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64화
"......."
키젠에서 맡긴 일을 무사히 끝내고, 메이린과 세르네의 과거도 본 시몬은 다시 숙소 방으로 돌아왔다.
60층엔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에, 이번에도 메리다와 한방을 써야 했다. 이것도 미르드가 간신히 얻어다 준 거였다.
시몬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아."
기분이 뒤숭숭했다.
메이린과 세르네.
1학년 초, 메이린이 왜 세르네의 이름만 나와도 정색하고 독기를 품었는지,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메이린은 세르네의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녀에게 들었던 바로는, 세르네의 재능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어른들이 탑의 법률을 바꾸면서까지 상아탑주 자리를 그녀에게 가져다 바쳤다는 것. 딱 그 정도였다.
시몬도 두 사람이 후계 경쟁자고, 세르네의 행동거지나 도발 때문에 사이가 틀어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 줄이야.
'세르네는 왜 메이린을 속였을까? 갑자기 상아탑주 자리에 욕심이 나서? 그게 아니면.......'
나름 진지하게 고민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메리다가 침대에 떨어져 있었다.
'......하여간에.'
시몬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침대에 올려놓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숙면 중인 메리다에게 손대는 건 썩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다시 고민을 재개하려는데.
"우우웅-"
침대에 떨어졌던 메리다가 데굴데굴 굴러와 시몬의 다리를 덥석 끌어안았다. 시몬이 당황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메, 메리다!"
수면 베개를 안고 자더니, 이번엔 남의 다리를 베개처럼 쓰고 있다.
시몬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무슨 짓이야? 윽, 이거 놔! 아파."
"으으응, 판타서스 오빠아아."
그녀가 시몬의 다리에 뺨을 대고 부비부비하기 시작했다. 시몬은 식겁한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나도 데려가...... 쿠울."
다행히 동작이 멈췄다. 거짓말처럼 잠잠해진 그녀를 보며 시몬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 하루도 다 잔 건가.'
스륵-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가 시몬의 다리를 놓고 정자세로 누웠다. 그러곤 쿨쿨하고 완전히 잠에 빠진 모습이다.
'또 귀찮게 하기 전에.......'
시몬이 웃차 하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거의 반사적으로 메리다의 손이 번쩍 올라와 시몬의 이마에 닿았다.
<슬립>
'으악!'
쿵!
시몬이 휘청거리다 바닥에 쓰러졌다. 품에 안겨 있던 메리다가 어느새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 아침도 아닌데, 깨우지 마."
시몬이 쓰린 무릎을 문지르며 말했다.
"네가 내 잠 깨운 건 생각 못 해? 그리고 다짜고짜 저주를 거는 것 좀 그만해 줘."
"미안."
메리다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슬립이 사라졌다. 알아서 시몬의 품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침대 위에 올라가 엎드렸다.
시몬도 다시 바닥에 누워 이불을 덮으려는데.
말똥말똥.
그녀가 엎드린 채로 빤히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새벽마다 어딜 그렇게 가는 거야?"
움찔.
시몬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설마 다 알고 있었나?
"화장실......."
급해서 일단 내뱉고 본 시몬은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싶어졌다.
"화장실은 우리 방에도 있어."
"아, 아니! 그래도 그게......! 있잖아. 남녀가 한방에 있으니까 쫌 그런 거 있잖아. 냄새날 수도 있고."
"어제도 같이 썼으면서."
변명할수록 구질구질해진다는 게 느껴졌다. 애초에 처음 꺼낸 말부터가 수습 불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파트너인 메리다 학생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비밀임무의 내용을 메리다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시몬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그때.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그녀가 몸을 돌려 침대에 똑바로 누웠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으니까."
"......."
잠시 조용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시몬은 내심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아까."
시몬이 화제를 돌릴 겸 입을 열었다.
"판타서스 선배님 잠꼬대를 하던데."
"......."
대답이 없었다.
설마 지금 당황한 건가?
저 녀석이?
한도 끝도 없이 정적이 길어지자 시몬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빠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
"......."
누워 있어서 메리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툭 내뱉듯 말했다.
"비밀."
이미 다 들통나셨습니다.
메리다가 당황하는 건 제법 진귀한 광경이었기에, 그동안 당하기만 했던 시몬도 장난기가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 집에 잠시 판타서스 선배님이 머무르셨거든. 그때 선배님이 학생회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네 이야기도 잠깐 하셨어."
벌떡!
메리다가 잠이 확 달아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타서스 오빠가 뭐라고 했는데?"
평소 같은 단조로운 톤이라도, 그녀의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게 느껴진다.
시몬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
터엉!
난데없이 저주가 날아가 시몬의 머리 옆에 부딪혔다. 메리다가 시리도록 서늘한 음색으로 경고했다.
"비밀이라고 답하면 저주할 거야."
역시 이 녀석, 오빠에 관한 일 만큼은 진심이었다.
미르드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바로 옆에서 봤기에, 시몬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널 위해서라도......."
"?"
"좋은 학교를 만들어달라고 하셨어."
툭.
그녀의 팔이 내려갔다.
그러고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을 머리맡까지 끌어올렸다.
'설마.'
지금 부끄러워하는 건가?
펄럭! 펄럭!
그녀의 이불이 몇 차례나 올라갔다가 내려오길 반복했다. 메리다는 한참을 그렇게 이불 속에서 비비적댔다.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도 있다고 생각하며, 시몬은 숨죽여 웃었다.
"판타서스 오빠는."
이내 이불에 휘감긴 애벌레처럼 된 그녀가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시몬을 보았다.
"왜 너를 학생회장으로 선택했을까? 그것도 오빠의 슬립을 주면서까지."
시몬이 팔짱을 꼈다.
"그러게. 나도 그게 진심으로 궁금해."
"나도 왜 그런지 궁금해서 파견 전에 널 시험해 본 거야."
"시험해 본 결과는 어떤데?"
메리다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납득 못 해. 납득 안 해. 안 할 거야."
......아마도 평생 가도 메리다를 납득시킬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2학년에게 학생회장 자리를 물려줄 거라면."
그때 메리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한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몬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말할까 말까 고민했어. 판타서스 선배님이 너에 대해 이런 말도 하셨는데."
"?"
-당연히 여동생을 학생회장으로 추천할 줄 알았어요.
-하하! 내 동생은 그릇이 작아서 안 돼! 이 판타서스의 그늘을 의식해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지! 재능은 나보다 뛰어나지만. 역시 마인드가 문제야.
그 이야기를 들은 메리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주도적인 삶."
"내가 봐도 좀 그런 건 있어."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슬립도 그렇고, 그다음 주력으로 사용하는 칠흑수류계도 그렇고. 전부 판타서스 선배님의 스타일을 따라 한 거지?"
"......."
"혹시 너, 오리지널은 얼마나 갖고 있어?"
메리다가 입술을 삐쭉였다.
"그런 거 없어. 난 판타서스 오빠의 기술이면 충분해."
"답 나왔네."
시몬이 시원스런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판타서스의 여동생 이전에, '메리다 휴 이켈'은 어떤 네크로맨서인가."
"......."
"그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시작이라고 생각해. 네가 조금 더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되면, 판타서스 선배님도 널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메리다는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 말이 없다가 툭 내뱉었다.
"건방져."
이불에 도롱이처럼 휘감긴 채 그렇게 툭 내뱉는 한 마디가 어쩐지 웃겨서, 시몬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휘릭.
그녀가 침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시몬도 다시 팔로 뒷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하아.'
기껏 유쾌한 이켈 가문의 이야기로 기분을 전환했지만, 다시 메이린과 세르네의 관계를 생각하려니 기분이 착잡해졌다.
판타서스와 메리다처럼, 메이린과 세르네의 관계도 명확하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 * *
다음 날.
문제가 터졌다.
"일어나! 빨리!"
"움직여 주십시오!"
시몬이 있는 60층대, 그중 68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68층에 던전의 역사 재현이다!"
"하필이면 축제 기간에 터지다니!"
시몬과 메리다는 아침도 먹지 못한 채 미르드의 안내를 받아 마법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역사 재현이 뭐야?"
시몬이 물었다. 미르드는 굳은 얼굴로 본인의 지팡이를 꺼냈다.
"던전이 이 탑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시간을 재현하려는 거야."
"무슨 사건?"
"던전이 겪은 사건이 뭐 있겠어?"
미르드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300년 전, 게이트 오픈과 동시에 열린 대학살 사태."
철컥.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올라오자마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세 사람 모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물러섰다.
"이건......!"
곳곳에 뜨거운 불길이 올라오고 있고 몬스터들이 우글거렸다.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은 학살의 현장이었다. 사람들이 피를 뿜으며 죽어가고 있다.
"속지 마."
미르드가 말했다.
"지금 죽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가짜야."
'......이게 역사 재현이구나.'
일단 그동안 탑에서 봐온 이상 현상과는 그 규모부터가 달랐다. 층 전체가 불에 타오르고, 몬스터들이 득실댔다.
'무시무시하네.'
이 던전이 탑에 갇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이 던전이 밖으로 나와 더 많은 역사와 시간을 학습했다면, 대륙 전체가 불길로 휩싸이고 공포의 역사가 반복됐으리라.
"우웅, 근데 우리가 왜 나가야 해?"
메리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신경이 잔뜩 예민해 있던 미르드가 버럭 소리 질렀다.
"아니, 돈 받고 온 파견생 주제에 당연히 우릴 도와야......!"
그러다 메리다라는 걸 깨닫고는 뒤늦게 굽신거렸다.
"도, 도와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가자."
시몬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미 곳곳에서 상아탑의 일원들이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었고, 미르드 같은 상아탑 키즈들도 전투 중이었다.
도우러 온 참가객들도 제법 많았다.
"운이 좋아. 말로만 듣던 역사 재현을 체험할 수 있게 됐군!
"즐겨보자고!"
첫날 이후로 알게 된 점이지만, 이곳의 참가객들도 정상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불길 속에서 수십, 수백 기의 외계형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도망치는 과거의 회색 인간들을 죽이는 게 최우선순위였지만, 상아탑 사람들이 공격하자 그들까지 함께 공격했다.
"반드시 이번 층에서 막아내야 합니다!"
한 상아탑 소속의 남자가 전장을 지휘했다.
"탑의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여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다니! 하지만 우리는 이길 겁니다! 300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놈들이 옵니다!"
정면은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었다. 상아탑의 네크로맨서들은 옛날 마법사처럼 지팡이를 쓰는 게 유행이었는데, 연신 지팡이 끝에서 마법이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다.
시몬과 메리다, 미르드 세 사람은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옆으로 우회해 빠져나갔다.
"학생인 우리는 '탐색꾼'이야. 이 층 어딘가에서 이 사태를 벌이는 중인 '핵'을 찾아내 파괴하면 역사 재현도 멈출 거야!"
"우리가 파괴해도 돼?"
"음, 사실 어른들에게 맡기고 물러나는 게 원칙이긴 한데. 우리끼리 파괴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화르르르륵!
치솟은 거센 불길을 뚫고 세 사람은 정신없이 달렸다.
"저기! 핵 하나 찾았어!"
메리다가 가리킨 벽면에 핵이 불끈거리는 게 보였다. 크기도 그동안 봤던 것보다 조금 더 컸다.
미르드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저 핵이 당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파지직!
지팡이에서 검은 전격이 빠르게 조립되더니 날아갔다.
콰르르릉!
전격이 쏘아져 나갔지만 네 발로 달리는 외계형 몬스터들이 뛰어들어 몸으로 막아냈다.
"서두를 필요 없어!"
시몬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슬립으로 몬스터를 정지시켰다. 미르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뭐야. 어떻게 멈춘 건데?"
"슬립 저주야!"
"......저주가 놈들한테 먹힌다고?"
그때 메리다가 앞으로 나왔다.
"시몬."
"응! 말해."
시몬이 마투로 몬스터의 중앙을 팔꿈치로 깨트리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몬스터를 슬립으로 정지시켰다.
"광역 저주포격을 준비할게. 엄호해 줘."
펄럭!
그렇게 말한 그녀가 아공간에서 이불을 꺼냈다. 시몬이 당혹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광역 저주포격 준비하는 거 맞지?"
그녀는 이불 위에 올라가서 드러누웠다. 이내 반중력 저주를 사용해서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음냐. 음냐.
그녀가 눈을 감고 숙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이불에 그려졌던 마법진에 전원이 들어왔다.
'!'
시몬은 순간 등이 섬찟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메리다를 중심으로 탑의 천장에 별똥별 같은 무수한 마법진들이 펼쳐진 것이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 무아몽중(無我夢中)>
이불 위의 그녀가 숙면에 빠지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러자 마법진에서 저주가 쏟아져 내렸다. 저주 전부가 슬립이었다.
"말도 안 돼!"
미르드가 경악성을 토해냈다.
다소 떨어지는 적중률을, 저주의 수량으로 메꾸는 그야말로 무차별 폭격.
순식간에 수십 기의 몬스터들이 죄다 슬립에 걸려 멈춰 섰다.
"나이스, 메리다!"
시몬이 바닥을 박차고 내달렸다. 천장에서도 저주가 쏟아져 시몬에게 다가오려는 몬스터들을 막아 세웠다.
'대단한데. 지금까지 이런 한 수를 숨기고 있었다 이거지?'
괜히 전체 4번이 아니었다. 아마 결투평가에서 만났으면 상당히 고전했으리라.
그녀는 한번 잠드는 순간, 드넓은 범위에 무한대로 저주를 쏟아붓는 막강한 저주포대로 변한다.
그녀가 잠잘 때 잠버릇으로 저주를 쏴대는 것도 이 기술의 영향이었으리라.
"흡!"
시몬도 아공간에서 아티팩트 도끼를 꺼내 들었다. 핵을 지키려는 몬스터들도 천장에서 빗줄기처럼 내려오는 저주에 얻어맞아 멈춰섰다.
시몬은 다이렉트로 전진할 수 있었다.
"본 아머."
촤르르르륵!
시몬의 몸이 무수한 뼛조각으로 뒤덮이며 거인처럼 변했다. 키가 머리 몇 개는 커졌고, 덩치도 부풀어졌다.
그야말로 뼈의 요새를 입은 것 같은 형상.
<본 아머 - 헤비아머 타입>
시몬이 두꺼워진 본 아머의 오른팔로 도끼를 쥐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핵을 향해 휘둘렀다.
꾸우우우우우웅!
68층 전체가 진동한다. 단 일격으로 핵이 반쯤 파고들어 갔다.
"한 번 더!"
시몬이 도끼를 크게 젖혔다. 그 와중에도 핵을 방어하러 필사적으로 뛰어드는 몬스터들도 모두 메리다의 저주폭우에 휘말려 멈춰 섰다.
'......대단해.'
미르드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팔을 늘어뜨렸다.
-어째서 다섯 배의 돈을 들이는데, 키젠 아이들의 발끝도 따라잡지 못하느냐!
상아탑 키즈들을 앉혀놓고 했던 상아탑주의 이야기.
솔직히 조금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혼내려고, 기강을 잡으려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흐아아압!"
꾸우우우우우우웅!
그것은 엄연한 진실이었다.
풀파워로 내리친 시몬의 두 번째 도끼질에 핵이 파괴되었고 몬스터들이 바스락거리며 사라졌다.
"역사 재현이 사라진다!"
"누군가 핵을 파괴했어!"
"와아아아아아!"
곳곳에서 쏟아지는 환호성이 들린다.
시몬은 성채 같은 본 아머를 벗었고, 메리다는 공중에서 내려왔다.
'......이게 키젠.'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전투를 끝낸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렇게 눈이 부실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이 손바닥을 펼치며 서로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곤.
짝!
힘껏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와 동시에 둘 다 휘청거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빨리 풀어!"
"네가 먼저 풀어!"
......물론 좀 바보 같은 점도 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