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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46화 (54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46화

딕은 시몬과 피츠제럴드, 그리고 토토를 이끌고 주위의 동아리 부스를 구경시켜 주었다.

"하수인들한테 부스 꾸미는 데 필요한 자재들 좀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거든?"

딕이 피츠제럴드의 목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말을 이었다.

"그사이 우리는 경쟁자들을 염탐하면서 뭐가 부족한지 알아보는 거야."

"알겠다."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인사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내 이름은-"

"전체 20위,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시선을 익숙한 듯 즐기며 딕이 정보를 줄줄 읊었다.

"취미는 독서. 특기는 철학토론, 근래 가장 자랑거리는 30골드짜리 명품 안경."

"......어떻게 그걸?"

"하하! 내가 원래 이런 걸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라 신경 쓸 필욘 없어. 암튼."

걸음을 멈춘 딕이 팔을 옆으로 쭉 휘저었다.

"너희들이 상대하고 있는 경쟁자들을 한번 봐봐. 토토 너도."

"아, 응!"

피츠제럴드와 토토의 시선이 천천히 동아리 부스 한 바퀴를 돌았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딕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제 쫌 감이 잡히지? 왜 저것들은 잘나가고, 왜 너희들은 망했는지!"

"전혀."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자, 잘 모르겠는데."

토토도 우물쭈물 말했다.

딕이 시몬을 돌아보며 '얘들 원래 쫌 모자라냐?' 하고 입 모양으로 물었다. 시몬은 조용히 외면하며 딴청을 피웠다.

"자, 좋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딕이 앞을 가리켰다.

"미식 동아리. 직접 커다란 식당을 운영하면서 맛과 냄새로 신입생들을 사로잡고 있지. 뭘 하는 동아리인지 한눈에 보여주는 거야! 입부지원자는 식사비 무료. 이런 센스도 괜찮고."

딕이 그 반대편을 가리켰다.

"피지컬 동아리는 바지만 입고 오일을 잔뜩 발라서 근육의 미(美)로 학생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지. 칠흑 검도부는 멋진 검 컬렉션을 쫙 진열해놔서 시선을 강탈하는 중이고, 변신 동아리는 부원이 고양이로 변신해서 어느 쪽이 진짜 고양이인지 맞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어."

그렇게 말한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알겠지? 각 동아리의 성격에 맞는 것들을 앞에 내세우는 거야."

"이상하군."

피츠제럴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피드백이라면 이미 하고 있는......."

"그 혐오스러운 세이렌 키메라랑 꾸엑거리면서 토하는 데스웜을 말하는 건 아니지?"

피츠제럴드가 발끈한 표정을 지었지만 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각 동아리의 성격에 맞되, 일반 대중까지 누구나 좋아할 만한 요소를 배치하는 게 중요해! 아, 막 그런 거 있잖아.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작고 귀여운 소환수?"

"쥐와 토끼의 장기를 붙여 만든 미니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 키메라가 있다. 작고 귀엽......."

"기각입니다. 고객님."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딕은 한숨을 푹 쉬었다.

"동아리의 개성을 살리는 건 일단 넘어가고. 조금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다뤄보자고."

딕이 손바닥을 짝! 맞부딪혔다.

"인간은 무엇에 끌리는가!"

드디어 대답할 가치가 있는 화제가 나왔다는 듯, 피츠제럴드가 눈을 빛냈다.

"진리에 대한 탐구심과 무한한 지적 호기심."

"......누가 애 입 좀 막아봐."

딕이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더 쉽게 말할게. 10대 소년 소녀들은 무엇에 끌리는가! 그건 바로 이성에 관한 관심이야!"

피츠제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 나도 동의한다."

"오, 그래? 이제야 쫌 말이 통하네."

딕이 어깨를 으쓱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까놓고 말해 17살 먹은 꼬맹이들이 뭘 좋아하겠냐고! 연애! 설렘! 풋풋함! 캠퍼스 데이트! 남자! 여자! 사랑! 다 그런 거지! 저길 봐!"

앞쪽 골목에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남학생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말끔한 수트차림에, 조각 같은 얼굴의 소년들이다. 지나가던 여학생들에게 전단지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데, 숙련된 작업멘트에 1학년 쑥맥 귀족 여학생들은 속절없이 얼굴이 팡팡 붉어진다.

심지어 전단지를 받고, 머리 스타일을 살짝 바꾸더니 한 바퀴 또 돌아서 그들에게 전단지를 받으려는 소녀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도!"

반대편 골목에는 2학년 여학생들이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짧은 스커트의 치어리딩 복장이나, 심지어는 메이드 유니폼을 챙겨온 학생들도 있었다.

하늘 같은 여선배들이 1학년들의 팔을 붙잡고 입부하라며 칭얼거리듯 속삭이니, 남학생들은 홀린 듯한 얼굴로 입부지원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 이게 다 뭐야!"

토토가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불결하다. 그리고 천박하군."

피츠제럴드도 짜증을 냈다. 조용히 지켜보던 시몬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이성(異性)에 대한 관심에 동의한다며."

"저건 이성(理性)과는 다르다.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엘리트 키젠이란 이름이 우는군. 애초에 저런 방식에 혹해서 들어오는 1학년들은 내 쪽에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그 말을 들은 딕의 눈이 회까닥 돌아갔다.

"너는! 저들을! 비웃을 자격이 없어! 피츠제럴드!"

그가 메이드복을 입은 여학생을 가리키며 격노했다.

"쟤들은 좋아서 저러는 줄 알아? 누구나 다 편한 거 하고 싶고 분위기 잡으면서 대우받고 싶지! 저렇게 필드에 나가 직접 두 발로 뛰는 애들은 아는 거야! 뭐가 더 효과적인지! 어떤 방식이 더 큰 성과를 내는지!"

피츠제럴드도 밀리지 않고 눈을 치켜떴다.

"돌연변이는 돌연변이만의 철학이 있다. 저런 방식으로 꼬인 1학년들을 동아리 부원으로 받을 바에, 그냥 내년에도 2학년들로만 계속 가겠다."

"아니지! 넌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어! 일단은 사람이 와야 해. 일단은 사람이 와야 너희들의 그 철학이니 가치니 하는 거에 수긍하는 사람도 생기는 거야. 이대로는 그냥 아무것도 없이 '0'일 뿐이야! 가능성도, 미래도 '0'이라고!"

"......딕, 진정 좀 해봐."

시몬이 딕을 말렸다. 얘는 또 왜 이렇게 흥분했나 싶었다.

"자, 너는 무게 잡으면서 필드에서 뛰는 애들을 불결하고 천박하다고 말해! 그리고 너만의 까다로운 기준을 대중들에게 늘어놓지. 이게 얼마나 거만하고 바보 같은 짓이야? 조금 부끄러워도 열심히 활동해서 많은 부원을 확보하고 성과를 낸 사람과! 그런 그들을 비웃기만 하다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너!"

그가 검지로 피츠제럴드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어느 쪽이 더 키젠다운 거지?"

"......."

피츠제럴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안경을 고쳐 썼다.

"나는 외모나 매력에는 자신 없다만."

"후우."

딕이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인형 탈을 쓰든, 분장을 하든, 중요한 건 사람들을 끌어모으겠다는 마음가짐! 그 자체가 중요해."

딕이 그렇게 말하며 앞서 걸었다.

"부스로 돌아가자. 지금쯤 자재들 도착했겠는데?"

* * *

부스에 도착하자, 하수인들이 물건을 가져온 뒤였다. 딕의 지휘하에 모두가 함께 부스를 새롭게 꾸몄다.

일단 그 흉측한 오컬트 장식물들을 떼어내고 말끔한 실내 디자인으로 바꾼 다음, 지붕의 돌연변이 글자도 가독성 좋게 변경했다.

재미있는 소환수들의 사진을 벽에 붙이고, 냄새나는 데스윔은 토토가 아공간으로 불러들이도록 했다.

"잘하는데!"

그리고 세이렌 소환수는 여섯 개의 팔로 휙휙 공굴리기 묘기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 사념으로 조종하고 있는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이 정도는 기본."

그러고는 뭔가 꺾인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이......."

"하하하! 상업의 이름으로 대중적이고 시선을 끌 수 있는 건 뭐든 해!"

그때 천막 기둥 뒤에서 토토가 고개만 불쑥 내밀었다.

"저기, 딕! 진짜 이거 입고 하는 거야?"

"물론이...... 응?"

토토가 얼굴을 붉힌 채 걸어 나왔다.

그는 펑퍼짐한 긴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긴 머리 가발을 썼다. 이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다는 듯 딕도 감탄을 토해냈다.

"완벽해! 진짜 자로 잰 듯한 병약 미소녀야!"

"......딕."

시몬이 한숨을 쉬며 딕을 노려보았다.

"토토 데리고 장난치지 마."

"장난이라니! 난 언제나 진지해. 망해가는 네 동아리를 살릴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우리가 살아날 방법이 정녕 토토의 여장뿐이라면 망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크흠흠! 그러지 말자! 여자애들 모을 툴은 있는데 남자애들 모을 툴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딕이 전단지의 반을 토토에게 안기며 소리쳤다.

"자! 가라! 돌연변이 비장의 무기! 1학년 후배들을 공략해!"

"싫어! 이 꼴로 어떻게......!"

"걱정 마! 화장도 했고, 누구도 너라는 걸 못 알아볼 테니까."

분장과 익명성이라는 달콤한 딕의 혓바닥에, 거절을 연발하던 토토도 조금은 긴가민가한 표정이 되었다.

"지, 진짜 못 알아보겠지? 그렇지?"

"키젠 총무인 내가 보장한다! 갔다 와!"

토토가 불안불안한 얼굴로 떠나고, 이번엔 딕이 시몬을 보았다.

"그리고 시몬! 너도 언제까지 그렇게 뒤에서 무게만 잡고 있을래? 동아리 동기들이 개고생하는데 뭐라도 거들어야지."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알잖아. 나 학생회장인 거. 특정 동아리를 직접 돕는 게 될까?"

"후후! 니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아까 하수인들 보내서 제인 교수님께 물어보게 했거든? 올해는 예산 분배 기준은 명확하니까 마지막 날에 가볍게 거들어주는 정도는 괜찮대."

펄럭!

딕이 시몬의 학생회장 코트를 두들기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유명한 입학식 구출작전의 영웅! 그 명성을 제대로 한번 써먹어 볼까?"

시몬은 불안감에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 * *

같은 시각.

몰리 공주는 홀로 중앙광장을 거닐고 있었다.

"......."

같이 세이위르 공연을 보러 온 친구들은 하나둘씩 멋대로 흩어져 버리고, 이제는 그녀 혼자 남아 있었다.

곳곳에서 몰리를 발견한 2학년들이 하이에나처럼 다가왔다.

"공주님, 동아리 활동이야말로 키젠의 꽃 아니겠습니까!"

"저희 연구회에 와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공주님, 저희가 모시면......."

몰리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죄송해요."

다른 1학년 애들처럼 여유롭게 부스를 구경하고, 여러 활동도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곳곳에서 그녀를 알아보는 선배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 저리 꺼져! 야 이! 저리 안 꺼져?"

그녀를 데려가려는 동아리 부원들을 제치며, 한 앙칼진 2학년이 앞에 착 섰다.

노블의 부장인 엘리사 셀린이었다. 그 주위에는 다른 부원들도 있었다.

"몰리 공주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희와 함께 가시죠."

엘리사가 공손히 예의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2학년이 되시면 노블의 부장직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안드레 왕자님의 뒤를 이어......."

"......안드레 오라버니 말씀이시군요."

몰리 공주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약점을 잡아 동급생을 개인 하녀처럼 부려 먹고, 교내 권력과 예산을 남용하며, 왕국 흑기사단의 명예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시몬 선배님까지 고초에 빠트렸던 저희 오라버니 말씀이신가요."

어, 어라. 이게 아닌데?

엘리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고, 공주님 그건......!"

"죄송하지만, 제가 노블에 들어갈 일은 결단코 없을 거예요."

몰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인파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엘리사와 노블 일원들은 당연히 몰리가 들어와 주리라고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마지막으로 확인만 하고 돌아가자.'

몰리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인파를 빠져나와 걸었다.

교복 주머니에서 부스배치도를 꺼내 집중하고 있는데.

퍽!

난데없이 팔꿈치가 그녀의 얼굴에 들이박혔다. 그녀가 '커헙'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자빠졌다.

'?!'

살면서 뺨 한번 맞아본 적 없던 그녀였다. 코를 부여잡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 미안."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몰리가 고개를 들자, 키높이 의자에 앉은 채 커다란 3단 케이크를 들고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거기 있는 줄 몰랐어."

짧은 갈색 머리카락, 창백하게 내려앉은 흑설탕색 눈동자.

그리고 느껴지는 특유의 흉흉한 기운.

'......설마!'

찡한 코를 부여잡은 몰리가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명실상부 1학년 최강.

특례 1번, 사샤 앤드라실이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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