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84화
에슈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야시장에서 함께 식재료를 사는데, 과일 하나 사는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사과 하나에 300실버? 너무 비싸요!"
"ⴇⴃⴝⳖ!"
"크기도 작고 상태도 안 좋은데. 조금만 더 깎아줘요!"
"Ⲝⴇⴝⴇ?"
"뭐예요? 외부인이라고 완전 바가지 씌우는 거잖아요 이거!"
"에슈."
시몬이 그녀를 말렸다.
"그냥 사자. 이 지방은 사시사철 겨울이라 과일이나 채소가 비싸대."
에슈가 휙 고개를 돌렸다.
"아, 진짜? 혹시 회장은 여기 사람들 말 알아들어?"
"......아니, 딱 봐도 그런 이야기잖아."
시몬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슈를 컨트롤하며 야시장을 돌아다녔다.
다소 원시적인 시장이긴 했다. 마나 조명 같은 건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고, 촛불이나 화등잔을 이용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대충 다듬은 털가죽을 둘렀다.
'흠.'
어쩐지 살벌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곳의 남자들은 시장가에서도 완전 무장 상태였다. 전투가 빈번한지 몸이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여자들은 한 무리의 아이들의 데리고 다녔는데,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으악! 보지 마!"
에슈가 원주민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허둥지둥 시몬의 눈을 가렸다.
아무튼, 최근에 극도로 발달한 상아탑 도시를 다녀왔다가 프리고드 자치구에 오니 기분이 색달랐다.
물론 이런 곳도 이런 곳 나름의 둘러보는 즐거움은 있었다.
"오. 외부인. 너희."
가끔 대륙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원주민이 어색한 말투로 이야기하며 시몬에게 다가왔다.
"왔어. 어디저."
"드레스덴 지방에서 왔습니다."
"두- 두- 두레즈데."
"드레스덴이요."
초원 출신의 마투학 교수, 홍펭의 말투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주의. 너희들. 죽어."
그가 창끝으로 목을 휙 긋는 시늉을 했다.
"많아. 몬스터들. 부셔서 쳐들어와. 마을."
"아, 그렇군요."
"또. 언제. 부서질지 몰라. 마을."
그렇게 말하는 주민들의 표정에는 시름이 가득해 보였다.
삐이이익!
"Ðⴆŀº!"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시장에 머물러 있던 남자들의 표정이 일제히 싸늘하게 변했다. 죄다 무기를 꼬나쥐고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조심! 외부인. 조심!"
시몬에게 말을 걸어주던 이 원주민도 무기를 들고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에슈가 팔짱을 꼈다.
"세상 어디든 다들 힘들게 사는구나."
"그러게."
마을의 입구까지 들어온 몬스터가 거칠게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수의 차이를 극복하질 못하고, 원주민들의 창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다.
원주민들은 즉각 몬스터의 목을 베어 그 피로 샤워를 했고, 주위의 원주민들이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대륙 어디든 몬스터와의 전쟁은 일상인 듯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인 것 같은.......'
"회장, 이쪽이야! 저기 배추가 커!"
* * *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는 다 챙겼다.
이제 하나 남은 건.
"고기! 고기는 무조건 필수야!"
아직 가장 중요한 고기를 구하지 못했다.
워낙 고기가 귀해서 그럴까, 이 시장에도 아직 육류를 제대로 취급하는 곳을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이 열심히 시장을 뒤지고 있는 그때.
쿵!
쿵!
식칼로 고기 써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저기야! 시몬!"
귀를 쫑긋 세운 에슈가 먼저 달려 나갔다.
"자, 잠깐만! 같이 가. 에슈!"
시장 외곽에 작은 도축장이 있었다. 작업용 선반에는 살이오른 순록 한 마리가 해체되어 있었고, 마침 도살업자가 그 순록의 고기를 보기 좋게 썰어 올려두는 중이었다.
이 남자는 주위의 다른 주민들과는 차림새부터가 달랐다. 작업용 앞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장화를 신었다.
"안녕하세요!"
에슈가 뛰어 들어왔다. 도살업자는 그녀를 보고는 상냥하게 웃었다.
"ⴋÐⴝⴇ!"
"앗, 또 느끼는 언어의 장벽......!"
"프리고드 밖에서 오셨습니까?"
에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대륙어 할 줄 아시네요!"
"하하하! 그렇습죠! 어릴 땐 프리고드 자치구에서 살다가 총각 시절엔 샤헤드에서 일했지요."
"우와, 우와, 엄청 반가워요!"
시몬은 에슈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살업자를 살피고 있었다.
'이 사람.'
피 냄새를 풍긴다.
단순히 후각의 의미만은 아니었다. 얼굴은 순박하게 생겼지만, 옷 소매 밖으로 보이는 탄탄한 팔뚝, 두드러진 혈관, 그리고 전투에 특화된 근육의 구조.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고작 시골에서 정육점을 하고 있을 인물이 아니다.
'누구지?'
시몬이 뒤에서 바짝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도살업자와 에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오늘 순록 고기가 아주 좋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제가 직접 잡았습죠!"
"직접이요?"
"저는 제가 직접 잡은 사냥감만 도축하는 걸 모토로 삼지요."
그 말에 시몬은 고개를 한 차례 갸우뚱했다.
'......사냥꾼 겸 해체업자. 단순히 몬스터 사냥의 전문가라서 그런 건가?'
시몬은 다소 긴가민가했지만, 일단 에슈를 따라 그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시몬에게도 살갑게 인사했다.
"어서 와요! 아가씨 친구분이죠?"
"네."
도살업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주먹을 세웠다.
샤헤드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인사. 시몬도 뒤따라 주먹을 세워서 맞부딪혔다.
"이런 험지까지 오실 분들이 아닌 것 같은데. 여기까진 어떻게?"
"아! 그게요!"
에슈가 말하려는데, 시몬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얼른 말했다.
"관광객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프리고드가 관광 허가를 받기는 까다롭지만, 들어올 수만 있다면 대자연과 고농도의 마나를 느낄 수 있는 곳입죠! 고대 유적도 많고요!"
옆에 있던 에슈는 바로 눈치껏 장단을 맞춰주었다.
"관광지로서는 정말 좋은데! 몬스터 고기는 이제 지겨워요!"
"그런 두 분을 위해 제가 순록 고기 한번 제대로 썰어드리겠습니다!"
그가 큼지막한 식칼을 들어 올리더니, 능숙한 솜씨로 순록의 고기를 한 뭉치 썰어내어 그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두툼한 선홍색 살결에, 우윳빛 지방. 마치 살아 있는 고기처럼 신선해 보였다.
"순록 한 마리에 딱 이 한 점밖에 안 나오는 최상급 부위입죠!"
에슈가 난감한 듯 등을 기울였다. 이미 식재료로 적지 않은 돈을 쓴 뒤였기에 최상급 부위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우, 우린 그렇게 많은 돈이 없는데요."
"800실버만 주십쇼. 일반 고깃값보다 싸게 받겠습니다."
도살업자가 순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외부인분들을 보니 저도 반가워서요."
"진짜요? 와아! 감사합니다!"
에슈는 바로 돈을 내밀어 고기를 샀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시몬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하, 별말씀을! 아 참!"
도살업자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사실 제가 사람을 찾고 있습죠. 혹시 여러분 나이 또래의 금발 여자아이를 이 마을에서 보셨습니까?"
에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금발요? 대륙에 금발이 한두 명이 아닌데."
시몬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그건 왜 궁금하신데요?"
"하하하! 아는 지인이 이 마을에 와 있다고 해서요! 같이 여기로 넘어왔는데 통 안 보여서 걱정이네요."
도살업자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시몬도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감사합니다! 또 오십쇼!"
"많이 파세요!"
에슈는 손을 힘껏 흔들어주었다. 시몬은 도살업자와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 겸 주먹을 맞부딪혔다.
"척 봐도 알겠습죠. 우리 신사분은 아주 훌륭한 전사로군요!"
도살업자가 말했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시몬도 웃는 얼굴로 맞수 했다.
"이거, 눈썰미가 좋으십니다! 하지만 저는 '훌륭한' 전사는 아닙죠."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냥 고기 써는 백정일 뿐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도살업자는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친절하게 손을 흔들어준 후 다시 순록 해체 작업을 재개했다.
워낙 고기가 귀한 곳이다 보니, 도살업자가 작업을 시작하자 프리고드 자치구의 마을 주민들이 힐긋거리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대륙돈이 없는데, 이 조개껍데기로 구매할 수 있소?)"
"(그럼요. 물론이죠!)"
도살업자는 자신이 다소 손해 보는 물물교환도 웃는 얼굴로 허락해 주었다. 주민들은 활짝 웃으며 귀한 순록 고기를 사 들고 돌아갔다.
어느새 가판대에 놓여 있던 순록 하나는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작업을 마친 그가 뿌듯한 얼굴로 피가 묻은 손을 헝겊으로 쓱쓱 닦고 있는 그때.
"보고도 이해가 되질 않는군."
그를 프리고드 자치구로 불러들인 장본인.
긴 모자를 쓰고, 얼굴엔 한쪽 동공만 달려 있는 정장 차림의 신사가 다가왔다.
"굳이 먼저 출발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일찍 와서 이런 곳에서 정육업을 하는 거요?"
"말했잖아."
도살업자가 시가를 입에 물며 불을 붙였다.
"이게 내 의식이야. 작업 전 중요한 루틴이라고."
"......뭐, 일만 확실하게 해준다면 좋소."
외눈 신사가 손에 든 지팡이로 가볍게 바닥을 때렸다.
"그보다, 키젠 측도 이미 프리고드 자치구에 들어와 있다고 하오."
"어, 그래?"
"혹시 아이들이 여기 오지 않았소?"
"왔었지."
도살업자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외눈 신사의 하나뿐인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왔다고? 정말이오?"
"프리고드 자치구 밖에서 온 애들인데, 키젠인지 아닌진 몰라. 털 달린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거든."
"잠깐! 혹시......."
도살업자가 그의 말을 끊으며 손을 휘저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타깃인 금발 여자는 아니었어. 그 애들한테도 물어봤는데,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백금발이겠지! 그리고 또 한 사람! 설마 잊진 않았소?"
"누구더라?"
"시몬 폴렌티아 말이오! 파란색 머리의 소년!"
도살업자가 그의 모습을 떠오르려는 듯 인상을 구겼다.
분명 로브 끝에 보이던 건 파란 머리카락이었다.
"어, 맞다. 걔도 파란 머리였지."
"이보시오!"
"하하,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도살업자가 시시덕거렸다.
"난 내가 '썰어버릴 인간'만 생각해. 금발 여자애는 썰 생각이라 기억이 나는데 그, 뭐야...... 아무튼 그 남자놈은 생포하라며? 썰지도 못할 인간을 내가 어떻게 기억해? 이건 당신들이 잘못한 거야."
"이런 멍청한! 키젠 교수들과 부딪히지 않고도 시몬 폴렌티아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외눈 신사는 불같이 화를 내며 급히 통신수정구를 들었다.
"어디로 갔소?"
"저 앞으로 슬슬 걸어가던데. 20분쯤 지났나."
"모두 들으시오! 시몬 폴렌티아가 이 마을에 있소. 전원 8시 방향으로 이동! 파란 머리카락의 10대 소년을 반드시 찾아내시오!"
촤촤촤촤촤촥!
그의 지시에,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던 암살자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이내 건물 천장을 딛고 도약하는 그들의 시선이 부리부리하게 빛났다.
'늦었다. 이미 도망쳤겠지.'
외눈 신사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얼마 안 가.
-8시 방향, 파란 머리카락의 10대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안에는 교복을 입고 있다. 타깃으로 확인.
정말로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오늘은 일이 풀려도 이렇게 풀리는 날인가. 외눈 신사가 통신수정구를 들었다.
"곧 가겠소. 내가 가기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생포하시오!"
* * *
처억! 척!
척!
암살자들이 푸른 머리의 소년 앞으로 내려왔다.
"찾았다. 타깃이 확실하다."
"교전 허가를."
푸른 머리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
고개를 한 차례 갸우뚱한 그가 피식 웃었다.
"뭐야, 이 불나방들은."
소년을 포위한 암살자들의 등 뒤로.
음침한 빛을 반사하는 거미줄이 다가오고 있었다.