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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82화 (58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82화

"내게 맡겨."

오래된 폐가.

사람이 살았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은 낡은 방에, 홀로 울고 있는 소녀.

누가 봐도 수상쩍은 상황이었지만, 로레인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소녀에게 다가갔다.

-으흐흐흑.

소녀는 여전히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고 있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춘 로레인은, 사람의 경계심을 허무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

울음소리가 멈췄다.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엄마랑 아빠는?"

-.......

폭풍전야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몬은 침을 꼴깍 삼키며 지켜보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로레인을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정말로 그녀의 말처럼 조난자라면 구조해야 했다.

-왜.

그때 소녀의 입이 열렸다.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응?"

그 말을 들은 로레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시몬은 얼굴이 바싹 굳었고, 로레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혹시 엄마 아빠가 널 여기 두고 간 거니?"

-......아니.

"그럼 누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소녀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너희들이 날 두고 갔잖아!"

께에에에에에에엑!

그녀의 입이 괴물처럼 벌어지며 떨어져나온 동공이 360도로 마구 회전했다.

'!'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고 하던가. 시몬은 육체와 사고가 일순간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망령 언데드야. 반격해야......!'

바로 그때.

시몬은 자신의 몸에 부드러운 뭔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

고개를 내리니 까만 정수리가 보였다.

'......로, 로레인?'

시몬은 얼이 빠졌다.

그녀 또한 저도 모르게 뛰어든 건지, 자기도 놀라서 황급히 떨어졌다. 이내 눈을 질끈 감은 채 시몬의 손목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르!

집이 무너지고 있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렸고, 뒤이어 폐가가 폭삭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후우우."

두 사람은 식은땀을 흘리며 무너진 집을 바라보았다.

'뭐야.......'

뭔가 현실성이 결여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령을 본 것도.

로레인이 안겨 온 것도.

전부 한결 꿈처럼 느껴졌다.

"로레인 그......."

시몬이 말을 꺼내려는데,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도망쳐!"

폐허 속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왔다. 그것이 바닥을 짚으며, 좀비처럼 변한 아까의 그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빨리 뛰어 시몬!"

시몬은 그녀를 따라 정신없이 달렸다.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때리자 조금 평정심이 돌아왔다.

'망령 언데드라면 내 혼돈으로 잡을 수 있어!'

시몬이 스피릿 개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은 '카오스 스피어'뿐이다.

하지만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시몬! 먼저 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녀가 불쑥 제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내 초크 목걸이 끝에 달린 자물쇠를 찾아서 앞으로 되돌렸다.

"에슈와 토토가 걱정돼! 여긴 내가 맡을게!"

찰칵!

그녀가 자물쇠의 봉인을 열었다. 루비 같은 눈동자에 붉은 광채가 일렁이며, 머리카락이 검붉은 칠흑과 함께 공중으로 치솟았다.

'이능을 쓰기로 했구나!'

이능을 쓰는 로레인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몬도 혼돈을 준비하며 등을 돌렸다.

"부탁한다!"

"응."

시몬이 뒤를 돌려 달리고, 로레인은 아공간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평범한 무기처럼 보이지만, 단검의 날에 눈이 박혀 있는 엄연한 소환수였다.

그녀가 단검에 이능의 힘을 흘려 넣었다.

스르르르르르!

단검이 새빨간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로레인은 우아한 동작으로 무기를 고쳐잡으며 다가오는 악령을 주시했다.

"하앗!"

스릉!

그녀가 자세를 낮추며 단검을 휘둘렀고, 허공에 시뻘건 궤적이 그어졌다.

그걸로 충분했다.

악령의 몸이 단검을 따라 절단되더니, 그대로 파괴되었다.

"설마......!"

악령이 사라지는 잔해들을 바라보던 로레인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 * *

시몬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집중력을 끌어올려 몸에 혼돈을 장전한 뒤, 수풀을 뚫고 나왔다.

"얘들아!"

그런데 약속장소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시몬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외쳤다.

"토토! 에슈! 어디 있어?"

멀리서 꺄아아아악-! 하는 에슈의 비명이 들렸다.

"저긴가!"

시몬이 바로 발을 돌려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렸다.

스스스스-!

하지만 얼마 걷지도 못하고 급히 걸음을 멈췄다. 수풀 속에서 소녀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왜.

폐가에서 봤던 바로 그 소녀였다.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시몬은 즉시 허리춤에서 '카오스 스피어'를 꺼낸 다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던졌다.

거친 천둥소리가 대기를 흔들고, 날아간 자색의 창은 소녀의 형상을 관통했다.

"쓰러트렸......!"

덥석!

시몬의 시야가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시몬의 등 뒤에서 두 손이 다가와 그의 눈가를 가린 것이다.

"왜 나만 두고 갔어요?"

시몬은 놀란 소리를 내며 황급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 카오스 스피어를 꺼내 반격하려는 순간.

푸훕-

웃음을 참고 있는 한 여자를 마주해야 했다.

아하하하하!

놀라서 잔뜩 긴장해 있던 시몬의 얼굴이 이내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세르네!"

그녀는 세르네였다.

벨벳 같은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휘날리며 웃어대던 그녀가 눈꼬리에 눈물을 닦는 시늉을 봤다.

"너무 웃겨. 올해 본 시몬의 표정 중에서 두 번째로 좋았어요. 으으으."

"이게 다 무슨 짓이야! 장난치고는 심하잖아."

대답 대신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은 그녀가 하늘을 나는 듯 사뿐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흐흐흥-"

그러고는 카오스 스피어를 쥔 시몬의 손을 붙잡고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게 그 혼돈이구나."

"......뭐?"

"한번 던져봐요."

당돌하게 그렇게 말한 그녀가 숲 쪽으로 손을 뻗었다.

"저기 표적 있잖아요?"

아까 한바탕 속았던 바로 그 귀신소녀가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

시몬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차피 한번 꺼내놓은 상태니, 소모하긴 해야 했다.

시몬은 혼돈의 창을 고쳐 쥐고 그쪽으로 던졌다.

콰르르르릉!

자색번개가 쏘아져 나가며 소녀의 몸에 닿자, 깃털이 휘날리는 임팩트와 함께 환영이 사라졌다.

"......이제 만족해?"

"시몬."

세르네가 불쑥 다가와 그와 눈을 마주쳤다.

"신성 쓸 수 있죠?"

"!"

시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세르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뒷짐을 쥐고 사뿐히 걸었다.

"사실 1학년 때, 같이 성녀와 싸운 뒤부터 쭉 의문이었거든요."

그녀가 가느다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시몬은 어떻게, 다른 누구도 아닌 성녀의 '신성화염'을 받고도 멀쩡했을까."

"......."

"보통의 네크로맨서라면 일격에 전신이 불살라졌을 텐데, 왜 시몬만 멀쩡했을까."

이건 위험했다.

신성을 쓸 수 있다는 건 군단장임을 들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시몬은 애써 침착함을 꾸며내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혼돈을 봤다고, 갑자기 신성을 눈치채긴 어렵다.

혼돈의 조합 비율에서 신성은 소량만 쓰이고, 거기에 피와 섞어서 운용한다.

분명 떠보는 것이리라. 그녀가 말하는 신성은 아무런 근거가.......

"실은, 미래의 시몬이 말해줬거든요."

시몬은 잠깐 제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졌다.

"미래의 시몬은 이렇게 말했죠! 혼돈은 공허를 쓰기 전의 걸음마일 뿐이다."

"!"

시몬은 목덜미가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혼돈에 질서를 가르쳐라. 칠흑과 신성이 다른 요소 없이 순수하게 융합했을 때."

그녀는 두 손을 펼쳐 뭔가를 일으키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양손을 중앙에 착! 하고 모았다.

"기적이 탄생한다."

"......."

"그 기술의 이름은 보이드. 미래의 시몬은 성질도 변경할 수 있었답니다."

그녀가 헤헤거리면서 웃었다.

"맞죠?"

부인할 수가 없었다.

또한 미래의 시몬이 아무 이유 없이 세르네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리는 없다.

시몬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마도 '미래의 시몬'이 '현재의 시몬'에게 주는 힌트라고 생각해요~ 나를 통해서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겠죠."

제 손을 착 맞잡은 그녀의 양 볼이 희미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만큼 그분이 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겠죠?"

"......그거 말해주려고 이런 쇼를 벌인 거야?"

"그런 것도 있고."

그녀가 혀를 쭉 내밀며 귀신 흉내를 냈다.

"에베베-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좀 화도 나서 복수하는 겸사겸사."

"......조원들끼리 움직이라고 아론 교수님이 말씀하셨잖아."

"우리 조는 진짜 재미가 없어서요. 10조랑 같이 다니구 싶단 말이에요."

스릉!

그때 세르네가 가볍게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녀가 기울인 자리로 붉은 뭔가가 일렁이는 듯하더니, 뒤쪽의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세르네가 여우 같은 눈꼬리를 휘었다.

"어머나~ 그 힘 함부로 쓰면 니네 엄마한테 볼기짝 맞지 않아요?"

저벅- 저벅-

어둠 속으로 로레인이 시뻘건 이능을 두른 채 다가오고 있었다.

"......감히 날 속였겠다?"

"아까 진귀한 장면 잘 봤어요."

세르네가 시몬에게 성큼 다가가더니 그의 가슴에 폭 하고 안겼다. 시몬의 얼굴이 벌게졌다.

"막~ 막~ 이렇게 했던가? 시몬 앞에서 센 척은 다 하더니. 이런 꼴불견이......."

로레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너......!"

"로레인 님! 시몬!"

그때 에슈와 토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던 로레인은 '큭!' 하는 소리를 내며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이능을 회수하고 자물쇠를 다시 원래대로 잠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뛰쳐나왔다.

막 머리에 나뭇가지가 꽂혀 있고 나뭇잎이 붙어 있는 걸 보니, 두 사람도 한바탕 난리를 겪은 모양이었다.

"다들 괜찮...... 어어?"

토토와 에슈 모두 뜬금없이 등장한 세르네의 모습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짜안~"

세르네가 손뼉을 짝 쳤다.

"합숙하면 역시 담력시험 아니겠어요? 재밌는 이벤트였죠?"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곳곳에서 귀신의 형상이 튀어나와 우스꽝스럽게 '으흐흐흑' 우는 시늉을 했다.

잠시 멍해 있던 두 사람이 비로소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지, 진짜 놀랐어."

토토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와! 전부 환상이었던 거야? 하하하! 무서웠지만 완전 재밌었어!"

에슈는 제대로 취향 저격이었는 듯 폴짝폴짝 뛰었다. 로레인은 짜증은 나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을 봐서라도 참는 분위기였다.

"세르네! 내일 학과 애들도 데려오자! 진짜 웃길 거야! 다들 놀라 자빠질걸!"

"어머, 그거 재밌겠는데요?"

심지어 에슈는 저 세르네에게도 들이댔다. 대단한 친화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세르네가 전보다 조금 더 자비로워졌다든가.

"그럼."

세르네가 손을 척 뻗었다.

"사과의 의미로 진짜 마을까지 안내할게요. 가죠."

* * *

그렇게 다섯 명은 진짜 '프리고드 자치구'의 한 마을에 도착했다.

저녁인데도 이 마을의 야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파는 물건도 다양했고, 암흑연합의 화폐도 통용되었다.

물론 한 가지 힘든 점이 있다면.

"ŀⴀⴠⴃⴟ!"

"ⴆⴘⴀ?"

말이 안 통한다.

에슈가 직접 앞으로 나와보았다.

"당근을 사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해요?"

"Ⳗⴠⴟ!"

"뭐라고요?"

"ⴆⴶⴘⳖⴠⴟ!!"

"아니, 왜 화를 내세요!"

로레인이 웃으며 에슈를 뜯어말렸다. 세르네는 머리카락에서 깃털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아주 쉬운 방법이 있는데."

"......하지 마."

시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떻게든 몸짓 발짓으로 소통하면서 식자재를 사 와야 할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듀라한 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물도 여기서 조달할 생각이었다.

"어! 저기!"

토토가 팔을 뻗었다.

"아세라즈 조야!"

"진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정말로 아세라즈의 8조가 시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웬일인지 화이트까지 저기에 있었다.

"다들 이 마을에 와 있나 보네."

토토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시몬을 보았다.

"왜 그래 시몬?"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대답한 시몬은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 지나간 아세라즈 조 뒤로, 푸른 머리의 소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뭐 하는 거야? 저 바보가!'

시몬 본인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화이트를 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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