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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83화 (58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83화

시몬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마치 도플갱어와도 같은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을 목격했다.

다소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화이트를 뒤쫓고 있었는데, 그 정체는 안 봐도 뻔했다.

'에르제잖아!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마침 그 또한 시몬이 보고 있는 걸 눈치채고 뒤를 돌아보더니,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왜 그래? 시몬."

로레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 식은땀을 다 흘리네."

"아니, 아니, 아니. 별거 아냐!"

시몬이 필사적으로 웃으며 친구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여,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급한 볼일이 있어서....... 5분! 5분이면 돼!"

"급한 볼일? 갑자기 뭔데?"

로레인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 옆의 에슈는 입을 가리며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갔다 와~"

"?"

로레인이 여전히 이해 못 한 얼굴로 에슈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킥킥거리기만 했다.

세르네도 눈치챈 듯 적당히 손을 휘젓고 있는데, 토토가 휙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같이 갈래."

따라온다고? 곤란하긴 했지만 일단 이 자리에서 뜰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 그럼 다녀올게!"

"옙~ 시원한 볼일 되세요."

에슈의 마지막 한마디를 뒤로하고, 시몬과 토토는 후다닥 근처의 인적없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으으, 너무 오래 참았어."

토토가 주섬주섬 교복 바짓단을 풀기 시작했다.

"빨리 싸고......."

'미안해, 토토.'

시몬은 준비해 둔 슬립을 펼쳐서 토토의 몸에 연달아 걸었다. 토토는 흐느적거리면서 쓰러졌고, 곧 쿨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휴우."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나와. 에르제."

스르르륵!

아무것도 없는 벽면에서 뭔가가 뚝 떨어졌다.

거미줄에 발목을 고정한 채 거꾸로 매달린 시몬의 모습이었다.

[군단장니임! 보고 싶었사와요!]

그녀가 울먹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몬을 덥석 끌어안았다. 시몬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내가 내 품에 안기다니, 누가 봐도 그림이 좀 괴기하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녀가 멀뚱멀뚱 시몬을 보았다.

[소녀에게 내린 화이트를 추적하라는 명령. 잊으셨사와요?]

"그러니까. 왜 하필 내 모습으로 추적하는 건데!"

[화이트의 시선을 끌어보려고 했사옵니다.]

그녀가 다리에 묶인 거미줄을 풀고 제대로 내려와 인사했다.

[그가 군단장님께 집착한다는 것 같으니, 군단장님의 모습을 보여주면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했죠.]

"......너무 위험하잖아."

시몬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정보 수집 방식에 관해선 에르제베트에게 전권을 위임한 상태니 더 뭐라 하진 않았다.

"그래서, 뭔가 수확은 있었어?"

[조금 멍한 것만 빼면 지극히 평범한 학생의 모습이었사와요. 매그너스와 수상쩍을 만큼 닮긴 했지만 딱히 수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사옵니다.]

"으으음."

그때 에르제베트가 검지로 일자를 만들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

이어지는 에르제베트의 말에 따르면, 파견 3일 차에 화이트의 몸이 방전된 것처럼 활동량이 상당히 떨어졌다고 한다.

파견 측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뭐라고 했지만 화이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파견 측에서는 오늘까지 임무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키젠에 연락해서 돌려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화이트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숙면 중이던 화이트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숙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녀는 처음으로 그의 행적을 놓치고 말았사와요.]

"왜?"

[사라졌어요. 허공에 뚝 하고.]

설명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누군가 준비해 둔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이동한 것 같았사옵니다.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은 사용 후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그런 것조차 없었어요.]

시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혈천교의 워프 게이트라면......!'

던전 내부까지 침입할 수 있는 강력한 공간마법.

이 기술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하지만 정황증거만 놓고 생각했을 뿐, 섣불리 화이트를 혈천교나 결사와 잇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화이트의 몸에 추적을 위한 소녀의 체취를 묻혀놨었어요. 소녀는 계속 사라진 곳 근처에서 기다렸고, 잠시 후 화이트가 나타났죠.]

이야기하는 그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사라진 시간은 불과 5분. 제가 묻힌 채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어요. 그렇게 돌아온 화이트는 멀쩡히 걸어가서 그동안 밀린 일을 한 번에 해결했사와요.]

"......."

그런 화이트의 활약에 파견 측에서도 만족했고, 무사히 파견평가를 끝냈다는 이야기였다.

설명을 들은 시몬이 팔짱을 꼈다.

"수상해. 역시 수상해."

어쩌다 저런 수상한 녀석이랑 엮인 걸까 싶었다.

[그게 그렇게 수상한 건가요?]

"당연하지!"

[수상한 거라면 맨날 기숙사에서 사라지고, 배신의 군단장이고, 신성을 쓸 수 있고. 신성과 칠흑을 합칠 수 있고.]

그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심지어 현역 성녀와 커넥션이 있는 군단장님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하옵니다.]

.......

그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키젠에서 제일 수상하구나.

"일단 알겠어. 자세한 건 나중에 복귀해서 이야기하자."

조원들과 세르네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화이트를 계속 감시해 줘. 또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보고해 주고."

[알겠사옵니다.]

갑자기 거미줄을 걷어내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두 팔을 펼쳤다.

[그럼 이번 건의 포상은?]

"......윽."

시몬이 얼굴을 붉혔다.

"꼬, 꼭 지금 해야 해?"

[네!]

고개를 돌린 채 주춤주춤하던 그가, 눈을 질끈 감고 다가가 에르제베트를 가볍게 포옹했다.

[등도 토닥토닥 해주셔야죠?]

시몬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으흐흐흐흐.]

그녀의 입이 헤벌쭉 벌어지며 침이 뚝뚝 떨어졌다.

[아아~ 이 나이 때가 아니라면 못 보는 부끄러워하는 표정, 소녀에게는 극진의 포상이옵니다.]

"이제 됐지!"

시몬이 얼른 뒤로 떨어져 나가며 말했다.

"맡긴 일 계속 잘 부탁해!"

[군단장님의 명에 따르옵니다.]

에르제베트가 공손하게 인사한 다음, 거미줄을 타고 날아갔다.

시몬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되돌렸다.

쿨- 쿨-

토토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바지를 풀다가 슬립이 걸린 탓에, 사각팬티 바람으로 엎어져 있었다.

'어쩐지 좀 미안하네.'

시몬이 다가갔다.

그때 토토가 헤벌쭉하게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좌우로 휙휙 흔들었다.

"에, 에슈......! 거긴 안 돼......!"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이 녀석.

시몬이 손뼉을 짝 쳤다.

"헙!"

토토가 퍼뜩 고개를 들며 스릅 떨어지는 입가의 침을 닦았다.

"시, 시몬?"

"괜찮아?"

시몬이 쪼그려 앉았다. 토토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어......음, 어떻게 된 거야?"

"너, 급하게 여기 들어오다가 저기 머리를 부딪치더니 쓰러졌어."

시몬은 그럴듯한 위치에 삐걱거리고 있는 파이프를 가리켰다. 토토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랬구나. 얼마나 기절했어?"

"5분 정도. 괜찮아?"

"으, 응! 기절했는데 오히려 정신도 맑아지고 컨디션도 많이 돌아온 것 같아! 신기하다!"

"다행이네."

"그리고 막 즐거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떠올리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하던 토토의 얼굴이 화끈 붉어졌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팔을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시몬은 물끄러미 토토의 눈을 응시했다.

"아까 네 입에서 에슈 이름이 나오던데."

"!!"

토토의 입이 떠어억 벌어진 채 두 뺨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너무나 알기 쉬운 반응에 시몬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비밀로 해줄게."

"정말이지? 진짜지!"

골목을 함께 빠져나가는 길에도 토토는 시몬의 팔을 꽉 붙잡고 몇 번이고 비밀엄수를 재확인했다.

판타서스 류의 슬립은 시전 대상자에게 편하고 긍정적인 꿈, 혹은 그가 원하는 꿈을 꾸게 한다.

그렇다는 건.

"혹시 에슈 좋아해?"

시몬이 불쑥 물었다. 토토의 얼굴이 다시 한번 벌겋게 변했다.

"아, 아니아니아니! 내가 에슈를 어떻게......!"

과한 부정은 긍정이라던가.

아까 한참 연상인 에르제베트에게 당했다가, 이번엔 동갑인 토토에게 장난칠 기회가 생기니 뭔가 기분이 새로웠다.

'계기는 세르네의 담력체험이겠지.'

둘이 겁에 질린 채 꼭 붙어서 뛰어다닌 모양이던데, 10대 남녀가 그런 일을 겪으면 없던 정도 생겨날 만했다.

시몬은 룸메이트의 이 새로운 반응에 긍정적이었다.

-시몬, 넌 아직 토토를 잘 모른다. 토토는 잠재력에 비해 늘 나약한 성격이 발목을 잡지. 저런 포지션을 경험해 보는 것도 토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토토에 대한 피츠제럴드의 평가였다.

실제로 토토는 1학년 때 자존감이 극도로 낮은 모습이었지만, 이번 동아리 시즌 때 학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1학년들을 통제하는 군기반장 역할도 맡아보는 등 조금씩 성격이 능동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토토는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다.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성 공포증도 연애를 통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응원할게! 토토."

"뭐, 뭘 응원하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마!"

* * *

시몬과 토토가 돌아올 즈음에,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이었다.

로레인은 격분한 얼굴로 뭐라고 소리치고 있고, 세르네는 팔짱을 낀 채 웃고 있었지만, 살벌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낀 에슈가 필사적으로 뜯어말리고 있었다.

졸지에 키젠과 상아탑의 전쟁을 틀어막는 막중한 사명을 짊어지게 된 그녀는 땀을 뻘뻘 흘렸다. 하지만 저 친화력 좋은 에슈라도 둘의 사이를 어쩌진 못하고 있었다.

"뭐야, 또 싸우고 있었어?"

그때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당장 머리채라도 붙들 것 같던 두 소녀의 살의가 거짓말처럼 꺾이며, 귀밑머리를 쓸거나 빙그레 웃어 보였다.

"정말이지, 유치해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요~"

"......너 진짜 나중에 봐."

오늘도 시몬은 대륙을 한 번 구했다.

에슈는 대체 어떻게 한 거냐는 표정으로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신사분들 볼일도 해결된 것 같고, 가볼까요?"

"응!"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 도시에서 필요한 건 두 가지였다.

합숙기간 동안 해 먹을 음식 재료.

그리고 이번 듀라한 제조를 위한 각종 언데드 용품들이다.

이 도시에 네크로맨서 용품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몬스터 시체를 취급하는 곳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팀을 나누자."

시몬이 제안했다.

"두 명은 음식재료, 세 명은 언데드 용품을 구하러 가는 거야."

"그럼 난 시몬이랑 가야지~"

세르네가 귀엽게 웃으며 시몬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로레인의 안광이 살벌하게 내리꽂혔다.

'일단은 예상대로.'

사실 시몬은 처음부터 로레인과 세르네를 감당할 생각이었다. 동시에 토토와 에슈가 단둘이 있을 시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세르네는 이쪽으로 오려고 할 테고, 로레인도 그런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라도 이쪽으로 올 것이다.

이제 자연스럽게 출발하기만 하면.......

"뽑기로 정하는 건 어때? 그쪽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난데없이 에슈가 뽑기로 정하자며 끼어들었고,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망했다.

"어떻게 정할까? 동전 던지기? 아님 가위바위보 같은 거 내는 사람끼리?"

시몬은 급해졌다.

적어도 내기 내용은 이쪽이 정해야 했다.

"뽑기로 정하는 건 어때?"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 수업 때 듀라한 재료로 쓰고 남은 나무 꼬챙이를 꺼냈다. 아래가 보이지 않도록 주먹으로 감싼 다음 말했다.

"끝이 잘린 거 뽑은 두 명이 같이 가는 거야."

"재밌겠다!"

다른 학생들도 어떻게 정하든 좋은지 바로 동의했다.

시몬은 섬세하게 칠흑을 운용해 꼬챙이를 쥔 손에 끌어모았다.

'로레인과 세르네를 차례대로 먼저 뽑게 하고, 나머지 두 명은 칠흑으로 꼬챙이를 깎아서.......'

"그럼 내가 먼저 해야지!"

에슈가 불쑥 튀어나와 꼬챙이를 뽑았다. 나머지 학생들도 바로 하나씩 꼬챙이를 가져가며 순서가 뒤섞여 버렸다.

그렇게 잠시 후.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시몬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갔다 올게!"

에슈가 시몬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로레인과 세르네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토토가 울상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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