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73화 (57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73화

휘이이이잉-!

100층짜리 탑이 무너져 내린 상아탑 중앙 지대.

뿌옇게 올라왔던 먼지가 조금씩 걷히고, 박살 난 건물들의 파편이 드러났다. 그 중심에는 커다란 크레이터가 형성되어 있었다.

꿀럭-

그곳에서.

꿀럭 꿀럭-

핏방울 같은 용암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 * *

시간의 탑이 무너졌다.

다행히 주변 도시에 살던 주민들은 비상 방송을 듣고 대피한 뒤였고, 도시는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휑했다.

시몬은 모래로 퍼석퍼석해진 앞머리를 쓸어내리며 폐허가 된 주위를 응시했다. 이 정도 사태라면 필연적으로 참극과 슬픔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미래의 시몬은 대단하네요."

세르네가 중얼거렸다.

"이 와중에 탑의 사람들을 구할 생각을 하다니."

"......하하."

시간의 탑을 무너뜨리기 직전, 미래의 시몬은 던전화된 탑을 움직여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감지한 다음, 벽면으로 휘감아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들 대부분이 기절했거나 정신을 잃은 정도에서 그쳤다.

"여기."

폐허 속에서 메리다가 손을 흔들었다.

"다니엘라 경 있어."

"아......!"

시몬이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잔해 속에 기절해 있는 다니엘라의 모습이 보였다. 세르네는 깃털을 꽂아서 상태를 간단히 진단해 보고는 말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어요. 기억을 읽어보니, 베르무드가 용암을 일으켜 올라갈 때 전 층에 대규모 결계를 펼쳐서 사람들을 지켜낸 것 같아요."

시몬이 쓰게 웃었다.

"......역시 다니엘라 아저씨네."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잠시라도 의심했던 것 자체가 미안해졌다.

"곧 본탑 측에서 사람들이 와서 상황을 수습할 거예요. 뒤처리는 그들에게 맡기죠."

"잠깐,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상아탑은......."

"암흑연합 측의 대대적인 감사를 받겠죠. 물론 손은 써놨어요."

그녀가 여우 같은 눈웃음을 흘렸다.

"키젠을 무너뜨리려다 실패한 범죄미수 조직이 아니에요. 키젠을 노리고 있던 '일부 과격분자'들의 일탈을 막아내고, 중요한 동맹인 키젠과 암흑연합의 평화를 지켜낸 승리자라는 느낌?"

"......한 끗 차이인데 뉘앙스가 엄청 다르네."

"후훗. 그동안 정치공부도 많이 했답니다."

[소용없다.]

부글부글부글―!

시몬과 세르네, 메리다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말도 안 돼......!"

바닥에서 용암이 분화하고 있었다. 세르네가 날카롭게 외쳤다.

"피해요!"

퍼어어엉!

퍼어엉!

지면을 뚫고 곳곳에서 시뻘건 마그마가 간헐천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설마 살아 있는 거야?"

시몬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100층에서 내리꽂혔다며?"

"일단 달려. 시몬."

메리다가 방어 마법을 켠 이불로 몸을 감싸며 말했다.

세 사람이 급히 솟구치는 용암을 피해 달렸다.

시몬은 옆으로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본 아머가 쓰러진 사람들을 붙잡아 고지대로 데려갔다. 그러나 차마 닿지 못한 사람들이 흐르는 용암에 휘말려 사라졌다.

"무슨 짓을!"

콰르르르르르르!

갑자기 정면에서 용암의 파도가 일어나자, 세 사람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놓치지 않는다.]

용암 속에서 베르무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복부는 도넛처럼 휑하니 뚫려 있었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상아탑주가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라지만 이건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모습이었다.

"어머~ 말년에 추하게 굴지 말고 이만 사라지는 게 어떠신가요? 아버지."

세르네가 예쁘게 웃는 얼굴로 독설을 날렸다.

[세르네.]

베르무드의 몸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째서 나를 배신했지?]

"말은 똑바로 해야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먼저 나를 배신한 거죠."

세르네가 고개를 까닥했다.

"키젠을 무너뜨리겠다는 위대한 대업이, 고작 '결사'의 지시를 받았던 것뿐이었어요? 거기서 아버지가 앓는 그 죽을병이라도 낫는 약이라도 준다고 했나 보죠?"

세르네의 손끝에서 피어난 깃털이 광채를 머금었다.

"당신은 상아탑을 기만하고 배신했어요."

그녀가 깃털을 날리는 것으로, 눈부신 폭발이 일어났다.

강렬한 섬광에 시몬과 메리다가 눈을 가렸다. 용암에 휩싸인 베르무드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듯하더니, 이내 오뚝이처럼 멀쩡히 일어섰다.

"포기하세요. 이제 곧 상아탑 본부의 네크로맨서들이 도착하면......."

"본부의 지원은 없다."

베르무드가 용암 속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실물로 보니, 복부가 통째로 날아간 모습은 더더욱 참담했다. 어떻게 저 꼴로 움직일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저게 보이나?"

베르무드가 가리킨 방향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본부 탑'이었는데, 새빨간 결계가 탑을 뒤덮고 있었다.

"처음 시간의 탑 밖으로 튕겨 나갔을 때, 본부와 통신해서 상아탑주의 직권으로 '비대칭 결계'를 펼치도록 했다."

이 결계는 신성연방의 하늘성도 박살 낸 전적이 있는 네프티스의 공세를 막기 위해 설계된 만큼, 설사 대륙이 가라앉아도 버티는 결계였다.

두 시간 동안은 그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의 탑을 이루던 결계도 움직여서, 더 넓은 범위로 퍼뜨려뒀다."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어느 곳을 기점으로 햇빛이 굴절되는 구간이 있었다. 틀림없이 결계가 있다.

"통신도 텔레포트도 불가능하지. 시나리오는 이렇다. 시간의 탑에 있던 자들 전원, 기르돈이 '얼어붙은 시계'를 건드려 벌어진 사고로 사망한다."

그가 팔을 내리며 세르네를 보았다.

"키젠은 학생회장과 전체 4위를 잃겠지만, 상아탑 또한 고향과 후계자를 잃게 되니 의심은 받지 않겠지. 전부 안타까운 사고일 뿐이다."

메리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딴 수작질, 누가 믿을 것 같아?"

번쩍!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저주가 번쩍이며 튀어 나갔다. 그러나 베르무드는 망토를 한 번 펄럭이는 것으로 저주를 튕겨내 메리다의 몸에 되돌려버렸다.

커헉!

그녀가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피로도가 한계였던 메리다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메리다!"

"사실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베르무드가 끌끌 웃었다.

"시몬 폴렌티아. 아마도 날 격추시킨 건, '얼어붙은 시계'로 폭주했을 때 나타난 네 다른 인격이었겠지. 하지만 그 검은 공격을 받았을 때 나는 확신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가 '어르신'이 원하는 아이였구나."

"......!"

"이제 상아탑 따위는 필요 없다. 널 가져다 바치는 것으로, 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세르네가 앞으로 나왔다.

"시몬, 도망가요."

"안 돼. 너도 힘이 빠진 건 마찬가지잖아."

두 사람 모두 칠흑도 체력도 다했다.

시몬은 '얼어붙은 시계'로 폭주했을 때.

세르네는 '절대봉인'을 해제했을 때.

둘 다 이미 죽을 고비를 넘겨 서 있는 것도 용한 상황. 도저히 싸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피어는 날 돕느라 힘이 다했어. 아케뮤스는 중상, 헤르세바는 시간이 필요해. 프린스를 불러오는 것도 칠흑이......!'

베르무드가 다가올 때마다, 하늘은 화산 쇄설류로 시커멓게 물들었다.

시몬은 떨리는 팔로 파멸의 대검을 들어 올렸고, 세르네는 시몬의 등에 기댄 채 깃털을 손에 쥐었다. 깃털에 일렁이는 빛이 희미했다.

"마지막 기회다. 세르네."

베르무드가 무겁게 말했다.

"그놈을 내게 바쳐라."

"......."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넌 나와 동류다. 너는 야망이 있고, 그걸 위해서라면 상아탑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겠지. 지금이라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

"착각하지 마세요."

세르네가 양아버지를 혐오스럽게 노려보았다.

"내가 당신과 적대하는 건, 상아탑을 배신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당신은 시몬을 죽이려 했어요."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시몬과 메이린은 양보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데요. 아버지."

시몬이 놀란 눈으로 세르네를 돌아보는데, 그녀가 갑자기 오른손을 시몬의 정수리에 올리더니 마구 쓰다듬기 시작했다.

"적어도 시몬은 10년은 더 살아야 하니까."

"무, 무슨 짓이야!"

"복수예요."

세르네가 눈웃음쳤다.

"감히 날 애 다루듯 했겠다?"

"그런 적 없어!"

두 사람을 보는 베르무드의 눈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남자 때문인가. 네게 그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시시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결말이군."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사라져라."

그의 등 뒤로 시뻘건 용암이 솟구쳐 올랐다. 베르무드의 손짓에 따라 용암의 파도가 두 사람을 향해 밀려들었다.

시몬과 세르네는 등을 맞댄 채 밀려드는 용암을 바라보았다.

'이 컨디션으로 한 번에 벨 수 있을까?'

할 수 없어도 해내야 했다.

결의를 마친 시몬이 왼발을 미끄러뜨렸다.

'공간째로......!'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질적인 새파란 파도가 밀려들어 시뻘건 용암의 파도에 부딪혔다.

"이건!"

베르무드가 정색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들 있었군. 음!"

뒤를 돌아본 시몬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파도를 타고 멋들어지게 등장한 거구의 남자가 바닥에 착 착지했다.

눈물이 찔끔할 만큼 반가운 사람이었다.

"......판타서스 선배님!"

"하하하하하!"

유쾌한 웃음과 함께 판타서스가 근육질의 팔을 들어 올렸다.

"잘 있었나 후임! 자네의 활약은 늘 듣고 응원하고 있다네! 음!"

그와 구면이었던 세르네도 손을 흔들었다.

"어머, 오랜만이네요. 선배님."

"음! 자네도 여전하군! 두 사람 다 무사해서 다행이네!"

판타서스의 품에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메리다가 팔에 안겨 있었다. 판타서스는 그냥 손짓만으로 허공에 파도를 일으키더니 메리다를 눕혀두었다.

쏴아아아아!

메리다를 띄운 파도는 물 한 방울 없는 곳에서 폐허를 지나 빠르게 전장에서 멀어졌다.

"대피도 어느 정도 끝냈네! 음!"

용암지대가 되어 있던 시간의 탑 폐허가, 눈 깜짝할 사이에 홍수가 난 것처럼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서 파도가 몰아치며 부상자들을 먼 곳으로 보내고 있었다.

"리스크가 현실이 됐군."

베르무드가 인상을 썼다.

"네프티스의 최대 걸작이자, 키젠의 전 학생회장 판타서스 휴 이켈."

판타서스가 쿵! 하고 두 주먹을 맞부딪혔다.

"처음 뵙겠소, 상아탑주."

"여긴 어떻게 왔나?"

"여동생이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가 내게 위치를 알려줬소."

"......우리가 여기서 싸울 필요가 있나 싶군."

베르무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는 네프티스에게 이용당할 뿐이네. 네프티스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여동생을 상아탑에 몰아넣은 거지.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졸업생인 자네의 약점을 활용해 아직도 자기들 학생처럼 부리는 게."

"미안하지만, 메리다는 내 약점이 아니오."

"이대로 못 본 척해준다면 여동생은 놓아주겠네."

베르무드가 손을 휘둘렀다.

저 멀리, 파도 위에 올라타 이동 중인 메리다의 좌우로 갑자기 화산이 폭발했다. 판타서스의 파도가 급히 방향을 비틀어 쇄설물을 피했다.

"하지만 싸우겠다면, 여동생은 물론 자네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하지. 이대로 물러나게."

"하하하하하!"

척!

한바탕 크게 웃은 판타서스가 자세를 낮추며 칠흑을 끌어올렸다.

"미안하지만 이 두사람은 키젠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들이오! 못 본 척할 수는 없지!"

"그거 아쉽군."

베르무드의 두 눈의 안광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그럼 자네도 여기서 죽게나."

판타서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소. 상아탑주."

두 강자가 손짓하는 동시에, 용암과 파도가 밀려들며 격돌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