 심지어 고급 네크로맨서 용품도 있었다.
'갑자기 뭐지?'
지금 뜯어보기엔 물건들이 퍽 많았기에, 일단 기숙사 안으로 밀어 넣은 후 목욕탕으로 걸음을 옮겼다.
"회장."
가는 길에 학생들이 말을 걸어왔다.
"이거 누가 너한테 주라는데."
"여기 이거."
"아니, 내가 왜 이런 심부름을 해야 해?"
"3학년 선배가...... 누군지는 모르고......."
그렇게 목욕탕에 갔다 돌아올 즈음, 시몬의 품에는 선물들이 한 아름 안겨 있었다.
"???"
영문을 모를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장난인가? 학교의 새로운 기념일인가? 생일도 아직 아닌데?
기숙사 방에 돌아온 시몬은 복잡한 얼굴로 선물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거 좀 불안한데.'
일단은 학생회장 신분인지라, 괜히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선물을 뜯어보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메이린도 분명 그런 뉘앙스로 경고했던 적이 있었다.
시몬은 책상 정리만 해놓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기숙사 로비로 나왔다.
"어, 회장!"
"안녕! 아침 먹었어?"
평소보다 주위에서 인사가 많이 온다. 아직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한 애들까지 웃으며 인사를 해오고 있었다.
심지어.
"오, 학생회장! 오늘도 수고가 많다!"
"학교를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시몬을 학생회장이라고 인정하지 않던 3학년 선배들까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심지어 격려하듯 어깨를 두들기고 떠나기도 했다.
'......대체 뭐지.'
이쯤 되니 마냥 좋다기보단 부담스러웠다.
인사를 건네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몬의 눈치가 아니라, 주위의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아마 누군가 스타트를 끊으면, 뭔가 엄청난 게 시작될 것 같다.
불안한 낌새를 감지한 시몬이 교과서를 챙기러 얼른 자습실로 향했다.
"시몬 폴렌티아."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있었다.
자습실 문에 기대어 팔짱을 낀 남자는 헥토르였다. 어제 시험에서 패배한 여파가 있는 건지,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시몬이 애써 웃으며 인사했다.
"아, 안녕. 헥토르."
"레오나드 선배님이 어제 복귀하셨다."
헥토르는 내가 왜 이런 소리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인사는 하러 가야 하지 않겠나."
'......갑자기?'
레오나드는 3학년 전체 4위, 소환학과의 총대표였다.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인 건 맞는데 굳이 일부러 인사하러 찾아갈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시몬이 거절 의사를 밝히려는데.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두 사람이 동시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무려 레오나드 본인이 직접 나타났다.
새벽에 런닝이라도 한 듯 가벼운 훈련복에, 적색 재킷을 두르고 있는 그는 몸에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뭐, 언제 봐도.'
강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인간이었다.
"오셨습니까."
헥토르가 깊게 인사했고, 시몬도 간단히 고개를 꾸벅했다.
어쩐지.
여기서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하! 너무 긴장하진 마, 그냥 학교 이야기 좀 하려는 건데 말야."
레오나드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멋쩍게 뒷목을 긁적였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후배한테 부탁을 받았거든. 아~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
"레오나드."
레오나드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황금색 배지를 교복에 매단 3학년, 벤야 바닐라가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싸늘했다. 레오나드가 하하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좋은 아침, 벤야."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어."
"학과대표가 후배의 아침 안부를 묻는 게, '뭐 하는 짓'이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야?"
벤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침 안부 묻는 정도면 이제 끝났겠네? 가자. 제군아."
그녀가 시몬의 어깨를 감싸고 데려갔다. 레오나드는 쩝 하고 혀를 찼지만, 더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때 헥토르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 굳이 놈에게 아쉬운 소릴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레오나드가 하하하! 웃었다.
"뭐, 됐어. 이 시즌 전까지는 에이젤이 돌아왔음 했는데 어쩔 수 없지."
* * *
시몬은 무사히 교과서를 챙기고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고맙습니다, 벤야 선배님.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흠-"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랑 네가 같이 붙어 있는 것도 수상쩍으니까. 난 여기서 이만 갈게."
"네?"
"안녕! 나중에 또 보자!"
그렇게 말한 벤야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
같이 붙어 있는 게 수상쩍단 게 무슨 소리지?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시몬은 창가로 다가가 슬쩍 밖을 내다보았다.
'아!'
웅성 웅성 웅성!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기숙사 문 앞에 모여 있었다. 중간중간 시몬이니 학생회장이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다들 자신을 찾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시몬."
그때였다.
달라진 주위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검은 머리의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만큼은 평소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아, 안녕. 로레인! 혹시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무슨 날...... 이었나? 잘 모르겠는데."
로레인도 모르는 모양이다.
시몬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늘 오전에 뭐 들어?"
"맹독학 수업."
"나는 칠흑역학이야. 강의실 거리도 가까운데, 같이 등교할래?"
시몬은 절박한 심정으로 제안했고,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자."
'좋았어!'
그렇게 시몬은 로레인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시몬을 보았다.
"......."
"......."
계획대로.
로레인과 함께 나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네프티스의 딸과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있으니,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대단하단 3학년들도 총장 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가자."
시몬은 얼른 골렘의 핵을 보드 형태로 만들었다.
"꽉 잡아. 바로 출발할게."
로레인도 뒤에 올라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키이이잉-!
멀어지는 시몬의 모습을, 학생들이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바라보았다.
* * *
"헤이, 시몬!"
칠흑역학 강의실에서 딕과 만난 뒤에야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다.
그는 시시덕거리며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잘 빠져나왔네? 메이린이 너 데려가야 한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데."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란인지 설명 좀 해줘."
"참, 너 어제 학생회실 안 와서 모르지? 오늘부터 그거잖아."
딕이 씩 웃으며 엄지를 올렸다.
"동아리 시즌! 활동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키젠의 소리 없는 전쟁이야!"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동아리 시즌이 언제부터 자금확보 전쟁이 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