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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42화 (54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42화

오전의 칠흑역학 수업이 끝나고, 난데없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아,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니까!"

"우리 동아리의 사업 설명회를......!"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은 뒤쫓아 오는 동아리 학생들을 피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아아!"

메이린이 휘날리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카미바레즈는 앞만 보며 숨을 토해내고 있었고, 시몬은 그녀들의 등을 밀어주며 뒤를 힐긋거렸다.

"으하핫! 이쪽이야!"

그리고 선두에 선 딕이 유쾌하게 소리치며 골목길로 들어왔다.

"저기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잡아!"

잡아는 뭐야 대체.

그 말을 들은 시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타다닷-

타닷!

학생회 멤버들이 좁은 골목길을 눈 깜짝할 사이에 통과했다.

동아리 학생들도 뒤따라 골목길에 들어온 순간.

'!'

휑-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텅 빈 골목에 학생회 멤버들의 모습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뭐야, 어디로 간 거야?"

"도망칠 곳이 없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건물 3층에서 밧줄이 스르륵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다! 옆 건물로 들어갔다!"

"3층이야! 잡아!"

우르르르!

뒤쫓아 오던 동아리 학생들 모두가 1층 창문을 통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주위가 조용해지자.

스륵.

벽면이 이불처럼 흐물렁거리며 내려오고, 벽에 딱 붙어 있는 학생회 멤버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캬하하! 정확히 내 함정에 걸려들었어!"

딕이 벽면과 똑같이 생긴 돗자리를 돌돌 말아서 아공간에 넣었다. 시몬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걸 미리 준비해 둔 거야?"

"그럼! 이렇게 될 줄 알고 탈출루트를 짜놨지! 학생회 하수인들도 데려왔어!"

요란스러운 3층 건물에서 학생회 직속 하수인 모조가 경례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딕도 장난스럽게 경례를 받아주었다.

"......야. 너 이 와중에 쫌 즐기는 것 같다?"

메이린이 툴툴거리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대단해요. 딕!"

카미바레즈가 빙긋 웃으며 칭찬하자 딕의 콧대가 높아졌다.

"자! 이 기회에 얼른 학생회실로 들어가자."

* * *

학생회의 업무는 수없이 많다.

학교의 중대한 의사결정은 키젠 본부나 교수들이 알아서 하고, 학생회는 학생을 대표해 의견만 피력할 뿐이지만, 학생의 복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학생회의 권한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입학식 등의 교내행사, 학교축제, 동아리 시즌, 학생총회, 외부친선행사, 학과자치행사 등등 전부 학생회의 소관이다.

이번 동아리 시즌도 마찬가지 경우다. 점심시간이지만 태연하게 학교식당에 갈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시몬 일행은 학생회실로 몸을 피했다.

"괜히 심부름시켜서 죄송해요."

메이린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직속 하수인들이 식당에서 도시락을 가져왔다.

네 사람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시락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우며 논의에 들어갔다.

"동아리 시즌이라, 다들 학생회에 잘 보이려고 저러는 거야."

딕이 포크를 휙휙 흔들며 말했다. 시몬이 본인의 포크로 딕의 포크를 때리며 물었다.

"왜 잘 보이려는 건데?"

"예산을 우리가 책정하니까."

"금액이 얼마나 되길래?"

"음. 올해 내려온 건 대충 1만 골드쯤."

어마어마한 액수에 시몬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 그렇게나 많이 줘?"

"그러니까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거지. 말했잖아?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딕이 휘리리릭 포크를 돌리다가 앞으로 찌르는 시늉을 했다.

"대량의 자금이 풀리는 동아리 시즌에 동아리 활동을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야. 다들 한탕 잡으려고 뛰어들 거고, 막 근본 없는 이상한 동아리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시즌 끝나자마자 사라지는 것도 그런 이유지."

"마치."

우아하게 파스타를 말아 올린 메이린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1학년 때 '로체스트 창업 지원회'라는 멍청한 동아리를 만든 것처럼?"

커흠흠흠-

딕이 당황하며 헛기침을 했다.

"어, 어허~ 또 음해 시작이다! 우리 동아리 부원들도 장사에 눈을 뜨기도 했고 나름 유익했다고!"

"그래서 그 동아리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냐? 븅딱아."

메이린에게 연타를 얻어맞은 딕이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그으, 그때는 내가 학생회에 들어갈 줄 알았나! 우리 철없는 과거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맙시다!"

"그럼 혼날 때만큼은 나불거리지 말고 주둥이 좀 싸물어. 매를 버니까."

"넵."

메이린이 '으휴' 하고 한숨을 쉬며 손수건으로 입 주변을 닦았다. 그러곤 시몬을 보며 말했다.

"대충 이런 식이야, 시몬. 동아리를 돈벌이로 수단으로 생각하는 애들이 많지."

"흐음."

시몬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고, 카미바레즈는 회의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뭣보다! 저렇게 대놓고 학생회 멤버들한테 로비하려는 게 정상이야?"

메이린이 창문 아래를 가리켰다. 벌써 학생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우리가 틀을 바꿔야 해."

회의록을 작성하던 카미바레즈가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바꿀 거예요? 메이린."

"분배부터 손봐야지."

메이린이 팔을 쫙 펼쳤다.

"20년 넘게 존속한 운동 동아리보다, 올해 새로 만들어진 사업 동아리가 프로젝트가 크다고 돈을 더 받아가는 게 말이 돼? 신규 동아리 기준을 빡세게 잡고, 세부 심사까지 들어가야 해."

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 동아리 시즌 부스 신청받는데 어느 세월에 심사를......."

"부스 신청받으면서 하면 되잖아!"

"그럼 예산 분배는 어떻게 할 건데?"

딕이 불쑥 물었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메이린은 당황한 듯 눈을 굴렸지만, 바로 대답했다.

"응 그래, 예산. 사실 1년 중에 동아리 시즌이 학생회가 가장 많이 욕먹는 시기라잖아? 어디는 많이 주고, 어디는 적게 주고 막 그런 잡음이 많지. 그러니까 동아리 심사를 까다롭게 해서 딱 소수만 뽑고, 다른 말 안 나오게 균등하게 주는 거야."

"반대합니다!"

딕이 손을 들며 말했다.

"바아-로 곱게 자란 귀족 아가씨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나오죠?"

이번엔 메이린이 얼굴을 붉혔다.

"내, 내가 뭐!"

"다 균등하게 줘버리면, 세 명 있는 동아리랑 30명 있는 동아리도 같은 돈 주냐? 30명 있는 동아리는 회식 한번 못하겠네."

"그건 너무 극단적인 예시잖아 븅딱아! 완전히 같게 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그 정도의 구분은 해서 줘야지!"

"그 구분의 기준도 아직 못 정했잖아."

시몬이 고개를 돌려 딕을 보았다.

"그럼 딕,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필드에서 직접 뛴 내가 행정에 대해 논하자면, 행정계엔 이런 말이 있지."

딕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다- 그냥 하던 대로 두십쇼~"

"......방금 지어낸 말이지?"

"크흠! 암튼 키젠이 이렇게 해온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괜히 바꾸고 들쑤실 필요 없다고 봐."

메이린이 테이블을 두들겼다.

"야! 학생회인 우리가 문제점이나 부작용을 뻔히 알고도 그냥 잠자코 넘어가잔 거야?"

"현실적으로 고치기 어려운 점이니까 이렇게 뒀겠지? 그리고. 솔직히! 진짜 솔직히 말해서."

딕이 턱에 손을 올리며 히죽 웃었다.

"지금 전교생이 우리한테 잘 보이려 하는 거. 은근 기분 좋지 않냐?"

"......?"

딕을 제외한 세 사람의 얼굴이 건조하게 변했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몰랐던 딕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친하지도 않은 애들이 달라붙어서 말 걸고, 선배들은 강제로 팔짱 끼면서 데려가려 하고, 교복 재킷에 막 뇌물 같은 거 쑤셔 박고 튀고, 점심시간에 밥도 제대로 못 먹게 괴롭히는 게?"

메이린이 날카롭게 말했다.

"부, 부담스러웠어요. 주위에서 무리한 부탁들을 해서......."

카미바레즈가 힐끔거리며 말했다.

"3학년 학과대표 선배까지 날 부르더라."

시몬이 뒷목을 긁적였다. 딕이 무안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아이고, 나만 관심종자라서 미안했습니다! 그럼 살짝 바꿔서 말할게."

딕이 손가락 끝을 세워서 시몬의 학생회장 마크를 가리켰다.

"동아리 시즌은, 우리 학생회의 권력이 최고조가 되는 시기야!"

"......."

"오해하고 말고 들어! 물론 그러잔 소리는 절대 아니지만! 우리랑 우호적인 동아리는 예산을 밀어주고 적대적인 동아리는 예산을 덜 주고 그런 것도 가능해. 여전히 3학년 선배들은 우릴 땜빵처럼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 사람들 제대로 똥줄 타게 해줄 수 있단 거야! 솔직히 지금, 우리 학생회가 완전히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잖아?"

메이린의 인상이 구겨졌다.

"고작 그런 이유 땜에 무수한 문제점을 방치하자고? 동아리 활동에 순수하게 집중하고 싶은 사람도 피해를 보고 있는데?"

"그런 건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잔 거지."

"현실적인 게 아니라 외면이겠지!"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어떻게 생각해? 시몬!"

"......."

카미바레즈도 중요한 순간인 듯 회의록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시몬은 깍지를 끼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의견 모두 의의는 있어. 심화한 문제점을 방치할 수는 없고, 학생회 시즌이 우리 학생회의 권력이라는 말도 맞아. 하지만."

시몬이 딕을 보았다.

"권력이란 게 양면이 있잖아?"

어떤 동아리가 돈을 많이 받아 학생회를 지지하게 되면, 또 어떤 동아리는 돈을 적게 받고 학생회에 앙심을 품게 된다. 누군가의 아군이 되는 건, 곧 누군가의 적이 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 상황이 위태위태하다면, 아군을 만드는 것보다 더 이상 적을 늘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어, 글치.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어떻게 하려고? 모두가 불만을 품지 않게 만드는 건 힘들걸."

딕의 물음에 시몬이 미소 지었다.

"명확한 예산 분배 기준을 정하고, 그냥 전교생 전체에 그 기준을 다 공개해 버리자."

예산 분배의 기준은, 가장 명확한 기준인 동아리의 인원수로 하기로 했다.

이번 동아리 시즌이 끝나고, 인원수가 많은 동아리가 가장 많은 예산을 가져간다. 그리고 메이린의 말대로 신규 동아리를 심사하지 않는 대신.

"보고서를 받는 거지."

시몬이 말했다.

"한 번에 예산을 다 뿌리지 말고, 달마다 동아리 성과 보고서를 받자. 대충 한탕 하려는 의도로 동아리 만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하는 거야. 예산은 보고서를 받은 뒤 달마다 제공하는 걸로."

카미바레즈가 손뼉을 쳤다.

"좋은 것 같아요!"

딕이 '흠' 하고 팔짱을 꼈다.

"동아리 측에서 괜히 일만 더 시킨다고 싫어하지 않으려나."

"웃겨."

메이린이 픽 웃었다.

"지금 우리한테 로비하려는 이 정성을 생각해 봐. 달에 한 번 성과 보고서 쓰는 건 껌 아냐? 돈이 걸린 문젠데?"

"......으, 으음. 하긴 돈이 걸린 문제니까."

"그리고! 성과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학생회가 가서 무작위 현장평가도 하는 거야!"

딕이 이번엔 기겁하며 팔로 X자를 그렸다.

"저기요 부회장님! 인간적으로 우리 일을 우리가 늘리는 제 목 조르는 짓은 하지 맙시다!"

"입 닥쳐! 나 혼자라도 할 거야!"

대충 정리되어 가고 있다.

카미바레즈가 깔끔하게 취합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 됐어요! 오늘 저녁에 준비하려면, 바로 제인 교수님 결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네. 같이 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달칵!

그때 학생회 문이 열렸다. 네 사람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인 교수님!"

그녀의 표정을 보니 이미 이야기는 다 들은 듯한 느낌이었다.

학생회실에 들어온 그녀가 책상 위의 보고서를 눈으로 훑어보고는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그쪽 미션을 줄 생각이었는데, 어지간한 3학년 학생회보다 낫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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