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80화
"후우우우―"
시몬은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시간을 들여 머릿속의 모든 잡념을 없앤 뒤, 눈을 떴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연습용 생체기관이 보인다.
마치 제멋대로 불끈불끈 움직이는 폐처럼 생겼다. 이것의 유일한 기능은 대기 중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밖으로 배출하는 것.
'다음.'
시몬은 그 아래의 세팅된 마법진을 보았다.
1/3 정도 완성된 모습. 테두리와 기본적인 수식은 정해져 있지만 룬어와 핵심 수식이 들어갈 칸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퀴즈 문제를 보는 것 같다.
이 빈 공간엔 무슨 수식이 필요할까.
이 구성에는 어떤 룬어가 적절할까.
이걸 잘 채워서 생체기관에 적용시키면, 마나를 칠흑으로 전환하는 엔진 기관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 자,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은 목표를 상기한다.
'마나를 칠흑으로 바꿔야 해.'
목표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본다.
'칠흑을 다뤄야 하니까, 일단은 생체기관을 언데드 기관으로 변이시켜야겠지.'
'언데드화에 필요한 건? 개변 수식과, 부패변이 공식. 구울 시간에 배웠어.'
'메인 룬어를 보조할 수식은? 종속계면 충분할 거야. 전에 교과서에서 배운 크립트 가드와 똑같아.'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면서 가설을 세우고 뼈대를 맞춘다.
이상하리만큼 답이 잘 나왔다.
하나를 생각하니 다른 하나가 풀린다. 지금까지 배운 모든 지식들이 떠올라 가설을 뒷받침한다.
'머릿속의 구상을 조금 더 확실하게.'
다른 학생들이 아직도 재료 때문에 다투고 있을 때, 시몬은 가방에서 소환학 필기노트들을 모조리 꺼냈다.
다른 학생들의 테이블에는 각종 재료로 한가득이었지만, 시몬의 책상 위에는 노트뿐이었다. 빈 노트에 마법진을 그려놓고, 그 옆에 가지를 그리듯 수식들을 써내려갔다.
'개변 수식으로 연동.'
'아론 교수님이 그렇게 억념의 룬을 강조하셨는데, 이건 어디에 쓸 수 있지? 폐의 활동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나? 아, 그러면......!'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물꼬 터지듯 깨달음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이론은 잡았고, 바로 실전으로.'
시몬은 신중하게 남은 마법진을 완성시켜 나갔다. 가장 중요한 메인 룬어에 기반되는 수식들을 먼저 그려놓고, 그 뒤에 다른 수식이나 서브 룬어를 이어붙였다.
이내 완성한 마법진을 그대로 생체기관에 새겨 보았지만,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개변 수식으로 맞췄는데 왜 움직이질 않지? 뭔가 부족한가? 마법진은 제대로 됐다고 가정하면 외부의 조건이...... 아!'
마법진의 구상을 마치니, 비로소 필요한 재료들이 보였다. 시몬은 소환학과 52명 중에 제일 늦게 바구니를 들고 재료를 챙기러 뛰어갔다.
'흰비단풀 진액, 베이스노드, 오펠.'
원하는 재료를 가져온 다음, 준비된 마법솥의 물을 끓였다. 재료를 넣고 저으며 생체기관을 조금씩 보강했다.
작업칼로 생체기관에 구멍을 내야 하는 단계도 있었다. 그 안에 칠흑실을 통과시키고 반대로 꼬아서 묶는 기술은 틀림없는 키메라 기술이다.
'다 아는 것들이잖아.'
재능에 의존해 리치를 만들 때와는 달랐다.
머릿속에 학습된 정보가 들어 있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배열한다.
답이 없어 보이던 수수께끼를, 퍼즐로 바꿔간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던 지식들이 착착 홈에 맞춰 들어가며 큰 그림을 펼쳐 나간다.
'완벽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갈 만큼 신이 났다.
시몬이 그렇게 앞서나가는 사이, 다른 학생들도 슬슬 감을 잡은 것 같았다.
투덜거리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깃펜이나 작업칼을 깨작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장내에 적막함이 깔릴 정도로 모두가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 뭐야."
이렇게 되니 시작부터 포기를 선언한 학생들의 꼴만 우습게 되었다.
"혹시 뭔가 알아냈어? 배우지도 않은 걸 어떻게......."
"바쁘니까 말 시키지 마."
뭐라도 시도해 보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배우지도 않은 듀라한의 '엔진'을 창작하라는 아론의 지시는 분명 누구나 막연하게 느꼈다. 하지만 해볼 생각을 가지고 곰곰이 고민해 본다면, 소환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그걸 붙잡고 뭐라도 시작해 보면, 그게 중요한 한 발짝이 된다.
생체기관을 반으로 나누는 학생도 있었고, 껍질을 씌우거나 맹독액체를 떨어뜨려 화학반응을 일으키려는 학생들도 있었다.
정형화된 수업방식이 아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수업이었기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여럿 튀어나왔다.
"조교 선생님."
작업에 집중하던 시몬이 손을 들어 올렸다. 조교가 다가왔다.
"네, 학생. 말씀하세요."
"꼭 여기 있는 재료만 써야 하나요?"
"아닙니다. 이건 자유로운 창작활동이니까요.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으적!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몬은 예전 소환 재료학 시간에 만들었던 '미니 나이트 테러'를 분해했다.
그러고는 생체기관에 그것들을 마구 매달기 시작했다.
조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무슨 해괴한 걸 만들려고?'
* * *
"시간 지났다. 전원 작업 중지."
아론이 말했다. 학생들은 모두 테이블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수고했다. 내가 영감을 받을 만큼 재미있고 파격적인 방식도 많더군. 하지만 우리는 네크로맨서고, 수행평가 점수도 걸린 만큼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가 손에 든 서류판으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배출관에서 칠흑이 나오지 않는 학생들은 우선 뒤로 나가도록."
학생들이 아쉬운 소리를 내며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내 야외 실습장에 남은 건 열댓 명의 학생들뿐이었다.
시몬, 헥토르, 아세라즈, 피츠제럴드 같은 모범생들은 물론 의외의 인물들이 많았다.
'토토!'
상위권의 에슈 아르젤이나 피에르 버클러도 떨어진 와중에 토토가 당당하게 남아 있었다. 아론도 그에게 제일 먼저 다가갔다.
"토토 아모리, 기관을 작동해라."
"예 옛!"
토토가 생체기관을 작동시켰다. 겉보기에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생체기관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하면서 마나를 빨아들였다.
아래의 배출구에서 나오는 건 틀림없는 마나였지만, 살짝이나마 거무스레한 게 섞여 나오고 있었다.
"......오, 저 정도면 성공이지?"
"소량이지만 칠흑은 나오니까."
"잘했어 토토!"
마지막은 에슈의 외침이었다.
"데스나이트를 만들려면 듀라한쯤이야!"
토토의 얼굴이 벌게지고 곳곳에서 자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흠."
그런데 아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기관의 내부에도 칠흑마법진을 그렸었나?"
"아, 네! 교수님!"
"마나가 칠흑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내부에 그린 칠흑마법진이 붕괴되면서 마나와 함께 흘러나오는 거다. 헛짚었으니 뒤로 가도록."
하하하하하하하!
곳곳에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토토는 아까보다 더 벌게진 얼굴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해."
마음씨 좋은 로레인이 격려했지만, 옆에서 에슈가 배를 잡고 웃는 바람에 큰 위로는 되지 못했다.
이어서 다른 학생들의 평가가 진행되었다.
특히 아세라즈의 작품에서는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배출구에서 새까만 진흙 같은 게 흘러나왔는데, 거무죽죽한 액체상태를 유지했고 칠흑의 순도도 높아 보였다.
"왕도를 걸으면서 최선의 효율을 추구했군. 교재로 써도 무방한 결과물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다음은 헥토르의 차례.
그의 작품은 이미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형되어 있었다. 출입구인지 배출구인지 구분도 안 되는 구멍들이 많이 보였다.
"변이가 강하게 들어갔군."
"예."
헥토르가 당당하게 말했다.
"개변 수식과 부패변이 공식에 변화를 줘서, 더욱 극단적인 상태까지 변이를 진행했습니다."
"작동시키도록."
헥토르가 마법진을 작동시키자 생체기관의 모든 구멍에서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나가 흘러드는 게 육안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뭐야, 그냥 마나를 끝없이 빨아들이기만 하잖아?"
"배출은?"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웅성거렸지만, 헥토르의 파벌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뿌우우우-!
이내 모든 출입구에서 칠흑이 시커멓게 뿜어져 나왔다. 흡입량만큼 배출량도 상당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순식간에 멎었고, 아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배출 체계를 변환했나."
헥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강력한 힘을 한 번에 폭발시킬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듀라한의 베이스와는 다소 틀어졌지만, 확실히 인상적인 엔진이군. 수고했다. 최고점이다."
"감사합니다."
헥토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의 친구들이 요란하게 달려와 등을 때리거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다음은......."
아론이 시몬의 자리로 걸어갔다.
"난 분명 칠흑 배출기관을 만들라고 했을 텐데, 시몬 폴렌티아."
시몬의 테이블에 놓인 건 예전에 제작했던 '나이트 테러'였다. 뒤에는 칠흑으로 이루어진 꼬리가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네, 배출기관까지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이트 테러의 겉껍질 안에 기관이 들어가 있었다.
아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작동시켜라."
"예."
시몬은 나이트 테러를 들어 올리더니, 눈밭에 툭 내려놓았다.
"??"
뒤쪽의 학생들이 의아한 얼굴로 다가왔다. 시몬은 손바닥을 펼치며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키이잉!
내부의 마법진에 불이 들어오고, 껍질 사이의 구멍으로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투콰콰콰콰콰콱!
나이트 테러가 엄청난 속도로 칠흑 꼬리를 흔들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왓!"
"저거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학생들이 화들짝 놀라며 좌우로 물러났다. 나이트 테러는 마치 로켓처럼 눈을 파헤치며 전진하다가 울타리를 들이받았다.
쿠우웅-!
그러고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연신 꼬리를 움직이며 끼이익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나의 칠흑 전환은 물론, 확보한 칠흑을 속도로 바꿔봤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군.'
아론이 입꼬리를 올렸다.
저기서 '속도'를 '움직이는 힘'으로 바꾸는 게 듀라한이었다.
'진도를 앞서나가는 것도 적당히 해라. 천재놈.'
뒤이어 끼이익 거리며 울타리가 무너지려는 소리가 들렸다.
* * *
수행평가 가산점이 끝나고, 조교들이 학생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나는 교육자다."
아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50명이 넘는 학과에서 교내 교육은 획일적일 수밖에 없고, 학습자들 또한 수동적 태도로 지식을 습득하기 마련이다."
학생들은 잠자코 차렷 자세로 아론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서 나는 듀라한을 만들기 전에, 너희들에게 자신만의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불만을 가진 학생들도 있었다만-"
몇몇 학생들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 불만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형화된 지식을 주입하기 직전, 생각해 보는 거다. 내가 듀라한을 만드는 첫 번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최초라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수많은 선구자들이 느낀 그 깨달음을 백만분의 일이라도 너희들이 느꼈으면 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단순 지식만으로 머리를 굳혀 버리는 건 교육자 실격이겠지."
시몬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는 상관없다.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깨우치고 이해한 지식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었다.
"교수님."
그때 수석조교가 아론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듀라한 제작 수업을 시작하겠다. 이번 수업에서 성과가 없는 학생은 필사적으로 따라오도록. 성과가 있는 학생들은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결과물과 실제 지식을 비교하면서 따라와라."
"예! 교수님!"
* * *
특강은 저녁이 돼서야 끝났다.
야외 실습실과 실내 강의실을 번갈아 가면서 수업한 학생들은, 마침내 퀭한 얼굴로 강의실을 나왔다.
"어."
"맛있는 냄새다."
학생들이 좀비 같은 걸음걸이로 이동하는데, 마침 커다란 따뜻한 고기 수프가 솥 안에서 끊고 있었다.
"와아!"
배식이 시작됐다. 학생들은 줄을 서서 고기 수프와 빵을 받아들고 근처에 앉아서 먹었다.
시몬도 수프를 한 스푼 떠서 후후 바람을 불다가 한 입 먹어보았다.
'아, 살 것 같다.'
이 추운 날씨에 따뜻한 수프만큼 좋은 건 없었다.
"흐음. 맛은 있는데, 오늘 하드한 일정에 비해선 저녁이 부실한 거 아냐?"
에슈가 불쑥 말했다.
"고기! 고기! 더 많은 고기! 여기까지 왔는데 캠핑 바비큐 정도는 하게 해줘야지!"
"우린 놀러 온 게 아냐. 에슈."
로레인이 다소곳하게 앉아 빵을 고기 수프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에슈가 입술을 삐쭉였다.
"무, 물론 그렇지만요!"
"식사하면서 들어라."
아론이 학생들 사이로 걸어들어오며 전파했다.
"오늘 밤이야 경황이 없을 테니 조교들이 준비했지만, 내일부터 식사는 너희들이 해결해야 한다."
곳곳에서 역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쉬운 게 하나 없었다.
"내일 아침 특강도 일찍 시작하니, 늦지 않게 따라올 수 있도록. 이상."
아론은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10조 조원들은 즉시 논의에 들어갔다.
"우린 내일 뭐 해 먹지?"
시몬이 말했다. 에슈가 훗 하고 팔짱을 꼈다.
"몬스터 잡아먹어야지 뭐. 밖에 그 공룡 몬스터 많이 돌아다닌다던데."
토토와 로레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얼어붙었다.
"지, 진짜 그거 먹어야 해?"
"힘줄이 많아서 먹을 게 없을 텐데."
빡센 합숙 일정을 따라가기 위해선 좋은 밥과 잠자리는 필수였다.
다행히 잠자리는 해결됐지만, 문제는 식사였다.
'곤란하네. 사냥에 조리시간까지 고려하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나?'
시몬이 눈을 감고 고민에 잠겨 있는 그때.
"회장!"
에슈가 시몬의 팔을 툭 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
그녀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몰래 마을에 내려갈래? 내가 위치를 알아."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을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