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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56화 (55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56화

별빛이 비치는 밤.

메리다는 조명 아래의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시몬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메리다, 일어나."

일어나지 않는다.

"메리다, 파견 갈 시간이야."

흔들어 깨워도 보았지만 역시나 일어나지 않는다. 시몬은 한숨을 푹 쉬고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직 행사가 시작하기 전이라 여유가 있다. 아슬아슬하게 20분만 더 기다려 보고 그래도 안 깨어나면 짐짝처럼 들어서라도 데려갈 생각이었다.

시몬이 중간고사 공부라도 할 겸 교과서를 꺼내려는데.

폭.

어깨에 감촉이 느껴진다.

색색-

메리다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것이다. 연분홍색 입술 사이로 얕은 입김이 흘러나온다.

"......."

시몬은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쓸어넘겼다.

이번엔 안 속는다. 전에도 괜히 이불 깔고 드러눕는 그녀를 뜯어말리려다 온갖 고생을 다 했었으니까.

"딱 20분이야."

선포를 마친 시몬은 묵묵히 기다렸다.

이대로 내버려 둔 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킥킥거리며 귀엽다느니 커플이라느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끙.'

괜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대로는 그녀의 얼굴이 문제였다. 이번 연회를 위해 준비했을 화장이 다 번지고 있었고, 시몬의 새 턱시도도 그녀의 침이 묻어서 더 방치할 수 없었다.

'기왕 재우는 거, 제대로 재우자.'

시몬은 앉은 채로 천천히 그녀의 양어깨를 짚었다.

뽀얗고 둥그스름한 어깨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

의도치 않게 남의 맨살을 만지게 되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애써 내색하지 않고 천천히 그녀를 움직였다. 시몬의 팔에 기대던 그녀의 고개가 내려왔고, 시몬도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벤치에 편안히 눕히려는 순간.

덥석!

"?"

메리다의 고개가 자석처럼 시몬의 무릎 위에 달라붙었다.

시몬은 그대로 전신이 꽁꽁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메, 메리다?"

잠깐 멍해 있는 사이, 그녀는 시몬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다.

이번에는 코오 코오 잠자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냥 입을 벌린 채 기절.

이쪽의 상황은 신경도 안 쓰고 꿀잠을 자고 있었다.

"야, 잠깐만!"

시몬이 황급히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메리다는 이 좋은 잠자리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손으로 바짓가랑이를 꾸욱 붙든 채 대롱거렸다.

우우웅-

항의하듯 입에서 잠꼬대 비슷한 소리까지 했다.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대로는 축제에 가기도 전에 진을 다 뺄 것 같았다. 세상모르고 숙면에 빠진 메리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몬은 조용히 턱시도 재킷을 벗었다.

몸의 균형이 쏠리는 바람에 그녀의 치마가 흐트러져 있었다. 가려졌던 허벅지가 온통 다 드러나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방비할 수 있지?'

시몬은 투덜거리면서도 턱시도 재킷을 그녀의 위에 덮어주었다.

이불이라고 생각했는지, 메리다는 좋은 듯 헤실헤실 웃으며 재킷을 움켜쥐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

"......."

그렇게 약속했던 20분이 모두 지났다.

"메리다, 일어나."

이제는 이쪽에서도 양보 못 한다.

시몬이 그녀를 마구 흔들어 깨우려고 했지만 우웅 거리는 소리만 낼 뿐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

잠시 턱을 짚고 고민하던 시몬이, 방금 떠오른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판타서스 선배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

그 한마디에, 메리다가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물고기처럼 펄떡 일어났다. 머리카락은 뻗쳐 있었고, 눈은 졸음에 반쯤 감긴 채 입가엔 침을 흘리고 있었다.

휙- 휙-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메리다가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

시몬의 입꼬리가 올라간 걸 캐치한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쟁이."

시몬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지독한 잠꾸러기에게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닌데."

유치하게 한마디씩 주고받은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시몬은 드디어 한번 돌려줬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으니 됐어. 빨리 시간의 탑에 들어...... 윽!"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며 휘청했다. 슬립에 걸린 걸 깨달은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메리다!"

"날 속였어."

그녀가 꽁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안 일어나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런 거짓말은, 싫어."

그녀가 눈썹을 모았다.

"다시는 하지 마."

"......."

이쪽도 할 말은 많았지만, 앞으로 파견기간 내내 함께할 파트너다. 여기서 이런 사소한 일로 트러블을 일으키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 약속할게."

그제야 메리다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고, 단번에 졸음이 가셨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를 털며 옷차림을 가다듬었다.

"가자."

"응."

두 사람은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시간의 탑 정문에 도착했다. 초대객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던 집사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하하! 오셨군요. 벤치에 사이좋게 앉아 있으시길래 언제 들어오시나 했습니다."

그 부끄러운 꼴을 다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몬은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고, 메리다는 물음표를 띄운 채 멀뚱멀뚱 서 있었다.

우선은 본부직원에게 받은 서류를 제출했다.

"파견임무 건으로 방문해 주신 키젠의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 그리고 메리다 휴 이켈 학생.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집사가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가는데 메리다가 따라오지 않았다.

"?"

메리다는 손등을 보이게끔 손을 내민 채 멀뚱히 서 있었다.

"왜."

"너 남자. 나 여자."

제 가슴을 가리킨 그녀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우뚱했다.

"에스코트 안 해?"

......참.

파견으로 일하러 온 거지만 그래도 엄연히 상아탑이 주체하는 커다란 축제였고, 파트너는 파트너였다.

지금 이 문을 넘는 순간 귀족들의 예절전쟁이 시작된다.

시몬이 신사처럼 자세를 가다듬으며 그녀의 손을 아래로 붙잡는 순간.

휘청.

졸음이 화아악 쏟아지며 슬립이 걸렸다. 넘어질 뻔한 시몬이 가까스로 멈춰 서고, 메리다가 푸웁푸웁 웃었다.

"또 걸렸어. 바보."

"너 진짜아......."

시몬이 뭐라 하려는데, 메리다 쪽에서 먼저 다가와 팔짱을 꼈다.

"이제 화. 다 풀렸어."

"......."

"가자."

메리다가 손가락을 튕겨 슬립을 제거해 주었다.

아까 판타서스 이름으로 깨운 것 때문에 아직도 꽁해 있었던 건가.

뒤끝이 긴 건지, 아니면 진짜 이쪽에서 실례되는 장난을 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조심하기로 했다.

시몬은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연회장 안으로 데려왔다.

'오.'

절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귀족들의 연회는 주최자의 취향에 따라 개성이 있지만, 급이 다른 고위 귀족들의 연회장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극단적일 만큼 호화롭고 번쩍번쩍하다는 점이다.

"아."

메리다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접시에 잘 구워진 스테이크가 있었다.

시몬도 입가에 군침이 도는 걸 느꼈다.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식사부터......."

"푹신해 보여!"

음?

그녀는 팔짱 낀 반대쪽 팔로 앞을 가리켰다.

그녀는 음식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다. 그 옆에 소파를 가리키고 있었다.

메리다는 시몬을 매달고 앞으로 돌진하더니, 소파에 앉아 손바닥으로 푹푹 만져보았다.

"밀도 8, 푹신함 5, 안락함 7."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번엔 그녀가 반대쪽 소파로 다가가 앉아보고는 자기만의 이상한 평가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감은 린넨으로 했는데 조금 아쉬워. 척주지지도가 좋아서 허리는 편해 보이지만, 통기성은 떨어져."

"메리다. 식사는 언제......."

"저 의자도 푹신해 보여!"

메리다는 시몬을 끌고 다니면서 소파나 의자 같이 자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직접 앉아보기도 했고, 얼굴을 대보기도 했다.

"여기도!"

따뜻한 곳이라면 계단이나 테이블 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까탈스럽게 겨울잠 자리를 찾는 곰처럼, 연회장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여기!"

난데없이 한 무리의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 껴들기도 했다. 멀쩡해 보이는 소녀가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서 소파에 뺨을 대자 다들 놀란 소리를 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수습은 파트너인 시몬의 몫이었다.

결국.

"음냐음냐."

더 사고 치기 전에 적당한 소파에 눕혀놨다. 그녀는 더 돌아보고 싶다며 일어나려 했지만, 쿠션에 얼굴을 대게 하니 저항하지 못했다. 곧 잠이 들고 말았다.

"후우."

시몬은 비로소 한숨 돌리며 넥타이를 고쳤다. 이제야 좀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가졌다.

'거의 다 네크로맨서네.'

곳곳에서 사람들의 칠흑이 느껴진다.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익숙한 얼굴도 한 명 있었다.

마침 그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오랜만입니다!"

깔끔한 수트핏이 이상적인 중년의 귀공자. 짧은 하늘색 머리카락과 지적인 안경이 돋보인다.

시몬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아탑 온건파의 거두, 다니엘라 빌렌느.

메이린의 아빠였다.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니엘라 경!"

시몬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인사했다.

편한 마음으로 왔는데 상아탑도 아닌, 시간의 탑에서 메이린의 아빠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하, 편하게 대하도록 하세요. 학생회장."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딸아이의 절친한 친구인데, 나를 다니엘라 경이라 부르는 것은 조금 딱딱하군요. 다니엘라 아저씨는 어떤가요."

"제, 제가 어찌 그런......!"

"하하하하!"

그가 소리 내어 웃고는 시몬의 맞은편에 앉았다. 시몬은 얼른 메리다를 흔들어 깨웠다.

"메리다, 일어나 봐!"

"그냥 자게 두세요."

다니엘라 빌렌느가 손바닥을 펼쳤다.

"레이디께서 많이 피곤한 듯하니."

"아, 네."

시몬은 공손히 무릎 위에 주먹을 올린 채 눈알을 굴렸다.

메이린의 아빠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 먼저 저쪽에서 화제를 꺼냈다.

"삼촌분께서는 강녕하신지요."

"네, 그럼요!"

1학년 마지막 날이었던 진급식 때 리처드와 다니엘라는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리처드는 신분을 숨기고 본인을 시몬의 삼촌이라고 소개했었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두 사람은 와인잔을 맞부딪혔다.

"딸아이가 시몬 학생회장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그런가요?"

다니엘라가 살갑게 웃었다.

"대화 지분을 나누자면 절반을 넘지요. 입만 열었다 하면 시몬, 시몬."

"......아하하."

"덧붙이자면 남은 지분에서 반은 카미바레즈, 나머지 반은 피온이라는 남자더군요."

사실상 시몬의 지분이 75%였다. 멋쩍게 웃고 있던 시몬이 한마디 했다.

"딕은요?"

"딸아이가 가끔 욕할 때 그 이름이 섞여 나오긴 하더군요. 이 딕보다 못한. 뭐 그런 식으로."

"......하, 하하."

이 이야기는 자신만 들은 걸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학생회장을 만나게 되면 꼭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한테요?"

"네, 우리 딸아이를 부회장으로 삼아줬으니까요."

다니엘라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동안 편지가 엄청나게 왔었거든요. 아빠! 나 부회장 됐어! 아빠! 내가 부회장이야 믿어져? 야단법석이었죠. 사실 나도 요즘은 키젠 부회장 딸을 둔 덕에 상아탑에서 어깨 펴고 다닙니다. 하하하!"

메이린이 들었다면 각혈을 토했을 이야기를 줄줄 하고 있는 다니엘라였다. 시몬은 고개를 숙였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오히려 메이린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오호."

다니엘라가 턱을 짚으며 감탄했다.

"참 잘 배웠어. 우리 메이린에게도 이런 의젓한 면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왈가닥 사고뭉치이기만 하지."

"......그, 그렇지 않아요! 메이린도 배울 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노력하고, 재능도 뛰어나고, 솔직하고."

"솔직한 건 얼굴이죠. 흥흥거리면서 맘에도 없는 말을 틱틱 내뱉는데, 얼굴만 벌게져서 티가 난다니까요. 그래도 속은 여린 아이니 학생회장이 잘 보살펴 주세요."

다니엘라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부와 명예,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일 텐데. 시몬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해 주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그리고 시몬은 드디어 그가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의 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긴장감이 피어오르는 동시에, 시몬도 왜 여기에 왔는지 자신의 목적을 한 번 더 자각했다.

시몬은 지금, 스파이로 상아탑에 들어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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