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78화
소환학과 합숙이 시작되는 베이스캠프.
키젠의 악명이 워낙 자자했기에, 합숙이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일단 의심부터 했다.
대충 구멍 뚫린 천막 하나 던져주고, 식사나 잠은 물론 불 피우기도 니들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지시하고는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얀 설목들 사이로 그림 같은 통나무집들이 펼쳐져 있었다.
지붕 위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고, 굴뚝에서는 따뜻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물이 나오는 식수대도 있고,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저기 강아지다!"
"귀여워!"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에슈를 필두로 여학생들이 몰려갔다.
중앙에 가장 큰 통나무 집은 키젠의 어지간한 강의실보다 컸고, 그 옆에 작은 집들도 많아서 52명 모두 흩어져 지내기엔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깔끔한 장소라 그런지 곳곳에서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속지 마, 이것들아."
"방금 몬스터 나온 거 봤으면서."
그때 아론이 걸음을 멈추고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주목."
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아론을 보았다.
"이동하느라 수고했다. 들뜬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린 놀러 온 게 아니다. 예상 도착 시간보다 늦어졌으니 바로 특강을 시작하겠다."
출석부를 가슴에 끌어안은 수석조교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학생 여러분은 강의실로 이동하시겠습니다! 나머지 조교들은 집합. 결계를 손볼 인원은 바로 이동해."
학생들이 가장 큰 중앙 건물로 우르르 걸음을 옮겼다. 시몬의 10조도 마찬가지였다.
"얘들아! 여기 분위기 너무 좋지 않아? 이런 곳에서 합숙이라니! 최고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에슈가 콩콩 뛰어다녔다. 시몬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재밌겠네."
"......부, 분명 숨겨진 미션이 있을 것 같은데."
토토가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말했다. 로레인은 눈을 감은 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로레인."
"아니, 아무것도 아냐."
시몬의 10조도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에슈가 털장갑을 낀 손을 두 뺨에 올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따-뜻해! 너무 좋아!"
이미 벽난로의 온기가 퍼져 있어서 후끈후끈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외투와 겨울 로브를 벗고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잠시 후 아론과 조교진도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합숙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앞자리의 학생들은 비밀 임무라도 있을까 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결계 상태는?"
"좋습니다. 밖에 몬스터들이 많이 돌아다니긴 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추이를 보고 개체수가 불어나면 숫자를 조금 줄여놓도록."
"예."
조교들에게 지시를 내린 아론이 연단에 올라섰다. 조교들이 커다란 칠판 하나를 들고 와 벽에 걸었다.
스륵-
더웠는지 아론도 코트를 벗었다.
저 멋진 겨울 코트를 벗자마자 바로 평소의 그 반소매 셔츠와 헐렁한 반바지가 드러났다. 학생들이 숨죽인 채 웃었다.
아론이 분필을 집더니 칠판에 느릿하게 글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듀라한 특강>
"우선 학과생 전원, 특강에서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학생들도 손뼉을 치며 마주 웃었다. 시작부터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럼 가벼운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겠다. 듀라한의 주재료에 대해 말해볼 사람 있나?"
척!
필기 전교 1위의 아세라즈가 번쩍 손을 들어 올렸지만, 앞자리의 피츠제럴드가 간발의 차로 더 빨랐다.
아론도 피츠제럴드를 지목했다.
"피츠제럴드입니다. 오거로드, 아바돈, 가디언입니다."
"그래."
훗. 피츠제럴드가 잘난 척 안경을 추켜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료가 빠졌군."
추켜 올라가던 안경이 옆으로 삐뚤어졌다.
"앞서 나온 세 가지보다 더 강력한 재료가 존재한다. 이 재료로 만드는 듀라한이야말로 특상품이지. 아는 사람 있나?"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중간고사를 위해 예습해 온 학생들도, 듀라한의 주재료는 '오거로드, 아바돈, 가디언'이라고 주구장창 외워왔다. 그 밖에 재료는 아는 바가 없었다.
"듀라한 최고의 재료는-"
아론이 정적을 뚫고 입을 열었다.
"인간이다."
'?!'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에슈는 굳은 얼굴로 어깨를 쓸고 있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소환형 언데드는 대부분 '자연형 언데드'가 모티브다. 좀비도, 스켈레톤도, 구울도, 이미 자연형 언데드로 존재하는 것들이지."
하지만.
하고 아론이 운을 띄웠다.
"듀라한은 '자연형 언데드'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직접 창조한 언데드. 그것이 듀라한이다."
교과서에서는 나온 적 없는 이야기였기에, 학생들은 잔뜩 집중한 얼굴로 아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론이 앞에 앉은 학생에게 손짓했다.
"조지프. 듀라한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해봐라."
본인을 지목할 줄 몰랐던 학생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조지프 바르가입니다! 그, 저...... 질문이......."
"듀라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했다."
51명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예습을 안 해온 듯했지만, 조지프의 머리는 필사적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는 듯 입을 열었다.
"모, 목이요! 목이 없습니다!"
"그렇다."
타악- 탁. 탁.
아론이 칠판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듀라한의 중요한 특징이 세 가지 나왔다. 목이 없다. 인간이 주재료다. 인간이 직접 창조해 낸 언데드다. 자, 이제 듀라한의 비밀에 대해 감이 오나?"
강의실에 숨죽인 정적이 흘렀다. 아론은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특징은 확실하게 표현했다.
높게 세워진 2개의 기둥, 그 사이에 밧줄로 매달린 칼날, 얼굴과 두 손을 넣을 수 있는 나무틀.
"저건......."
"설마."
그것은 단두대였다.
학생들이 표정을 찌푸렸다. 그리고 목이 잘린 사람 그림까지 적나라하게 휘갈겨 그린 아론이 분필을 내려놓았다.
"바로 이 목 잘린 시체를 훔쳐 가 연구하던 게 듀라한의 시작이다."
과거, 기사와 마법사들이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삼류에 불과했던 네크로맨서들은 탄압의 대상이었고, 마녀사냥을 피해 깊은 음지로 숨어들었다.
네크로맨서들은 계속 이렇게 비참하게 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압도적 수적 우위를 점한 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죽은 기사를 언데드로 만드는 연구를 거듭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기사의 시체를 가져와 언데드로 만들어도, 생전에 가진 기사들의 힘과 역량은 유지할 수 없었다. 일개 병사나, 오러를 쓰는 기사나, 스켈레톤으로 만들면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네크로맨서들이 하나둘 '기사를 언데드로 만드는 연구'를 포기하고 있을 때, 유달리 이 연구에 미쳐 있는 한 네크로맨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기사만을 연구했다. 보유하고 있던 기사의 시체가 다 떨어지면, 처형장이나 암시장에 가서 목 잘린 기사의 시체를 가져왔다.
당시는 격전의 시기였지만, 온몸을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은 전쟁터에서 잘 죽지 않는 존재였다. 갑옷이 무거워서 도망치는 데 실패해 포로로 붙잡히거나, 알력다툼과 정치전에 희생되어 단두대에 처형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반면 목 잘린 기사 시체는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네크로맨서는 이 시체로 언데드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동료들은 그를 보고 비웃었다. 언데드는 두개골에 '소환 마법진'이 새겨지기에, 목 잘린 시체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게 그 시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지금은 나를 비웃겠지만, 역사가 내 연구를 증명할 것이다.
그가 기사 연구를 시작한 5년 뒤.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아론은 칠판에 목과 목 없는 시체를 간단히 그린 다음, 각각 두 파츠에 소환 마법진을 그렸다.
"몸과 목, 두 개의 소환 마법진을 쓴다는 발상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듀라한을 강력한 언데드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디테일한 설명은 처음 듣는 거였기에 그들의 집중력은 최고조였다.
"하지만 그 결과, 몸통과 목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무력한 두 개의 언데드가 만들어질 뿐이었다. 네크로맨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타악-
"제미니(Gemini). 흔히 말하는 '연동의 룬'을 메인 룬어로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말한 그가 고개를 들자마자, 아세라즈가 미리 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론이 픽 웃으며 그녀를 지목했다.
"아세라즈 미켈입니다! 연동의 룬 제미니는 현대에선 대형 통신 마법이나, 텔레포트 마법진에 들어갑니다. 두 개의 마법진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잘했다."
아세라즈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뒤늦게 손을 든 헥토르는 괜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조각을 걷어찼다.
"듀라한은 의외로, 처음엔 통신 마법진의 재료를 이용해서 만들어졌다. 발신자와 수신자를 잇는 통신마법처럼, 머리와 몸통을 잇는 형태로 제작된 거지."
분필을 든 아론이 칠판의 몸통과 목에 선을 그어 묶었다.
"이게 가장 원시적인 듀라한의 형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수식과 룬어가 개선되었고, '두 개의 소환마법진을 하나로 연동'하는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다."
아론이 분필을 든 손을 내리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목 잘린 기사의 시체가 많으니 그거라도 쓰겠다는 바보 같은 집념으로 개발한 듀라한은 마침내―"
짙은 적막이 내려앉은 강의실에서 아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사의 시대를 끝냈다."
곳곳에서 흥분한 학생들이 탄성을 흘렸다.
"듀라한은 네크로맨서들이 기사를 상대하기 위한 최강의 무기가 됐다. 듀라한 하나를 상대하는 데 기사들이 3~4명은 필요했고, 듀라한에게 죽은 기사는 또 듀라한으로 만들어졌다."
실체보다 더 강한 언데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당시에는 상식파괴였다.
"과거 무적이라 불리던 탈헤른 제국의 몰락은, 기사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손꼽힌다. 황제가 5만 대군을 키젠으로 보냈다가, 그 5만 대군이 고스란히 언데드가 되어 말머리를 돌려 제국의 수도를 공격한 장미회군. 그 장미회군의 최선두에도 듀라한이 있었다."
호전적인 성격의 남학생들이 환호했다.
"지금도 듀라한은 네크로맨서의 세계에서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 소환술사가 듀라한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내가 수준급의 소환술사라고 말할 수 있는 증명과도 같다."
이번엔 뒷자리에서도 환호성이 들렸다. 강의실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너희들에게도 그 기회가 왔다. 이번 특강 기간 동안, 반드시 자신만의 듀라한을 완성하길 바란다. 이상."
와아아아아아!
마침내 흥분한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완벽한 동기부여에 더해, 깔끔하게 특강의 시작을 장식한 아론은 픽 웃으며 등을 돌렸다.
"밖으로 나오도록. 지금부터 듀라한을 시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