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49화
다음 날 오후.
돌연변이 동아리 부실.
"드디어 1학년들 면접이구나! 으으, 떨려어!"
토토가 제 어깨를 위아래로 마구 쓸어내렸다. 시몬은 차분히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네가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니잖아. 마음 편하게 먹어."
"그, 그치만!"
토토가 양손으로 텁! 제 머리를 붙잡았다.
"혹시 1학년들이 까먹고 안 오면 어쩌나 걱정되고! 혹시나 1학년들이 시험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화내면 어쩌나 걱정되고! 혹시나 동아리 방이 허름해서 1분도 있기 싫다며 나가 버리면 어쩔까 걱정돼!"
'......인간적으로 걱정이 너무 많은데.'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동아리가 좋아서 입부하겠다는 애들인데, 그렇게 할 리가 없잖아."
"그, 그렇겠지?"
달칵.
"시간 다 됐다."
마침 동아리 지하층에서 피츠제럴드가 올라왔다. 시몬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밑에는 왜 들어간 거야?"
"간단히 만들 게 있었다. 시험 준비는?"
"다 끝내놨어."
17명이나 들어오면 부실이 바글바글할 것 같기에, 소파나 가구처럼 부피가 큰 것들은 옆으로 치워놓고 공간을 확보한 상태였다.
남아 있는 건 책상과 의자 하나뿐이었다.
척.
동아리 부장인 피츠제럴드가 자리에 앉았고, 시몬과 토토가 그 옆에 섰다. 그리고 피츠제럴드는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로 뭔가를 내려놓았다.
방금 만든 것으로 보이는 종이명패였다.
[부장 : 피츠제럴드.]
"흠!"
그러고는 안경을 고쳐 쓰며 다리를 꼬고 비스듬하게 앉았다. 시몬은 조용히 웃었다.
'은근히 저런 거에 자부심 있다니까.'
"문밖이 소란스러운 걸 보니 1학년들도 도착한 것 같군. 그럼 입부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끼리 포지션을 정하자."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포지션?"
"음. 정확히는 1학년들을 통솔할 군기반장이 필요하다."
시몬이 쓰게 웃었다.
"굳이 그런 포지션이 필요할까?"
"물론, 어떤 3학년들처럼 쓰레기 같은 짓을 하자는 건 절대로 아니다. 1학년들의 통제가 어려우니 적당히 무서워할 대상이 필요하단 뜻이다. 적임자는-"
그러고는 토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아아아아?!"
토토가 펄쩍 뛰었다.
"자, 잠깐만! 난 그런 역할 진짜 못 해!"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네가 적격이다 토토. 이건 부장으로서의 명령이다."
"아무리 명령이라도 내가 할 줄 모른다니까! 그런 건 너희들이 훨씬......!"
피츠제럴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따져보자면, 우선 시몬은 학생회장이다. 그런 역할을 할 위치가 아닐뿐더러, 성격도 부적합하다. 1학년들이 좋아하는 시몬은 후배들을 타이르고 다독이는 스타일이 적격이지. 그리고 나는."
피츠제럴드가 제 가슴을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했다.
"부장이니까 싫음."
"자, 잠깐마안! 피츠!"
벌떡.
피츠제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 한 권을 토토의 가슴팍에 밀어 넣었다.
"해보지도 않고 못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너에게 이 책을 선물하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뜬금없이 이게 뭔데에!"
"동아리 시즌 마지막 날을 떠올려라. 토토."
피츠제럴드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장을 하고 전단지를 나눠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지?"
"응? 그야......."
"다소 심한 말이라 미안하지만, 평소의 그 손톱만큼도 자신감 없는 네 모습으로 전단지를 나눠줬다면 1학년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거다."
'앞서 사과했지만 말이 너무 심해!'
시몬이 식은땀을 흘리며 토토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여장을 했을 때 네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준비한 전단지는 순식간에 바닥났지. 네게 호감을 느끼는 1학년 남학생들도......."
"으악! 아아아악! 제발제발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피츠!"
"아무튼, 그때 네 기분은 어땠지?"
피츠제럴드가 그의 가슴에 안겨놓은 책 커버를 쿡 찔렀다.
"평소에 받아본 적 없던 폭발적인 인기, 그리고 관심. 그게 바로 포지션의 힘이다. 네가 토토 아모리인 건 상관없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상관없다. 그저 해당 포지션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을 때, 대중들 또한 개인이 아닌 포지션으로서 널 인식하고 수긍하게 되는 거지."
토토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다고?"
"그래."
가만히 듣고 있던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피츠제럴드. 너 갑자기 딕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거 아냐?"
"흠흠. 조용히."
착.
피츠제럴드는 아공간에서 까만색 모자 하나를 꺼냈다.
양옆에 뿔 장식이 달려 있고, 중간에는 이글거리는 불꽃과 무서운 해골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로고가 박혀 있었다.
"지금부터 이 모자를 쓰는 순간, 토토 아모리는 없다. 너는 돌연변이 동아리 버전의 윌 더글러스 선배가 된다."
"내, 내가 윌 선배......."
토토의 눈이 핑핑 돌아갔다.
마치 최면사처럼, 피츠제럴드가 느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자로 나약한 자신은 모두 가리고, 조직의 규율을 지키는 군기반장이 되는 거다."
"......규율을 지키는 군기반장."
"그래."
피츠제럴드가 신중하게 토토의 머리에 검은 모자를 눌러 씌웠다. 모자챙이 비스듬하게 내려오며 눈이 살짝 가려지게 됐다.
그가 뒤로 물러나 팔짱을 꼈다.
"음. 잘 어울리는군. 나약한 토토 아모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어. 이제 좀 자신감이 생기나?"
"......응."
토토가 검은 모자를 고쳐 쓰며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나, 해볼게!"
"좋다. 군기반장은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피츠제럴드가 다시 자리로 되돌아와 손을 척 뻗었다.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박력 있게 1학년들을 데려와라."
"알았어!"
토토가 머리에 두 손을 짚고 스스로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나는 무서운 윌 선배다. 나는 무서운 윌 선배다.'
이내 눈을 뜬 토토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동아리 부실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콰앙!
"1학년 이것들아아!"
문 너머로 '꺄아아!' 하고 놀란 비명이 들렸다.
"부실 앞이 니들 집 앞마당이야? 어? 빨리빨리 들어오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1학년들이 후다닥 부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왕족인 몰리 공주나 특례 1번 사샤도 예외는 아니었다.
토토는 자기가 외쳐놓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저, 정말로 내 지시를 들었어. 1학년들이......!'
그는 뭔가 커다란 깨달음이라도 느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시몬이 피츠제럴드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야, 정말 저래도 괜찮은 거야?"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넌 아직 토토를 잘 모른다. 토토는 잠재력에 비해 늘 나약한 성격이 발목을 잡지. 저런 포지션을 경험해 보는 것도 토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
"......그랬으면 좋겠는데."
한편, 1학년들이 조용히 있는 것도 10초 만에 끝났다.
부실로 들어오자마자 꺄륵거리며 주위를 구경하거나 요란스럽게 수다를 떨어댔다.
옆에서는 사샤가 손을 흔들며 '시몬 오빠~' 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1학년 이것들 개빠져 가지고!"
그때 뒤에서 토토가 빼액 소리 질렀다.
"그새를 못 참고 떠들어? 개념 밥 말아 처먹었지 진짜. 선배가 우습냐? 어? 나 때는 선배들 말이면 해골그릇 똥탕에 머리도 처박았어! 일렬로 똑바로 안 서!"
그 말을 들은 1학년들이 얼른 입을 다물고 공손히 열을 맞춰 섰다.
'너, 너무 심취한 거 아냐?'
시몬이 당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해본 사람이 흉내도 잘 내는군.'
피츠제럴드도 기대 이상이었는지 진땀을 흘렸다.
그리고 그날,
토토는 '갈굼'에 눈을 떴다.
* * *
마지막 입부 신청자인 화이트는 조금 늦게 왔다.
그가 설렁설렁 걸음을 옮기며 부실에 도착하자, '쟤 뭐야?' 하는 1학년들의 항의 어린 시선이 꽂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이트는 열을 맞춰선 1학년들의 제일 끝에 섰다. 창가가 바로 옆에 보이는 자리였다.
"모두 모였군."
부장인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고쳐 썼다.
"지금부터 돌연변이 동아리의 입부시험을 시작하겠다. 너희들 17명 중에서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인원은."
그가 손가락을 펼쳤다.
"단 일곱 명뿐이다."
그 말에 1학년들의 눈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사샤와 몰리는 서로를 견제하듯 곁눈질했다. 이 와중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 건 헤실헤실 웃고 있는 용병왕 아서와, 창가에 날아다니는 새에 집중하는 화이트뿐이었다.
"시험은 총 3단계이며, 나와 토토, 그리고 시몬이 각각 하나씩 담당한다. 그럼 먼저 부장인 내가 담당하는 첫 번째 시험을 치르도록 하겠다."
시몬과 토토가 돌아다니며 1학년들에게 돗자리와 시험지를 나누어주었다. 1학년들은 각자 편한 곳으로 이동해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시험지와 깃펜을 꺼내 들었다.
'처음엔 필기시험으로 시작하는구나.'
몰리 공주도 돗자리 위에 곱게 앉아서 머리카락을 질끈 묶었다.
그러곤 슬쩍 사샤 쪽을 보았다. 들어올 땐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긴장한 얼굴로 깃펜을 들고 있었다.
'그래, 넌 필기시험에 약했지. 반면 이론은 내 특기야. 반드시 최고 성적으로 학생회장 선배님의 동아리에 들어가겠어!'
그때 앞에 나온 피츠제럴드가 말했다.
"시험 문제는 주관식 한 문제. 시험 기간은 20분이다."
그가 시계의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시작해라."
촤르륵-
학생들 전원이 시험지를 넘기며 문제를 확인했다. 몰리도 마찬가지였다.
'소환수 관련 지식은 자신 있어! 뭐든지 풀어주겠......!'
<문제. '돌연변이'라는 동아리 이름의 의미를 구성주의적 측면에서 고려할 경우 지식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독자적 인지구조로 받아들였는지 사회적 합의를 통한 객관적 이미지로 받아들였는지 스스로 판단하여 1,500자 이상으로 사실과 인지의 선택모형에 의거하여 쓰시오.>
????
몰리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이게 뭔 소리지?
대륙어는 맞는 건가?
문제를 이해할 수도 없다니, 그동안 왕족으로서 왕궁에서 최고의 선생들에게 배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도 알 수가 없었다.
원래 키젠은 이 정도로 수준이 높은 걸까?
하아-
흐으.
곳곳에서 한숨 소리와 탄식이 들려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다른 1학년들도 똑같이 어려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르륵-
그런데 이 와중에 사샤만이 깃펜을 들고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쟤가 문제를 이해했어?'
거침없는 깃펜의 움직임. 고민하듯 살짝 찡그린 표정.
틀림없이 답을 알고 적어내는 거였다.
몰리는 입가가 바싹 마르며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질 수 없었다.
'나, 나도 뭔가 해야 해!'
* * *
그렇게 20분 후.
시몬이 시험지를 걷어가고 피츠제럴드가 팔랑팔랑 빠르게 시험지를 훑었다.
1학년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음."
피츠제럴드가 시험지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전원 탈락."
1학년들 모두가 쿵! 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시몬이 피츠제럴드를 노려보았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피츠제럴드가 시몬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1학년들의 수준이 이렇게 떨어질 줄은 예상 못 했다. 돌연변이 동아리의 멤버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나도 못 풀어 그런 건!"
1학년들이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한 명도 못 들어가는 건가?
"거, 걱정하지 마!"
시몬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앞으로 나왔다.
"사실 이건 1학년 동아리 대표 한 명을 뽑기 위한 시험이었어! 뽑힌 사람이 없으니 일단 패스하고, 남은 두 시험에서 합격자를 가릴 테니 분투를 기대할게."
비로소 1학년들의 눈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네! 선배님!"
1학년들이 손바닥을 맞잡으며 '다행이다~' 하고 꺄르르 웃었다. 시몬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한숨을 푹푹 쉬는 중이었다.
"그리고."
피츠제럴드가 시험지 하나를 흔들었다.
"사샤 앤드라실이 누구지? 아무리 시험이 어려워도 낙서는 금지다."
"죄송합니다~"
사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지켜보던 몰리가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낙서였어?'
"그리고 몰리 드레스덴."
이번엔 피츠제럴드가 그녀의 시험지를 들어 올렸다.
"시험 과제랑 전혀 딴소리를 늘어놓긴 했지만, 빽빽하게 시험지를 채워놓은 노력은 인정한다. 그 노력을 높이 사서 간단히 소리 내어 읽고 해석해 주도록 하지."
'안 돼애애애애!'
잠시 일국의 공주가 수치사 직전까지 몰리는 시간이 있었다.
몰리의 얼굴이 빨간 물이 떨어질 것처럼 벌게지는 사이, 시몬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제발, 다음 시험은 좀 제대로.......'
"다음 시험은 내 차례야!"
1학년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검은 모자를 쓴, 그 키 작고 무서운 선배가 걸어오고 있었다.
"전 시험 보니까 다들 개판이야! 개판! 어딜 빠져 가지고 시험지를 백지로 내! 시험이 장난이야? 너희들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문제야!"
이제는 조금 무서울 정도로 군기반장 흉내를 잘 내는 토토였다.
"암튼 이번에는 내 차례야. 내가 낼 시험은......!"
달칵!
그 순간, 부실 문이 열렸다.
모두가 뒤를 돌아보는데, 늘씬한 키의 크림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머, 내가 방해했니?"
3학년의 벤야 바닐라가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베, 벤야 선배님!"
'오신다는 말 못 들었는데!'
그렇게 토토의 천하는, 고작 한 시간 만에 위기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