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44화
올해 동아리 시즌은 1학년 캠퍼스 중앙광장에서 사흘간 열린다.
선배들은 동아리 부스를 열어서 신입부원 모집에 열을 올리고, 1학년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취향에 맞는 동아리가 있는지 둘러보고, 여러 체험활동도 즐긴다.
그러나 문제는 첫날부터 발생해, 둘째 날부터 본격화됐다.
"1학년의 참여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주말부터 급하게 불려온 시몬이 학생회장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 그 옆에는 메이린이 서류철을 안은 채 종종걸음으로 뛰고 있었다.
"응. 현장에 가면 바로 보일 거야."
두 사람이 캠퍼스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확실히 사람의 수가 적었다.
"이제는 2학년보다 1학년이 더 적네. 작년에는 안 이랬는데."
"응, 원인은 아마."
메이린이 진지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영입전쟁의 과열 때문일 거야."
학생회의 정책 변화로, 올해는 작년보다 동아리 부원의 확보가 더 중요해졌다. 물론 부원들의 유지 관리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부원을 확보해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그래서 동아리 운영의 주역인 2학년들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1학년들을 두고 영입 경쟁이 치열해졌고, 급기야 학교에서 홍보 구역으로 지정해 준 중앙광장을 벗어나 홍보하기 시작했다.
1학년 캠퍼스 길거리를 비롯해 도서관, 카페, 교내 식당 등 어딜 가도 붉은 배지를 단 2학년들이 전단지를 든 채 나타났다. 심지어는
-아하하! 교수님, 실례합니다! 얘들아 안녕! 우리는 던전 연구 동아리라고 하는데......!
수업 직전이나 직후에 무분별한 강의실 홍보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1학년들은 교육 커리큘럼 상, 같은 1학년들 간의 경쟁이 심화되어 있을 뿐 선배들과의 접촉은 드물다. 아직 선배들이 무서운 1학년들에게 이런 식의 접촉은 불편함만 부를 뿐이었다.
문제는 더 있었다. 그나마 동아리가 있는 부원들은 동아리의 이미지를 위해 여러모로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친구를 돕겠답시고 전단지를 들고 홍보에 나선 2학년들이 말썽이었다.
-야 야, 안 들어올 거야? 진짜 안 들어올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선배가 부르는데 그냥 생까네?
-키젠 개판 다 됐다, 진짜.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나 신났는지, 본인들이 3학년들에게 당했던 걸 1학년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다.
축제 분위기여야 할 동아리 시즌에 공포 분위기가 형성되고, 1학년들은 부담스러움에 부스가 설치된 중앙광장을 꺼리기 시작했다.
"시, 심각하네."
설명을 들은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그때 멀리서 시몬~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미바레즈와 딕이 달려오고 있었다.
"주말 아침부터 뭔 난리냐 이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딕이 하품을 쭉 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이 지정구역 밖에서 홍보하던 2학년 학생들을 붙잡아 데려오고 있었다.
붙잡힌 2학년들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야, 딕. 이거 좀 놓으라 해. 아, 다들 왜 이래요. 진짜."
시몬과 메이린이 다가왔다. 메이린이 으휴 하고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키젠에서 1년을 버틴 선배란 것들이. 이게 다 무슨 꼴인데?"
"맞아요! 반성해 주세요!"
카미바레즈가 양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2학년이 무안한 웃음을 흘렸다.
"좀 봐주라. 부스에 애들이 찾아오질 않는데 어떡하냐. 나가서라도 동아리를 알려야지."
옆에 2학년은 날카롭게 눈을 떴다.
"아, 툭 까놓고 말해서 이게 꼭 우리 탓이냐? 애초에 학생회에서 1학년들이 부스에 잘 찾아오게 홍보했으면......!"
"남 탓하지 마! 븅딱아!"
메이린이 그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그가 으아악! 소리를 내며 다리를 부여잡고 통통 튀어 다녔다.
"순서는 똑바로 말해야지! 니들이 그딴 짓을 하니까 애들이 안 찾아오는 거 아냐!"
"와! 개 아퍼! 쓰읍! 학생회라고 학생 막 때려도 되냐?"
"아직 덜 처맞았네?"
메이린이 그의 멱살을 붙잡으려는데, 시몬이 막아 세우며 말했다.
"너희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 동아리 부원도 아니면서 이런 식으로 학사일정에 혼란을 주면, 다음엔 징계를 건의할 수밖에 없어."
징계라는 말까지 나오자 느물거리는 태도도 쏙 사라졌다.
그들을 돌려보낸 시몬이 역할을 분배했다.
"딕, 우리 직속 하수인 30명 전부 동원해서 외부 홍보를 강경하게 통제해 줘."
"오케이!"
"메이린, 카미. 너희들은 동아리 부장들을 불러 모아줘. 지금 현장에 있는 부장들만이라도 좋아."
"알았어."
"네, 시몬!"
* * *
결국 학생회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아리 시즌인 만큼, 각 동아리의 부장들도 대부분 현장에 있었기에 바로 모여서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1학년들의 불안감이 심각한 수준이야. 앞으로는 자제해 줬으면 해."
과열경쟁의 폐단이었다.
각 동아리 부장들도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인지하고 있었기에, 시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외부 영입 경쟁이 심해질수록, 정작 가장 중요한 동아리 부스에 방문하는 1학년들의 전체 수는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근데 말야."
한 동아리 부장이 턱을 괴며 말했다.
"이미 동아리 시즌 이미지를 잡쳐 버렸잖아? 지금부터 통제한다고 해도 1학년들이 부스에 오려고 할까?"
"맞아요. 학생회에서도 뭔가 대책을 보여주셔야죠."
"애초에 과열경쟁은 학생회가 조장한 거잖아. 명색이 키젠의 학생회라면 이런 부작용도 예측했어야지."
바뀐 정책에 불만을 품은 동아리들이 한 마디씩 툭툭 던졌다.
메이린이 욱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야 이 새끼들아!! 잘못은 니들이 해놓고 왜 자꾸 남 탓을......!"
"메이린."
시몬이 진정하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짚어서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러고는 부장들을 돌아보았다.
"좋아. 학생회가 어떻게든 손써볼 테니까, 우릴 믿고 부스 안에서의 홍보에만 집중해 줬으면 해."
회의가 끝나고 동아리 부장들이 돌아갔다. 메이린이 시몬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야아! 어쩔 셈이야? 어쩌자고 부장들 앞에서 그런 소리를 했는데!"
"어떻게든 해봐야지."
시몬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사이 딕이 다가왔다.
"헤이! 시몬! 지시대로 하수인들 쫙 뿌려놨다. 뭔 지시를 받았는지 2학년 애들 다들 철수하는 분위기더라."
"잘됐네."
"회의는 끝났어?"
"응, 잘 풀렸어. 그보다 딕."
시몬이 딕을 보며 말했다.
"1학년 애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게 뭐가 있을까?"
"유행? 갑자기?"
"응. 중요해."
딕이 흠. 하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즘 핫한 건 역시...... 오페라나 연극 쪽이려나."
메이린이 인상을 구겼다.
"야, 핫한 거 맞아? 어른들이나 보러 가는 그런 게 1학년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다 알면서 그러네. 최근에 랭거스틴 대극장에 젊은 대스타가 탄생했잖아? 우리 입학식 때도 온 세이위르! 그 사람은 귀족 아저씨들보다 젊은 애들한테 인기 대폭발이야."
메이린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미간을 구겼다.
"......그 바보가 그렇게 인기 많다고?"
"몰랐어? 이번 임무평가 때만 해도, 1학년들이 죄다 랭거스틴 쪽 임무 잡아서 세이위르 연극 보러 갔잖아! 그거 때문에 1학년 담당 교수님들한테 겁나 깨졌다는데."
시몬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세이위르를 입학식 때 사회자로 썼는데, 엄청난 인기긴 했다.
"이거 괜찮아 보이네."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주 괜찮지."
딕이 말을 받았다.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두 소년이 동시에 메이린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자, 잠깐!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제 몸을 감쌌다.
* * *
다음 날 아침.
랭거스틴 대극장.
"오전 공연 대단했네! 세이위르!"
배불뚝이 노년 신사들이 몰려와 세이위르에게 찬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단절과 추락의 시대를 표현한 자네의 섬세한 손짓은 마치 50년 전 전설적 배우 모티스의 재림과도 같군!"
"첩첩이 쌓아 올린 한 사람의 인생은 그 또한 걸작! 자네의 연기는 아주 좋은 화두를 던졌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여러분."
짙은 눈썹을 흔들며 느끼한 미소를 머금은 세이위르가 후원자 귀족들과 악수했다.
10분 정도 후원자들과의 팬서비스를 마친 뒤, 세이위르는 휘파람을 불며 경쾌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하하! 세이위르!"
최근 매출 폭발로 귀가 입에 걸린 극장주가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다.
"아침 공연 수고했네. 푸욱 쉬고 저녁 공연도 잘 부탁하네!"
"저만 믿으십시오."
"자네를 보겠다고 대륙 각지에서 팬들이 찾아오고 있으이! 허허, 대체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난 겐가!"
극장주가 세이위르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고 있는 그때, 뒤쪽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더 들어오시면 곤란하오!"
"뭐야 이것들!"
또 평소처럼 세이위르의 광팬들이 들이닥친 게 아닐까 했지만,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벅- 저벅-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세 명의 남녀가 경비들을 뚫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댁들은 누구요!"
극장주가 소리쳤다. 중간에 선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어서 얼굴을 드러내더니 품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키젠에서 왔습니다."
떡 하니 새겨진 키젠 마크를 본 극장주의 얼굴이 새까맣게 굳었다. 진압봉까지 들고 제압하러 오던 경호원들도 석화라도 걸린 듯 딱딱하게 멈춰 섰다.
그녀가 수첩을 넣으며 차갑게 말했다.
"키젠 학생회 소속 '모조'라고 합니다."
키젠이라면 일단 몸을 사리는 게 최선이다. 극장주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굽신거렸다.
"키, 키젠 분들이 어쩐 일로 이런 곳까지......."
"모셔라."
탓.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하수인들이 세이위르의 양팔을 붙잡았다.
세이위르는 영문도 모르고 발버둥 쳤지만.
'무, 무슨 힘이?'
당연히 저항할 수 없었다. 단숨에 제압당하는 세이위르를 보며 극장주가 펄쩍 뛰었다.
"어쩌려고 이러시오! 아무리 키젠이라도 이건......!"
모조는 무표정한 얼굴로 쪽지 한 장을 세이위르에게 보였다.
<오후 일정 빈 거 아니까 닥치고 유료공연이나 뛰러 오세요.>
-메이린.
"하하하!"
그제야 세이위르가 큰 소리로 웃음을 쏟아내며 극장주를 보았다.
"난 또 뭐라고! 극장주님. 잠깐 외부에서 공연 좀 뛰고 오겠습니다."
"갑자기 말인가? 어, 어디로?"
비로소 하수인들이 팔을 풀어주자, 세이위르가 옷깃을 가다듬고 이를 보이며 씩 웃었다.
"키젠의 귀여운 소년 소녀들이 저를 원하는 것 같군요."
* * *
"다 함께 들어라! 젊음의 축배를!"
퍼엉! 펑!
1학년 캠퍼스, 중앙 강당 무대 위에 올라선 세이위르가 확성수정구를 들고 힘차게 노래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파도가 몰아치고 폭풍이 휘몰아쳤다.
"하늘이여!"
빵빵한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무대 아래에는 자리에서 열렬히 점프하며 세이위르의 이름을 연호하는 1학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히 어마어마한 인기였다. 세이위르의 노래가 들리자마자 900명에 달하는 1학년 전교생이 모조리 몰려온 것 같았다.
"우리에게 열정을!"
시원스레 노래를 부른 세이위르가 뒤로 물러나며 옆을 가리켰고, 눈부신 조명이 그 옆에서 확성수정구를 든 키젠 여학생에게로 향했다. 얼굴엔 고양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우리에게 열정을!"
소녀가 우아하게 목소리를 높이자, 세이위르에게 빠져 있던 1학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순식간에 고음파트에 도달했다.
"들어라! 젊음의 축배를-!"
우와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완벽에 가까운 고음에 학년들이 웅성거렸다.
"저 여자 뭐야? 우리 학교 교복 입고 있는데?"
"배우 아냐? 진짜 재학생이야?"
"잘한다!!"
이 순간의 인기만큼은 세이위르 못지않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환호를 듣고 있었지만,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은 더 할 수 없을 만큼 시뻘게져 있었다. 눈꼬리에는 자그맣게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왜 우리 학교에서 노래 불러야 하냐고! 싫어! 싫어! 개싫어어!'
그러거나 말거나 공연의 열정은 높아져 가고 있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도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고 있었고, 딕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선택한 공연이다, 메이린.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시몬이 얼떨떨하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잘하네."
"맞아요!"
진짜 배우인 세이위르에게 뒤처지기는커녕, 이제는 메이린이 음색과 파워로 압도하고 있었다.
중앙광장에서 시작한 공연은 대성공.
그 여파는 자연스레 동아리 부스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수많은 1학년들이 공연을 보러왔다가 부스로 들어갔고, 2학년들도 이제 부담을 내려놓고 편하게 후배들을 대하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1학년 한 명에 2학년 두세 명이 붙어 경쟁했지만, 이제는 1학년들이 앞다투어 부스 앞에 줄을 서야 했다. 이제 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 무슨 마술을 부린 거야? 진짜 고맙다!"
동아리 부장들의 입가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사람이 오질 않으니까 회의 때는 뿔나서 시몬에게 따졌던 부장들도 이제는 제대로 축제를 만끽하고 있었다.
"응, 열심히 해."
시몬도 뒤끝 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 방에 신입생 부족을 해결해 버리자, 학생회의 평가가 급등하는 건 당연했다.
필요하다면 세이위르 같은 대스타까지 동원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학생회로.
사실 작년 파견평가 때 잠시 엮였던 남자가 이렇게 대스타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어머나, 재미있는 이벤트네요."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니 세르네가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고양이 가면이라. 내가 아는 사람이랑 비슷한 목소리인 것 같은데."
시몬이 웃음을 흘렸다.
"와, 왔어? 세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