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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81화 (58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81화

그날 밤.

시몬과 로레인, 토토, 그리고 에슈는 나무로 만든 스키를 타고 눈밭을 내려가고 있었다.

"꺄하하하핫! 너무 재밌어어! 이게 합숙이지! 일탈이야말로 묘미지!"

에슈가 해방감에 큰소리로 외쳐댔다. 하늘에는 그녀의 '저주 인형'들이 날아다니며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에슈의 능력 덕분에 주위를 분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눈발이 마구 날리고 경사가 높아서 위험천만한 건 매한가지였다.

"으악! 으아아악!"

스키를 타고 있는 토토의 두 다리가 위태롭게 떨렸다.

"이, 이런 시간에 스키라니! 죽을 거야!"

"에이, 엄살은! 뒤에서 잘 따라오기만 해."

에슈가 파이팅을 외쳤다. 시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 마을, 확실히 있는 거 맞지?"

"당연하지! 조교 쌤한테 직접 들었어. 오늘 저녁 식사 재료도 그 마을에 가서 사 온 거래! 나만 믿어!"

한 마디로 물어도, 다섯 마디로 대답해 오는 게 에슈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도, 로레인은 능숙한 스키 실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초심자인 토토를 챙기면서도 코앞까지 다가온 나무를 능숙한 턴으로 피해냈다.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새하얀 설원을 자유자재로 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역시이, 대단해요 로레인 님!"

에슈가 딸랑딸랑 꼬리를 흔들었다.

"진짜 스키 처음 타는 거 맞아요?"

"원래 몸으로 하는 건 금방 배우거든."

로레인이 덤덤하게 답했다. 에슈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음흉한 눈으로 시몬 쪽을 돌아보았다.

"거기 자꾸 힐긋힐긋 훔쳐보는 산골소년은 더 노력하셔야겠는데?"

시몬이 무안한 미소를 지었다.

레스힐에서 눈 내리는 날에는 스키를 쓰곤 했지만, 애초에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은 아니어서 익숙하진 않았다.

"이건 로레인이 너무 잘하는 거야."

"그런 걸로 쳐줄게."

"응악!"

결국 사고가 일어났다. 토토가 발에 낀 스키를 날려 버리며 눈밭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조원들이 급히 멈춰 섰다.

"토토! 괜찮아?"

시몬이 다급히 외쳤다.

"으, 응, 괜찮아!"

눈밭에서 퐁! 하고 토토가 얼굴을 들었다. 얼굴이 벌게지고 멍한 표정이었다.

"우하하! 토토, 표정 너무 웃겨!"

에슈가 꺄륵꺄륵 웃어댔다. 주위의 어둠을 밝혀주던 저주 인형들도 그녀의 흉내를 내듯 꺄르륵 웃고 있었다.

토토가 자리에서 낑낑거리며 일어났다. 로레인이 스키 끝에 칠흑을 일으켜 오르막길을 올라오더니 토토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고, 고맙습! 아니, 고마워!"

여전히 토토는 로레인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

"으, 응!"

시몬이 다가와 토토의 무릎을 가리켰다.

"잠깐, 무릎 다친 것 같은데."

떨어질 때 바위나 나무 따위에 강하게 부딪힌 모양이다.

토토는 괜찮다고 했지만, 걸음이 불편한 듯 다리를 살짝 저는 느낌이 있었다. 스키를 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데려갈게."

시몬의 말에 로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몬 너도 아슬아슬해서 위험해 보여. 내가 데려가는 게 나아."

"어떻게 하려고?"

* * *

그렇게 잠시 후.

촤아아아아아아-!

세 개의 스키가 설원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토토는.

"......."

로레인의 품에 폭 안겨 있었다. 마치 새끼 코알라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자세였는데, 그의 얼굴은 민망함과 수치심으로 시뻘게져 있었다.

"그, 그냥 내 발로 갈게!"

"사양할 필요 없어."

로레인이 미소 지었다. 감히 네프티스의 딸의 말에 뭐라 대꾸하지도 못하고 토토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후훗! 우후후훗!"

에슈는 그렇게 웃고도 또 웃을 힘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녀는 기분 좋을 때 자주 하는 리포터 흉내를 냈다.

"호화도 이런 호화가 없네요! 네프티스의 딸이자 차기 키젠 총장의 품에 안겨서 가다니! 특등석에 탄 기분이 어떠신지요? 데스나이트 소년!"

"하지 마아!"

다들 자그맣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에슈가 '오!'하고 눈을 크게 떴다.

"말씀드린 순간! 저기 보입니다아!"

정말로 마을이 있었다.

* * *

"......."

"......."

마을에 도착한 10조 조원들은 적막 속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을은 마을이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였다.

"에슈."

시몬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힉!'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아, 뭐야! 갑자기 무섭게 노려보지 마! 쫄았잖아!"

"이번 건은 나도 제대로 설명을 듣고 싶은데."

로레인도 웃는 얼굴로 에슈를 돌아보았다.

"괜히 토토가 다치기만 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면 조금 화날 것 같아."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에슈는 이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그녀는 일단 허리를 홱 굽혔다.

"하, 하지만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진짜로 조교쌤이 마을이 있다고 했었어요! 학생들이 먹을 거 구하러 간다는데 이런 문제로 장난칠 사람들도 아니고!"

시몬이 턱을 쓸었다.

"그럼 잘못 온 건가?"

"아마도 그럴 거야. 회장! 한 시간 거리라고 했는데 지금 한 30분 지났나? 벌써 도착하기엔 좀 이르잖아!"

시몬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웅크려 앉아 있는 토토에게 다가갔다.

컨디션이 많이 나빠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여기서 상처를 좀 치료하고 가자."

시몬은 아공간에서 가방을 꺼내고, 그 안에서 붕대와 포션을 몇 개를 꺼냈다.

"다리 좀 펴줄래? 토토."

"으, 응."

토토의 바지를 걷어 올려보니 무릎 아래가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포션을 써야 하나.'

시몬이 맹독학 수업때 제조한 포션들 중에서 치료 효과가 있는 걸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향긋한 향기가 났다.

고개를 돌린 시몬이 움찔했다.

"로, 로레인?"

갑자기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놀랐다. 그녀는 쪼그려 앉은 채 눈을 빛내며 시몬의 치료를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래?"

"아냐, 하던 거 계속해."

거즈에 포션을 묻히는 시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로레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분명 그때.'

그녀는 타라도스 파견평가 때, 시몬이 보여준 치료능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환자는 시몬의 의뢰자였다. 그 의뢰자는 결사의 저주에 당해 장기가 망가져 있었고, 살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조치했어.

짧은 시간, 시몬이 뭔가 조치를 하니 호흡도 안정됐고 안색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졌다.

곧 죽을 사람을 살린 것이다. 분명 맹독학 시간에 배운 포션으로는 불가능한 조치였다.

'어떻게 치료한 걸까.'

그런 의문을 품었던 로레인은 시몬이 의뢰자를 치료했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보았고.

공기가 따끔따끔한 걸 느꼈다.

아주 희미했지만 자신의 칠흑이 반발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느꼈다.

'혹시 시몬은...... 아니, 그럴 리가.'

칠흑과 신성은 상반되는 힘이다.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쓸 수도 없을뿐더러, 두 힘을 한 번에 운용하면 몸이 터져 버릴 것이다.

무엇보다, 시몬은 다른 누구도 아닌 군단장이다. 신성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스으윽-

로레인이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시몬은 토토의 상처에 대한 조치를 마쳤다.

평범했다.

상처를 낫게 하는 포션과, 진통 효과가 있는 포션을 붓고 붕대를 둘렀을 뿐이다.

"자, 끝."

"고마워, 시몬."

토토가 제 다리를 만져보았다.

"대단해. 정말 좀 나아진 것 같아!"

"그래도 임시조치니까, 베이스 캠프로 돌아가면 의무 선생님께 보여드려."

로레인은 여전히 시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뒤통수가 따가웠던 시몬이 무안하게 웃었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냐."

로레인이 얼른 고개를 되돌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지 정하자."

시몬이 조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조금 더 내려가 볼까."

"일단 조금 쉬었다가......."

"꺄아아아아악!"

갑자기 에슈가 비명을 지르며 로레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왜 그래? 에슈."

"모, 모모모모, 못 들었어요? 다들?"

겁에 단단히 질린 듯한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외쳤다.

"저 마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장난치지 마."

시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로레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잘못 들었겠지.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 무슨."

"진짜! 진짜로 들렸어요!"

에슈가 꽥 소리 질렀다.

"여자 울음소리가!"

"......!"

네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고 주위의 소리에 집중했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흐릿하게 들리는 듯한 올빼미의 울음소리뿐이다.

그리고.

-으흐흐흐흑.

정말로 여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움찔했고 토토는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며 그의 팔에 달라붙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다들 벙어리가 된 것처럼 동공만 흔들고 있었다.

"음."

이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로레인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내가 가볼게."

"가, 가긴 어딜 가요! 빨랑 도망쳐요!"

에슈가 울먹이며 소리질렀다.

"여기 진짜 음침해! 기분 나빠! 귀신, 귀신이 있는 게 틀림없어!"

로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귀신이 세상에 어딨니? 분명 우리한테 살려달라고 했어. 구조요청일지도 모르는데 모른 척할 순 없잖아."

"누가 폐가에서 구조요청을 하는데요!"

"조난자가 눈을 피해 잠시 들렀을 수도 있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히이익!

이제는 에슈와 토토가 서로를 붙잡고 와들와들 떨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레인이 몸을 돌렸다.

"내가 가볼게.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

"잠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어서는 한 명이 있었다.

"......너 혼자 보낼 순 없어. 같이 가."

시몬이었다.

* * *

시몬과 로레인은 손에 랜턴을 하나씩 들고 폐허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 끼이익-

박살이 난 문이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잔뜩 민감해진 시몬은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걸음을 옮겼다.

"이상해."

로레인이 랜턴으로 주위를 비추며 중얼거렸다.

"뭐, 뭐가?"

"우리는 언데드를 다루는 게 직업이잖아. 귀신도 언데드나 다름없고. 네크로맨서가 귀신이 무섭다고 하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한......."

그렇게 말한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시몬의 손에 든 랜턴이 탈곡기처럼 떨리고 있었다. 로레인이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혹시 너도 귀신 무서워하니?"

움찔.

시몬의 몸이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굳어졌다.

"......아하하, 그럴 리가."

"다리 떨고 있는데."

"이건 아까 스키 탈 때 다리가 아파서."

"흐음-"

로레인이 휙 고개를 돌려 앞장섰다.

"수만 언데드를 이끄는 군단장님도 귀신을 무서워할 수 있구나."

"아, 아니라니까!"

시몬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비로소 로레인의 입가에 장난기 있는 미소가 걸렸다.

"농담이야. 긴장 풀라고 하는 소리."

"크윽."

-으흐흐흑.

그때 바람에 실려 오는 구슬픈 여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또다시 뻣뻣해졌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로레인이 귀를 쫑긋했다.

"저기야. 가자."

"잠깐! 마음의 준비를 좀......!"

"빨리 와. 부상자일지도 모르잖아."

로레인이 시몬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시몬은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타닷.

탓.

울음소리가 난 곳에 도착했다.

다 무너져 가는 폐가였다. 창문은 깨져 있고, 온통 거미줄이 처져 있다.

'윽.'

시몬은 스산한 감각이 목덜미를 훑는 것을 느꼈다. 죽어도 이곳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혈천교나 결사와 싸우는 게 백배는 나을 것 같았다.

"누구 있어요?"

로레인은 태연하게 깨진 창문 너머로 말을 걸었다.

대답 대신 흑흑흑 하는 불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기 맞네. 들어가자."

그녀가 문을 붙잡고 덜컹덜컹 흔들었다. 뭔가가 걸려 있는 듯 열리지 않았지만, 팔에 칠흑을 끌어모은 그녀가 단숨에 잡아당겼다.

터엉-!

박살 난 문짝을 옆으로 내던진 그녀가 랜턴으로 앞을 비추며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 로레인!"

시몬도 잽싸게 뒤따랐다.

-으흐흐흑.

집안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찢어진 커튼, 박살이 난 가구, 말라붙은 벌건 핏자국도 보인다. 그냥 폐허가 아니라 마치 살해현장의 한복판 같았다.

두 사람은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섰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마침내 목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

시몬은 목 언저리에 서늘함이 이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멈췄다.

커튼 너머 비치는 달빛 아래에, 낡은 옷차림의 작은 소녀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었다.

-으흐흐흑.

솜털이 우스스 돋아올랐다.

왜 이런 곳에 어린 소녀가 홀로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내게 맡겨."

그때 로레인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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