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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57화 (55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57화

-특급기밀이라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번 건은 대륙의 평화가 걸린 문제입니다.

-네?

파견을 명분으로 들어왔지만 시몬은 스파이로서 키젠 본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본부 측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메이린의 아버지 다니엘라 빌렌느 또한, 적일 가능성이 있다.

'끙.'

그런 의심을 품은 채, 딸의 친구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다니엘라와 이야기하는 건 꽤 고역이었다.

만약 본부의 지시가 사실이라면 다니엘라와 싸워야 할까? 만에 하나 다니엘라를 공격하게 된다면, 학교에 돌아가서 메이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상아탑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불안해.'

시몬은 웃는 얼굴로 다니엘라의 시간의 탑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어쩐지 한 귀로 흘러 나가는 것만 같았다.

쿨쿨-

옆에서 속 편하게 자고 있는 메리다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학생회장."

시몬의 굳은 표정을 본 다니엘라가 따뜻하게 말했다.

"딸아이에게 들었습니다. 파견평가를 완수할 때까지 키젠에 돌아가지 못한다던데, 내가 탑주님께 잘 말해서 일정 내에 끝낼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아,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파견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본부의 비밀임무를 클리어해야 키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하나 말하자면."

다니엘라가 목소리를 낮추며 손끝을 움직였다.

"저기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보이나요?"

"아, 네. 저기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이죠?"

드레스 코트가 정해진 행사다. 다들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고 한껏 꾸민 가운데, 다니엘라가 가리킨 저 남자만 긴 코트를 입고 계단에 주저앉아 낡은 물통을 입에 대고 있었다.

턱에 노란색 액체가 흥건한 게 보인다. 액체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술? 아니면 약?'

"저 남자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실제로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본인이 행사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기도 하고.

"저 사람은 누군가요?"

"기르돈 베일리스."

다니엘라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대량학살 혐의를 받고 있는 남자입니다."

"......!"

어느새 메리다도 잠에서 깨어나 그를 보고 있었다.

"......기르돈."

"저 사람 알아?"

시몬의 물음에 메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사람."

시몬이 이마를 짚었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시간의 축제가 시작되면, 절대로 그에게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하세요."

그렇게 말한 다니엘라의 표정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대체 탑주는 어쩌자고 저런 인간을...... 하고 숨죽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상냥한 얼굴로 돌아와 두 사람을 보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이제 다른 손님들을 맞으러 가야겠군요."

"좋은 조언들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이 아이에게 이야기하면 될 겁니다. 미르드. 이리로 오거라."

미르드라고 불린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걸어왔다.

시몬이나 메리다와 비슷한 또래였다.

"중요한 손님이다. 예의를 갖추고, 무엇이든 도와드리거라."

"예, 스승님."

"이쪽은 상아탑 아카데미 소속의 미르드.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보세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니엘라 경."

시몬의 대답에, 다니엘라는 슬쩍 장난스러운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시몬이 난감한 듯 웃다가 이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니엘라 아저씨."

"하하하하!"

다니엘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게슴츠레 한 눈으로 시몬을 보고 있던 미르드가 이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키젠에서 애들이 온다더니 정말이었네."

"잘 부탁해."

"응. 상아탑 아카데미에 다니는 미르드라고 해."

그때 메리다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상아탑 아카데미가 뭐야?"

순수한 질문이었지만, 미르드의 눈썹이 아주 찰나의 순간 꿈틀했다.

하지만 그것도 뒤이어 퍼져나간 미소에 가려져 알아보기 어려웠다.

"음, 키젠 애들은 잘 모르나 보네? 상아탑에서 운영하는 학교야. 탑의 온 지식과 재력을 쏟아부어 대륙 최고의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지. 상아탑 키즈라고도 불러."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상아탑도 키젠에 맞서 자신들만의 교육시설이 있었다.

그녀가 시몬을 보았다.

"너희 키젠 애들 중에서도 우리 아카데미에 들어온 애들이 있어. 성적은 하나같이 하위권이지만."

"아."

1학년 초, 세르네가 본인의 마음에 든 학생들을 떨어뜨린 이유가 여기 있었다.

'키젠에서 떨어뜨려 아카데미에 넣으려고 한 거였구나.'

상아탑 아카데미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녀가 주위를 힐긋거렸다.

"아~ 그래도 너희 '키젠'은 좀 부럽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실력은 우리도 '키젠'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상아탑 키즈는 대외비 성향이 짙거든. 너희 '키젠' 애들은 교복만 입고 밖에 나가도 사람들이 키젠이다 뭐다 떠받들고 우러러본다며?"

저벅.

시몬의 오감이 발소리를 감지했다.

미르드가 마구마구 떠들어도, 시몬의 전신의 세포들은 적색 불을 켜며 저 발소리만을 감지했다.

"아카데미에서는 오로지 칠흑역학만 배워. 너희들 키젠은 일곱 과목을 배운다며? 조금 비효율적인가 싶기도 한데, 키젠은 전교생이 2천 명 가까이 된다니까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벅.

"아, 참! 그리고 키젠에서는 스승을 교수님이라고 부른다며? 신기하다! 부르는 호칭도 다르네?"

"미르드."

시몬의 입술 위에 손을 올렸다.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줘. 사람들이 보잖아."

"에이, 뭐 어때. 너희는 키젠인......."

처억!

그 순간.

회색코트를 입은 거구의 남자가 시몬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너희들.]

지독한 약물 냄새가 퍼졌다. 입안에서는 마치 쇠가 긁히는 목소리가 들렸다.

[키젠이냐.]

숨이 턱 막히는 살기.

미르드는 겁에 질려 물러섰고, 메리다도 시몬의 팔을 툭 치고는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심상치 않으니, 사실대로 말하지 말란 뜻이었다.

"......."

시몬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빙그레 웃으며 거구의 남자와 눈을 맞추었다.

"네. 제가 키젠의 학생회장입니다. 무슨 볼일이시죠?"

기르돈의 안광이 번뜩였다. 시몬의 눈빛 또한 날카로워졌다.

두 남자의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가며 대뜸 서로를 향해 팔을 움직였다.

투콰아아아아아앙!

연회장 전체가 커다란 충격파로 뒤흔들렸다. 초대객들의 놀란 비명이 난무했고, 서로를 향해 내지른 두 남자의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무슨 일이야?"

"싸움이다!"

인상을 찡그린 시몬이 팔을 탈탈 털며 뒤로 물러났다.

'크으윽, 팔이 끊어질 것 같아!'

[조심해라! 소년!]

피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아직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기르돈은 물끄러미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두 팔을 쭉 늘어뜨렸다.

[키젠은 끔찍한 악마들이다.]

그의 몸에 파문이 일어났다. 철근이나 목재, 파이프 등 공사장 자재 따위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얼굴은 물론 전신에 그런 물체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특유의 쇠 긁히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라져라!]

이내, 그의 몸에 빠져나와 있던 자재들이 주위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퍼어억!

꽈드드득!

철근이 연회장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파이프가 벽을 부수고 들어갔다.

천장에 붙어 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바닥이 갈라졌다.

갑작스러운 무차별 난사로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주위는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그나마 초대객 전원이 코어를 개방한 네크로맨서였기에 기적적으로 피해자는 없었다.

"......저게 기르돈의 공간계 흑마법인가."

"으허헉! 왜 우리까지 공격하고 지랄이야?"

쿠구구구-

그리고 가장 많은 자재들이 날아간 정면.

뿌연 연기가 걷히고 시몬의 앞으로 뛰쳐나온 메리다의 모습이 보였다.

"메리다......!"

하아. 하아.

그녀의 거친 숨결이 들렸다. 두 손을 특이한 자세로 뻗은 자세였는데, 살짝 스쳤는지 이마에는 피가 한 방울 흐르고 있었다.

[사물에 저주를 걸어 방향을 틀었나.]

그그그그극!

기르돈이 발을 질질 끌며 다가왔다.

[제법이지만 키젠의 새끼들도 살려둘 수 없다. 너희가 크면 그들처럼 끔찍한 악마가 될 것이다. 철저한 말살만이 세상을 위한 길.]

그가 오른손으로 강하게 턱을 짚었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턱이 우악스럽게 내려와 바닥에 닿았다. 그 안에서 철근이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빛이 솟구쳤다.

"......거짓말이지?"

메리다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죽어라.]

지켜보던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벌어진 입의 터널 안에서, 눈부신 섬광과 함께 녹슨 열차가 통째로 튀어나왔다.

'제정신이 아니야!'

진짜로 죽일 생각이다.

시몬은 이를 악물고, 동작이 굳어 있는 메리다의 어깨를 밀치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미리 열어놓은 아공간에는 검 손잡이가 삐쳐 나왔다.

'군단장인 걸 들켜도 어쩔 수 없어!'

손잡이에는 피어의 뼈도 붙어 있었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강하게 붙잡으려는 순간.

턱시도 자락을 휘날리며 한 남자가 시몬의 앞으로 뛰어나왔다.

'다니엘라 아저씨?'

그의 전신에 칠흑이 뿜어져 나왔다. 다니엘라가 손바닥을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디서르티오(Disertio)>

퍼어어어어어어엉!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대한 열차가 돌진해 그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쇳가루로 분해되어 하늘로 비산했다.

연회장이 온통 시꺼먼 잿가루로 뒤덮였다.

충돌음도 없이, 손에 닿는 순간 차체가 사라졌다. 그렇게 몇 대의 차체를 모조리 흩트려 없앤 후에야, 다니엘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니?"

손짓 한 번으로 열차를 통째로 잿더미로 치환시켰다. 얼이 빠진 시몬은 얼른 파멸의 대검을 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하지 마라.]

기르돈이 끔찍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키젠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당신이 무언가 낌새를 보이지 않는 한, 절대로 먼저 손대지 말라는 탑주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습니다. 기르돈."

다니엘라가 오른손을 내리고 이번에는 왼손을 치켜들었다.

키이이잉!

키이잉!

사방에서 가지각색의 무수한 마법진들이 연기를 내뿜고 냉기를 흘리고 스파크를 튀기며 펼쳐졌다.

"감히 탑의 손님을 건드리다니."

[키젠더러 손님이라고? 상아탑도 이제 끝이군!]

펄럭!

다니엘라가 전투준비를 마쳤고, 다른 초대객들도 전투에 참전할 기미가 보였다.

기르돈은 누가 덤비든 모조리 때려눕힐 기세로 칠흑을 일으켰으나.

[.......]

고개를 들어 뭔가를 감지한 듯 눈가를 좁혔다. 결국 그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

"놓칠 것 같나!"

다니엘라가 마법진을 작동시키자 4원소의 흑마법들이 콰르릉! 소리를 내며 퍼부어졌다.

강력한 화력이었지만 무차별 난사의 기르돈과는 달랐다. 주위의 사람들과 기물의 파손은 최소화하면서 기르돈만을 노리는 정밀한 컨트롤.

전격은 테이블을 돌아 들어갔고, 화염은 바로 아래의 식탁보 한 올 태우지 않고 날아갔다.

스르르륵!

그러나 기르돈의 회피 또한 신기에 이르렀다.

공간이 휘어지며 전신이 종이인형처럼 일그러지더니 몸을 마구 흔들며 내달렸다. 순식간에 그가 연회장의 거대한 문 앞에 섰다.

"시간의 탑으로 갈 생각이다!"

"막아!"

다니엘라가 다급히 소리쳤다.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온 상아탑의 병사들이 흑마법을 쏴댔다.

몇몇 초대객 네크로맨서들은 입꼬리를 올렸다.

"잡은 거나 다름없지."

"암, 시간의 탑은 상아탑주의 허락이 떨어져야 열릴 텐데."

그러나.

기르돈의 특기는 공간마법이었다. 그의 몸이 실처럼 가늘어지더니 시간의 탑의 미세한 문틈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겠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젠!]

"......."

시몬이 인상을 구겼다. 여전히 그와 부딪힌 팔이 아팠다.

'나중에 숙소에 들어가면 몰래 힐링을 써야겠.......'

와락!

시몬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다니엘라가 벼락처럼 다가와 그의 몸을 끌어안은 것이다.

"다친 곳은 없나요?"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안경은 반쯤 흘러내렸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있었다.

"아, 네! 저는 괜찮아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니엘라를 다소 난리를 치며 시몬의 몸 상태 곳곳을 보고 먼지를 털어준 뒤에야 밝게 웃었다.

"이제야 삼촌 분과 딸아이를 볼 면목이 서겠군요."

......지옥 같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는 게.

이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따뜻한 말의 진의를 간파해야만 한다는 게.

다니엘라가 시몬에게서 떨어져 큰소리로 외쳤다.

"비상사태를 선언합니다! 먼 길 오신 초대객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올해 '시간의 축제'는 이걸로 끝입니다!"

초대객들이 당황한 얼굴로 웅성거렸다. 곳곳에 항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다니엘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아탑의 병사들을 움직였다.

"지금 바로 추격대를 꾸린다. 내가 직접 지휘하겠다. 기르돈을 끌어내서......."

"누구 마음대로 축제를 끝내나. 다니엘라."

우뚝.

다니엘라를 비롯한 모두의 걸음이 멈췄다.

계단에서 한 남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

시몬은 누가 소개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현재 상아탑의 권력을 잡은 과격파의 수장이자, 세르네의 양부.

그리고 상아탑에서 가장 강력한 네크로맨서.

상아탑주. 베르무드 아인다르크가 연회장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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