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77화
잠깐 수업이 멈췄다.
아론은 강의실 밖으로 나가 키젠 본부 측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사이 시몬은 세르네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세르네는 상아탑주 자리에 오르는 기간을 유예했다.
다니던 키젠은 계속 다니겠다. 정식으로 키젠을 졸업한 뒤에 상아탑주 자리에 오르겠다. 대충 그런 조건을 내건 것이다.
"잠깐만! 그럼 네가 키젠에 다니는 동안 상아탑은?"
"다니엘라 경이 살림을 맡을 거예요."
온건파의 수장인 다니엘라 빌렌느가 '대리 상아탑주'로서 살림을 맡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시몬은 조금 놀랐다.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을 텐데."
"지들이 반대해 봐야 뭐 어쩔 건데요."
거만하게 다리를 꼰 세르네가 손에 쥔 깃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버지가 죽었으니, 상아탑에서는 내게 목맬 수밖에 없어요. 내가 하는 요구라면 뭐든지 들을 수밖에 없죠."
사실 맞는 말이었다.
이번 사태로 상아탑엔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다. 암흑연합과 키젠을 구했다는 것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는 했지만, 수장인 상아탑주가 '결사'의 끄나풀이었다는 사실이 대륙민들에게 알려지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다.
원래 그들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중립지대 측도, 모든 계획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전면 재검토한다는 것 같았다.
상아탑은 이런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리더를 원한다. 그들이 기댈 만한 존재는 압도적인 재능과 카리스마를 갖춘 세르네뿐.
상아탑에서 그녀는 대체 불가능한 인선이고, 그런 그녀가 2년을 미루겠다면 미룰 수밖에 없다. 이제 그녀는 탑의 법률 같은 것으로 얽어매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커졌다.
"하지만 네가 키젠에 머무르면...... 그동안 상아탑 내 급진파는 완전히 씨가 마를 텐데."
키젠에 적대적인 '급진파'는 세르네의 세력 기반이었다. 시몬의 예리한 지적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정확한 추측이네요."
"괜찮은 거야? 아니면 혹시 온건파를 새로운 기반으로 삼으려는 건?"
옆자리에서 숨죽인 채 듣고 있던 로레인이 귀를 쫑긋쫑긋하는 게 보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당연히 '친 키젠 정책'을 펼치는 온건파가 상아탑에서 권력을 잡는 게 좋다. 거기에 미래의 리더인 세르네마저 친 키젠파가 된다면.......
"아뇨, 언젠가 키젠은 없앨 건데요."
세르네는 서슬 퍼런 얼굴로 단칼에 부정했다.
"지금의 급진파는 '결사'라는 똥물이 묻어 있으니까 도려내는 것뿐이에요. 내가 졸업해서 상아탑주가 되면 결사나 외부에 휘둘리지 않은 굳건한 세력을 구축할 거예요. 그때쯤이면-"
세르네가 슬쩍 웃으며 로레인 쪽을 보았다.
"키젠은 역사상 가장 괴로운 적을 맞이하게 되겠죠."
"......잠깐이라도 널 다시 봤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어."
로레인이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말했다. 세르네가 입가를 가리며 여우처럼 웃었다.
"어머나~ 결사의 사악한 흉계로부터 당신들을 구한 은인한테, 말본새가 싸가지 없네요."
"......원래는 베르무드의 계획을 도왔던 주제에.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걸로 감사하게 생각해."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스파크가 마구 튀었다. 중간에 낀 시몬은 난감한 듯 웃었다.
'이 둘은 앞으로도 계속 싸우겠구나.'
"아, 참."
세르네가 시몬을 보았다.
"메이린한텐 말 안 했죠?"
"응. 아직 복귀도 안 했어."
메이린은 키젠 복귀를 미루고 급히 상아탑에 들렀다는 것 같았다. 고향에 무슨 일이 생겼으니 직접 돌아가서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세르네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끝을 세웠다.
"실은 이런 조항도 넣을 생각이에요. 내가 키젠을 졸업하기 전까지 나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있다면 상아탑주 자리를 양도할 수 있다! 어때요?"
"메이린에게 양도하려고?"
"아뇨, 말했잖아요? 키젠을 때려 부수기 위해서라도 상아탑주는 내가 될 거라고."
대놓고 네프티스의 딸이 듣는 앞에서 선전포고한 그녀는, 이내 목소리를 줄이며 시몬에게만 들릴 만큼 조용히 말했다.
"메이린의 동기유발을 위한 방안이에요. 그 아이가 더 아득바득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내게 짓밟히며 절망하는 그림을 상상하면......."
그녀가 두 손을 맞잡았다.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네요!"
"......."
그 말을 들은 시몬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가, 서서히 미소가 지어지더니, 이제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뭐예요? 그 웃음은?"
세르네가 입술을 삐쭉였다.
"아무것도 아냐."
시몬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미간을 좁힌 그녀가 칭얼거리듯 시몬의 팔을 흔들었다.
"아, 뭐냐구요! 그 다 안다는 표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한편 로레인은 초조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 전보다 더 친해진 느낌.'
시간의 탑에서 같이 죽을 위기를 몇 번이고 겪었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내후년에 있을 시몬 영입경쟁에서 이렇게 세르네가 한 발짝 앞서 나가는 건 뼈 아팠다.
'나도...... 시몬을 놓치고 싶지 않아.'
로레인은 처음으로, 저렇게 살갑게 시몬을 대할 수 있는 세르네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한번 상상해 보았다. 시몬의 팔에 조르듯 매달려 있는 본인의 모습을.
'윽.'
머리털이 쭈뼛 설 만큼 오글거렸다. 그녀는 힘차게 도리질을 하며 망상에서 벗어났다.
저렇게 같이 바보급으로 떨어질 수는 없었다.
시몬은 소중한 친구다. 졸업을 앞둔 그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세르네가 저런다고 그의 판단이 흐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늘 진심이었으니까. 로레인은 자신 있었다.
그때 키젠 본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아론이 다시 교단으로 돌아왔다.
"준비는 다 끝났다."
아론이 손목시계를 한번 보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정확히 30분 주겠다. 기숙사로 돌아가서 겨울옷과 여분의 옷, 세면도구 등을 챙겨서 이 자리로 복귀하도록."
"?!"
갑작스러운 충격 선언에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론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번 듀라한 특강은 2박 3일 단체 합숙으로 진행된다."
* * *
학과 차원에서의 단체 합숙.
야외수업이나 외부수업은 있었어도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소환학과 기숙사까지 거리가 꽤 있었기에, 학생들은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가 이동형 소환수를 꺼냈다. 신이 나는지 곳곳에서 환호와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꽉 잡아, 토토!
-응!
시몬도 토토와 함께 골렘보드를 타고 기숙사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방문을 열고 옷장을 모조리 열었다.
"으와아, 갑자기 합숙이라니! 깜짝 놀랐어."
토토가 작은 체구로 옷장 안에 쏙 들어가며 말했다.
"나도 그래."
"어디로 가는 걸까? 시몬."
"겨울옷이 준비물이니까, 아무래도 추운 지방으로 가려는 것 같은데."
시몬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양말과 속옷을 챙겼다. 그런데 이미 파견을 갔다 온 직후라, 2박 3일을 버틸 양말이 부족했다.
"토토, 양말 하나 빌려줄 수 있어?"
"응! 당연하지!"
시몬은 토토가 건넨 양말을 펼쳐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양말이야 장갑이야.'
손목에 둘러도 작을 것 같았다.
시몬은 고맙지만 못 쓸 것 같다며 다시 양말을 돌려주었다. 피츠제럴드에게 빌리거나 합숙 장소에서 빨래라도 하는 게 나으리라.
그렇게 짐을 다 챙긴 시몬과 토토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온 학생들과 부딪히고 뒤섞이며 난리가 났다.
아론이 준 30분은 역시 짧았다.
"악!"
정신없이 달리던 토토가 뭔가에 부딪혔다. 그가 코를 매만지며 앞을 보자 커다란 엉덩이가 보였다.
"......."
사람을 눈빛만으로 찢어 죽일 듯한, 살벌하기 그지없는 동공이 보였다.
하필이면 부딪힌 사람이 헥토르였다. 눈이 마주친 토토가 '히익!'하는 소리를 내며 딱딱하게 굳었다.
"안녕! 헥토르."
시몬이 유쾌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토토에게 향해 있던 시선이, 순식간에 시몬 쪽으로 확 쏠렸다.
"......가는 곳마다 화제로군, 시몬 폴렌티아. 이번에는 상아탑을 들쑤시고 왔나."
"그 정도는 아냐."
"그 여자는?"
"아, 세르네? 계속 키젠에 남기로 했어."
헥토르는 제 말만 하고는, 아무런 대꾸 없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입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 듀라한 합숙에서는 확실하게 널 찍어 누르고 말겠다."
시몬이 빙긋 웃었다.
"그래, 기대할게."
헥토르는 한동안 부리부리한 눈으로 시몬을 노려보더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파벌들을 향해 걸어갔다.
* * *
30분 뒤.
기숙사에 갔던 학생들이 모두 모였고, 조교들의 인솔에 따라 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이동했다.
제일 먼저 마법진에 올라탄 시몬이 눈을 떴다.
'아.'
그림과도 같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뒤이어 도착한 학생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
소복소복 눈이 내려앉은 새하얀 숲. 그야말로 눈의 세계였다.
"예쁘다."
"입김 나와."
깜짝 야외수업에 들뜬 학생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있는데, 조교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학생 여러분, 인원 체크하겠습니다. 4열로 서주시길 바랍니다."
학생들은 줄을 서면서 겨울 외투와 로브를 꺼내 입었다. 키젠 교복에도 보온기능이 있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인 추위였다.
"교수님. 학과생 전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조교들이 인원체크를 마친 뒤 보고했고,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샤헤드 왕국 최북부, '프리고드' 자치구다."
아론도 평소의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에서 벗어나 클래식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역시 옷이 날개란 걸까, 사람의 인상이 달라 보인다.
"왕궁령이라도 이곳은 엄연히 원주민들의 자치구다. 원주민들은 외부인을 경계하는 성향이 짙고, 대륙어를 쓰지 못해 소통이 어려우니 주의하도록. 정치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니 괜한 말썽은 일으키지 말아라."
"네! 교수님!"
"그럼 이동하겠다."
사박 사박.
52명의 학생들과 아론, 그리고 조교진이 눈을 밟으며 걸어갔다. 시몬은 시린 손을 로브 안에 넣어 녹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하아."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로레인이 뽀얀 입김을 흘렸다.
다행히 외투는 분홍색이 아니었고 세련된 블랙 롱코트 차림. 마치 비밀세력의 젊은 보스 같다.
"이렇게 마나 농도가 짙은 곳은 처음이네."
그 말에 시몬도 흐읍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마나가 왕창 몸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평소 두 번은 숨을 쉬어야 할 분량이 한 번 만에 채워졌다.
"정말이네."
"상아탑에서는 나름 유명해요 여기."
뒷짐 진 채 옆으로 다가온 세르네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호화롭다 못해 사치스러운 금빛 털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풍부한 마나. 순수 마법 훈련하기엔 적격이거든요."
"아하."
처억!
그때 앞서가던 아론이 팔을 들어 올렸다. 정지 사인을 본 모든 학생이 걸음을 멈췄다.
"전방에 몬스터가 있다."
그 말대로였다.
점점 육중한 발소리가 가까워졌고, 학생들은 바짝 긴장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공룡을 연상케 하는 대형 파충류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일반 대륙의 몬스터들과는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스으-
아론이 손을 들어 올렸다. 마법진을 펼치려는지 그의 손끝에 칠흑이 피어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나가겠나."
타닷!
팟!
팟!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학생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칠흑을 일으키며 뛰어나갔다.
시몬, 헥토르, 그리고 아세라즈였다.
"쓰레기 같은 놈이."
경이로운 도약력으로 공룡 몬스터의 머리 위까지 도달한 헥토르가 깍지낀 두 주먹을 내리찍었다.
"누구 앞에서 이를 드러내나."
쩌어어어억!
순수한 마투.
굉음과 함께 몬스터의 안면이 바닥을 파고 틀어박혔다.
샥-
그 옆으로 뛰어든 아세라즈가 손을 휘저었다. 마법진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푸른 섬광 같은 것을 뿜어내 몬스터의 비늘을 갈라 버렸다.
"약점은 표시했어요."
부웅!
마지막으로 공중으로 뛰어오른 시몬이 두 손을 지휘자처럼 흔들었다.
그의 주위에 있던 뼈들이 새까맣게 물들더니 송곳처럼 쏘아져 나갔다.
푹! 푹! 푹! 푹! 푹! 푹!
아세라즈가 만들어놓은 틈을 정확히 뼈대가 파고들었다. 일어나려던 몬스터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마지막으로 시몬이 팔을 움직였다.
뼈들이 모여 커다란 대형 본 스피어를 이루어 쾅! 하고 비늘이 벌어진 뒤통수를 찍어버렸다.
뒤이어 세 사람이 각자의 개성대로 바닥에 착지했고, 뒤쪽의 육중한 거체는 크게 기우뚱하더니 풀숲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와아아아아!
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아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시체는 조교들이 수습해 세 학생에게 분배하도록."
"예."
조교들에게 지시한 아론이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앞으로 20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긴장 늦추지 마라."
"네! 교수님!"
* * *
샤헤드 왕국의 웰트립 영지.
갈고리 정육점.
"많이 팔게나."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온 중년 귀족이 말했다.
작업용 앞치마 차림에 장화를 신은 정육점 주인이 한껏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들리며 귀족과 아이가 정육점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오늘 저녁에 먹게 될 스테이크에 대해 떠들었다.
정육점 주인은 아이가 보지 않아도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웃차! 그럼 다음 작업을......!"
딸랑딸랑-
남자가 등을 돌리기 무섭게, 다시 한번 문에 달아놓은 방울 소리가 들렸다. 고깃덩어리를 들어 올린 그가 순박하게 웃었다.
"어서 옵쇼!"
"몰락은 혁명의 계단."
우뚝.
정육점 주인이 동작이 멈췄다. 그러고는 긴 한숨을 흘리며 쿵! 소리와 함께 고깃덩어리를 내려놓았다.
그가 이어서 손짓하자, 정육점의 커튼이 걷히고 문에 붙어 있던 'OPEN' 표시가 뒤집어졌으며, 방음 마법진이 연달아 펼쳐졌다.
찰칵. 찰칵.
치이이익-
정육점 주인은 의자에 걸터앉아 대뜸 시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
그가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인상을 구겼다.
"뭐야 또? 지금 잘되고 있다고. 이 근방에 소문이 쫙 퍼져서, 타깃도 일주일 안에는 방문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소."
손님으로 온 신사는 챙이 높은 모자를 썼다. 그리고 안면은 이목구비 없이 동공 하나만 달려 있었다.
"이 아이들을 아시는가."
신사가 품에서 꺼내 내민 두 장의 그림.
한쪽은 푸른 머리의 소년이었고, 다른 한쪽은 백금발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이놈들이군. 이번 상아탑 사태의......."
"그렇소, 키젠을 부술 절호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든 장본인들이오."
"하하! 지긋지긋한 까마귀 놈들도 아니고 이렇게 어린 꼬맹이들이 해냈다고? 놀라운데."
정육점 주인이 입에서 시가를 떼며 말했다.
"어떻게 해주길 원해? 이놈들도 고깃덩이로 만들어줄까?"
"아니."
신사가 모자챙을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분께서 이 남자아이를 만나보고 싶어 하오. 그는 반드시 생포하시오. 죽이기라도 하면 고깃덩이가 되는 건 당신일 테니."
"그거 유감이군."
"여자아이 쪽은 잡아 오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소."
텁.
도살자가 입에서 시가를 떼어 푸른 소년의 사진에 꾸욱 눌렀다.
"그래, 놈들은 지금 어디 있나."
* * *
프리고드는 왕국의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자치구 지역답게, 상당히 몬스터가 많은 지역이었다.
20분 동안 몬스터를 세 번이나 만났고, 그때마다 아론은 학생들 몇몇 지목해서 상대하도록 했다. 이것도 수업의 일환인지 사용한 소환마법에 대한 팁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론이 언덕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재잘재잘 떠들던 학생들도 얼른 옆으로 뛰어와 따라붙었다.
"도착했군."
아론이 검지를 세워 앞을 가리켰다.
"저기가 우리가 지낼 베이스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